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달군 술과 술집 – 2

올 한 해 서울에서 가장 뜨거웠던 술과 바와 사람들.

[03] LEADING BARTENDERS

 

르 챔버의 박성민

르 챔버의 박성민

 

 

디아지오가 주최하는 바텐더 대회 ‘월드 클래스’에서 2년 연속 우승했다. 이미 우승했는데 왜 또 출전한 건가? 국내 우승자만 나갈 수 있는 ‘월드 클래스’ 글로벌 대회에 다시 나가기 위해서. 작년엔 제대로 못해 아쉬웠다. 



결국 또 우승했지만 다시 나간 글로벌 대회에선 수상을 못했다. 속상하다. 하지만 이런 도전이 다 투자라고 생각한다. 바텐딩을 위해선 뭐든 투자하고 싶다. 올해 초 미국 바 투어를 다녀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10일간 40군데에서 바를 돌며 마시고 배웠다.



거둔 건? 칵테일의 맛뿐만 아니라 향에 집중하게 됐다. 전체적으로 재료를 단순하게 가는 식으로 칵테일의 군살을 빼면서, 향과 풍미를 충분히 살리는 방향으로. 그렇게 만들어 질리지 않는 칵테일이 내 식이다.



그 스타일을 위한 무기가 따로 있나? 미국에 가서 보니 곧 버번위스키의 돌풍이 닥칠 것 같았다. 일본 산토리가 짐 빔 그룹을 인수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세즈락처럼 역사가 오래된 칵테일이 버번위스키와 함께 트렌드가 될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칵테일의 역사는 짧다. 88올림픽 때부터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러니 미국의 유서 깊은 칵테일을 서브하면 오히려 서울의 손님들에겐 전혀 새로운 칵테일을 선보이는 셈이다. 손님들과 빨리 친해지는 내 성격을 활용해 칵테일의 역사와 뒷얘기까지 설명해주는 것. 이게 무기다.

바에서도, 바 밖에서도 정말 쉴 틈이 없다. 그래야 한다. 이달부턴 조향사 학원도 다니기로 했다. 시간이 흘렀는데도 계속 비슷한 수준의 칵테일을 서브한다면,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도시에서 바텐딩을 한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 네덜란드 스키담. 스피릿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과거에 대단한 동네였다. 거기서 칵테일 레시피와 이야기를 마구 캐내고 싶다.

 

셜록의 오연정

셜록의 오연정

 

 

사진을 위한 포즈가 자유자재로 나온다. 마술사였던 경력 덕인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마술할 때는 동선과 모션은 크게, 시선은 45도, 이런 공식이 있으니까. 어떻게 움직여야 사람들에게 나를 잘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건 마술사나 바텐더나 똑같다.



올해 10월, 남아공에서 열린 ‘IBA WCC’ 바텐더 대회의 롱드링크 부문에서 우승했을 땐 그런 움직임보다 맛에서 점수를 많이 받았다. 처음 경험하는 특이한 맛의 칵테일보다는 부담 없이 달콤한 칵테일이었다. 누구나 좋아할 법한 맛의 칵테일을 제대로 만들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를 하는 게 나의 스타일이다. 이번에 우승한 칵테일 ‘러블리 핑크 피치’엔 크렌베리애플 주스가 들어가는데, 여기에 생강을 알파로 넣었다.



여자 바텐더는 여성스러운 칵테일을 만드나?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난 여성스럽고 ‘걸리시’한 칵테일을 잘 만든다. 그런 칵테일이 완벽한 바텐딩을 만나면 얼마나 훌륭한 한 잔이 되는지 보여주고 싶다. 너무 화려하거나 촌스럽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크래프트 칵테일이라는 말이 이슈의 중심에 서면서, 바텐더들이 독특한 기물과 재료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는 듯하다. 그렇다. 하지만 나는 바텐더가 화려하게 보이는 도구와 기술에 집중한다기보단, 손님의 손에 들리는 잔이나 손님 앞에 나가는 술이 더 돋보이도록 한다. 똑같은 향수를 뿌려도 사람에 따라 향이 달라지듯이 칵테일도 그런 식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마술보다 바텐딩이 더 재미있나? 물론. 소믈리에 연기를 하는 마술을 하다가 우연히 이쪽 길로 들어섰다. 마술을 연습할 땐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외롭게 일했다. 바텐더는 여러 손님을 만나고, 바로 반응이 오니까 난 이게 더 좋다.

 

 

세즈락 / 라모스 진 피즈

세즈락 / 라모스 진 피즈

 

 

 

[SIP FOR TREND]

포가튼 클래식 
금주법 시대에 대한 로망이 ‘스피크이지’로 발현됐다면, 그 시절의 칵테일을 복원하는 것도 하나의 트렌드다. 빈티지 칵테일, 골든에이지 칵테일, 뉴올리언스 칵테일이라고도 부른다. 박성민 바텐더가 만든 포가튼 클래식 두 잔.

 

세즈락 – 라이 위스키, 페쇼드 비터, 설탕시럽, 앙고스트라 비터가 들어간다. 빈 잔에 한 번, 완성된 칵테일에 또 한 번 뿌리는 압생트 스프레이가 핵심이다. 

 

라모스 진 피즈 – 밀크셰이크처럼 생겨 금주법 시대에 인기였다. 진, 레몬비터, 레몬즙, 라임즙, 설탕시럽, 오렌지 플라워워터, 휘핑크림을 모두 셰이킹한 뒤 탄산수를 붓는다.

[KEYWORD] ‘크래프트 칵테일’ 

좋은 재료와 독특한 기물로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제조하는 칵테일을 통칭하는 말이다. 물론 모두 ‘수제’ 칵테일이지만, 고가의 스피릿 을 사용하거나 직접 시럽을 만드는 등, 숙련된 기술이 집약된 칵테일을 특정하고 싶을 때 쓰는 단어다. 사진은 오연정 바텐더가 만든 ‘러블리 핑크 피치’. 

[04] 급하지 않은 사이몬

2001년부터 신천을 지키던 미스터 사이몬 바가 압구정으로 옮겨왔다. 서울에서 싱글 몰트위스키가 처음으로 빛나던 바, 위스키 애호가들의 아지트이자 훈련원 같았던 곳. 2000년대 초반, 서울에 처음 싱글 몰트위스키를 소개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젠 완전히 달라졌다. “저는 이 일을 일흔 살까지 할 겁니다. 기다리면 문화가 영글어요. 앞으로도 또 그런 걸 해야죠.” ‘미스터 사이몬’이라고 불리는 안성진 대표는 요즘 전통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 군데 바에서만 특별한 시그니처 칵테일보단 어디서나 좋은 술을 마실 수 있는 문화를 먼저 만들고 싶은 그다. 참, 이곳의 길다란 바는 진짜 나무로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깊어지는 걸 보고 싶어서….

 

[KEYWORD] ‘싱글 몰트위스키’

바의 트렌드는 해외나 우리 나라나 방향은 비슷하다. 눈에 띄게 다른 점이 있다면 싱글 몰트위스키의 영향력이 유독 크다는 점. 칵테일이 중심인 해외의 바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싱글 몰트위스키의 붐이 바를 일으켜세웠다. 이슈와 이윤 모두에서 그렇 다. 현재 싱글 몰트위스키를 100가지 이상 갖춘 바가 50 개가 넘는다. 당분간 빵빵한 싱글 몰트위스키 리스트는 신규 바의 기본 요건이 될 전망이다.

 

글렌피딕 캐스크 에디션 / 야마자키 캐스크 / 소형 오크통

글렌피딕 캐스크 에디션 / 야마자키 캐스크 / 소형 오크통

 

 

[05] 바는 어렵지 않다

런던이나 뉴욕의 바 트렌드가 서울에 도착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갈수록 짧아진다. 소형 오크통에 위스키나 칵테일을 추가 숙성하는 배럴 에이징은 이제 서울에서도 자주 보인다. 곧 당도할 글로벌 이슈 몇 가지. 지금 런던 바 업계의 최고 화제는 최고의 일본 위스키다. 지난 11월, <위스키 바이블>이 발표한 세계 최고의 위스키에 ‘야마자키 셰리 캐스크’가 선정됐다. 런던에서는 일본 위스키만 취급하는 바도 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는 이에 맞서 좀 더 어깨에 힘을 빼는 쪽을 택했다. 기존의 15년, 18년, 숙성 연도를 강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연산을 표기하지 않은 무연산 위스키가 출시되고 있다. 맥캘란 컬러 시리즈나 글렌피딕 캐스크 에디션처럼 명성이 드높은 증류소가 먼저 움직였다. 바를 평가하는 공신력 있는 차트가 늘어나는 것도 큰 흐름이다. ‘월드 50 베스트 바’, ‘테일스 오브 칵테일 스피리티드 어워즈’ 등은 갈수록 치열하고 뜨겁다. 국내에서도 <바앤다이닝>이 국내 바를 대상으로 ‘베스트 바 50′ 순위를 매긴다. 올해가 2회째.

[06] 별나지 않은 와이낫

문을 연 지 이제 4개월째인 한남동의 와이낫은 어딘지 좀 별나다. 기존 한남동의 바 트렌드를 따르는 듯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살짝 다른 길을 가는 중이다. “잠옷 입고 오는 동네 손님도 있어요.” 박관철 대표는 고급스럽지만 경직된 기운을 조금 덜어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술은 제대로, 하지만 마음은 편하게…. 저희 바는 보모어 트리올로지 같은 비싼 술도 팔지만, 준벅 같은 추억의 칵테일도 주문할 수 있는 곳입니다.” 나지막한 천장, 바 안에 있는 또 다른 미니 바가 주는 분위기도 아늑하고 정겹다. 대학가에서 바를 오래 운영했던 대표의 다양한 경험이 격식 없이 녹아들었다. 와이낫이 하는 가장 별난 일은 12년산급 싱글 몰트위스키를 주마다 하나씩 선정하고, 이걸 한 잔에 5천원씩 받는다는 점이다. 싱글 몰트위스키가 궁금하지만 어쩐지 벽처럼 느껴졌다면 이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 작은 바가 그 웅장한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와이낫이 향해가는 방향이 더 이상 별나게 느껴지지 않을 때, 바 문화는 더 다채롭게 터질 테다.

 

SHARE
[GQ KOREA 피처 에디터] Eat, Drink,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