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아이돌의 시대는 끝났는가?

2015.03.04GQ

명백한 몇 가지 징후는 아이돌의 시대가 정말 끝났음을 말해주는 걸까?

“아이돌은 끝났다” 혹은 “케이팝은 끝났다”는 말이 돌고 있다. 차트 성적 하락, 두각을 나타내는 ‘빅 네임’의 부재, 또는 과거 히트곡을 노골적으로 레퍼런스 삼는 경향도 그 증거로 제시 된다. 2008년에 계약한 팀들이 계약 종료에 도달하는 시점인 지금은, 분명 원더걸스의 ‘Tell Me’와 빅뱅의 ‘거짓말’로 시작된 2007년부터 의 아이돌 붐이 끝나가는 듯한 풍경을 보인다. 그러나 ‘아이돌의 끝’은 지구 종말론 같은 것이어서, 때가 되면 한 번씩 들려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매번 그럴듯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때 는 아니었지만 이번엔 정말로…”라는 새로운 종말론으로 대체되곤 한다.

확실히 아이돌 시장에 한계는 왔다. ‘아이 돌 기대 감소의 시대’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아이돌은 사람을 파는 산업이기에, 사람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06~2007년 이전까지, 꽤 긴 아이돌 침체기가 있었다. 동방신기와 SS501이 외롭게 수성하던 이 ‘소몰이’의 시대, 아이돌이 되고 싶은 아이들은 대부분 데뷔하지 못하고 연습생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 아이돌 신은 역설적으로 이 시기를 발판으로 일궈졌다. 아이돌계의 ‘레전드’ 들 중 장기 연습생 출신이 많은 것은 단지 오랜 훈련이 재목을 양성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데뷔의 기회가 적었기에 더욱 치열한 선별을 거친 것이 그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돌 붐 이후 이 ‘풀’은 빠른 속도로 소진되어갔다. 댄스 강사나 보컬 트레이너까지 아이돌로 데뷔하는 일도 생소하지 않다. 아이돌이 꿈인 연습생들만으로는 이미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출산율마저 하락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2년 73만 명이었던 신생아 수가 2001년 55만여 명으로 줄며, 한국은 초저출산 국가의 대열에 합류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따져보아도 연습생 풀이 과거보다 작아진 것이다. 이미 1998년생 아이돌이 데뷔하고 있으니, 아이돌 풀이 말라버리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돌로서 무대에 설 인물이 부족한 것뿐 만 아니라, 그 뒤에서 아이돌을 기획하는 사람들도 한계에 봉착한 듯하다. 이미 나올 만한 것은 다 나와서, 참신한 기획의 아이디어가 고갈 됐다는 뜻이다. 최근의 레퍼런스 논란은 이런 방증으로 여겨진다. 에이핑크가 S.E.S.를 노골적으로 참조하고, 다시 여자친구가 에이핑크와 소녀시대를 참조하는 식의 물고 물리는 상황이다. 소규모 아이돌로 시선을 확장해보면 이는 더욱 심각하다. 어느 보이 그룹은 빅뱅의 곡을 편곡 요소마저 모조리 가져오고, 어느 걸 그룹은 지 드래곤 곡의 가사 표현까지도 서슴없이 차용한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곡들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베끼는 것은, 과거의 표절이 대부분 좋 은 곡을 몰래 훔쳐오는 데 초점을 맞추던 것과는 결이 다르다. 이제는 ‘원곡’을 아는 사람들을 겨냥하는 것이다. 원곡의 유명세를 이용해 익숙함에 어필하고, 운이 좋다면 원곡의 위상에 기댈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노이즈 마케 팅이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이돌은 이제 생존능력을 많이 잃었는지도 모른다. 2000년대 초반처럼 침체기가 돌아올 수도 있다.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 년’(2001)을 기점으로, 대중음악 시장은 속칭 ‘소몰이’ R&B 발라드 중심이 되었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아이돌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아이돌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댄스 가요 자체가 사라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한도전 –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가 보여준 90년대 는 단지 추억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다. 아이돌과 댄스 가요가 동의어가 되기 이전, 그때도 우리 대중은 댄스 가요를 통해 즐거운 꿈을 공급 받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이었다.

‘소몰이’ 시기의 발라드는 절절한 가사와 보컬로 공감을 유도하는 신파적 리얼리즘이라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은 화사한 환상과 외모라는 아이돌의 이데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창력 부족으로 대변되던 댄스 가요에 대한 안티테제이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아이돌이 힘을 쓰지 못하던 상황은 아이돌에 대한 대중의 환멸만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가창력과 리얼리즘이라는 구체적 요구에 가요계가 응답하며 탄생한 현상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은 뚜렷한 의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섹시 코드에 대한 반발이 있지만 부르카를 입은 걸 그룹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이에 대한 해답은 사실상 없다. 실력이나 장르적 진정성을 이야기할 순 있겠으나 이것이야말로 지난 몇 년간 아이돌들이 집중적으로 개선해온 영역이다. 가창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에 맞서 꾸 준히 개량을 거듭한 결과, 샤이니를 비롯한 가창력이 우수한 아이돌들이 나타났다. 빅뱅의 지드래곤, 비스트의 용준형 등 작사, 작곡을 해내는 아이돌들이 결과물을 인정받음으로써 이런 ‘진정성 비판’ 역시 힘을 많이 잃었다. 즉, 지금은 아이돌에 대한 환멸 이외에 어떤 음악을 원한다는 대안은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시점에서 에이핑크와 러블리즈, 여자친구 같은 그룹을 주목할 만하다.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이들이 무엇을 참조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장 고전적인 아이돌의 형태, 즉 소녀다. 걸 그룹 세계는 그동안 많은 변화를 거쳤다. 강한 여성, 섹시한 여성, 걸즈 힙합, 4차원 소녀 등이 차례차례 유행하다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그 시작점은 언제나 소녀였다. S.E.S.와 핑클이 보여준 바로 그것이다. R&B 발라드의 시대를 뚫고 올라온 것도 ‘Rock U’의 카라와 ‘Kissing You’의 소녀시대였고, 원더걸스  또한 데뷔곡 ‘Irony’로 JYP 색채가 가미된 소녀를 표현했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비아냥마저 들어가며 버텨온 에이핑크가 지난해 드디어 전성기를 맞이했다. 러블리즈와 여자친구도 성공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데뷔했다. 지금 걸 그룹 세계는 소녀들의 세상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보이 그룹들의 색깔에 비해 걸 그룹 사이에서 더 두드러지는 현상일 뿐, 사실상 아이돌이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아이돌은 이미 끝났다. 다만 ‘리부트’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아이돌의 세계가 펼쳐질까? 앞서 말했듯 어쨌든 지금은 ‘아이돌 기대 감소의 시대’니까, 고만고만한 아이돌들이 익숙한 곡을 들고 나오는 일이 계속 반복될까? 일단 작년을 돌이켜보면 몇 가지 조짐이 눈에 띈다. 아이돌의 외연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 세계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이른바 탈 아이돌 노선이 자주 보인다. 아이돌로 시작했으나 배우로, 혹은 아티스트로 인정받아 연예계 수명을 연장하는 방식이다. 이런 흐름은 아이돌의 끝을 증명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마마무는 안정된 가창력과 복고 사운드를 내세운 4인조 여성 그룹이다. 그런데 이들이 무대 안팎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아이돌처럼 재미있고, 아이돌처럼 연극적이며, 아이돌처럼 귀여웠다. 아이돌의 바깥에서 아이돌 세계로 들어오는 움직임이랄까?

한편, 아이돌 세계 내부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이들도 있었다. 블락비의 지코는 솔로 싱글 ‘Tough Cookie’를 통해 실력 있는 래퍼인 동시에 아이돌 그룹의 멤버라는 독특한 위치를 점했다. 아이돌이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인 지코에게 “아이돌이지만 랩은 잘한다” 같은 말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샤이니의 태민은 솔로 활동을 통해 작사, 작곡과는 무관한 보컬 리스트이자 퍼포머로서의 우수성을 각인시켰다. 아이돌 비판의 틀 자체를 재고하도록 하는 강렬한 한 방이 아닐 수 없다. 이들에게 아이돌이란 음악적 역량 부족을 빌미로 비판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지코에겐 하나의 입장일 뿐이고, 태민에겐 프로페셔널한 직업이다. 그렇게 아이돌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

어찌 보면 정작 중요한 건 음악 시장의 몰락일 것이다. 2007년의 아이돌 붐이 시장의 수명을 일시적으로 연장시켰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마저도 쇠퇴하고 있다. 그 안에서 아이돌은 재출발을 선언했고, 그 향방은 여전히 ‘아이돌 기대 감소의 시대’의 맥락 위에 있다. 이변이 없다면 이 세계는 느리든 빠르든 쇠퇴해갈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당장 나오는 새로운 음악들을 충분히 들어두는 게 좋을 지도 모른다. 대중음악을 아예 멀리할 게 아니라면, 내일보다 오늘이 나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지금을 맘껏 즐기는 것이 낫다. 그러면서 기존 아이돌의 틀에 균열을 내는 이들에게 더 주목해보는 건 어떨까. 이변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은 그들에게, 그들을 지지하는 힘은 대중에게 있기 때문이다.

    에디터
    글 / 미묘(웹진 편집장)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