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떡해

어떻게 살아야 돈을 좀 벌 수 있을까? 왜 계속 가난한 기분이 드는 걸까? 왜 미래를 생각하면 더 암담해지기만 할까? 트레이더이자 칼럼니스트인 김동조에게 하소연하듯 물었다.

Economy판형

 

담뱃값에 범칙금까지 슬쩍 올랐는데 2015년에는 GNP가 3만 불이 넘을 거라는 보도가 나왔다. 누군가 돈을 벌고 있기는 한데 그게 나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젠 허탈한 마음조차 둘 곳이 없다. 경제 전문가가 봐도 그런가? 나는 2015년 이후의 한국 사회를 ‘각자도생의 사회’라고 주장한다. 정치는 우리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칠 것이다. 스스로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절대 행복을 확보할 수 없다고 믿게 됐다.

사회학자 엄기호가 < GQ >와의 인터뷰에서 정확히 같은 말을 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 사회. 그건 훨씬 각박한 말이지만. 전 세계가 각자도생을 하게 돼서 더 문제다. 한국의 88만원 세대라는 말처럼 유럽에는 5백 유로 세대라는 말이 있다. 세계화 시대의 비정규직 파트타임. 그 소득 수준은 한국이든 유럽이든 별 차이가 없다. 오바마 집권 6년이 넘어가는 지금, 경기 후퇴가 끝났고 주식도 많이 올랐다. 실업률도 10퍼센트에서 5.5퍼센트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만족스럽지 않다. 그 과정에서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됐지만 복지는 요원하다. SNP500과 다우 지수는 역사적 최고치를 넘겼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주식이 없다. 돈이 가계나 정부에 없고 기업에만 있는 것도 우리만의 현실은 아닌 거다. 우리는 더 참혹한 면이 있지만…. 진짜 문제는 금융 자산이 부의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경향이 점점 심해질 거라는거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볼 수 있는 고성장, 하이 레버리지 사회는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

노력하면 될 거라는 말은 이제 순진하게 들린다. 그 때는 그래도 낙관이 가능한 시대 아니었나? 경기가 좋을 때는 빚을 쓰는 사람들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당시 한국은 고이자율의 시대였지만 성장세도 높았다. 집값도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면 부자가 되는 시대였다. 그런 시대가 다시 찾아오기는 어렵다.

정부와 ‘경제 신문’들이 지금 그거 하라고 부추기는거 아닌가? 집들 사라고. 미국 리먼 사태가 끝났을 때 빚을 내서 주식을 산 부자들이 있었다. 모험적인 행동이었다. 미국에서 집값이 바닥을 쳤을 때 빚을 내서 집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계라는 경제 주체의 속성은 항상 그 흐름을 거꾸로 타기 쉽다. 바닥일 때 던지고 오를 때는 따라 산다. 그러니 전반적으로 어마어마한 상승장이 오기 전에는 금융자산으로 부자가 되긴 어렵다. 피케티와 빌게이츠의 논쟁이 거기서 출발한다. 피케티는 노동 소득에 비해 금융소득이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높다고 비판하지만, 빌게이츠는 “현상적으로 네 말이 맞기는 한데, 금융 소득을 올리는 게 쉬워? 남들이 팔 때 사고, 살 때 파는 게 쉬워? 그게 그냥 얻어진 거라고 생각해?” 이렇게 반박한다.

그럼 대체 돈이 얼마나 있어야 돈이 돈을 버는 흐름에 올라탈 수 있는 걸까? 3만 불 시대가 되면 호황의 혜택은 누가 받나. 지금 젊은 세대는 경제 주체로서 호황을 경험한 적도 없다. 앞으로 적응해야 하는 세상은 사실상의 디플레이션, 침체의 시대다. 디플레의 세상에서는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이자가 조금밖에 없다. 지금도 3년 국채 금리가 2퍼센트가 안 된다. 10년 국채 금리도 2.5퍼센트가 안 된다. 위험부담이 매우 적고 안전한 금융 소득을 예로 들면, 지금 10억을 넣어도 1년에 받을 수 있는 돈이 3천만원 정도다. 1년에 1억정도의 이자를 받아 비교적 풍족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면 30억의 자산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연소득 1억인 사람의 현금 흐름이 30억 자산가와 같은 시대인 것이다. 그 사람이 평생 일할 수 있다면.

연봉, 월급의 가치가 올랐다는 건가? 옛날에 연봉 1억이 10억 자산가의 의미였다면 지금은 30억 자산가의 가치가 됐다는 뜻이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의 경제적 지위가 엄청나게 강해졌다. 디플레이션의 세상에서는 안정적인 직장과 현금 흐름만 있다면 그냥 사는 데는 오히려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면 자산 소득으로 살기는 어렵기 때문에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날 거다. 첫 번째는 죽을 때까지 은퇴를 못하게 되는 것. 일본이나 유럽처럼 65세가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맥도날드나 세차장에서 계속 1백만원이라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올 거다. 두 번째는 그보다 높은 소득을 위해 결국 주식시장 같은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는 것. 하지만 주식시장엔 늘 승자와 패자가 있으니까, 누군가는 고수익을 노리고 돈을 잃고 누군가는 성공해서 와인을 마실 거다. 국민소득 3만 불이라는 얘기는 4인 가정이 버는 돈이 평균 1억 2천이라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다. 누군가는 훨씬 많이 갖고, 누군가는 훨씬 적게 갖는 거다. 결국 우리도 선택을 하게 될 거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금융 소득을 통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쓰는 유일한 방법은 가능하면 복리로 눈덩이를 굴리는 거다. 그것 외에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없다. 미래가 너무 암울해서 ‘에라, 써버리자’고 소비해버리면 당장은 쾌감이 있을지 모르나 덫에 갇혀버리는 거다.

그냥 안 쓰고 모아야 하는 건가? 70~80년대 부모님 세대처럼? 그때 안 쓰고 모았다는 건 은행에 넣는다는 거였다. 당시 은행 이자율은 최소한 10퍼센트, 많으면 20퍼센트였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8~9퍼센트는 됐다. 국채 3년 금리가 그랬다. 그때는 안 쓰고 가만히 넣어둔다는 말이 복리로 불려간다는 말이었다. 지금 안 쓰고 모으면 그건 그냥 모여 있는 것뿐이다. 지금 대부분의 회사원은 당장은 꽤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40대 후반 이후의 삶은 보장할 수 없고, 지금 소득에 100퍼센트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없으면 몹시 아쉬운 형태의 삶을 영위하고 있을거다. 그럴 때 고를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는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누릴 것이냐 현재를 누리고 미래를 희생할 것이냐다. 다른 건 없다.

<국제시장> 세대의 희생과 후회와 정확히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지르고 후회하고 있을 거다. 부모님들은 안질렀던 과거를 후회하고.

지금 한국은 보이지 않는 후회의 나라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세상의 큰 변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있었던 큰 변화는 기업이었다. 기업이 돈을 더 벌게 됐다. 코스피 200이나 거기 상장된 회사들의 이익 증가율을 보면 경제 성장률을 압도한다. 은행에서 그런 이율을 누리는 시대는 지났다. 은행에 넣은 사람과 그런 기업에 투자한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는 거다. 경 제는 사실 단순하다. 너의 지출이 나의 소득이다. 가계의 숙제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성장 할 것이냐다. 가계부채를 해결하는 방법은 딱 둘이다. 내가 돈을 빌려서 산 무언가의 가치가 오르거나, 아니면 내가 소득을 많이 올려서 그 빚을 갚아버리거나. 각자도생의 시대에는 절대 자포자기하면 안 된다. 이 앙물고 자본을 축적해서 아주 조금이라도 일어서야 한다.

다시 노골적으로 얘기해서, 자본을 축적해서 일어나려면 얼마가 있어야 하나? 답이 없다. 1천만원을 복리로 불리면 10년 후에는 얼마가 될 것 같나?

누군가는 1년 후에 빈털터리가 될 거다. 그래서 선택이다. 위험을 감수할 것이냐, 평생 일할 것이냐. 개인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정부는 그런 개인들이 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엉뚱하게 가버리는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일종의 구성의 오류인데,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한 명이 벌떡 일어나면 곧 모두가 일어난다. 그럼 아무도 영화를 못 보게 된다. 그것을 정치와 정부의 역량으로 조율해야 한다. 키가 작거나 다리가 불편하거나 심지어 들어올 수도 없는 약자도 배려할 수 있어야 이상적이다. 좋은 나라란 이런 거다. 한국은 지금 각자 일어서고 있고, 그래야 하는 시대다. 정부는 그걸 조율할 정치적 역량이 없고 야당은 견제할 능력이 없다.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심정적 여유도 없다.

그게 도저히 안 되는 것이 각자도생의 핵심 아닐까? <무한도전> ‘토토가’가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데도 경제적 맥락이 있다. 그들을 소비했던 세대가 아직도 주 소비층이니까. 지금의 90년대생들이 20년 후에 ‘토토가’를 만들 수 있을까? 아닐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는 너무 무기력한 세대니까. 일본의 초식남, 건어물녀처럼 그들은 소비의 주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의 미래는 지금 70, 80년대생보다 훨씬 더 우울할 거다. 하지만 저들이 나의 가치를 의심하고 버릴 때도, 나만은 나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 결국 자기에게 맞는 선택을 한 후 최대한 빨리 과실을 따는 것이 각자도생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