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GQ다운 남자는 누구일까? <4>

지금 이곳에서 가장 지큐다운 남자는 누굴까? 2001년 <GQ KOREA> 창간 이후, 우리는 항상 이 질문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고는 생각할 때마다 어려워 했다. 젠틀맨을 ‘신사’라 번역하면 그 좁은 테두리가 육박해왔고, ‘GQ맨’이라는 조어엔 어딘지 갈증이 먼저 일었다. 2015년 3월, 우리는 좋아하는, 옹호하고 지지하는, 동시대를 사는 유대감을 나누고픈 남자를 50명(만) 선정했다. 그리고 썼다. 헌사이자 주장으로써.

41. 윤병주

1971년생 | 1994년 ‘톰보이 락 페스티벌’ 대상곡 ‘타협의 비’로 데뷔. 노이즈가든의 리더로 두 장의 앨범 발표. 2012년 로다운 30으로 2집 < 1 > 발표.

윤병주가 이끌었던 록밴드 노이즈가든은 지난해 리마스터링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가졌다. 해체 후 15년 만이었다. 노이즈가든이 대상을 차지하면서 데뷔한 톰보이 록 페스티벌에서, 곡 길이를 5분 이내로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통보에도 불구하고 10분 넘게 연주했다는 일화가 있다. 사람들이 그의 기타 연주력과 음악적 소양을 칭송하면 그는 “이게 상식적인 수준”이라고 답한다. 로다운 30으로 활동하면서는 “창의적인 음악을 추구한다”고 말하고 기어이 그것을 실현시키는데, 그의 상식은 음악은 창의적인 것이고, 창의적인 것은 기본으로부터 하여튼 그 너머를 향하는 것이다.

42. 손석우

1920년생 | 작곡가 | 1961년 인디레이블 ‘뷔너스’ 설립. 2011년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수상. 2014년 남이섬 노래박물관에서 < 손석우 특별전 >.

“보슬보슬 나린다 / 그날처럼 나린다 / 비오는 날의 세 시 / 종소리도 흐느껴 운다 / 나뭇잎이 젖는다 / 땅도 집도 젖는다 / 비오는 날의 세 시 / 이 가슴도 젖는다 / 잊을 길 없는 그대의 미소 / 사랑은 가도 떠나지 않는 안타까운 그리움 / 먹구름이 몰리듯 / 아쉬움만 고이는 / 비오는 날의 세 시 / 이 마음은 또 운다.” 이 노래를 꼭 찾아 들어보길 권한다. 1959년, 손석우 선생이 썼고, 손시향 선생이 부른 노래 ‘비오는 날의 오후 세 시’다. 이 노래 한 곡이 철저히 증명하는 바, 그때가 지금보다 훨씬 멋있었다. 선생이 아직 살아 계시다.

43. 에릭

1979년생 | 배우겸 가수 | 그룹 신화로 데뷔 후, 드라마 <불새>로 주연 데뷔, 이후 < 케세라세라 >, < 최강 칠우 >, < 연애의 발견 >에 출연. 17년간 그룹 신화로 활동 중. 2월 말 컴백.

일명 1세대 남자 아이돌 중 배우를 ‘희망’했던 연예인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반대로 여전히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건 누가 있을까?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은 에릭밖에 없다. 그저 살아남았다고 말하기엔 에릭은 어떤 배우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필모그래피를 갖췄다. < 케세라세라 >, < 최강 칠우 >, < 연애의 발견 >을 거치며 트렌디 드라마 남자 주인공으로서 입지를 견고하게 다졌다. 여배우가 여자에게 인기 있어야 광고를 많이 찍듯이 에릭은 어느새 남자들이 편하게 느끼는 남자 배우가 아닐까? 남자는 완벽하게 잘생겼거나, 특별한 연기를 한다거나 하는 식의 아주 확실한 상하관계를 인정했을 때만 남자 배우를 인정하는데, 에릭은 어딘가 어떤 분류로도 나누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가 있는 지점은 아주 독특해 보인다.

44.테디

1978년생 | 프로듀서, 래퍼 | 1998년 원타임의 멤버로 데뷔. 원타임 음반의 타이틀곡 ‘One Love’, ‘HOT 뜨거’ 등 작곡. 이후 YG 엔터테인먼트 소속 뮤지션인 지누션, 빅뱅, 2NE1 등의 음반에 작곡 및 프로듀싱으로 다수 참여.

수많은 프로듀서가 YG 엔터테인먼트를 거쳐가는 가운데, 테디는 굳건히 같은 자리에 있다. 하지만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슬쩍 화면에 걸치거나, 짤막한 랩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것 정도 외에는 여전히 그의 목소리를 듣긴 어렵다. 어쨌든 테디는 여전히 YG 엔터테인먼트의 스튜디오에서 곡을 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까? YG에 기대하는 장르 음악의 완성도, 강철 같은 질감 등을 완성한 건 결국 테디일 테니까. 두문불출이라면 두문불출. 전면에 나서는 일이 드물어 대부분 곡을 듣고 나서야 프로듀서가 테디임을 확인하는 경우가 잦지만, 결국 비장의 일격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다는 새삼스러운 사실. 데뷔 18년 차 프로듀서의 전성기를 논하기에 앞서, 오늘은 그가 어떤 노래를 듣고 있을지, 그래서 내일은 어떤 곡을 뚝딱 만들어 누구에게 선물처럼 안겨줄지 여전히 궁금하다는 점에서, 테디는 지금도 최전선에 있다.

45.정만섭

1963년생 | 월간 스테레오 사운드 편집장 | 월간 CD 가이드 편집장. 2002년 이후 KBS 클래식 FM <명연주 명음반> 진행.

 

93.1메가헤르츠, KBS 클래식 FM. 오후 2시엔 타르티니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DJ 정만섭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월 16일 오프닝은 이렇게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 명연주 명음반 > 정만섭입니다. (중략) 원래 오늘은 협주곡 소개해드리는 날인데요, 설특집도 있고 해서 일정을 바꿔봤습니다.” 이후 곡에 대한 정보가 빠르고 정확하게 흘렀다. 벌써 13년째, 그저 한결같았다. 더불어 이런 얘기. “이건 별 열 개줘야 마땅한 진짜 명음반인데요….” 그는 높낮이가 별로 없는 목소리로 진짜 해박한 사람이 아니면 못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정만섭 추천으로 수입 음반 1천 세트가 다 팔린 일화는 유명하다. 지휘자 르네 라이보비츠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방송 이후 판을 아예 새로 찍었다. 요즘 같은 때, 이토록 정확한 식견을 바탕으로 음악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라디오 방송이 있다. 게다가 기꺼이 고요하고 싶은 오후 2시라면, < 명연주 명음반 >뿐이다.

 

 

46.최경주

1978년생 | 프로듀서, 래퍼 | 1998년 원타임의 멤버로 데뷔. 원타임 음반의 타이틀곡 ‘One Love’, ‘HOT 뜨거’ 등 작곡. 이후 YG 엔터테인먼트 소속 뮤지션인 지누션, 빅뱅, 2NE1 등의 음반에 작곡 및 프로듀싱으로 다수 참여.

 

최경주는 1999년 PGA 투어 자격을 얻은 첫 한국 선수다. 2008년에는 세계 랭킹 5위까지 올랐다. PGA 통산 8승. 물론 최경주는 아직 4대 메이저 골프 대회에서는 우승하지 못했지만 다섯 번째 메이저 대회라고도 불리는 201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연장전 우승을 했다. 사실 한국 남자 골프선수 중에서 그가 쌓아온 커리어와 대적할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다. 최경주는 말 그대로 한국 남자 프로 골퍼의 역사다. 어떤 기준이 된다는 말일 텐데, 그건 한국 스포츠 역사에 중요하다. 최경주는 겸손하다. 단지 언행이나 태도 때문이 아니다. 최경주의 일화. 그러니까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고, 역도를 하면 학비를 면제해준다는 말을 듣고 열세 살 때 40킬로그램짜리 바벨을 들고, 아버지의 만류에도 완도에서 홀로 상경했다는 이야기. 위인전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그는 누구나 그렇게 역경을 이겨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굉장히 일찍부터 최경주 재단을 만들고, 누구보다 기부에 앞장섰다. 이 또한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과 비슷하다 여길 수 있지만, 자신의 골프만큼이나 체계적으로 단단하게 재단을 운영해가고 있다. 기부 문화가 척박한 이곳에서 그는 누구보다 가장 앞장서 기부를 하면서, 왜 그것이 필요한지를 증명하고 있다. 어려웠지만, 그것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신사 스포츠의 스타답다 느낀다.

 

 

47.도끼

1990년생 | 래퍼, 프로듀서 | 2005년 열여섯 살의 나이로 다이나믹 듀오의 ‘서커스’에 프로듀싱 및 피처링으로 참여하며 힙합 신에 본격적으로 등장. 2011년 일리네어 레코즈 설립 후 첫 정규 음반 < Hustle Real Hard > 발매. 2014년 < Show Me The Money 3 > 출연. 지난 11월 ‘치키차카초코초’, 2015년 1월 ‘RIATCH’ 발표.

 

도끼는 돈 자랑을 한다. 방송에서 집도 시원하게 공개했다. 겸손을 쌓기보다 벽 한 쪽의 신발 박스 더미를 보여줬다. 자랑에는 유머가 필요하다. 요령이라 말할 수도 있다. “똑같은 신발을 한 켤레씩 사요. 길거리용 하나. 무대용 하나, 전시용 (하나).” 이런 말을 할 때 도끼는 썩 진지해 보이지 않는다. 막대사탕을 쪽쪽 빨며 능글맞은 말투로 말할 뿐이다. 목에 핏대를 세우는 ‘스웨거’라기보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맘껏 말할 때의 자연스러운 모습. 그러니 미울 일도 없다. 또한 적어도 도끼는 없는 말을 하는 허풍쟁이는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왔으니까. 도끼의 신곡 ‘RIATCH’엔 이렇게 쓰여 있다. “여전히 연예인이 아닌 그냥 랩스타/ 내 스타일대로 지키는 나의 품위.” 도끼는 돈을 많이 벌었다. 가사처럼 랩스타의 방식으로 벌었다. 쉬지 않고 신곡을 발표하고, 공연장에 섰다. 온갖 ‘센 척’은 다 하다가 TV에 나와 우스운 꼴을 보이는 래퍼라면 수없이 봤지만, 도끼는 여전히 스튜디오와 무대가 훨씬 가까운 래퍼다. 그리고 그것을 그는 품위라 말한다. 본업에 전력투구하고, 그 대가로 얻은 것을 떳떳히 공개하는 일. 정정당당하게 승리한 운동선수를 본 것처럼, 의심과 시기 대신 깨끗한 박수를 보내게 된다.

 

 

48.조인성

1981년생 | 배우 | 1998년 의류 브랜드 지오지아 모델로 데뷔. 2002년 MBC < 뉴논스톱 >으로 얼굴을 알린 뒤, 2004년 < 발리에서 생긴 일 >, 2005년 < 봄날 >, 2006년 < 비열한 거리 >를 통해 차례로 입지를 다졌다. 최근작은 SBS < 괜찮아, 사랑이야 >.

 

조인성은 부셔져버릴 것 같은 남자다. 유난히 마르고 긴 체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줄곧 맡아온 역할이 그 이미지를 강화했다. < 발리에서 생긴 일 >의 정재민, < 봄날 >에서의 고은섭, < 쌍화점 >의 홍림,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의 오수까지, 조인성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어느 한구석이 좀 여리고 불안하다. 결국 나약함을 쏟아내고 만다는 점에서 비슷한 선상에 놓인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이 갑자기 동요할 때, 불안에 무너지기 직전일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곧 울어버릴 것 같을 때, 조인성의 얼굴은 가장 조인성다워진다. < 발리에서 생긴 일 >에서 수화기를 붙잡고 울음을 참는 모습이 한때 예능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그 모습이 가장 조인성답다는 생각은 아직도 바꾸고 싶지 않다. 그 연기에 대한 기술적 평가 역시 별로 중요치 않다. 그 모습에서 고은섭이 나오고, 오수가 나오고, 장재열이 나왔다. 그건 조인성이 자신만의 가치와 색깔을 진하게 만드는 행보를 보여왔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조인성이 < 비열한 거리 >에서처럼 얼굴에 피를 묻힌 채 건들거려도, < 괜찮아, 사랑이야 >에서처럼 병원복을 입고 수척해졌을 때조차도 여전히 멋있는 건 그간 쌓아올린 나약함의 매력 때문일 테다. 그런 그가 인터뷰나 강연 자리에서 “여자를 잘 모른다, 많이 차였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그가 연기한 캐릭터와 한없이 가까운 인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인성이 멋있는 건 강해서가 아니다.

49. 윤수일

1955년생 | 신중현과 함께 골든 그레입스에서 기타 담당 | 윤수일과 솜사탕 결성. ‘아파트’, ‘제2의 고향’ ‘황홀한 고백’등의 히트곡. 현 윤수일 밴드 활동.

 

한국 록은 90년대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잃어버린 세대의 엄연한 현실이긴 한데, 미처 살피지 못해서 너무 멀고 오래된 곳만 바라보는 걸 수도 있다. 윤수일 밴드는 작년에 24집을 발표했다. 타이틀곡인 ‘부산의 노래’에서는 물씬한 남자의 우수를 풍기고, ‘마린 시티 걸’에서는 로커 본연의 박력을 내지른다. 지금도, 사람들이 80년대에 봤던 그 윤수일이다. 윤수일은 내후년이면 데뷔 40주년을 맞이한다. 그에게 시간은 숫자로서 중요하지 않다. 로커는 자신이 제일 멋있고, 지금이 제일 멋있다.

 

 

50. 혁오

1993년생 동갑내기인 오혁(보컬, 기타), 임동건(베이스), 임현제(기타), 이인우(드럼)로 구성된 4인조 밴드 | 2014년 EP < 20 >으로 데뷔. 2015년 1월 < Panda Bear > 발매.

 

혁오의 공연이 열리면 SNS엔 한바탕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멤버들의 운동화, 얼굴 피어싱, 무대를 찍은 사진. 혹은 연주 동영상. 대개 또래들이 벌이는 일이다. 그들은 그렇게 혁오를 즉각적으로 지지한다. 제각기 다른 시선으로. 혁오는 뒤로 숨지 않는다. 그렇다고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지도 않는다. 언제든 새로운 세대를 투영하는 아이콘은 사라진 적이 없다. 거기서 ‘로컬리티’, 공동체 같은 익숙한 개념을 지우면 오늘의 밴드, 혁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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