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나

 

 

10년 전엔 칼 라거펠드가 H&M의 옷을 만들 거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H&M 협업 컬렉션은 깜짝 선물처럼 예상치 못한 디자이너의 이름을 꽃다발을 뿌리듯이 세상에 던진다. 칼 라거펠드를 시작으로 스텔라 매카트니, 빅터 앤 롤프, 로베르토 카발리, 꼼 데 가르송, 매튜 윌리엄스, 지미 추, 랑방, 소니아 리키엘, 바르사체, 마르니,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이자벨 마랑 그리고 지금  알렉산더 왕이 함께했다. 10년 전 시작된 H&M의 협업 컬렉션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흰 티셔츠처럼 협업 컬렉션 자체를 ‘심플하게’ 만들었고, 소년과 소녀들에게는 처음으로 디자이너 옷을 입을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들은 밤새 줄 서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실용과 기능, 스타일을 갖춘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의 이번 컬렉션 역시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 H&M에서 이탈리아산 스웨트 셔츠를 만들고, 토요일 밤 코첼라 파티부터 아크로바틱과 런웨이 쇼, 사라야 J와 미시 엘리엇의 공연까지 기획한 알렉산더 왕과 짧게 인터뷰를 나눴다.

 

당신이 만든 H&M 컬렉션은 실용적이지만,  스포츠웨어에 훨씬 가깝다고 느꼈다. 예전부터 퍼포먼스 스포츠웨어에 관심이 많았다. 기능적인 소재를 혁신적으로 제작한, 성능이 뛰어난 옷을 만들고 싶었다. 난 항상 티셔츠나 스웨트 셔츠, 러닝 쇼츠 같은 운동복을 입고 산다. 스포츠웨어는 헬스 클럽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더 자주 본다.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매일 그리고 평생 스포츠웨어를 입는다. 그래서 난 H&M에서 밤에도 낮에도 입을 수 있는 퍼포먼스 스포츠웨어를 만들었다. 

 

H&M의 이전 협업 컬렉션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과거를 회고하거나 아카이브를 재조합하는 컬렉션보다 뭔가 다르고 새로운 걸 하고 싶었다. 이게 요즘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옷이라 생각한다. H&M이라고 단순히 비싼 걸 싸게 살 수 있는 컬렉션을 만들기보다는 퍼포먼스 스포츠웨어에 적당한 가격을 책정했다. H&M에서는 그 가격 선에 맞춰 최고의 소재와 새로운 제작 방법에 관한 아이디어를 냈다. 지금까지 함께했던 다른 디자이너들도 많이 말했겠지만, 보다 폭넓은 고객을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은 디자이너로서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당신이 청년기를 보낸 1990년대의 모든 것이 돌아오고 있다. 그게 당신이 지금 주목받는 이유가 될까?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나처럼 1990년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한 디자이너들이 요즘 주목받는 건, 그 시절 음악과 패션 스타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옷들을 사는 사람들도 199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고, 그 스타일에 열광했던 사람들이다. 패션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전반적으로 그 움직임이 느껴지지만, 이걸 트렌드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브랜드와 발렌시아가, H&M을 한 번에 만들면서 시간이 모자라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시간표를 잘 짜면 된다. 내가 정한 시간표대로, 마감해야 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면 그에 따라 집중할 수 있다. 발렌시아가와 H&M은 내가 정한 시간표를 적극 지원해줬다. 그리고 내겐 내가 완전히 의지하는 완벽한 팀이 있다.

 

시간표를 짜는 기준은 뭔가? 간단하다. 뉴욕에서는 알렉산더 왕에 집중하고, 파리에서는 발렌시아가에 전념한다. 그 외의 시간에는 친구들과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보낸다. 사실 그 시간이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