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섹스가 끝난 다음 날, 그 새로운 아침만큼이나 낯선 두 사람.

자고 일어나면 옆에 여자가 누워 있다. 깨워서 밥을 같이 먹으러 가나? 요리라도 하고 있어야 할까? 씻는 건? 모닝 섹스를 하기 전에? 일단 한 번 더 하고? 모르겠다. 일단 다시 잠든다. 해가 중천에 뜨면 다시 깬다. 그때쯤 되면 여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나만큼 게으른 여자, 배가 고픈 여자, 이미 씻고 알몸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 여자, 까치발을 들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다 들키는 여자. 

 

남자는 섹스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고 믿는다. 그저 제안할 뿐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맘이 편하다. 거절당하면 집에 들어와서 혼자 자면 그만이다. 하지만 섹스를 한 뒤엔 복잡하다. 여긴 우리 집이다. 우리 동네이기도 하다. 주도권이라 말하긴 뭣하지만, 뭐든 제안한 뒤 결정까지 내리는 쪽이 알맞아 보인다. 일단 첫마디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침엔 성욕이 끓어 넘치기 마련이니 대번 키스부터 하면 그만인가?

어쩌면 그런 고민은 어젯밤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섹스가 끝난 바로 뒤부터. 곧바로 담배부터 문다거나, 크리넥스 몇 장 빼놓고 샤워를 하겠다며 화장실로 달려 들어가는 한심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얼마나 더 얘기를 나누고 자야 하는 건지, 전화번호가 궁금하다면 지금 묻는 게 맞는지, 다음 날 아침에 묻는 게 맞는지 같은 생각들. 섹스를 하기 전엔 멍청해지는 건지 단순해지는 건지 그런 것쯤 아무렴 어떻겠냐고 뒤로 밀어두고 말지만…. 아침이면 꼭 게임 삼매경에 빠져 숙제를 미뤄둔 학생 같은 기분이 들고 만다.

좀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낯선 도시의 처음 가는 카페에서 겪는 상황과 비슷하다 말할 수도 있다. 짧은 여행에서 그 가게에 다시 들를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컵을 치우고 가는 건지, 자리에 놔두고 가는 건지, 주문한 곳으로 갖다 줘야 하는 건지, 다른 반납대가 있는 건지, 계산은 자리에서 하는 건지, 나갈 때 하는 건지 눈치를 살피곤 하니까. 사실 남들과 다르게 했다고, 혹은 실수 좀 했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어쨌든 그래서, 아침까지 내 방에 있는 여자와 또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또 만나고 싶나? 일단 여자의 맘과는 별개로 자문해보게 된다. 다시 보는 건 좋지만, 연애라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크게 보면 결국 시간과 시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즉, 섹스 다음 날 몇 시쯤 헤어지느냐. 겨울의 해는 짧아서, 점심을 같이 먹고 동네 산책이라도 좀 하고 나면 금세 해가 지고 만다. 그러면 이틀을 꼬박 같이 있게 되는 셈이다. 적어도 그 주말만큼은 그 여자와 연애와 다를 바 없는 이틀을 보내게 된 것이다. 밖에선 손도 잡고 걷고, 집에 데려다 주진 못해도 택시 번호 정도는 적어두기도 하고.
그러고는 “잘 들어갔어?”로 시작되는 연락이 이어질 수도 있다. 서로 좀 경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좀 서먹해졌거나. 그 이틀 동안 서로의 관계에 대한 얘기는 일절 없었을 테니까. 여자가 아니라 잘 모른다. 여자가 그맘때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영원히 모를지도 모른다. 여자라고 다 똑같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부분 그렇게 몇 번 안부를 묻다 시들해지고 만다. 그러다 다시 금요일쯤 되면 좀 궁금해진다. 다른 남자 만났으려나? 그렇다고 추접스럽게 오늘 집에 놀러 오라는 둥, 맛있는 걸 해주겠다는 둥의 말을 하고 싶진 않다. 섹스 파트너란 분명 누군가에겐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이겠지만, 정말로 너의 집 또는 나의 집에서만 만나는 관계, 그래서 아무런 전후 긴장 없이 알몸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관계라면 아무리 근사한 섹스가 기다리고 있다 해도 거절하고 싶다. 

 

가끔 그렇게 지나간 여자들을 우연히 마주친다. 만나면 머리를 쓰다듬거나, 실없이 야한 농담을 하는 정도로 친밀함을 표시하지만 딱 거기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둘 중 누구도 먼저 뭔가를 제안하지 못한다. 몇 주 전 같이 보낸 이틀 동안엔 참 할 말도 많았는데. 술 한 잔 안 마시고도 요즘 무슨 걱정스러운 일이 있는지, 어떤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는지 물어볼 수 있었는데. 섹스란, 아니 누군가의 집에서 부둥켜안고 잤다는 건 그런 일일까? 몇 시간을 같이 있든 헤어지기 전까지 만큼은 누구보다 가까울 수 있는 관계.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몸이 더 잘 알고 있어 마음까지 활짝 열려 있으니까. 주말은 언제나 쏜살같이 지나가지만, 그런 날들은 꽤 진하게 남는다. 그래서 또 기다린다. 익숙한 방, 느긋한 아침의 낯선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