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의 모든 것

붉은 머리, 주근깨, 이튼 스쿨 출신, 스티븐 호킹으로 분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 이걸로 에디 레드메인을 다 알 수 있을까?

의상은 모두 구찌.
의상은 모두 디올 옴므.

에디 레드메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금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를 알아보는 호기심 어린 시선은 금방 잦아들었다. 웨스트 할리우드 의 선셋 타워 호텔은 그에게 고향처럼 편한 곳. “로스앤젤레스에 처음 왔 을 땐 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이제 이곳 사람들은 절 주민처럼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여기에 자주 오게 돼요.” 그는 지나가는 웨이터에 게 미소를 보냈다. 런던 출신 배우의 환한 미소를 보는 순간, 배우를 인터 뷰하기 위한 업무적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스물두 살부터 휠체어에서 생활하게 된 유명한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에 대 한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호킹을 연기하는 것은 마치 사자와 싸우는 것 같았어요. 모든 부분을 감독인 제 임스 마시와 상의했죠. 오스카상을 수상한 그의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 어>를 아주 인상 깊게 봤었어요. 제임스는 제가 ‘신체적’인 연기를 할 줄 아는지 몰랐대요. 하지만 전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늘 도전이 가능한 역 할에 관심도 많았고요.” 서른두 살, 그의 열정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평론가들의 호평을 끌어냈다. 평론가들 은 그를 <나의 왼발>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와 비교했고, 포커스 피처스 의 프로듀서들은 일찌감치 오스카상을 확신했다.

지난 2월 열린 오스카 시상식에서 레드메인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만약 수상을 못했더라도, 그의 경력은 이미 풍성하다. 연극 무대에서 단단 한 배경을 다졌고(<십이야>, 에드워드 알비의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 독립영화에선 다양한 연기를 보여줬으며, 브로드웨이에서도 성공 적으로 데뷔했다.(<레드>에서 마크 로스코(알프레드 몰리나 역)의 어시스 턴트 역을 맡았고, 이 작품은 토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방 영한 8부작 드라마 <대지의 기둥>도 큰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이력에서 부 족한 것이 있다면 블록버스터급 영화였는데, 4억 3천3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레 미제라블>에서 마리우스 역을 맡으며 그 빈칸마저 채웠다. 그리 고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돋보이는 게 하나 더 있다. 여자 파트너들의 화려 한 이름이다. 줄리안 무어, 케이트 블란쳇, 크리스틴 스튜어트, 스칼렛 요한 슨, 미셸 윌리엄스, 안젤리나 졸리….

흰색, 빨간색, 파란색이 섞인 플레이드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그는 여 유롭게 앉아 우아한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차분하고 믿음직한 남 자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지난 2007년, 파크 시티의 메인 스트리트 에서 열린 선댄스 행사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두 편의 영화로 그 자리에 참석했는데, 한 편은 줄리안 무어와 호흡을 맞춘 <세비지 그레이 스>(자기애가 강한 제트족 가문의 후계자 역을 맡았다)이고, 다른 한 편 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호흡을 맞춘 <노란 손수건>이었다. 그날은 눈 이 내렸고, 행사장에서 만난 스튜어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에디 레드 메인, 이 사람 꼭 기억해요. 곧 엄청 유명해질 거니까요.” 10대처럼 섬세한 이목구비, 빨간 머리와 금색 주근깨, 밝은 눈동자와 그린 듯한 입술. 첫인 상부터 매력적이었던 레드메인은 소개가 끝나자 눈인사를 건넸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영화에 대해 “절벽에서 뛰어내리기”라는 표현을 썼다. 실제 자신의 모습과 거리가 먼 반항적이고 복잡한 성격을 가진 역할에 매료 됐다고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코트는 구찌, 셔츠는 필립 플레인.

에디 레드메인은 퍼시 셸리, 조지 오웰, 이안 플레밍의 학교로도 유명한 영국의 명문 이튼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윌리엄 왕자와도 동창이다. 이튼 졸업 후엔 케임브리지에서 예술사를 전공했다. 그는 지난 2월에 개 봉한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SF영화 <주피터 어센딩>에 출연했다. “워쇼 스키 남매는 독특하고 놀라운 상상력을 가졌어요. 당신을 다른 차원으 로 데려가죠. 라나 워쇼스키는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천재적인 예술가 예요. 그녀를 위해 전 <대니쉬 걸>에서 트랜스젠더인 에이너 웨거너 역을 맡기로 했어요.” 레드메인이 앞으로 몇 달간 촬영하게 될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인 트랜스젠더 화가 에이너 웨거너와 그의 부인 젤다에 대한 이야기 다. “독특한 사랑 영화예요. 에이너는 여자처럼 옷을 입기 시작하더니 결 국 성전환 수술을 하고, 릴리 알베라는 이름의 여자가 되죠.” 레드메인은 다른 세계를 접하는 것을 즐긴다. 런던 출신이지만 여전히 로스앤젤레스 를 사랑한다. “제이미 도넌(<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그레이), 앤드류 가필드(<어메이징 스파이더맨>)와 함께 10여 년 전에 여기 처음 왔을 때, 우린 외계인 같았어요. 아는 사람도 없었고, 집세를 내기도 어려웠고요. 같이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친해졌죠. 런던과는 다른 느낌으로 이곳을 사랑하게 됐어요. 이 도시는 모든 걸 완벽하게 드러내는 법이 없네요.”

로스엔젤레스와는 다르게 레드메인은 우정과 사랑, 우아함에 대한 모든 것을 드러내는 편이다. 특히 부인 한나 베그쇼위에 대해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열다섯 살부터 알고 지냈고, 결혼하기까지 15년이 걸렸 어요. 한나는 정말 특별한 여자예요. 그녀가 저의 청혼을 승낙한 건 엄청 난 일이라니까요.” 그리고 더 깊은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그 에게 우아함에 대해 물었다. “우아함은 포장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 냥 타고나는 거죠.” 그는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랄프 파인스를 꼽았 다. “랄프는 놀라울 정도로 ‘시크’해요. 언제나 품위 있고, 말하기 전에 생 각을 하죠. 그리고 제 롤모델은 아버지예요. 꾸밈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항상 완벽한 스타일을 유지하세요.” 우아한 여성으로는 크리스틴 스콧 토 머스와 마리옹 코티아르, 어머니, 부인 한나를 꼽았다. 그러는 사이 두 시 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우린 타르타르와 닭 요리를 먹었고, 에디는 식사 후 배웅도 잊지 않았다. 우리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동안, 지나가던 금 발의 여인이 에디를 알아보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연극 <레드>에 서 그를 봤다고 말했다. “제가 장담하는데, 당신은 무대로 돌아가야 해요. 무대 위에서 진짜 최고였잖아요.” 에디는 살짝 부끄러워하면서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했고, 들고 있던 책을 꼭 쥐며 눈빛을 보냈다. “제가 이제 책 을 읽으러 가봐야 해서….” 이번 인터뷰는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 계 산서가 테이블에서 마법처럼 사라졌다는 것.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인터뷰 를 했고, 레드메인은 저녁을 산 두 번째 배우다.(첫 번째 배우는 다이안 키튼.) 이 또한 우아함일까?

 

의상은 모두 발렌티노.
의상은 모두 알렉산더 맥퀸, 신발은 처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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