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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예요?

2015.01.26유지성

섹스 체위에 꼭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지만, 이름도 모르는 것을 그렇게 좋아한다 말할 수 있나?

 

드릴 비트, 더 랩톱, 런던 브릿지, TV 디너, 스위밍 레슨…. 너브 닷컴에서 만든 ‘오늘의 체위’ 카드 세트에 나오는 체위의 이름이다. 너브 닷컴은 섹스와 연애를 주로 다루는 웹사이트다. 카드는 총 52장. 트럼트 카드처럼 생겼다. 1년이 52주니까, 1주에 한 번 오늘의 운세 보듯 뽑아서 사용하기에 적절하다. 그리고 이 카드 세트를 소재로 삼아 만든 유튜브 동영상 ‘섹스 수수께끼’는 조회수 2백만 건을 돌파했다. 요상한 체위의 이름만 알려주고 실제 연인들에게 그것을 상상해 재현해보라는 콘셉트의 영상.

과연 어떤 지점이 그 영상을 그렇게 궁금하도록 만든걸까? 아무도 옷을 벗거나 심지어 키스하는 장면 정도도 나오지 않는데. 능숙한 배우가 아닌 친구 같은 사람들의 출연, 실제 연인의 섹스를 엿볼 수 있다는 호기심, 새로운 체위에 대한 궁금함 정도일까? 어쨌든 출연한 연인들은 체위를 재현한다. 생판 처음 보는 자세에 도전하기도 하고, 습관같이 익숙해 보이는 자세를 연출하는 연인들도 있다. 사실 그런 주제는 누구에게나 좀 부끄럽다. 영상에서도 대뜸 “제일 좋아하는 섹스 포지션”을 물었을 때, 처음 나오는 대답은 “오 마이 갓”이다. 대부분의 연인들이 머뭇거리거나 멋쩍게 웃는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과의 섹스를 누가 볼지도 모르는 카메라에 대고 얘기하긴 어렵다. 과거 얘기가 아니라 당장 지금, 어쩌면 어젯밤의 얘기니까.

말문이 트이는 건 연인들이 체위의 이름을 듣고 나서부터다. 드릴 비트라니, 뭔가 콱 뚫어버릴 기세로 밀어붙이는 그런 체위인가? TV 디너는 분명히 한 사람은 편하게 있는 채로 진행되는 체위일 테고, 더랩톱은 여자든 남자든 한쪽이 어디에 올라타는 모양새일 가능성이 높겠지. 영상을 보는 사람들 역시 체위의 이름을 들으며 같이 상상한다. 처음 영상을 켰을 때 기대했던 바와 좀 다른, 그런 의외의 재미. 돌이켜보면 대학교 MT에서 다 쓰러지고 몇 명만 남았을 때나, 적당한 긴장감이 있는 사이의 남녀가 진실게임 같은 걸 할 때면 꼭 그런 질문을 얄궂고 짓궂게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아?” 어쩌면 그 긴 밤의 하이라이트. 그걸 알게 된다고 우정이 깊어지거나, 도무지 안 될 남녀 사이가 극적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교생 선생님이 학교에 왔을 때 “첫 경험이 언제예요?”라고 누군가 앞장서 묻는 것 같은 통과의례라 말할 수도 있을  터. 모처럼 흥미진진한 순간이지만, 대부분의 대답은 질문의 용맹함에 비해 배시시 맥이 풀린다.

꽤 취한 상태에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대답을 못할 것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말해야 될지가 까마득하다. 과연 체위에 이름이 있었나? 하다못해 요가 자세도 각각 고양이 자세니, 코브라 자세니 하는 섹시한 이름이 있는데, 체위를 그렇게 불러본 적이 있던가? 그저 “올라와”라든가 “뒤로 할까?” 정도의, 품사로 따지자면 명사는 없고 동사만 있는 상황. 문장에 명사가 없고 동사만 있다는 건, 뭔가 애매한 걸 에둘러 말하거나 쓸 때 벌어지는 일 아니었나? 당연히 체위를 지칭하는 말이 있긴 하다. 정상위, 후배위, 측위, 교차위 등등. 하지만 그건 마치 섹스를 성교라고 지칭하는 것만큼 부자연스럽다. 또한 창의적이지 않을뿐더러, 따분하게 들린다. 동서남북 게임도 아니고. 그리고 정상위란 말은 대체 어디서 온 건지. 후배위가 곧 비정상위란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어쩌면 좀 슬프게도 신체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짧으니까. 페니스가. 그러니 이것저것 도전해보는 게 쉽지 않으니까. 페니스가 길지 않으면 몸이 바짝 밀착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체위는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모험을 걸어보기도 어렵다. 그러다 자꾸 빠지기라도 하면…. 아무리 오래된 연인이라도 섹스 중에 돌발 상황이 벌어지는 건 반갑지 않다. 게다가 길이 문제와 더불어 강직도가 1백 퍼센트가 아닌 경우라면,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자연스럽게 제한적인 체위만이 살아남았고, 특별히 새로운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풍차 돌리기’니 ‘그네 타기’ 같은 상대적으로 재기발랄한 이름도 결국 <옥보단>이나 <만다린> 같은 영화 때문에 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렇다고 체위에 양화대교, 노트북, 수영 시간 같은 이름을 붙이자는 말은 아니다. 52장의 카드 중 한장을 뽑았다고 그걸 똑같이 해낼 수도, 해낼 필요도 없다. 카드에서 동영상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올라와”든, “뒤로 할까”든, 정상위든, 후배위든 어쩐 일인지 방향에 대한 얘기뿐이다. 일단 거기서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직사각형 침대에서 벗어났을 때, 섹스의 신세계가 열리는 것처럼. ‘섹스 수수께끼’ 영상 속의 한 연인은 체위에 대한 질문에 “그녀가 만든거라 공개할 수 없어요”라 말한다. 이름을 꼭 붙이진 않았다 해도, 그 체위에 접어들기 위한 신호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은밀한 얘기는 아무도 몰라서 즐거운 것이 아니다. 둘만 알기 때문에 흥분되는 일이다. 연구가적 자세로  위에 접근하는 게, 코피 터지는 코스튬을 마련하는 것처럼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또 아나? 생경한 체위에 흥분한 나머지 페니스가 좀 더 커져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체위에 도전해볼 수도 있을지.

    에디터
    유지성
    일러스트레이션
    조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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