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生 [MEN OF THE YEAR – 채현국]

신년 벽두에 뜻밖의 인터뷰가 전해졌다. 그 인터뷰 하나로 채현국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막상 그를 만나 ‘선생님’하고 부르자 “선생님은 무슨 선생님이야, 할배지”했지만.

 

이진순 박사가 진행한 <한겨레> 인터뷰 =이후에 전에 없는 한 해를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없던 일이 좀 생겼죠. 젊은 분들한테 연락이 많이 왔어요. 저는 원래 알고 지낸 사람만큼이나 새로 안 사람도 좋아합니다. 내외간에도 꼭 오래 산다고 정이 깊진 않거든요. 만약 그렇다면 새 옷을 살 리가 없죠. 골동품은 골동품이어서 좋지만 새건 새거여서 좋은 거니까.

“제법 훌륭한 사람처럼 쓰지 말라”고 말씀하신 조건을 새기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렇게 쓰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그건 범죄이기 때문이에요. 좀 옳은 사람이 늘 문제지, 처음부터 아닌 사람은 아무 문제도 안 돼요. 사는 데 옳다, 그르다가 있지도 않은데 자꾸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면 그럴싸해 보일 것 아니에요. 술 먹고 비틀비틀 거리는 사람에게 약간의 멋이 있다고 해서 그게 흉내 낼 일이오? 한국에서 세금 납부 2위까지 했다가 다 돌려줘버리고, 허영심 때문에라도 기부했느니 이딴 소리 안 할 만큼 약아빠졌으니,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잖소. 비틀거리는 사람으로 안 느껴지잖소. 내 삶을 후회하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겨우 여기까지 온 사람이에요.

스스로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난 건방져요. 오만하고, 허영심도 많아요. 내 목숨을 건지기 위해 겸손을 실천할 뿐이지, 겸손한 사람은 죽어도 못 돼요.

올해 많은 강연에 초청받으신 걸로 아는데 예전만큼 마다하지 않은 걸 보면 썩 즐거우셨나 봅니다. 강연이란 형태가 좋진 않아요. 말은 사람과 친해지려고 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이고, 둘째 셋째도 그 목적이에요. 꽤 괜찮은 사람도 교훈 쪽으로, 배운 걸 말하는 쪽으로 하니까 나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게 강연의 첫 번째 목적이었어요. 만나보니 사람들이 참 밝더라고요. 밝다는 말은, 위선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단 거예요. 너무 나를 받들어서 그렇긴 했지만.

유독 젊은 친구들이 그 인터뷰를 좋아했는데 알고 계셨나요? 젊은이들이 왜 그 얘기를 좋아했는지 나한테 분석을 좀 해줘요.

젊은이들이 어렴풋이 짐작하던 ‘꼰대’를 어른으로서 정의해주셨기 때문이죠.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라는 말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라는 말이 우뚝했어요. 하지만 아비가 되면 늦어요. 아들일 때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안 썩는 거예요. 젊었을 때 안 했으면 썩어요. 우리는 살아있는 순간순간 사는 거예요. 자기 결의와 결단 속에서요. 다만 젊은이들이 세상에 나쯤 되는 어른은 꽤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감리교 목사 임락경도 있고 권정생도 있어요. 나한테 독이 없는 글은 권정생 하나였어요. 박완서처럼 정직한 작가도 있었고요. 나한텐 좀 재미가 없었지만. 하하. 또 김수영도 빼놓을 수 없죠.

이곳 학생들이 ‘이사장님’으로 보고 인사하는 것 같진 않더라고요. 내가 할배라고 불러, 해요. 이사장님은 좀 별로거든요. 이사장이 직업도 아니고 이 학교에서의 역할이니까 범칭이 되기엔 무리가 있어요. 할 일도 별로 없고, 내가 좋아서 여기 와 있는 것뿐이에요.

학교 운영에 관여하시지 않나요? 사립학교에서는 이사장이 인사권을 가졌죠. 절로 독재 관계가 돼요. 하지만 학교는 질서가 존중되니까 독재로는 안 되죠. 저는 될 수 있으면 영향을 적게 주려고 노력하면서, 여기 와서 선생하고 놀고 학생하고 놀고 해요.

열심히 산 것 같지는 않고, 신나게는 살았다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나네요. 열심히 하는 데는 위험이 따라. 독이 묻어요. 인정받고 대접받고 싶은 심보가 열심히 했다는 말에 숨어 있어요. 내가 신나서 한 거지 뭘 열심히 해. 적어도 우리 문화에서는 일과 놀이가 구분되지 않았어요. ‘어떤 역할을 잘한다’가 ‘논다’예요. 뭔가가 잘 작동하면 논다 그러거든. 놀이는 춤 동작과 음악의 소리까지 일과 결합돼 있는 상태예요. 근데 지금은 놀이와 노래가 다른 거고, 춤도 그냥 춤이죠. 고운 말을 일제 바람에 망쳤어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는 젊어서 내 역할 잘하잔 노래지, 아무것도 안 하고 엉터리로 놀자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우리 교육이 학생들을 그리 신나게 만들지는 않죠. 산업혁명 이후 식민지 개척과 관련이 있어요.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아니라 식민지를 잘 경영하는 사람, 반대로 식민지에 잘 적응하는 사람을 만드는 게 교육이 됐어요. 교육이란 말을 배움이란 말로 바꿔서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도와주고 보호해주는 식으로 가야죠. 배움에도 손쉬운 대도는 없어요. 스스로 하게끔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줄 때 배우죠.

효암 재단의 일은 기다리는 건가요? 자발이 되게끔 강제하죠. 자발을 안 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거예요. 공자가 “소인은 시킬 수는 있어도 가르칠 수는 없다”고 했어요. 여기서, 배우게 하는 강제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을 눈치채야 돼요. 너무 꼭 그렇게 할 것 없고, 안 되는 놈은 안 되는 거죠. 그대로 두는 쪽이 오히려 그 사람 삶에 나아요.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그렇게 휘두를 일이 아니죠.

가진 걸 포기하기는 부족한 걸 메우기보다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광산이 한창이던 1973년에, 전부 정리하고 수익을 나누어 주셨죠. 30대 후반이란 젊은 나이에요. 제가 원래 돈 버는 것하고 안 맞는 사람입니다. 연극도 사람이 서로 배우고 화합해가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어서 좋아했죠. 광산은 정리가 아니라 내가 떠나기 위해 주인들한테 돌려준 거예요. 너희가 알아서 해라, 나만 빠질게. 돈 버는 게 재밌어서 오만 가지 이유를 들어 날조하면서 살고 있었어요.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악마처럼 재밌고, 예술가가 된 것 같았죠. 나 때문에 사람이 죽고 가정이 파괴되고, 그렇게 신날 일이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마찬가지로 요즘 사람들에겐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뒤로 물러서는 게 더 어렵죠. 어쩔 수 없이 하더라도 안 하도록 마음먹어 가야죠. 작게 쓰고 가난하게 살고 발전이란 소리에 속지 말고, 훨씬 더 소박하게 살도록 해야지. 딱한 일을 하면서 사는 건 늘 실천에 뒤져요. 그냥 안 하면 되는데, 그걸 해. 시시한 게 삶인데. 그냥 행복하면 되는데. 못 깨달은 게 아니라 잘못 배운 거야. 그래서 행복한 것도 못 느껴. 이런 망할 일이 있나.

‘어떻게 하면 행복질 수 있을까?’ 젊은이들이 나른하게 묻곤 하는데요. 시시하면 행복해질 수 있지. 시시하게 부지런하면. 시시가 뭔지 잘 생각해야 돼요. 평범하다, 독특하지 않다, 온갖 말로 쓰이지만 총체적으로 한가로운 것. 몸은 부지런하지만 잠재의식이 한가로운 것. 잠재의식이 한가로우려면 행동이 정말 단순 소박해야 돼요. 그걸 물어본다는 게 벌써 틀렸지. 자기합리화만 했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제 표현이 현란해서 죄송합니다. 표현은 이만큼 못해도 상관없어요. 이런 표현을 할 줄 알면 벌써 시시한 사람이 아니에요.

누군가는 이렇게 되물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화려하게 살아봤으니까 시시한 게 좋다는 것 아닌가?’ 참 내가 화려하게 살았다고 봅디다. 한 친구도 “너는 해봤지만” 해요. 나처럼 사장돼서 골 아파보지 않았다는 소리죠. 공부를 나만큼 못했다는 소리도 아니고 반독재 운동을 나만큼 못했다는 소리도 아니에요. 억울한 게 문제가 아니라 그건 아닌데?, 나 화려하게 못 살아봤는데. 돈 버느라고 내가 얼마나 돈을 못 썼는데, 나한테 돈 안 쓸라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래도 돈 중독에 빠지던데.

효암 재단에 오신 건 88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한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신 것 같고요. 그런데 뭐랄까, 민족주의로서 한학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서양 학문을 통해 병든 부분에, 한학이 설사약처럼 약 구실을 한다는 거지, 이것만이 옳은 음식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서양 약을 먹어야 할 때도 있는 거고요. 근데 요즘 사람들이 한학이든 고전이든 너무 안 해요. 그리고 나는 한자도 잘 모르니까 한학을 했다고 할 수 없어요. 무식하게 책만 봤는데, 나는 보고 뜻을 알지만 다른 사람에게 읽어줄 수는 없는 상태거든요. 내 관심은 아는 것보다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중간을 실천할 수 있을까에 있어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중간을 하려면 알 건 알아야죠. 모르는 건 모르는 건데, 내가 모르는 건 좀 아는 사람이죠. 모르는 건 진짜 모른다는 걸. 그만큼 내가 모른다는 걸 알아요.

지식을 경계하는 말씀을 여러 지면과 강연을 통해 들었습니다. 돈만큼이나 권력도 지식도 중독이에요. 지배자라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배자가 되는 줄도 모르고 지배자가 되었을 수 있어요. 외려 지배당하는 우리들이 지배자로 만든 것일지도. 지식이 사람을 휘두른다든지, 사람의 소박함을 없앤다든지 하는 측면을 걱정해요. 우리한테 전달되는 지식은 확실할수록 고정관념인데, 우린 그게 고정관념인 줄도 모르고 틀린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는 힘 있고 힘 있고 힘 있는 지배자들이 좋아하거나 원하거나 필요한 것만 전달돼요. 그 조건에 맞지 않는 건 웬만해선 전달이 안 일어나요.

지식과 권력과 돈의 중독에서 빠져나왔다고 보나요? 계속해서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벗어난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유혹도 많고, 지배욕도 일어나고, 돈의 필요에 헤맬 때도 많아요. 수영하는 놈하고 물에 빠진 놈도 구분 못하는 정도예요, 그 모르는 정도가. 물에 빠진 놈하고 수영하는 놈이 같소. 하지만 아무리 수영법을 알아도 물에 빠지면 소용없어요. 막상 깜깜한 어둠이 들이닥치면 맥 못 써. 그래도 희망은 있어요. 그렇게라도 봐놓고 그렇게라도 읽어놓은 게. 이제 중독에 빠져는 있지만 수영은 좀 한달까. 허허.

올해를 돌아보면, 한 가지 사건이 나머지를 전부 덮고도 남습니다. 세월호죠, 세월호. 그런데 세월호가 세월호가 아니에요. 이제 순박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잘살 수 있는 기틀이라도 만들어보자는 거 아니오. 이제는 거짓말하고 남 깔아뭉개는 놈이 잘되는 세상 멈추고, 시작이나 한번 해보자는 거 아니오. 유족이 그 아픔을 이용해 먹는다는, 그 따위 얘기가 나오는 세상이에요. 놀라운 건 그 말이 말썽이 안 나요. 바로 그게 말한 그놈이지. 아픈 사람 편드는 체하고 이용해 먹는 놈. 기도하면 된다고 안일하게 사는 놈. 지 얘기를 하면서 지 얘기인 줄도 모르고 하는 놈.

세월호 사건을 지금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가요? 그 일은 기억해야 하지만, 슬픔은 잊어야죠. 슬픔을 다독거려야 해요. 그래가지고는 못 살아요. 근데 슬픔이 다독여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계기로 정말 실천적으로 좀 더 나은 길을 가면서 슬픔을 다스릴 수는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