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는 무엇으로 사는가?

골키퍼는 경기에서 잘 안 보인다. 슛을 막을 때만 번쩍 눈에 띈다. 과연 어떤 골키퍼가 좋은 선수인가?

골키퍼는 경기에서 잘 안 보인다. 슛을 막을 때만 번쩍 눈에 띈다. 과연 어떤 골키퍼가 좋은 선수인가? 2002 한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대표팀 골키퍼 코치였던 김현태 코치(현 FC 서울 스카우트 팀장)에게 물었다.

 

 

아시안컵을 통해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골키퍼 김진현이 주전 자리를 꿰찼어요. 대회를 통틀어 2실점밖에 하지 않았죠.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정성룡과 김승규, 그리고 김진현을 비교한다면요? 김진현 선수는 2010년만 해도 좀 불안했어요. 오사카에 직접 경기를 보러 갔었거든요. 잘 하는 장면도 많았지만 뭐랄까, 좀 덤벙거리기도 했죠. 최근 대표팀에 뽑힌 이후에도 연습 게임에선 실수를 좀 했는데 어쨌든 슈틸리케 감독이 계속 경기에 기용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자신감이 많이 붙은 것 같아요. 반면 정성룡 선수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국민의 질타를 많이 받았죠. 그러다 보니 심리적으로 좀 위축된게 아닌가 싶어요. 셋 다 장점이 있는 선수들이에요. 캐칭 기술은 셋 다 나쁘지 않아요. 김진현은 순간적으로 나와서 블로킹하는 능력이 좋아요. 공을 잡고 멀리 정확히 던질 줄 알아서 역습할 때 위력적이기도 하고요. 김승규는 예측이 빨라요. 몸도 민첩하고. 반면 간혹 판단 미스를 할 때가 있어요. 정성룡은 안정적이에요. 지금 같은 경쟁체제가 딱 좋은 것 같아요. 세 선수 외에 K리그에도 좋은 골키퍼가 많고요. 전북의 권순태, 포항의 신화용, FC 서울의 김용대…. 

 

K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신화용과 권순태를 대표팀에 뽑지 않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어요. 신화용의 경기당 실점률은 0.94, 권순태는 무려 0.56 이었죠. 그런데 실점률이란 팀의 수비력과도 꽤 연관이 있는 지표예요. 실점률이 골키퍼를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나요? 예전에는 골키퍼는 골만 잘 막으면 됐어요. 이제는 활동범위가 상당히 넓어요. 최종 수비수 역할도 해야 하고, 킥도 잘 차야 되고. 수비 라인부터 공격 빌드업을 할 때 정확한 패스를 줘야 실점할 확률도 적어요. 예전엔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이서 플레이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골키퍼는 별도로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이제 필드 플레이어들과 호흡이 잘 안 맞는 골키퍼는 좋은 골키퍼라 볼 수 없어요. 

 

그렇다면 선방률은 어떤가요? 유효 슈팅을 얼마나 막아냈느냐에 대한 지표죠. 사실 유효 슈팅이 전부 위력적인 슛이었다고 볼 순 없잖아요. 슛 10개가 날아왔는데 다 정면으로 와서 잡았어. 그러면 선방으로 보면 안되죠. 골과 비슷한 슛을 막는게 중요한거지. 예를 들어 세 골을 먹었어도 위력적인 슛이 10개나 날아왔다면 그 골키퍼는 잘하는거예요. 

 

그렇다면 골키퍼는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보나요? 첫째는 안정감이에요. 어떤 골키퍼의 기량이 80점이라면 그 80점을 꾸준히 갖고 가는 골키퍼가 좋은 골키퍼예요. 어떤 날은 80, 어떤 날은 120, 어떤 날은 40 이러면 안 돼요. 꾸준한게 최우선이에요. 

 

90과 70을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80을 유지하는게 평균은 같아도 더 나은 골키퍼란 말인가요? 그렇죠. 그리고 일단 몇 경기 본다고 해서 코치나 감독들이 그 골키퍼의 모든 부분을 파악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일단은 안전하게 공을 잡느냐, 즉 캐칭력을 가장 우선으로 봐요. 개인적으로는 빠른 골키퍼를 선호해요. 크고 빠르면 제일 좋지만, 키가 그렇게 클 필요는 없다고 봐요.

 

키 작은 골키퍼들은 공중볼에 다소 약점이 있지 않나요? 작아도 민첩하면 상관없어요. 카시아스도 183밖에 안 되는데요 뭐. 데헤아처럼 190이 넘어도 빠르면 제일 좋죠. 나도 180인데 골키퍼 했어요.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범위예요. 

골키퍼를 두 부류로 크게 나누자면 반사 신경이 좋은 골키퍼와 위치 선정이 뛰어난 골키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전문가가 아닌 시청자나 관중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반사 신경이 좋은 골키퍼를 높게 평가하게 돼요. 애초에 위치 선정이 좋아서 슛을 쉽게 막아내는 골키퍼는 사실 경기 중에 잘 눈에 띄지 않죠.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좀 그래요. 비전문가들의 눈에 안 보이는 부분이 많죠. 순간적으로 예측을 하고 자리를 잘 잡는 골키퍼 들이 있어요. 그러면 몸을 날릴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공의 위치, 선수의 자세까지 보거든요. 공이 날아올 때 어떤 발이 먼저 나가느냐 등등. 

정성룡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진했지만 다시 대표 팀에 발탁됐어요. 잘 보이지 않는 장점이 있는 선수라 말할 수 있나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은 가끔 에러가 결정적일 때 나오니까. 아까 80을 계속 유지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죠? 항상 똑같이 가야 돼요. 정성룡은 성실한 선수예요. 나태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여론이 안 좋으니 흔들리는 것 같아요. 

국내용, 국제용 같은 말은 어떤가요? 골키퍼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그런 건 없어요. 소속팀에서 잘해야 대표팀에서도 잘하는 거죠. 국제용이란 결국 K리그에서 잘하던 걸 대표팀에서도 똑같이 잘하는 선수. 그뿐인 거예요. 단, 대표팀에선 소속팀만큼 출전 기회를 많이 보장해줄 수가 없잖아요. 좀 시간을 두고 기다려줘야 되는 선수들이 있지만, 대표팀에선 사실 그게 어렵죠.

하지만 K리그나 아시안컵에서 날아오는 슛과 월드 컵에서 날아오는 슛의 강도나 예리함은 완전히 다를 텐데요. 그래서 실전같이 훈련을 해요. 강한 슛을 막는 훈련을 위해 스트라이커를 골키퍼 훈련에 데려온다든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갔을 때도 매일 적응 훈련을 했어요. 춥고 고지대인 데다 땅은 미끄럽고…. 훈련을 통해서 환경을 자꾸 인지시켜야 경기에서 몸이 반응해요. 

그동안 대표팀에선 큰 대회 직전, 또는 대회 중에 신데렐라 같은 골키퍼가 많이 등장했어요. 94년 미국 월드컵에선 최인영이 경기 중에 교체되고 이운재가 들어왔고, 1998년엔 김병지가 영웅이 됐죠. 2002년엔 이운재가 김병지를 제치고 주전으로 낙점됐어요. 2010년엔 정성룡이 이운재와의 경쟁에서 승리했고요. 2014년 역시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전에 출전한 김승규가 각광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번 아시안컵에선 김진현이 등장했죠. 성적이 좋았으면 바꿀 이유가 없죠.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2002년, 2010년 월드컵 이후엔 이운재와 정성룡이 다음 월드컵까지 꾸준히 주전 자리를 차지했잖아요. 제가 코치였던 2002년 월드컵 당시엔 완전히 제로베이스에서 봤어요. 이운재를 선택한 이유는, 월드컵 전에 경기를 치르고 며칠 쉬다 왔을 때 병지가 컨디션이 좀 떨어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운재는 자기 컨디션을 계속 유지했고요. 2010년엔 운재가 경험은 풍부 하지만 몸이 많이 불어 있었어요. 그래서 결국 정성룡으로 바꾼거죠. 

결국 골키퍼에게 가장 중요한 건 컨디션을 유지하는 일인가요? 달리 말하면 꾸준히 80점의 역량을 보여 주는 것. 공격수는 부진하면 교체하면 되지만, 골키퍼는 그렇게 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그렇죠. 2002년에도 그전까진 팽팽했어요. 월드컵 열흘 남겨 두고서야 조정해야겠다고 생각한 거고요. 

전술이나 포메이션에 따라 선호하는 골키퍼가 달라 질 수도 있나요? 크게 상관없어요. 물론 골키퍼는 기본적으로 수비를 리드할 수 있어야 해요. 말이 없으면 안 되겠죠. “나가!” “벌려!” 같이 계속 수비수들한테 얘기를 해줘야 돼요. 수비수들은 뒷걸음질을 치는 상황이라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할 수 있어요. 운재가 그런 걸 잘해요. 

이운재는 한 인터뷰에서 “키보다 목소리가 커야 한다”고 말했죠. 소리 질러서 상대편이 슛을 못 쏘게 막을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골키퍼가 뭐겠어요. 슛 안 주고 골 안 먹는 게 잘하는 거죠.

“스트라이커는 타고나는 것이다”라고 말하곤 해요. 골키퍼는 어떤가요? 순간적인 센스가 있어야 돼요. 골키퍼는 누구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면 이미 늦어요. 감각적으로 탁탁 몸이 잘 뜨는 선수들이 있어요. 기술은 코치들이 훈련시킬 수 있지만, 그런 건 가르칠 수가 없죠. 어떤 면에선 그걸 판단력이라 말할 수도 있어요. 스트라이커가 판단 미스를 하는 거랑, 골키퍼가 판단 미스를 하는 거랑 어느 쪽이 더 치명적이겠어요? 

골키퍼는 장수하는 포지션이에요. 김병지는 올해 마흔여섯인데도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죠. 민첩성이 중요한 포지션인데, 선수의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걸 감수할 만큼 경험이 쌓이며 좋아지는 부분이 있는 건가요? 그렇다기보다 골키퍼는 근력만 안 떨어지면 돼요. 경기당 10킬로미터씩 뛰고 그런 게 아니잖아요. 골키퍼의 역할은 무산소 운동에 가까워요. 순간적으로 속도를 폭발적으로 팍 내는 것. 그런 능력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면 유지할 수 있어요. 

TV로는 골키퍼의 움직임을 보기 어렵지만,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골키퍼의 어떤 점을 유심히 보라고 권하고 싶나요? 공이 없을 때의 움직임이요. 골키퍼는 90분 동안 공에서 눈을 떼면 안 돼요. 공을 보면서 계속 경기에 참여해야죠. 예를들어 공이 상대 골문 앞까지 가 있는데 골키퍼가 자기편 페널티박스 안에 가만히 있는 건 멍청한 거죠. 앞으로 나와야지. 그런 걸 보면 골키퍼가 집중하는지, 딴짓을 하는지가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