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21세기형 디바

2015.01.12유지성

올해 팝 시장은 여성 뮤지션들이 완전히 장악했다. 화려한 디바의 시대는 끝났지만, 이 네 여자는 좀 다른 방식으로 판을 뒤흔들었다.

Music판형

 

메간 트레이너
메간 트레이너는 올해 미국 팝 신에서 이른바 ‘걸 파워’를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준 엔터테이너다. 프로듀서 케빈 캐디시와 함께 만든 히트 곡 ‘All About The Bass’는 세계 차트를 ‘올킬’ 하다시피 했고, 영국에선 온라인 스트리밍만으로 차트 1위를 기록(역대 최초)했다. 물론 차트 성적만이 ‘트레이너 현상’을 설명해주진 않는다. 트레이너는 디바의 영역이었던 네오솔을 소녀의 것으로 끌어오며 문화적 신드롬이 되었다. ‘All About The Bass’에 이어 ‘Lips Are Moving’에서도 그녀는 알앤비와 두왑을 좀 유치하지만 명쾌한 노래로 재구성한다. 창법도 솔 특유의 화려한 기교 대신 읊조림에 가깝게 들린다. 90년대에 활동한 여성 듀오 샴푸가 더 로네츠의 ‘Be My Baby’ 같은 노래를 부른다면 딱 이럴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그녀가 그저 ‘버블 팝’을 부르는 수동적 가수가 아닌 싱어송라이터이며, 쫄깃한 멜로디 감각의 상당부분은 그녀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영리하게도 그녀는 여류 싱어송라이터에게 곧잘 따라붙는, 그래서 흥행에는 방해가 되곤 하는 신비감을 또 한 번 덜어낸다. 평범하지만 당찬 이웃집 소녀라는 콘셉트를 통해서. “우리 엄마가 사이즈로 고민하지 말랬어. 엉덩이가 좀더 실해야 밤에 안는 맛이 나서 남자애들이 좋 아한다고 했거든”이라는 가사 때문에라도, ‘All About The Bass’는 미국 여자애들이 가장 즐겨 따라 부르는 송가가 되었다. 비욘세, 제니퍼 로페즈, 킴 카다시안으로 이어지며 미궁에 빠진 미국식 페티시즘을 그녀는 재기발랄하고 가볍게 희화화한다. 하지만 굳이 이것을 페미니즘, 또는 페티시즘에 대한 역공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틈새시장의 확장에 가까워 보인다. 즉, 메간 트레이너는 네오솔의 전통적 형식과 내용을 ‘하향평준화’ 하는 것으로 어린 연령층에 어필했고, 동시에 공고하던 장르적 진입 장벽도 허물어버렸다. 최세희(대중음악평론가)

 

 

아리아나 그란데
아리아나 그란데에게서는 여러 가수의 그림자가 보인다. 아동 채널 <니켈로디언>에서 인기를 얻었다는 이력에서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마일리 사이러스, R&B를 비롯한 흑인음악에 경도된 스타일을 선보인다는 데서는 비욘세, 가창력이 돋보이는 노래를 소화하면서 유명해졌다는 점에서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떠오른다. 간단히 말하면 미국 주류 틴 팝 뮤지션들의 장점을 따와 작정하고 조립해 만들어낸 것 같은 가수라는 인상이다. 이것은 비난이나 폄하일까? 그렇지 않다. 아리아나 그란데는 그 많은 장점을 한데 모아 담아도 깨지거나 금이 가지 않는 단단한 그릇이라는 말이다. 음반도 그만큼 탄탄하다. 올해 발표한 신작에는 지금 주류 팝 음악계가 만들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들이 들어 있다. 단번에 귀에 들어오는 색소폰 루프와 단단한 베이스 라인, 그란데의 똑 부러지는 보컬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Problem’은 가히 올해의 싱글로 꼽을 만한 곡이다. EDM 프로듀서 제드와 함께 작업한 ‘Break Free’ 또한 서로의 장점을 효과적으 드러내는 결과물이다. 위켄드를 초청해 만든 발라드 ‘Love Me Harder’도 마찬가지다. 즉, 어떤 종류의 곡에나 잘 어울리는 그란데의 보컬이 곳곳에서 빛나는 가운데, 프로듀서들은 자신의 개성과 곡의 주인공에 대한 배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고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성숙일까? 이미 얘기했듯 그란데에게서는 여러 대형 가수의 장점들이 보인다. 그런데 이 장점들은 아직 다소 어린 상태로 머물러 있다. 슈퍼스타 특유의 카리스마가 부족하다고 말해보면 어떨까. 모범적이고, 똑 떨어지고, 예쁘장하지만 아리아나 그란데는 아직 귀여운 기대주 즈음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꼭 나사를 꽉 조인 것처럼 뻣뻣하게 춤추며 노래하는 라이브 무대를 봤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다. 최민우(대중음악웹진 편집장)

 

니키 미나즈

지난 11월, 처음으로 해외에도 <페이퍼>라는 이름을 가진 잡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킴 카다 시안의 커다란 엉덩이가 표지에 실린 <페이퍼> 겨울호 표지가 SNS를 통해 뻔질나게 공유된 덕분이다. 2013년, MTV는 올해의 단어로 ‘트월크’를 뽑았다. 트월크는 엉덩이를 원심분리라도 하듯 빠르게 흔드는 춤이다. 원심분리기 통이 클수록 분리에 효과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트월크는 엉덩이가 클수록 표현력이 배가 된다. 바야흐로 엉덩이의 시대다. 그리고 지금 가장 뜨거운 엉덩이가 니키 미나즈라는 걸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성형수술 의혹을 받는 그녀의 엉덩이는 경이로울 만큼 크다. 지난 8월 그녀는 그 커다란 엉덩이 살을 거의 대부분 드러낸 커버의 싱글 ‘Anaconda’를 발표했다. 커버에서 강조된 그녀의 엉덩이는 섹시하기보다 이상해 보인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 커버는 인터넷 밈Meme이 되어 다양한 버전으로 우스꽝스럽게 패러디됐다. 이런 반응은 ‘Anaconca’의 샘플 원곡인 써 믹스 어 랏의 ‘Baby Got Back’ 인트로에 등장하는 백인 여성의 대사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오 맙소사 그녀의 커다란 엉덩이 좀 봐.” ‘Anaconda’의 뮤직비디오에서 니키 미나즈는 그 대사를 직접 내뱉으며 엉덩이가 강조되는 춤을 춘다. 하이라이트는 니키 미나즈가 엉덩이를 흔들며 드레이크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드레이크는 결국 그녀의 엉덩이에 손을 대려 하고 그 순간 니키 미나즈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가버린다. 자신의 엉덩이에 유혹 당할 수는 있어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신호다. 지금 니키 미나즈가 뜨거운 이유는 엉덩이 때문만이 아니다. 이슈를 만들 줄 아는 영리한 머리, 흑인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긍지를 잃지 않는 태도도 크게 한몫하고 있다. 그리고 다들 엉덩이에 집중하느라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건 아닐는지. 그녀는 랩을 정말 잘한다. 실력을 정량화할 수 있다면, 그녀에게서 가장 경이로운 것은 엉덩이가 아니라 랩이 될 것이다. 하박국(YOUNG, GIFTED & WACK 대표)

이기 아질리아
아메리칸 핀업걸과 ‘이 구역의 미친 여자’ 사이 어딘가. 이기 아잘리아가 지금 서 있는 지점이다. 풍만한 몸, 눈 밑과 턱 아래의 점, 유난히 새빨간 립스틱은 확실히 오래된 달력이나 포스터에서 본 모습 같다. 하지만 그런 얼굴과 몸으로 랩을 쏟아 부으며 얼떨떨할 정도로 엉덩이를 흔들 때는 과연 이 여자에게 말이나 걸 수 있을까 싶은 맘이 앞서기도 한다. 물론 핀업걸과 ‘이 구역의 미친 여자’ 사이에는 어쨌든 공통점이 있지만, 둘은 분명히 다르다. 전자가 수동적이라면 후자는 능동적이다. 아메리칸 핀업걸이 ‘레트로’의 취향이라면 ‘이 구역의 미친 여자’는 당장 지금이다. 핀업걸이 고분고분 벽에 붙어 있는 쪽이라면, 미친 여자는 바로 눈앞에서 몸매를 과시하는 쪽이다. 두 개의 이미지 사이에서 이기 아잘리아는 기민하게 줄타기를 한다. 첫째는 출생. 10대 때 미국으로 왔지만 그녀는 호주에서 태어났다. 랩보다 서프 록이 어울리는 나라. 그런데 랩을 하는 악센트는 완전히 남부 억양이다. 힙합의 발상 지 중에서도 거칠기로 유명한 그 동네 말이다. 두 번째는 데뷔. 그녀를 주류 음악계로 이끈 건 래퍼 티아이다. 남부 애틀랜타에서 자신을 ‘King’이라 지칭한 그 남자. 하지만 첫 정규 음반 의 싱글로 내놓은 ‘Work’에서 티아이나 남부 힙합의 그림자를 발견하긴 어렵다. “헤이! 헤이!” 하는 추임새 정도? 차트 1위를 차지한 ‘Fancy’ 역시 그렇다. 그리고  프로듀싱의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더 인비저블 멘은 영국 팀이다. 피처링을 이용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자기 곡에도 피처링을 활발히 활용하지만, 다른 뮤지션의 노래에 참여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거기서도 이기 아잘리아는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 제니퍼 로페즈와 협업한 ‘Booty’에선 ‘이 구역의 미친 여자’같이 화끈하게 엉덩이를 드러내고, 인형 같은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에선 옛날 여자처럼 머리를 잔뜩 부풀리고 요염한 핀업걸처럼 행동하는 식이다. 그래서 과연 이기 아잘리아는 어떤 여자인가? 10대 여성 팬들에겐 친해지고 싶은 멋진 언니 정도의 모습일 테고, 어떤 남자들에겐 좀 부담스러운 여자일 수도 있다. 또는 그녀가 어떤 내용의 랩을 하든 그 얼굴과 몸을 보는 게 즐겁거나. 신곡의 뮤직비디오가 나올 때마다 헷갈리고 궁금해서 자꾸 쳐다보게 된다. 에디터/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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