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DITOR’S LETTER – 어둑어둑해질 무렵

2014.11.27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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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엔 모든 게 범람합니다. 하늘의 영광도 땅의 광채도 온통 차고 넘칩니다. 높은 가지에서 빛이 흘러나올 때, 지저분하게 벌어진 아기의 입조차 상기됩니다.

 

추운 날, 미셸 콰스트 신부의 시를 선물 받았습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 어둠 속에 있을 때, 불안할 때, 침묵에 잠겨 있을 때, 모든 게 희미하게 느껴질 때 붙들 수 있는 말 같아서,라고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는 주註를 달았습니다. 네가 이 시를 좋아할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겠어.

12월엔 모든 게 범람합니다. 하늘의 영광도 땅의 광채도 온통 차고 넘칩니다. 높은 가지에서 빛이 흘러나올 때, 지저분하게 벌어진 아기의 입조차 상기됩니다. 하지만 마음은 모든 은총을 잃어버리고 재수생의 저녁 무렵처럼 어둑어둑해집니다. 우리는 하나이며, 모두가 사랑이라고 분주하게 아우성 쳐봤자 12월만큼 혼자라는 걸 알겠는 때도 없습니다. 이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감상적인 종교심’ 때문이 아닙니다. 세속의 바늘 끝을 점프하며 사는 처지지만 이렇게 거룩할 때도 있다고 전시하는 건 싫습니다. 헐벗은 마음엔 어떤 보상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언어가 아름다웠습니다. 그냥 이렇게 드문 아름다움을 당신과 나눠 갖고 싶었습니다.

 

[사제-주일 밤의 기도] 

(미셸 콰스트)

주여, 오늘 밤, 나는 혼자입니다. 성당 안의 소음도 차츰 사라지고 모두들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도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나 혼자서.

산책에서 돌아오는 사람들과 마주쳤습니다. 많은 사람을 내뱉듯 쏟아놓는 극장 앞을 지나서 일요일의 기쁨을 좀 더 오래 즐기려고 다방 앞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한가한 이들을 피해 가다가 나는 길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과 마주쳤습니다. 주여, 그 아이들은 절대 내 아이가 될 수 없는 남의 아이들입니다.

주여, 나를 보십시오. 나는 혼자입니다. 침묵이 나를 숨막히게 하고 고독이 나를 괴롭힙니다.

주여, 나는 서른다섯, 다른 사람과 다름없이 건장한 몸,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힘찬 팔과 누군가를 사랑하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바쳐왔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당신은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다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주여, 이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몸을 사람에게 주지 않고 주님께만 드린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면서도 누구의 사랑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젊은 여성과 악수를 하면서도 그 손을 오래 잡고 있을 수 없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성에 대한 사랑이 싹트면서도 이를 주님께 드린다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남을 위해서 모든 것이 된다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고 또 그들 틈에 끼어 있으면서도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받을 생각을 않고 언제나 주기만 한다는 것, 내 이익은 찾지 않고 남의 이익만을 찾는다는 것, 남의 죄를 듣고 혼자 괴로워하고 이를 견디어내는 것, 비밀이 있으면서도 이를 어떻게든 터놓지 못한다는 것, 언제나 남은 이끌고 가면서도 자신은 한순간도 이끌리지 못한다는 것, 약한 사람을 붙들어주면서도 자신은 어느 강한 사람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 모두 다 어려운 것뿐입니다. 혼자라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 있으면서도 혼자라는 것,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고통과 죽음과 죄 앞에 혼자 서 있다는 것. 주여, 정말 어렵습니다.

아들아, 그래도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않느냐? 내가 바로 너다. 내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강생과 구속사업을 이어가자면 또 다른 ‘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너를 나로 알고 영원으로부터 뽑은 것이다. 나는 네가 있어야 한다. 내가 계속 축복을 주려면, 네 손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계속 말을 하려면, 네 입술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계속 고통을 받으려면, 네 몸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계속 사랑하려면, 네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내가 계속 구원을 주려면, 너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아들아, 나와 함께 있어다오.

주여, 저 여기 있습니다. 내 몸도 내 마음도 내 영혼도, 다 여기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이 세상 어디나 다 닿을 만큼 크게 해주시고 이 세상을 다 짊어질 수 있을 만큼 강하게 해주시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간직하지 않고 이 세상을 다 끌어안을 만큼 순결하게 해주소서. 나로 하여금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뵙는 장소가 되어도 곧 지나쳐버리는 곳이 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주님께로 향해 가는 길이 되게 하시고 아무것도 꺾을 것이 없는 길이 되게 하소서. 주여, 오늘 밤은 모든 것이 고요한데 내 마음속은 뒤끓어 몹시 고통을 느낍니다. 모두 내게서 영혼을 탐내고 있지만 나는 그들 하나하나의 굶주림을 다 풀어줄 수가 없습니다. 온 세상이 내 두 어깨를 비참과 죄악으로 마구 찍어 누르지만 나는 자조하지 않고 천천히, 똑똑히, 또 겸허하게 “그렇습니다, 주여” 하고 되풀이합니다.

주여, 나는 주님 앞에 혼자 있습니다. 이 밤의 평화 속에서.

* 이 시는 1974년, 성바오로 출판사에서 발간한 <삶의 모든 것> (미셸 콰스트 지음, 최익철 옮김)>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에디터
    글 / 이충걸(GQ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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