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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에서 만난 오만가지 마세라티

2014.12.15GQ

오만에서 마세라티 전 차종을 시승했다. 곧 은퇴할 그란투리스모와 떠오르는 샛별 기블리 디젤을 탔다. 애잔한 이별, 설레는 만남이었다.

행복한 고민이었다. 남들은 한 번만 타 봐도 소원이 없겠다는 마세라티를 뷔페식으로 골고루 맛봤다. 그것도 중동의 보석 오만에서. 콰트로포르테 GTS와 디젤, 기블리 SQ4와 디젤, 그란카브리오 MC 센테니얼, 그란투리스모 센테니얼 등 275~530마력을 내뿜는 마세라티 10대가 호텔 앞마당에 도열해 있었다. 마세라티는 다들 반신반의한 ‘2015년 5만 대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란 사실을 알리고 싶어 했다. 지금 마세라티는 잭의 콩나무처럼 쑥쑥 자라고 있다. 4년 전 마세라티의 연간 생산대수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페라리보다 적었다. 페라리는 희소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공급을 옥죄는 브랜드다. 마세라티는 다르다. 고급스럽고 특별하되 슈퍼카는 아니다. 마세라티는 더 많이 팔고 싶었고, 최대한 팔아야 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제품과 전략이 꼬여 있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페라리였다. 두 브랜드의 모기업 피아트는 1997년 보유하고 있던 마세라티 지분의 절반을 페라리에게 넘겼다. 1999년 페라리는 나머지 50퍼센트의 지분마저 인수했다.

마세라티와 페라리는 1950년대에 이를 갈며 싸운 맞수였다. 그러다 21세기를 앞두고 한 살림을 차렸다. 페라리는 마세라티의 페라리화를 추구했다. 당시 콰트로포르테 라인업은 상식 밖이었다. V8 4.2리터 400마력 엔진을 기본으로 변속기에 따라 파워트레인의 구성과 배치가 달랐다. 듀오셀렉트 변속기 모델은 건식윤활(드라이섬프) 방식의 엔진을 앞 차축 위에 얹었다. 변속기는 뒤 차축으로 뺐다. 무게배분 때문이었다. 반면 자동변속기 모델은 습식윤활 엔진을 앞 차축 뒤에 얹고 바로 변속기를 붙였다.

마세라티는 보란 듯이 자동차 업계의 유행과 반대로 움직였다. 다른 모든 브랜드가 한 푼이라도 아껴보겠다며 사이드 미러 한쪽까지 나눠 쓰는 마당에, 마세라티는 두 가지 콰트로포르테를 만들었다. 엔진과 이름, 외모만 같지 사실상 전혀 달랐다. 소량·주문생산 방식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페라리는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에 레이싱 기술을 녹여 넣고자 했다. 소수의 소비자와 전문가, 자동차 기자들은 마세라티의 못 말리는 고집과 뚝심, 페라리의 집착에 경의를 표했다. 현행 F1 팀이 직접 조율해서 파는 세단은 세상에 오직 콰트로포르테뿐이었다. 이성적으로 주판알을 튕겨선 절대 나올 수 없는 차였다. 하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외면했다.

호기심에 콰트로포르테를 덜컥 산 고객은 불평을 쏟아냈다. 불만은 동력 전달 효율은 뛰어나되 변속 느낌이 이질적인 듀오셀렉트에 집중되었다. 급기야 마세라티가 한발 뒤로 물러났다. 콰트로포르테의 변속기를 자동 한 가지로 통일했다. 당시 오스트리아 국제 시승회 때 만난 마세라티 엔지니어는 이렇게 말했다. “고객이 원치 않았기 때문이죠.” 그의 표정이 쓸쓸했다. 2005년, 마세라티는 페라리와 분리되었다. 이후 변화가 스미기 시작했다. 변속기 양보 사건이 신호탄이었다. 6세대 콰트로포르테를 내놓으면서는 아예 듀오셀렉트를 버렸다. 대신 ZF제 자동 6단을 얹었다. 같은 해, 마세라티는 기블리도 부활시켰다. 15년 만이었다. 콰트로포르테와 기블리는 새 뼈대를 나눴다. 효율과 양산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신세대 마세라티다. 내년, 마세라티는 또 다른 변화를 맞게 된다. 우선 5만 대 프로젝트의 방점을 찍을 마세라티 르반테가 나온다. 마세라티 역사상 최초의 SUV다. 콰트로포르테, 기블리 형제와 플랫폼을 함께 쓴다. 2도어 쿠페인 알피에리도 나온다. 아울러 이전 세대 플랫폼을 쓰는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가 내년에는 작별을 고할 예정이다. 2015년은 마세라티 환골탈태의 원년인 셈이다.

이날 시승에 앞서 마세라티 글로벌 해외시장 총괄 움베르토 치니 이사는 콧구멍에 힘을 줘가며 말했다. “올해는 마세라티가 창립 100주년을 맞는 해예요. 신차, 새 공장과 함께 마세라티는 연간 생산대수를 5만 대까지 늘려갈 계획이지요. 성장속도는 경이롭습니다. 2012년 6천2백 대, 2013년 1만5천4백 대였고, 올해는 2만 6천4백28 대로 2백50퍼센트 성장을 예상해요.” 아울러 527~568마력을 내는 고성능 버전을 각 라인업에 더할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세데스-AMG, BMW M, 재규어 R, 아우디 S 및 RS 등의 고성능 라인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다. 특히 알피에리를 앞세워 911, AMG-GT 등과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 시장에 거는 기대도 남다르다. 올 상반기 마세라티는 한국 시장에서 2백80대를 팔았다. 지난해 전체 판매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성장률은 무려 7백50퍼센트나 된다. 한국은 유럽을 제외하고 디젤 마세라티를 소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장이다. 움베르토 치니 이사는 “한국에서 판매되는 기블리 4대 가운데 3대가 디젤”이라고 강조했다.

10대의 마세라티 가운데 이날 시승할 짝을 고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만으로 날아가던 비행기 안에서 이미 시뻘건 로소 마그마 컬러의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 센테니얼을 점찍었다. 일반 그란투리스모와 달리 센테니얼은 사이드 미러 커버, 도어 손잡이, 뒷범퍼의 리어 스포일러를 탄소강화섬유 플라스틱으로 단장했다. 휠과 도장 방식도 센테니얼 전용이다. 엔진은 V8 4.7리터로 460마력을 낸다. 여기에 6단 MC 레이스 시프트 변속기를 짝짓고 뒷바퀴를 굴린다.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4.5초, 최고속도 시속 303킬로미터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지 모를 시승이었다. 나중에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게, 뜨거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스티어링 휠은 팔꿈치를 바짝 든 채 쥐어야 한다. 공격 기회를 찾는 복서의 모습과 비슷하다. 시트가 바닥에 낮게 붙어 있는, 전형적인 페라리의 운전 자세이기도 하다.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 센테니얼은 페라리의 유전자가 가장 많이 느껴지는 마세라티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엔진은 우렁찬 폭발음과 함께 깨어났다. 변속 방식은 페라리와 같다. 조막만 한 변속 레버로는 1(전진 1단)과 R(후진)만 고를 수 있다. 오토 버튼을 누르면 자동변속, 양쪽 패들 시프트를 동시에 당기면 중립(N)이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사막을 누빌 때는 이 차가 마세라티란 사실조차 잊었다. 회전수를 높일 때마다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소리, 강직한 서스펜션, 철컥철컥 거칠게 물고 튕겨내는 변속기 등 모든 감각이 페라리였다. 하필 보닛도 빨간색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더 이상 페라리를 닮은 마세라티가 설 자리는 없다.

이번엔 기블리 D로 옮겨 탔다. 기블리 D는 275마력을 내는 V6 3.0리터 디젤 터보 엔진을 품었다. 예상대로 힘은 충분했다. 소음과 진동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소리마저 그럴듯했다. 품질도 흠잡을 데 없었다. 주행감각은 정갈하고 세련됐다. 세단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마세라티지만 한층 현실적이었다. 아쉬웠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마세라티의 변화는 그들이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첫걸음이니까. 더 많은 소비자의 사랑을 받기 위한 선택이다. 말 많고 탈 많던 듀오셀렉트 변속기의 5세대 콰트로포르테 GTS, 페라리로 빙의한 그란투리스모 MC 스트라달레의 기억을 지울 때가 됐다. 명확하고 세련된 마세라티를 받아들일 때가 됐다.

움베르토 치니 이사에게 물었다. 꼭 변해야하는지, 성장이 그렇게 중요한지. “우린 아주 특별하고 고급스러우며 강력한 차로 남을 거예요. 그러려면 브랜드가 성장하고 버텨줘야겠죠. 걱정 말아요. 우린 마세라티 고유의 특징을 잊지 않을 거니까요.” 돌연, 숨어 있던 기블리의 까슬까슬한 성미도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했다.

 

마세라티 기블리 SQ4와 디젤, 콰트로포르테 GTS와 디젤, 그란투리스모 센테니얼, 그란카브리오 MC 센테니얼 등 275~530마력을 뿜는 마세라티 10대 중 마음이 끌리는 모든 차를 시승할 수 있었다. 어느 혹성의 풍경과도 닮아 있는 오만에서, 마세라티 특유의 배기음 때문에 지축이 다 흔들리는 것 같았다.

마세라티 기블리 SQ4와 디젤, 콰트로포르테 GTS와 디젤, 그란투리스모 센테니얼, 그란카브리오 MC 센테니얼 등 275~530마력을 뿜는 마세라티 10대 중 마음이 끌리는 모든 차를 시승할 수 있었다. 어느 혹성의 풍경과도 닮아 있는 오만에서, 마세라티 특유의 배기음 때문에 지축이 다 흔들리는 것 같았다.

 

사운드 오브 디젤
마세라티는 기블리 디젤의 사운드를 어떻게 만들지 3개월 동안 고민했다.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 고객 대상 설문도 진행했다. 고객들은 마세라티다운 사운드를 원했다. 마세라티 특유의 V8 사운드를 잊지 못했다. 그래서 배기 쪽에 사운드 액추에이터를 달았다. 상황에 따라 사운드를 증폭시킨다. 그 결과 V8 엔진과 비슷한 소리가 태어났다. 마세라티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그 소리를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디젤 엔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세 명의 저명한 지휘자를 비롯한 뮤지션에게 소리를 의뢰해 세심하게 조율했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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