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걸

이윤정을 좋아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삐삐밴드로, 솔로가수로, 아티스트 듀오 EE로 활동하는 내내 관심을 뒀고 빼놓지 않았으며 꽤 근접한 적도 있으나 그때마다 ‘나랑은 너무 다르다’는 것만 확인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열린 결말이 아니어서 이윤정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이유가 거진 20년 만에 자명해졌다. 그녀는 펑크다. 한 아이의 엄마지만, 아직 ‘걸’이라고 부르고 싶은 여자다.

귀고리는 제이미 앤 벨. 

귀고리는 제이미 앤 벨.

 

 

 

 

 

드레스와 귀고리는 제이미 앤 벨, 반지와 팔찌는 먼데이 에디션. 하이힐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드레스와 귀고리는 제이미 앤 벨, 반지와 팔찌는 먼데이 에디션. 하이힐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세 번째 뵙네요. 진짜요? 우리 인터뷰했어요? 

팬미팅이요. 한 번은 맥도날드, 또 한 번은 생일파티. 96년이요. 정말? 근데 절 이렇게 막 다룬 거예요?

그래서 사진 찍다가 몇 번 ‘누나’라고 부를 뻔 했어요. 하하. 그렇게 불러도 돼요. 너는 그동안 뭐 했니? 장가는 갔니? 바로 반말해. 하하. 

이윤정 씨는 하나도 안 늙은 것 같은데, 저는 이윤정 씨가 ‘나쁜 영화’에서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던 “아저씨”가 됐죠. 그 아저씨는 늙은 아저씨 말고, 아저씨 짓을 하는 아저씨잖아요. 

나이 들면 목소리도 낮아진다는데, 똑같은 것 같고요. 오늘 목소리 화장을 잘했네. 하하. 

머리 사진도 찍어 보내면서, 이렇게 가도 되겠냐고 물었잖아요. 도대체 이런 머리의 ‘레퍼런스’는 뭔가요. 우리 애기 머리를 맨날 이렇게 잘라요. 옆을 하얗게 밀지만 않았지 평소의 저도 비슷하고요. 앞머리는 커트, 뒷머리는 길게. 머리 관리하기 편해서 한번 해봤어요. 시어머니가 보더니 “아무나 안 어울리는 머리 했네” 하시더라고요. 하하. 

지금까지 해본 머리 색깔을 꼽을 수 있어요? 안 해본 게 뭔지 물어야지. 다 해봤죠 뭐. 영국이건 미국이건, 전 가면 항상 미용 재료 숍에 들렀거든요. 

안 해본 스타일은 뭔데요? 아나운서 스타일? 하하. 

자기는 신나서 해도 다른 사람 스타일링하는 건 또 달랐죠? 스타일리스트를 하려고 맘먹었던 게 아니라 양현석 씨가 스위티 데뷔 때 스타일링을 부탁하면서 우연찮게 시작했어요. YG 일할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뒤가 힘들었죠. 네일 했다고 코 파 달라는 애, 생리대 갈아달라는 애. 진짜 심각했어요. 내가 너무 세니까 이기고 싶어 했죠. 

센 걸로는 어디서도 안 지지 않았어요? 겉모습이 세서 편견을 갖고 봐서 그렇지, 전혀 그런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냥 동네 누나. 

‘딸기’의 무대를 보면서 누가 그렇게 생각했겠어요. ‘딸기’는 현준 오빠가 과일을 여자에 빗대서 쓴 가사예요. 자기가 직접 못하니까 날 시켰고요. 그래서 내가 막 화내면서 부르잖아요. 하하. 

정작 평생 딸기 좋아하냐는 질문을 듣고 사는 건 이윤정이고요. 엄청 욕먹었죠. “딸기를 처박아서 죽이고 싶다”, “내가 딸기밭에서 죽여줄게”. 

신경 쓰진 않았고요? 어렸으니까 상처는 좀 받았지만, 전 누가 싫다 그러면 피하는 게 아니라 같이 노려봤어요. 펑크 밴드는 그래야 할 것 같았고. 

음악도 일단 지르고 본 건가요? 오빠들이 삐삐밴드라는 이름을 정해놓고 몇 명 연습을 시켰다고 들었어요. 저보다 노래도 잘하고 예쁜 애들. 근데 좀만 혼내면 울고, 가버리고 그랬대요. 그때 전 압구정의 한 바에서 디제이 하고 있었거든요. 빡빡머리 하고 노래 트는 애가 있단 얘길 듣고 찾아왔더라고요. 오빠들이 노래 한번 해보래서 막 질렀더니 웃으면서 같이 하자더라고요. 

‘삑사리’나는 고음이 콘셉트가 아니었던 거죠? 오토튠도 있었고 이어 붙일 수도 있었어요. 근데 오빠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서 그중 좋은 것 딱 하나만 썼어요. 펑크는 그러면 안 된다고요. 삑사리가 나든, 반음이 낮든. 오히려 전 다시 해서 더 잘하고 싶었지만, 하나도 안 틀릴 수는 없더라고요.

유튜브에 그때 음악 방송에서 인터뷰한 게 있던데, 혹시 봤어요? 봤어요. 진짜 약 먹은 애 같더라고요.

펑크록이 뭐냐고 물으니까 “내가 펑크록이에요” 대답하죠. 하하. (크라잉 넛의) 경록 씨가 들었으면 좀 열 받았으려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문득 핵심을 이야기하는 듯한 순간이랄까요. 오빠들이 항상 펑크에 대해 이야기해줬어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항하는 젊은이의 음악이고, 너는 그들의 대변자가 되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원래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빠에 대한 반항이 사회에 대한 반항이라고 믿었거든요. 아빠가 정치인이었으니까. 

연예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는 있는데, 연예인이라는 말에 담긴 허세가 있잖아요, 그걸 싫어했어요. 그런 것도 오빠들에게서 받은 영향이 커요. 넌 연예인이 아니야, 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참 구분해서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처럼 굴었어요. 우리는 음악을 좋아하고 그걸 표현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왜 오빠들 그늘 바깥으로 나간 거예요? 전 전자음악을 좋아했고, 오빠들은 밴드를 했잖아요. 삐삐밴드 활동이 저를 못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고,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1집 <진화>가 나왔는데, 좀 멀리 나간 앨범이었죠. 대중이 좋아하는 걸 만들려는 노력을 전혀 안 했으니까요. 좀 심할 정도로 이기적이었죠. 

그럼 2집 <육감>에선 왜 방향이 바뀌나요? 프로듀서 윤일상은 이윤정의 선택이었나요? 레코드 사와 계약하고 그 계약금으로 영국 유학을 갔어요. 한참 공부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죠. 계약기간 다 됐으니까 한국 와서 앨범 내라고요. 그래서 제가 6월 4일에 왔거든요? 근데 첫 방송이 6월 24일에 잡혀 있었어요. 열두 곡이 준비돼 있었고요. 계약서에 묶여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때 큰코 다치고 일만 했죠. 그러다가 오랜만에 하우스룰즈 피처링하면서 무대에 오르니까 또 하고 싶어졌고요. 

결혼이랑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결혼을 했어요. 저한테는 나랑 제일 죽 잘 맞는 친구랑 같이 가자는 약속을 하는 게 결혼이었어요. 그래서 결혼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데, 막상 하니까 다르긴 하더라고요. 하하. 

함께 아티스트 듀오 EE로 활동하는 남편 이현준 씨는 뭐든 현실화를 잘하는 사람인가요? 그런 호흡이 좋은 동료처럼 말하던데. 소리를 미술같이 다루죠. 뮤지션이 들으면 웃을 아이디어를 내놔요. 그게 참 재밌는데 듣기엔 힘든 부분이 있죠. 하지만 전 항상 그 부분을 가지고 가고 싶고요. 

함께 작업하면서 사랑이 끈끈해진 건가요? 그래서 미워지기도 해요. 애증이죠, 애증. 흐흐. 그때까지 만난 사람들은 저한테 특이하다, 세다는 말만 했어요. 근데 남편은 제가 너무 평범하다고 해요. 아까도 나오면서 나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눈썹만 연결하면 더 괜찮을 것 같다는 거예요. 하하.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는 와중에 삐삐밴드 재결성을 발표했어요. EE는 SXSW 참가 때문에 다음 달에 미국에 가요. 생업인 스타일링도 놓을 수 없고요. 오빠들이랑 일정 맞추기가 만만치 않아요. 

새로운 노래를 작업하는 거예요? 주변에서는 리메이크가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20년 동안 각자 한 게 얼마나 많고 좋아한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러나 싶었어요. 셋 다 듣기 좋고, 셋 다 하고 싶은 걸 하자고요. 벌써 몇 곡 녹음했어요. 갔다 와서 미니 앨범 내고, 올해 안에 풀 앨범도 내려고요. 

“나는 내가 너무 아까워, 많이 써먹어야지”라고 말하는 걸 몇 번인가 봤는데, 잘 써먹고 있네요. 미니홈피에 써놓은 말이었죠. 누구나 그렇잖아요? 

하지만 애 낳으면 끝이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저도 그 끝자락에 매달려있어요. 하지만 그 끈마저 놓으면 정말 끝날 것 같아요. 아득바득 살고 있죠.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사는 게 중요할 것 같고요. 

어떻게 보이는 게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데 더 신경 써오지 않았나요? 그렇죠. 안 아픈 척, 안 힘든 척, 돈 없지 않은 척, 돈 있지도 않은 척. 하하. 

엄밀히 말하면 그게 또 ‘척’은 아니잖아요. 마음가짐이지. 라도 되겠지, 하면서 닥친 걸 했죠. 

펑크네요. 뭐 죽진 않으니까.

 

이윤정이 이 화보의 스타일링과 헤어, 메이크업을 담당했다. 해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하지 않았다. 펑크는 스스로 다 하겠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이윤정이 이 화보의 스타일링과 헤어, 메이크업을 담당했다. 

해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하지 않았다. 펑크는 스스로 다 하겠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SHARE
[GQ KOREA 피처 에디터] 책, 음반, IT를 담당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