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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를 두려워 말라

2015.01.26GQ

메르세데스-벤츠 SL400의 지붕을 열고 서울 시내를 주파했다.

 

한국의 겨울은 혹독하다. 여름은 고온다습하고 장마도 길다. 여기에 ‟남들 시선이 부담스러워서…”를 더하면 ‘한국에서 컨버터블을 살 수 없는 이유’가 완성된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얘기. 메르세데스-벤츠 SL400은 벤츠의 전설적인 클래식카 300SL을 잇는 정통 로드스터다. 앞코는 길고 늘씬하게 빠졌다. 엉덩이의 덩어리감은 요염할 정도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5.2초. 그저 소장하고 싶은, 평생 아쉬울 리 없는 성능과 디자인이다. 서울 기온이 영하 1.5도였던 날 SL400의 지붕을 열고 나섰다. 그저 평범한 겨울 오전, 차 안에서는 가벼운 카디건을 입고 비니를 썼다. 히터를 켜고 에어 스카프를 작동시켰다. 목 뒤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대로 소월길을 달릴 땐 겨울산에서 불어 내려오는 상쾌한 냄새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 기세로 한남대교를 건널 때도 서울은 좀 달라보였다. 다소 유난스러울지도, 뭘 그렇게까지 하냐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이란 어디까지나 경험한 자의 몫이자 복일터, 좌석 뒤에서 올라오는 전동 바람막이는 실내로 들이치는 찬바람을 거의 다 차단했다. 이걸 올렸을 때와 내렸을 때의 차이는 굉장했다. 올렸을 땐 머리카락도 헝클어지지 않는 정도였다. 게다가 발, 가슴, 목 뒤가 따뜻하니 영하의 날씨가 다 무색했다. SL400은 겨울에도 지붕을 열 수 있다고, 오히려 더 즐거울 거라고 이렇게 부추긴다. 애꿎게 계절을 탓하기엔, 이 모든 기능과 쾌락이 아깝다.

    에디터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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