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유전자, 아식스 젤

아식스의 디자이너 미츠이 시게유키는 25년 전 젤라이트 때문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젤라이트가 25년 만에 다시 나왔어요. 25년 전에 당신은 뭘 하고 있었나요? 해외를 대상으로 한 아식스 운동화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었어요. 젤라이트 Ⅲ가 막 태어난 때라 해외 이곳저곳으로 출장을 자주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한국도 그때 처음 가봤어요.

25년 전의 한국엔 무슨 일로 방문했었죠? 당시 한국에 아식스의 운동화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었어요. 현장 방문차 들렀는데, 매운 걸 잔뜩 먹고 급성 위장염으로 입원했어요.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한국 공장의 식당 아주머니께서 아픈 저를 위해 특별히 죽을 쑤어 주셨는데, 그걸 먹고 정말 씻은듯이 나았어요. 그리고 곧장 디스코장으로 달려가 밤새 놀았죠.

지금 젤라이트를 신는 사람들은 대부분 젤라이트를 처음 경험할 거예요. 그런 사람들에게 과거의 젤라이트에 대해 설명한다면요? 당시 일본은 여러 분야의 응용과학이 유행처럼 발전하던 시기였어요. 아식스도 이런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운동화를 만들고 있었죠. 완성도가 뛰어난 운동화들이었지만 아무래도 좀 재미가 없었어요.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식스는 그저 ‘아, 꼼꼼한 일본인들이 만든 신발’ 정도로 알려졌죠. 그래서 좀 경쾌하고 젊은 신발을 만들기로 했어요. 제가 본격적으로 디자인에 참여한 건 젤라이트 Ⅲ때부터였는데, 젤이 가진 통통 튀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했어요. 그렇게 아식스의 기술력에 감각을 더해 태어난 게 젤라이트 Ⅲ예요. 바로 반응이 왔죠. 

당시 젤라이트 Ⅲ는 어떤 기술로 특허를 받았나요? 젤에 대한 특허는 이미 취득이 끝난 상황이었고, 젤라이트 Ⅲ부터는 신발 혀 부분에 대한 특허에 집중했어요. 젤라이트 Ⅲ의 갈라진 혀는 지금까지 상징으로 남았죠.

운동화 혀를 두 갈래로 나눌 생각은 어떻게 처음 하게 됐어요? 인간의 다리 구조상, 빨리 걷거나 달리면 혀가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이게 달리기에 매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냥 과감히 쪼갰어요. 무엇보다, 지금도 신발을 신을 때마다 일일이 허리를 굽히는 게 번거롭지 않나요? 저는 매일 아침 생각했던 것 같아요.

좋은 운동화의 여러 요소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뭐예요? 아무래도 신발의 형태, 즉 라스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일본 디자인의 강점은 탄탄한 기본기인데, 신발의 형태는 가장 기본적인 골격과도 같은 거잖아요. 이것이 결국 신발의 착화감으로 이어지죠.

실제로 발을 단단하게 감싸준다는 게 젤라이트 Ⅲ의 첫인상이었어요. 의도가 제대로 전달된 것 같은데요? 일본엔 착화감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장인들이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완벽한 피팅은 다음의 세 단계예요. 첫 번째는 ‘적합’, 신발에 발을 넣은 상태에서 얼마만큼 잘 맞는지를 말하는 단계. 두 번째는 ‘적응’이에요. 이리저리 움직여도 여전히 발에 착 감기는지의 단계죠. 마지막으로, 착용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운동화가 변화해가는 단계를 ‘순응’이라고 해요. 젤라이트는 오래전부터 철저하게 이 세 가지 원칙을 준수해왔어요.

 젤라이트를 과거에서 온 신발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영화 <쥬라기 공원>에 비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오리지널 젤라이트의 화석에서 DNA를 채취한 후, 그걸 다시 21세기의 운동화에 배양한 셈이죠. 그래서 예전 모습 그대로 다시 태어난 종류도 있지만 젤라이트 EVO 같은 전혀 다른 차원의 시리즈도 존재해요. 그리고 현재 젤라이트는 많은 신예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모델을 출시하고 있어요. 그렇게 다시 태어난 운동화를 온전히 과거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디자인을 할 때, 과거와 미래 중 어느 쪽에 더 역점을 두고 있나요? 저는 어떤 물건을 시간의 축에서 살피는 걸 좋아해요. 과거에서 현재까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피면 필요, 불필요에 대한 관점이 생기거든요. 그러고 나서 불필요한 것들을 철저하게 배제하죠. 인습 같은 것들이요. 그런 상태에서 디자인을 시작하죠. 말하고 보니 이런 과정이 다 미래를 위한 것 같네요. 하하. 저는 미래를 지향하는 편인 것 같은데요?

아식스의 유산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뭔가요? 오니츠카 타이거의 DNA요. 아식스의 많은 부분이 오니츠카의 정통성에 기대고 있죠.

젤라이트 Ⅲ와 Ⅴ 외에 또 어떤 젤라이트를 만들고 싶어요? ‘GEL NOT LYTE’ 같은 엉뚱한 것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런 건 어때요? ‘GEL LYTE K’, K는 KOREA에서 땄어요. 전체적으로 약간 붉은 기운이 도는 오렌지 컬러에 끈은 흰색, 빨간색, 파란색으로 만드는 거예요. 엄청나게 강렬하고 개성 있는 모델이 될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수많은 젤라이트가 태어났어요. 그중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모델과 배색을 뽑는다면요? 아무래도 처음 디자인한 젤라이트 Ⅲ겠죠. 그중에서도 첫 번째 컬러링이 가장 애착이 가네요. 이 운동화에 관한 일화가 있는데, 당시 90년대의 색견본첩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색상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직접 켄트지에 물감을 풀어 원하는 색상을 만들었어요.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모델이라 그런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젤라이트 하면 아무래도 젤리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혹시 젤라이트의 젤을 먹어본 적이…. 공감하지만 절대 먹으면 안 돼요. 진심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