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GQ다운 남자는 누구일까? <3>

지금 이곳에서 가장 지큐다운 남자는 누굴까? 2001년 <GQ KOREA> 창간 이후, 우리는 항상 이 질문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고는 생각할 때마다 어려워 했다. 젠틀맨을 ‘신사’라 번역하면 그 좁은 테두리가 육박해왔고, ‘GQ맨’이라는 조어엔 어딘지 갈증이 먼저 일었다. 2015년 3월, 우리는 좋아하는, 옹호하고 지지하는, 동시대를 사는 유대감을 나누고픈 남자를 50명(만) 선정했다. 그리고 썼다. 헌사이자 주장으로써.

 

31. 김선형

1988년생 | 농구선수 | 포지션은 포인트가드. 중앙대학교 졸업 후 2011년 서울 SK 나이츠 입단. 2012~2013 시즌 프로농구 MVP.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 멤버.

 

김선형을 막는 방법은 간단했다. 거리를 벌리면 그만이었다. 슛이 약했으니까. 하지만 올 시즌 김선형은 3점 슛 성공률을 10퍼센트 가까이 끌어올렸다. 수비가 바짝 다가서면 돌파하고, 떨어지면 던진다. 지난 시즌부터는 플로터를 장착해 키 큰 수비가 붙어도 거뜬히 득점을 올린다. 홈런왕이 타격 폼을 바꾼다는 놀라운 소식처럼, MVP 김선형은 매년 악착같이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코트로 돌아왔다. 타고난 운동 능력으로 빠르고 화려한 공격을 펼치는 선수. 이제 김선형을 그렇게 표현하는 건 실례일지도 모른다.

 

 

32. 김선욱

1988년생 | 피아니스트 | 2006년 제 3회 금호음악인상 | 2013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완주 | 2015년 제 9회 대원음악상 연주상.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통화한 건 2013년 11월 즈음이었다. 그해 12월, 는 그를 ‘MEN OF THE YEAR’로 선정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서른두 곡의 완주를 앞둔 시점이었다. 그의 베토벤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콘서트였다. 티켓은 매번 매진됐다. “이게 끝나면 속이 시원하다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고요. 그냥 한 번 남았네, 그 정도예요. 아쉬운 것도 많고.”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스톡홀롬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김선욱이 말했다. “그래도 베토벤 소나타 서른두 곡은 특별한 거예요. 베토벤은 클래식 중에서도 고전이거든요, 소설에도 고전이 있듯이. 그래서 깨달음이 많은 거예요. 내가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2014년 3월에는 다니엘 하딩의 런던 심포니와 한국에서 협연했다. 초여름엔 진은숙 피아노 협주곡 음반을 발매했다. 9월에는 한국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바흐, 프랑크, 슈만을 연주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30대가 되면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베토벤 소나타 서른두 곡의 성취에는 연연하지도 않고, 김선욱은 그저 묵묵히 길을 닦는 중이다. 과연, 이 꾸준하고 젊은 예술가의 성장과 극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모두의 기쁨 아닐까? 지금, 이 정도로 마냥 신뢰할 수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는 김선욱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33. 이승엽

1976년생 | 야구선수 | 1995년 삼성 라이온즈 입단. 2003년 한국 프로야구 한 시즌 홈런 신기록(56개) 달성. 2004년 일본 프로야구 진출 후 통산 홈런 159개 기록. 2012년 삼성 라이온즈 복귀. 2013년 한국 프로야구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352개) 달성. 2014 시즌 후 지명타자로 9번째 골든글러브 수상(역대 최다).

 

 2013년, 이승엽은 고전했다. 2할 5푼 3리에 홈런은 13개. 데뷔 이래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다. 일본에서 삼성으로 복귀한 뒤 치르는 두 번째 시즌. 삼성은 이승엽이 없을 때도 리그에서 가장 강한 팀이었다. 그러니 천하의 이승엽이라도 실력으로 증명해야 했다. 공격에서 다른 선수를 압도하지 못하면, 지명타자 자리도 위태로울지 몰랐다. 하지만 이승엽은 1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강타자의 상징이라 할 만한 3할, 30홈런, 1백 타점을 달성했다. 서른아홉, 이룰 수 있는 웬만한 건 이미 다 이룬 타자의 기록이었다. 자연스레 9번째 골든글러브가 뒤따랐다. 역시나 프로야구 사상 최초였다. 이승엽이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 아니 조금만 빨리 돌아왔더라면 어땠을까. 스포츠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그랬다면 과연 이승엽은 지금까지 홈런을 몇 개나 쳤을까. 행크 애런의 755개, 오 사다하루의 868개라는 숫자가 그저 놀랍기만 한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 통산 5백 홈런과 2천 안타를 앞두고 있다. 둘을 동시에 달성한 타자는 당연히 없다. 문득 이승엽이 없는 야구장을 떠올려본다. 이미 겪어본 일이지만, 그땐 돌아올 거란 믿음이 있었다. 홈, 원정 가리지 않고 외야를 꽉 채우던 그 가을의 잠자리채를 누군가 또 재현할 수 있을까? 국제대회에서 8회만 되면 약속한 듯 한 방 쳐내던 그 방망이는? 1995년 ‘아기 사자’라 불리던 투수 출신 고졸 신인은 2015년, 이제 프로 21년 차에 접어든다. 

 

 

34. 박찬욱

1963년생 | 영화감독 | 복수 3부작, < 박쥐 >, < 스토커 >. 현재 < 아가씨 > 촬영 중.

 

박찬욱의 < 박쥐 >는 다시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영화의 평은 엇갈렸다. 극단으로 뻗었고 중간은 거의 없었다. 그런 한국영화가 최근에 있었나? 박찬욱의 영화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장면이 담겨 있다. 새로운 장면은 영화의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이야기만 남는다면, 영화는 굳이 영화의 형식으로 계속 남을 이유가 없다. < 스토커 > 또한 당시에 할리우드에 진출한 다른 한국 감독들과 궤를 달리했다. 그는 여전히 논쟁할 영화를 만든다. 주제가 세거나, 형식이 뒤틀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직하게 영화다운 고민만을 통한 결과다. 한국 영화계의 많은 사람이 이해해주길, 동의해주길 바라며 만든 결론이 빤한 이야기들 속에서 박찬욱은 영화로만 묻는다.

 

35. 김현우

1988년생 | 레슬링선수 | 2010년 첫 국가대표 발탁. 2010 뉴델리 아시아선수권, 2012 런던 올림픽, 2013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그랜드슬램 달성.

 

오른쪽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올림픽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던 그 상기된 얼굴을 기억한다. 2012년, 런던의 김현우는 그렇게 이름보다 얼굴이 더 진하게 남았다. 여느 비인기종목이 그렇듯 그는 올림픽 이후 다시 외롭게 싸웠다. 2013년엔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번엔 깨끗한 얼굴로, 상대를 압도하며. 레슬링은 힘의 균형이 깨지면 곧 점수가 나는, 그래서 내내 조마조마한 종목이지만, 김현우의 경기는 이제 안심하며 볼 수 있다.

 

 

36. 안성기

1952년생 | 배우 | < 만다라 >, < 투캅스 >,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 화장 > 개봉 예정.

 

씨네 2000의 이춘연 대표는 < GQ >와의 인터뷰에서 “한 번은 배우 안성기와 멜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안성기의 연기력 때문이 아니었다. 한국 영화계에서 아주 오랫동안 안성기를 봐왔는데, 그렇게 고운 성정을 지닌 ‘스타’는 여전히 ‘안 스타’뿐이라는 것이다. 배우가 연기로 인정받는 건 가장 큰 목표지만 그보다 어려운 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평가는 비단 이춘연 대표만의 의견이 아니다. 환갑이 지난 안성기의 얼굴은 볼 때마다 선한 기운만이 남아 있다. 한국에서 선한 신사의 얼굴을 꼽는다면 그의 얼굴 말고 누굴 또 생각할 수 있을까?
37. 김영철

1953년생 | 배우 | 1973년 민예극단 입단으로 데뷔 | 1977년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 | < 태조왕건 >, < 야인시대 >, < 아이리스 >, < 인생은 아름다워 > 등 54편의 드라마와 19편 영화 출연.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

 

김영철은 ‘카리스마’라는 말이 어울리는 배우지만, 터지는 불꽃이 아니라, 도공이 가마에 피운 불 같다. 그는 뜨겁지만 어디까지나 속으로 파고든다. 화려한 걸로는 ‘옴마니밤베홈’의 궁예(드라마 < 태조 왕건 >)도 있고,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의 강 사장(영화 < 달콤한 인생 >)도 있지만, 그저 아버지일 뿐인 양병철(드라마 < 인생은 아름다워 >)이야말로 김영철의 빛나는 연기였다. 아버지, 이 시대의 아버지를 연기하는 배우,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바로 김영철이다.

 

 

38. 최백호

1950년생 | 가수 | 1977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데뷔 | 대표곡 ‘입영전야’, ‘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 SBS FM < 낭만시대 > 진행. 2012년, 재즈, 라틴, 탱고 등의 파격적인 장르를 후배 음악가들과 구현한 < 다시 길 위에서 > 발표.

 

핑클을 틀어도 ‘내 남자친구에게’가 아니라 ‘당신은 모르실 거야’를 택한다. < 낭만시대 >는 최백호가 약 7년째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애들은 잠든 밤 10시에 시작한다. 최백호의 부산 말씨가 참 편안하게 들린다. 그의 구수하고 정감어린 목소리와 말투 때문만은 아니다. 낭만은 누구의 멋이 아니라 결국 제멋이기 때문이다. 최백호는 지난 2013년에 있었던 < GQ >와의 인터뷰에서, 작사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덕목이 “천박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백호는 자신이 “틀림없이 확 때려치우고 어디든 가버리는 사람”인데, 참 이상하게도 꾸준히 하고 있다면서 덧붙였다. “그 시간이 좋으니까, 밤에 음악 듣는 게 좋으니까.” 최백호는 사람들이 조금 늦게 자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날들을 만들고 있다.

39.송강호

1967년생 | 배우 | < 초록물고기 >, < 넘버3 >, < 조용한가족 >, < 반칙왕 >, < 복수는 나의 것 >, < 살인의 추억 >, < 괴물 >, < 우아한 세계 >, < 밀양 >, < 박쥐 >, < 설국열차 >, < 변호인 >. < 사도 > 개봉 예정.

 

< 초록물고기 >, < 넘버3 >로 데뷔. 연극에선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영화에선 데뷔하면서부터 바로 주목받았다. 특히 < 넘버3 >에서 연기한 조필은 그 대사가 녹취파일로도 PC통신에 떠돌고, 유행어가 되었다. 이후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가 비평이든 흥행이든 둘 모두이든 지속적으로 ‘좋은’ 영화에 출연했다. 그래서 송강호가 시나리오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건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송강호는 연기로 영화배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말한다. 주인공으로서 연기로만 영화를 이끌어나갈 때는 어때야 하는가? 반대로 조연일 때는 얼마만큼 물러서 있어야 하는가? 영화 < 변호인 >은 오직 송강호의 힘으로만 만들어진 영화다. < 변호인 >에서 송강호가 돋보이는 이유는 그가 거의 모든 신에 출연해서가 아니다. 역사적 인물을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아주 정중하면서도 거리를 두고 판단했다는 점이 다른 배우들과의 차이점이다. 인권, 민주주의, 시민의식, 자유, 이런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은 많지만, 연기를 통해 모두를 설득했다는 건, 단지 투영된 인물에 대한 그리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조연으로 그가 < 밀양 >에 출연했을 때 오직 전도연을 위해 한 걸음 물러나 연기를 했다. 아니, 프레임에 걸쳐 있으면서 사소한 긴장만을 유지한다. 강한 연기가 좋은 연기로 소비되는 시대에 어떨 때 강해야 하고, 어떨 때 물러나야 하는지 그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런 배우로 한국에서 유일하다.

 

 

40.염경엽

1968년생 | 야구 감독 | 1991년 2차지명 1라운드 전체4번으로 선수생활 시작, 현대 유니콘스와 LG 트윈스에서 스카우터, 운영팀장, 수비코치 등을 역임. 2013년 넥센 히어로즈 감독 취임.

 

한국의 야구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는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믿음의 야구와 김성근의 야구. 김성근의 야구는 파격과 변칙이 모토였다. 최악과 위기를 가정해 최선을 뽑아냈다. 그는 대개 불편했고 마침내 위대했다. 모든 선구자들처럼. 그런데 그를 따르면서 그와는 다른 길을 걷는 감독이 출몰했다. 야구선수의 은퇴 후 행보로 주류와는 먼 길을 걸어온 넥센 히어로즈의 염경엽 감독이었다. 김성근 감독처럼 오랫동안 야구를 관찰하고 메모하고 공부해온 걸 바탕으로 창의적인 야구를 펼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선수를 그의 야구에 맞춘다면, 염경엽 감독은 선수에 야구를 맞췄다. 김성근 감독이 무리해서라도 훈련강도를 높이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다고 믿는 한편, 염경엽 감독은 선수 각각의 역할과 역량이 훈련에 우선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흡사 외인구단 같던 넥센 히어로즈는 새 감독의 새로운 방식으로 어느새 단단한 강팀이 되었다. 여전히 약점이 좀 뚜렷해 보이기도 하지만, 장점을 극대화해 팀 전력의 균형을 찾는 식이다. 김성근과 염경엽의 방식 중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염경엽 감독의 방식이 좀 더 현대적이라고는 할 수 있을 듯하다. 어쩌면 항상 설까치와 독고탁이 승리하는 만화 말고 좀 다른 걸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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