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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SUV

2014.11.19GQ

폭스바겐 신형 투아렉은 외모를 정돈하고 엔진 효율을 높였다. 승차감을 다듬고 전자 장비를 더했다. 우월을 넘어 완벽을 꿈꿨다. 과연 폭스바겐 회장님이 아끼는 차다웠다.

독일 뮌헨은 BMW의 본고장이다. 본사와 공장, 연구개발센터 등이 뮌헨에 있다. 그런데 뮌헨 국제공항에 내려서면 좀 어리둥절하다. 벽면 전체가 아우디 광고로 도배되어 있다. 건너편엔 아우디 전시장이 떡 버티고 섰다. 아우디 트레이닝 센터도 지척이다. 아우디 본거지인 잉골슈타트에서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이 뮌헨에 자리한 까닭이다. 최근 아우디의 모기업 폭스바겐 그룹은 뮌헨 점령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아우디는 물론 벤틀리와 포르쉐 등 산하 계열 브랜드의 행사를 줄기차게 뮌헨에서 치르는 중이다. 이번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9월 23일, 밤늦게 도착한 뮌헨 국제공항 앞마당엔 폭스바겐 신형 투아렉과 아우디 S3 시승회를 알리는 팻말이 우뚝 서 있었다. 2.5세대로 거듭난 투아렉을 만나기 위한 여행이었다.

투아렉은 2002년 데뷔한 폭스바겐 SUV의 정상. 페이톤과 더불어 폭스바겐 회장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꿈과 열정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피에히는 경영자이자 엔지니어다. 그는 이름은 같되 성만 다른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외손자다. 피에히가 태어났을 때 포르쉐는 이미 엔지니어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그만큼 부유하기도 했다. 곧 2차 대전의 포효에 유럽 전체가 들썩였지만 피에히는 오스트리아 첼암제의 농장에 머물며 비교적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16세 때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18세엔 중형 화물차 면허까지 땄다. 방학 중엔 어머니의 포르쉐 356 스피드스터를 몰고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땐 아예 포르쉐 356을 선물로 받았다. 그는 외할아버지가 세운 포르쉐 설계사무소에서 실습을 시작했다. 1959년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에 들어갔다. 세 딸과 아내를 부양하며 대학을 다녔다. 아버지의 유산 덕분에 궁핍하진 않았다. 그가 졸업 작품으로 F1 경주차용 12기통 1.5리터 공랭식 엔진을 만들었을 때, 포르쉐와 피에히 가문은 굉장히 기뻐했다. 양가 자녀 가운데 에른스트 포르쉐와 더불어 유일한 대학 졸업자였기 때문이다.

 

오프로드에서의 투아렉투아렉의 오프로드 성능은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저 현존하는 SUV 중 최고 수준이라고 인정하는 수밖에, 못 갈 길이 별로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오프로드에서의 투아렉

투아렉의 오프로드 성능은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저 현존하는 SUV 중 최고 수준이라고 인정하는 수밖에, 못 갈 길이 별로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안팎의 투아렉내외관의 차이는 별로없다. 내부를 호사스럽게 치장하기 보다는 본질에 집중하는 폭스바겐의 철학이 그대로 드러나는 세부.  

안팎의 투아렉

내외관의 차이는 별로없다. 내부를 호사스럽게 치장하기 보다는 본질에 집중하는 폭스바겐의 철학이 그대로 드러나는 세부.

 

 

 

1962년 12월 학위를 취득한 이듬해 초 그는 항공업계에 취직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스위스 공군이 보유한 유일한 프로토타입 전투기가 추락하면서 스위스 항공업계가 된서리를 맞은 탓이었다. 1963년 4월 1일부터는 포르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엔지니어로서의 삶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는 기술적 완벽을 추구했다. 초기 911 엔진에도 그의 손맛이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성격이 원만한 편은 아니었다. 타협에 서툴렀다. 일단 뜻을 세우면 좀처럼 굽히는 법이 없었다.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는 가문의 미움을 사 포르쉐에서 쫓겨났다. 개발비를 흥청망청 썼다는 이유였다. 이후 그는 아우디 기술부장을 거쳐 폭스바겐의 총수가 되었다. 당시 폭스바겐의 기에 눌려 꼼짝 못하던 아우디에서 여러 기술적 쾌거를 이끌었다. 콰트로와 TDI 엔진을 상용화한 것도 그의 업적 중 하나다. 1993년 폭스바겐 회장이 되면서부터는 날개를 달았다. 벤틀리와 람보르기니, 부가티 등을 인수해 회사 덩치를 키우는 한편 아우토슈타트를 세웠다.

 

그 탄탄대로 앞에, 그를 제대로 자극한 사건이 일어났다. 1997년 메르세데스-벤츠가 A클래스를 내놓은 것이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대중차 진출. 기막힌 반전이었다. 피에히는 그 반대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폭스바겐 페이톤을 낳은 D1 프로젝트다. 2002년 폭스바겐은 페이톤과 투아렉을 야심차게 내놓았다. 두 차종을 앞세워 폭스바겐 브랜드의 신분상승을 꿈꿨다. 개발 과정도 유별났다. 페이톤은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바닥에 원목을 깐 공장에서 유유히 조립됐다. 투아렉은 포르쉐, 아우디와 플랫폼 및 주요 부품을 나눴다. 브랜드신분은 엄연히 달랐지만 내용엔 차별이 없었다. 가격 대비 가치 역시 최고였다. 이후 투아렉은 2007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쳤고 2011년에 2세대로 거듭났다. 이번에 다시 부분 변경을 거치면서 2.5세대로 진화했다. 시승은 뮌헨 국제공항에서 교외의 그린힐 골프파크까지 편도 94킬로미터 구간에서 진행됐다.비교적 짧은 코스, 이번 변화의 폭을 암시하는 단서였다. 외모의 변화는 구분이 쉽지 않을 것 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의 가로 줄을 좀 더 촘촘히 채워 수평적 느낌을 강조했다. 여기에 앞트임을 시술한 것 같은 눈매를 짝지어 윤곽이 한결 또렷해졌다. 앞 범퍼 흡기구는 그릴과 대칭되는 형태로 바꿨다. 옆구리의 크롬 라인은 앞뒤 범퍼까지 이었다. 테일램프는 테두리는 그대로 두되 안쪽 조명을 좀 더 화려하게 다듬었다.

 

실내의 변화 역시 크지 않다. 조명을 빨강에서 흰색으로 바꾸고 일부 패널의 나뭇결무늬를 좀 다르게 바꾼 정도다. 진짜 변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많이 스며 있다. V6 3.0리터 TDI엔진은 힘을 17마력 더 키웠다. 동시에 배기가스내 산화질소는 줄였다. 코스팅 기능도 더했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뗄 때마다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의 연결을 단호히 끊는다. 그 찰나에도연료를 아끼기 위해서다. 연비는 약 9퍼센트 개선됐다. 서스펜션은 더 부드럽게 다듬었다. 비교적 짧은 구간을 달리면서 이전 모델과의 차이를 느끼긴 어려웠다. 3년 전 투아렉은 이미 획기적인 경량화와 빈틈없는 주행감각을 완성한 상태였다. V8 디젤을 경험하지 않는 이상, V6 디젤의 힘은 언제든 아쉽지 않다. 고속에서도 한사코 차분했다. 덩치와 무게가 상당한 SUV란 사실에도 변함이 없었다. 골프장엔 폭스바겐의 깜짝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골프장 주변의 들판을 파내고 쌓아 살벌한 오프로드 코스를 만들어놓았다. 먼저 도착한 투아렉들이 들썩들썩 코스를 헤집고 있었다. 투아렉은 더없이 강인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안정적으로 시속 25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으면서 이처럼 악랄한 험로도 누빌 수 있는 SUV는 극소수다. 랜드로버와 포르쉐 카이엔, 폭스바겐 투아렉 정도다. 가격은 투아렉이 제일 합리적이다. 전엔 고급스런 감각이나 장비가 다소 뒤처졌던게 사실이다. 이젠 다 따라잡았다. 회장님의 신분상승 프로젝트도 비로소 완성됐다.

 

폭스바겐 제품홍보 담당 크리스티안 부먼과의 인터뷰

 

성능과 연비 변화가 기대했던 것보다 크지 않다. V6 3.0리터 디젤 엔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킬로미터당 15그램 더 줄였다. 굉장히 중요한 이슈다. 디젤이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어서다. 전체 투아렉 판매 중 디젤 비중이 한국은 100퍼센트, 유럽은 90퍼센트, 미국은 50퍼센트에 달한다. 요즘 작은 SUV가 인기다. 그런데 투아렉은 여전히 크다. 한국과 유럽에서 볼 때 투아렉은 대형 SUV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중형이다. 폭스바겐은 전 세계 시장에서 다양하게 어필할 수 있는 SUV를 개발하려고 한다. 투아렉과 티구안 사이, 그리고 티구안보다 작은 SUV를 개발할 계획이다. 이 네 가지 세그먼트로 SUV 시장을 공략할 거다. 라인업을 갖추고 나면 충분히 경쟁사를 따라잡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일단 내년 티구안 베이스의 7인승 SUV를 선보일 거다. 크로스블루라는 콘셉트카로 반응을 살핀 적이 있다. 아직 이 차를 한국에 팔 지는 결정된 바 없다. 티구안을 밑바탕 삼되 쿠페 스타일로 다듬은 SUV도 내놓을 예정이다. 또한 티구안보다 작은 SUV는 신형 골프에도 쓴 MQB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한다. 이처럼 플랫폼의 기본 활용 방안이 완성되어 있어서 시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보통 승용차의 모델 변경 주기가 6~7년인데, SUV는 빠르면 2년마다 변화를 줄 계획이다.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 김기범
    ILLUSTRAION
    권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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