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슈퍼 보드

제이크 버튼이 한국에 왔다. 버튼과 스노보드란 스포츠를 산봉우리처럼 우뚝 세운 바로 그 남자.

 

한국은 처음인가? 20년 전쯤 온 적이 있다. 버튼 부츠를 부산에서 만들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였다는 말인가? 맞다. 서울에도 온 적이 있다. 많이 달라졌다. 아주 모던해졌다.

 

누군가는 제이크 버튼이 스노보드를 개발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아니라고 말한다. 1970년대 스노보드의 태동기에 정확히 어떤 일을 한 건가? 일단 난 대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수영선수였다. 1977년 졸업한 뒤엔 뉴욕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금세 그만뒀다. 사실 예전부터 스너퍼(서핑보드를 눈에서 탈 수 있도록 개량한 것)를 연구하고 있던 차였다. 당시만 해도 스너퍼는 장난감에 가까웠지만, 그걸 이용해 스포츠에 가까운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뉴욕을 떠나 버몬트로 이사했다.

 

그렇다면 취미생활에 가까웠던 스너퍼 놀이를 스포츠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처음엔 그냥 돈을 벌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버몬트에서 1년쯤 지내고 나니 정말 힘들었다. 그러면서 이걸 제대로 된 스포츠, 스노보딩으로 만들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초창기엔 직접 1백 개 이상의 스노보드를 제작했다고 들었다. 그런 기술은 어디서 배운 건가? 학교 다닐 때 목공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손재주가 없어서 정말 못했지만. 어쨌든 버몬트에선 스노보드를 대신 만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물푸레나무, 해상용 합판, 단풍나무 등 안 써본 게 없다. 아직 그때 만든 프로토타입이 40개쯤 남아 있다. 보드를 만들다 꽤 크게 다칠 뻔한 적도 많다. 난 사실 목공보다 영업, 사업이 체질에 맞는다.

 

요즘 세대에게도 그렇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해줄 수 있나? 대기업도 좋지만, 거기서 개개인은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자기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걸 추천한다. 회사의 결과물에서 내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곳. 버튼에도 큰 회사에서 일하다 입사한 친구들이 있는데, 글쎄, 그 친구들 전부가 우리 회사와 잘 맞는다는 인상은 아니었다. 진취적인 면이 부족하다. 물론 그게 다 그들 탓은 아니다. 지금은 불경기니까. 사람들은 이제 취미생활을 위해 일한다. 퇴근하고 나서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인데, 일에 관해서도 그만큼 열의가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스노보드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뭔가? 보드의 형태. 보더가 원하는 스타일에 잘 맞아야 한다. 레이싱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보드, 프리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을 위한 보드는 생김새부터 다르다.

 

버튼엔 모든 형태가 다 있나? 다 있다. 항상 말하는 건데, 멋없는 스노보드 라이딩 스타일 같은 건 없다. 한 가지만 추구하는 브랜드들도 있지만 우리는 스타일에 상관없이 모든 스노보더를 환영한다. 디자인도 그렇다. 군대도 아니고, 옆 사람이랑 당연히 다른 모양의 보드를 타고 싶지 않나?

 

종종 스노보드 옷들이 너무 과시적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스노보드를 타는 연령층은 굉장히 어리다. 청춘의 스포츠. 그리고 그 친구들은 튀는 걸 좋아한다. 화려한 색감의 재킷이 먼저 눈에 띄긴 하지만, 버튼에는 어두운 계열의 옷도 많다.

 

스노보드는 1998년 나가노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무척 빠른 성장세다. 수많은 종목이 올림픽 종목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 우리는 별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올림픽이 스노보드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젊은 스포츠니까.

 

스노보드가 이른바 ‘귀족 스포츠’라는 비판은 어떤가? 스노보딩이 비용이 적게 드는 스포츠는 아니다. 그리고 일단 산으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스노보딩은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사람들이 거금을 주고 새 휴대전화를 사듯, 스노보딩에도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 종일 휴대전화만 보면서 살 순 없지 않나? 산 위에서 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매년 1백 일 이상 라이딩을 한다고 들었다. 스노보딩의 어떤 부분이 가장 즐겁나? 숲 속에서 타는 걸 좋아한다. 거기엔 입자가 고운 눈이 있고, 바람소리도 안 들릴 만큼 아주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