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차의 진짜 조건

비싸면 다 좋은 차일까? 천연 가죽을 아낌없이 쓰면? 원목과 크롬을 더하고 지붕까지 열 수 있으면? 명차란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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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번 휘황찬란하다. 익스클루시브(포르쉐), 인디비주얼(아우디), 비스포크(롤스로이스), 디지뇨(메르세데스-벤츠) 등 부르는 방식은 브랜드마다 제각각이지만 핵심은 비슷하다. 장인의 손맛을 살린 맞춤 제작 공정 또는 프로그램을 뜻한다. 초정밀 기계로는 채울 수 없는 감성을 더하는 과정이다. 그럴듯한 이야깃거리를 덧씌울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빠르고 안전한 차가 으레 비싼 가격을 암시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프리미엄의 민주화를 부르짖는 폭스바겐이 좋은 예다. 지금은 아우디와 같은 기술과 성능을 폭스바겐에서도 경험 할 수 있다. 대중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의 경계가 나날이 희미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초호화 자동차 브랜드의 고민은 더하다.

자동차 업계는 장인의 손맛에 주목했다. 지금까지 취재를 위해 여러 브랜드의 자동차 공장을 방문했다. 고급차 브랜드는 견학 프로그램에 그들의 손맛을 과시하는 공정을 꼭 넣는다. 언론에 부각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독일 슈투 트가르트에 있는 포르쉐 익스클루시브 라인의 풍경은 지금도 선명하다. 금발 여직원들이 앉아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두꺼운 안경을 쓴 중 년 직원은 실내에 씌울 가죽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훑어가며 흠을 찾았다. 주문 제작 전담 부서에선 차 한 대에 서너 명이 붙어 느릿느릿 작업 중이었다. 장면 그 자체로 기삿거리였다. 영국 크루의 벤틀리 공장 원목 작업장은 가구 공장을 방불케 했다. 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목재를 다듬는 공정뿐이었다. 자동차 공장이지만 로봇은 찾아볼 수 없었다. 꽤 무거 운 목재를 굳이 손으로 든 채 깎고 다듬었다. 작업대엔 그때그때 치워도 좋을 톱밥을 적당히 쌓아놓았다. 그 옆에서 운전대에 가죽을 씌워 한 땀씩 꿰매는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처음엔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런데 경험이 누적되면서 감동이 사그라졌다. 대신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그들의 강박이 느껴졌다. 머릿 속 장인의 이미지와 실제의 간극도 컸다. 젊고 손 빠른 직원이 더 많았다. 아울러 자동차를 만들 때는 굳이 보여주지 않을 뿐 손맛이 꼭 필요한 공정이 있기 마련이다. 국산 경차의 운전대에 가죽을 씌울 때도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생산대수가 많지 않아 수작업이 더 유리한 경우도 있다. 람보르기니는 외부 페인트를 사람 둘이서 칠한다. 람보르기니는 기계로 칠하는 것 보다 장인의 손맛이 더 꼼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로봇을 들일 생산 규모도 아니다. 람보르기니 팬들 사이에 회자되기 좋은 이야깃거리이기도 하니 마다할 이유도 없다.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지만 효과가 쏠쏠한 마케팅 아이템이다.

그런데 최근 자동차 회사의 수작업에 대한 편견이 흔들린 계기가 있었다. 지난 9월, 일본 규슈에 자리한 토요타 미야타 공장의 최종 검사 라인의 광경이다. 한 작업자가 완성된 차의 표면을 흰 장갑 낀 손으로 정성껏 쓰다듬고 있 다. “패널 간 간격을 확인하고 있는 거예요. 0.1 과 0.2밀리미터까진 각각 S와 B등급을 매겨 통과시키지요.” 공장 홍보담당자가 설명했다.

시각과 촉각만으로 0.1밀리미터의 간격을 구분하는 사람들. 이 공장의 자랑 ‘타쿠미(匠)’ 가 길러낸 숙련공이다. 타쿠미는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장인을 뜻하는 일본어다.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소수만 육성한다. 미야타 공장 전 직원 7천7백여 명 중 타쿠미는 22명뿐이다. 1991년 2 월 미야타 공장 설립 이후 지금까지 타쿠미로 불린 이들은 40여 명에 불과하다. 타쿠미가 특정 직급은 아니다. 공식 명칭도 아니다. 특별한 기술과 경험을 지닌 직원을 뜻하는 개념적 호칭이다. 지금 규슈 공장에서 활동 중인 타쿠미 22 명은 각자 원래 직급이 따로 있다. 사내에서는 이들을 ‘LX, 렉서스 기능 전문가’라고 부른다. 자동차 생산의 주요 공정을 모두 경험한 20년 차 이상의 직원으로 구성된다. 나이는 50대가 주를 이룬다.

미야타 공장 타쿠미 가운데 12명은 바느질(스티칭) 전문이다. 이들은 NX 대시보드의 우레탄 부위에 바느질하는 작업과 교육, 검사를 맡고 있다. 가죽과 달리 우레탄은 가지런히 펴서 작업할 수 없다. 3차원 입체 형상을 따라 오르내리며 재봉해야 한다. 손발을 정교하게 놀려 바느질의 속도와 모양을 조절하는 게 핵심이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12명의 타쿠미는 3 개월 동안 집중 교육과 훈련을 거쳐 바느질 작업에 투입된다. 선발 조건은 깐깐하다. 테스트의 시작은 종이접기다. 90초 안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손으로 종이를 접어 고양이를 만들어야 한다. 바느질 타쿠미들은 10단계의 바느질 교육 프로그램도 고안했다. 자신들을 대체할 솜씨를 제대로 갖춘 직원 육성을 위해서다.

다른 브랜드의 장인과 가장 큰 차이도 여기에 있다. 렉서스는 타쿠미를 정예 교관으로 활용한다. 일반 직원 위에 군림하는 특권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전수하는 책임을 지웠다. 언론의 카메라 앞에 세우는 얼굴 마담으로 활용하기는커녕 공개조차 꺼린다. 타쿠미와 인터뷰를 정식으로 요청했지만 정중히 거부당했다.

타쿠미는 상사가 후배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도제 시스템이다. 충분한 경력을 쌓은 대상자들은 일주일간 특별교육을 받은 뒤 타쿠미로 인증 받는다. 자격은 2년 동안 유지된다. 타쿠미가 돼도 직급과 급여엔 변화가 없다. 명예직이다. 하지만 업무는 바뀐다. 일부는 최종 검사처럼 품질을 책임지는 작업에 일반 직원과 섞여 일한다. 나머지 타쿠미는 자신의 노하우를 다른 직원에게 전수한다. 조립과 도장, 바느질 등 각자 전문 영역과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현장을 감독한다. 규슈 공장에서는 ‘타쿠미 활동’이라고 부른다. 한국토요타자동차 홍보부의 김성환 차장은 “표준 작업의 철저한 교육을 통해 작업자 전원이 명확한 기준과 목표를 갖고 고품질 생산 기능을 연마하는 과정” 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토요타가 렉서스 생산 공정에 타쿠미를 적극 활용하는 목적은 다른 회사와 비슷하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실질적, 상징적 가치를 더하기 위해서다. 완성차 검사 기준도 도요타보다 한층 까다롭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렉서스는 한 대당 5천 가지 항목에 걸쳐 검사 받는다. 아울러 모든 렉서스는 험로 주행 시험을 마친 뒤 출고된다. 소위 전수 검사다.

이날도 공장 바로 옆 주행시험장엔 쉴 새 없이 차가 드나들었다. 렉서스는 ‘이음로’라고 이름 붙였다. 길이는 300미터, 별로 길지는 않지만 다양한 지형을 아우른다. 주행시 이상한 음이 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한 도로다. 타쿠미에게 3개월 간 집중 교육을 받은 4명의 직원이 하루 8백여 대의 렉서스를 몰고 이 코스를 시속 40킬로미터로 달린다.

렉서스엔 또 다른 종류의 타쿠미가 있다. 신차 주행시험을 책임진 ‘렉서스 마이스터’다. 렉서스를 통틀어 단 세 명뿐이다. 경험이 많은 테스트 드라이버 출신이다. 이들은 실제 운전할 때의 손맛을 다듬는다. 또 언론 시승회에 참여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그들의 평가를 수집한다. 이들은 아키오 사장에게 주요 사안을 직접 보고할 만큼 회사의 신임이 두텁다. 렉서스 마이스터는 업무 특성상 훈련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스승이 직접 뽑은 제자와 꾸준히 호흡을 맞춰가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2010년 6월 23일, 독일에서 렉서스 LFA를 시험 주행하다 BMW 3시리즈와 정면충돌 사고로 사망한 나루세 히로무成瀨弘가 제1대 렉서스 마이스터였다. 그는 토요타 아키오 사장에게 운전을 가르친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토요타는 낭비와 기다림 없는 생산 방식을 전 세계 자동차 업계로 전파시킨 주인공이다. 이른바 토요타 생산방식TPS이다. 수없이 회자된 도요타의 슬로건, ‘마른 수건도 짜라’는 궁극의 효율을 뜻했다. 하지만 고급차 업계의 후 발주자인 렉서스는 효율만으로 경쟁력을 갖기 어려웠다. 가치 이상의 가격을 소비자에게 납득 시킬 ‘스토리’가 필요했다. 11월 17일, 규슈 공장 방문 하루 전 도요타 본사에서 렉서스 최고위층을 만났다. 렉서스 신차 개발을 책임진 야마 모토 타카시 상무였다. 그는 “유럽차 업체 중엔 100년 이상 된 곳도 있다. 렉서스는 이제 25년 됐다. 앞으로 50년이 지난들 75년의 격차는 좁 히기 힘들 거다. 우린 좋은 차를 제공하겠다는 생각만 하며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렉서스의 타쿠미도 홍보 수단의 하나다. 역사도 길지 않다. 주력 생산기지인 규슈 공장에서 2009년 도입했다. 토요타 내에서 추상적 개념으로 통용되던 장인을 제도화한 첫 시도였다. 하지만 운영방식이 예사롭지 않다. 진화하는 생명체를 보는 듯했다. 25년 역사의 한계를 인정하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렉서스를 보면서, “일본한텐 더 배울 게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던 한 국산차 업체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