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송곳 [MEN OF THE YEAR – 최규석]

2014.12.12정우영

웹툰 <송곳>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라는 말이 가지는 통념을 뚫고 나가는 ‘송곳’같은 사람들을 그린다. 만화가 최규석에게 송곳은 그 날카로운 끝으로, 이상에서 현실을 골라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작년 12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송곳>이 첫 웹툰이죠? 지면 연재와 뭐가 다르던가요? 웹툰의 스크롤 연출을 적극 활용하는 작가라면 다를 텐데, 저는 특별히 그런 거 없어요. 애초에 콘티를 책 형식으로 짜거든요. 저한테는 책이 예쁘게 나오는 것도 중요해서요. 뭐 둘 다 중요하지만 매체 활용에 대한 욕심이나 재능이 제게 없는 거죠. 어디에 있든 눈에만 보이면 된다는, 굉장히 낮은 수준의 매체 활용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하.

계획대로 착착 일하는 편인가요? 뭐, 맞춰야 되는 거니까. 제가 학교 다닐 때 지각은 많이 했어도 결석은 정말 안 했어요. 뭔가 하기는 되게 싫어하는데, 완전히 망치지는 않아요. 계획을 철저하게 지킨다기보다 겁이 많죠. 사실 상관없을 수 있는데, 학교 잘 나가는 친구들은 한번 안 나가면 큰일 나는 줄 알잖아요. 그 두려움을 한 번도 극복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지금 같은 어른이 될 줄 알았나요? 특별히 어떤 어른이 돼야겠단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제가 생각 잘 안 하는 게, 나의 내면, 먼 미래 등등 몇 개 있어요. 생각해봤자 결실이 없는 것들, 생각할수록 피해가 되는 것들이요. 개인이 알아서 해야 될 것은 생각한다기보다 닥치면 해결해요. 인간 사이의 관계라든가, 공동체라든가, 이런 건 작품에 필요하니까 생각하고요. 그 외의 영역에선 생각이 없죠.

어른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과거가 아름다웠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어른 같아요. 부정적인 의미의 어른. 어른의 조건으로 책임감을 많이 얘기하는데, 초등학생도 책임감이 없지 않아요. 숙제 해오라면 숙제 해가잖아요. 한국 사회에서 철이 든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가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받아들이는 상태, 인생을 포기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나요? 자식이 있으니까, 가족이 있으니까, 세상이 그런 거니까 하는 거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어른이 뭔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그건 어른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냥 좋은 사람.
당신의 말을 따르자면, <송곳>의 이수인과 구고신은 “철 안 든 사람”의 두 가지 형태 같아요. 어쩌면 우리가 양심이라고 부르는 것의 두 가지 형태랄까요. 이수인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고, 구고신은 양심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잘 아는 사람이죠. 다들 어릴 때는 세상이 왜 이렇게 썩었나, 하는 데서 멈춰요. 저도 그랬고요. 그 다음 단계에 있는 구고신 같은 사람을 보면서 배우는 거죠.

지금까지 그려온 만화도 그렇지만, 기존의 독자와는 다른 독자를 찾기 위해 선택한 게 네이버 연재였다는 당신의 태도도 그래요. 작품마다 어떤 계몽적인 입장이 있는 듯해요. 계몽주의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합리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요. 시선이 자기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하면서, 합리적으로 보려는 거죠. 한국에서는 계몽주의라는 단어가 너무 부정적으로 쓰여요. ‘가르치려고 든다’는 식으로요.

 

네이버 댓글에서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고 있나요? 가장 크게 기대한 건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완화하는 것이었어요. 노동법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거요.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난다고 볼 만한 증거가 있죠.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의도가 있었는데 왜 흑백이었나요? 속도죠, 속도. 컬러까지 쓰면 작업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그리고 흑백이 예뻐요. 웹툰이 주류가 되면서 컬러 그림이 당연해졌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어떠해야 돼, 라는 생각 중에 진짜 그래야 되는 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표지는 밝아야 돼, 처럼 증명되지 않은 믿음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웹툰이라는 형식을 찌르는 ‘송곳’인가요? 아, 엄청난 각오를 다지고 하지 않아요. 제가 느끼기에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그렇게 하는 거죠. 포부가 없어요. 이렇게 해도 되잖아, 난 이 작품은 이게 더 편해, 예요.

<100도씨>에서 다룬 6월 항쟁 주체들의 20년 후 모습을 그릴 거라고 말하는 걸 봤어요. 혹시 그 작품이 <송곳>인가요? <100도씨> 그릴 때의 불만이 노동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6월 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고 의뢰받은 거여서 어쩔 수 없었는데, 당시는 정치 민주화를 찬양하는 분위기가 주류였어요. 양극화가 진행 중이었고, 직장 내 민주화도 진전된 게 없어 보였는데요. 저는 정치 민주화가 실제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루지 않으면 민주화에 대해 얘기해봤자, 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민주주의라면 지킬 필요성을 못 느낄 테니까. 그래서 <송곳>이 나온 게 맞아요.

디테일이 너무 뛰어나서 무슨 위장취업이라도 해서 살면서 취재한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어떻게 취재했나요? 대부분 인터뷰죠. 계속 만나서 물어보고 자료 보고 당시 기사 찾아보고 논문 보고. 다 비슷하지 않나요? 기업 취재는 하지 못해서 잘 안 나오는 건데, 노동운동이나 노조 쪽 이야기는 인터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게다가 호의적이고요.

인터뷰만이라니 놀라운데요. 인터뷰를 하고 그 상황을 충분히 상상하죠. 제가 그리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인지 물어보기도 하고요. 계속 가능한 상황이다 아니다 얘기를 듣다 보면 어떤 세계가 잡혀서 작품이 진행될수록 더 디테일해지고요. 물론 일어날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땐 제가 다시 물어봐요. “절대 안 됩니까?” 그러면 “굳이 일어난다면 일어날 수도 있는데…” 하죠.

일어날 수 없는 부분이 어딘데요? <송곳>에 나오는 대형 마트 푸르미의 대처 방식이라는 게 10년 전 방식이에요. 요즘 회사였다면 이수인은 회사에서 일 못해요. 이미 책상은 딴 데 갔고, 법정에서 다툴 생각하고 해고하겠죠.

 

그때는 모르는 대로 힘든 게 있었지만, 지금은 예컨대 SNS로 대표되는, 사실과 진실에 지친 시대를 살고 있단 생각도 들어요. 효력감이 없기 때문이겠죠.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바뀌지 않는 것 같아서 지치겠지만 바뀌는 부분도 많아요. 실제로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어떤 재판을 통해 판례가 조금 바뀌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그걸 찾아보나요. 분명히 어디에선가 자기보다 더 전문적으로 세상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진보시키고 있어요.

<송곳>이 그 역할을 하길 기대한 거고요. 당신들이 가진 불만이 한국 사회 안에서 어떻게 다뤄지는가. 미세하게 나아질 수도 있고, 조금 나빠질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과정을 알면 좀 덜 지칠 수 있으니까. 세상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면 더 나은 분노도 가능하고요. 검사를 욕해야 하는데 판사를 욕한다든가, 하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딘데요.

사회적인 소재가 많았는데, 책임감만으로 창작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게 밀고 나가는 개인적인 동기는 뭐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내면에 별 관심이 없어서죠. 캐릭터를 움직이려면 자유도가 중요해요. 그래서 작가들이 돈이 많거나, 미친 놈을 그려서 자유도를 높여요. 하지만 전 보편적인 사람이 좋아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캐릭터를 제대로 그리려면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알아야죠. 그게 작품에 드러나니까 사회적인 작가로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초점이 거기 있진 않아요.

소재라기보다 피하지 않으려다 보니 걸고 넘어가는 식이네요? 편의점 알바를 하다가 여자친구가 보고 싶다 그래서 달려가면 전통적인 로맨스고, 사장이 너 지금 가면 자를 건데 갈 거야?, 하면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거죠. 그때 달려 나간다면 다음 장소는 아마 지방노동사무소로 이어지겠죠. 하하.

고구신이 그러죠.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 듣지.” 당신은 옳은 사람 같아요. 어떻게 포장하느냐의 문제죠. 저도 공적인 활동은 최대한 친근감을 주려고 해요. 옳으면서도 좋을 수 있거든요? 하하. 하지만 이수인은 친화적인 인물이 못 될 것 같아요. 전 그래도 된다는 얘길 하고 싶어요. 가짜로 웃게 하고 싶지 않아요. 서로 조금씩 이해하면 돼요.

연재하면서 받은 피드백 중 가장 기뻤던 건 뭔가요? 노동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초심을 찾았다고 쓴 적이 있죠. 처음 노동부 들어갈 땐 노동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자기한테 고성으로 욕하는 사람들은 다 노동자들이고 자기한테 예의바르고 부드러운 건 자본가들이었던 거죠. <송곳> 보고 퇴직금 안 떼였다는 댓글도 있었어요. 그거 좋죠. 돈이 되는 만화인 거죠. <미생>은 봐도 월급이 바로 오르진 않지만, <송곳>은 보면 바로 퇴직금을 딸 수 있습니다. 하하.

    에디터
    정우영
    포토그래퍼
    안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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