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의 창시자

나이키 에어맥스를 만든 두 남자를 포틀랜드에서 만났다.

 

[팅커 햇필드]

 

포틀랜드에서 자랐나? 근처에서 태어났다. 1952년, 오레곤 힐스브로. 그리고 오레곤 대학을 다녔다. 육상선수인 동시에 건축을 배웠다. 내 육상 코치가 빌 바우어만이었다. 나이키를 만든 그 사람. 

 

빌 바우어만이 나이키에서 일하자고 제안한 건가? 장대높이뛰기 세미 프로로 활동했지만, 그게 내 미래에 큰 성공을 가져다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건축 회사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같은 시기에 바우어만을 위해 신발 테스터 역할을 맡기도 했고.

 

나이키에서는 건축가로 일을 시작했나? 맞다. 1981년. 난 가끔 건축 디자인을 하면서 좀 이상한 도전을 했다. 기존 매장이나 이벤트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깨는 실험적인 디자인.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창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알려지면서 신발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고.

 

신발을 만들 때도 그런 저돌적인 방식을 고수했나?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과, 실제로 팔리는 물건을 디자인하는 일은 꽤 다를 텐데. 그래서 맨날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에어맥스나 에어조던의 새 시리즈를 내놓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게 뭔가 싶었을 테니까. 하하.

 

건축을 배운 것이 신발을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오레곤 대학 건축학과가 강조하는 요소들이 있다. 사회적 관습에서 비롯된,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이해하는 것. 디자이너가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에 대해 고민한다면, 그 다른 어떤 것도 충분히 디자인할 수 있다. 그게 건물이든, 신발이든.

 

신발을 만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뭔가? 신발의 성능. 계속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하니 별의별 것들에서 영감을 얻는다. 에어맥스는 파리 퐁피두 센터의 영향을 받았다. 퐁피두 센터는 안과 밖이 뒤집힌 건물이다. 냉난방 배관,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등 일반적으로 내부에 숨어 있는 건물의 요소들을 밖에서도 볼 수 있다. 그걸 보니 그때 개발 중이던 에어를 중창의 규격만큼 더 넓고 크게 만들어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에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신발에 창문을 내는 것처럼.

 

오늘 공개된 에어맥스 제로는 언제 디자인한 건가? 퐁피두 센터를 보고 와서 한 것이다. 그래서 옆에서 에어를 볼 수 있다. 발 지지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정말 다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중창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했다. 그리고 갑피 부분도 기존 신발들에 비해 발에 훨씬 꼭 맞게 디자인했다. 4~5개를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그렸는데, 이게 그중 첫 번째다.

 

그런데 왜 지금인가? 당시 회의에서 반응이 좋긴 했지만, 고민이 있었다. 신발 한 켤레에 한꺼번에 몇 개의 새 기능을 추가해도 되는 건지. 너무 멀리 가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래서 갑피 쪽의 변화는 미뤄두고 중창과 보이는 에어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마지막 회의 후에 좀 더 일반적인 모양의 갑피를 그렸다. 그게 바로 에어맥스 1이다.

 

80~90년대 출시된 에어맥스의 ‘레트로’ 모델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기술이 집약된 신발보다 더. 브랜드가 성장하며 소비자들은 자기 방식의 취향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런던의 젊은 친구들은 헐리를 러닝화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스트리트 슈즈로 받아들였다.

 

지난 20년간 전반적인 운동화 시장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전반적으로 레트로 제품들이 강세다. 하지만 레트로 제품들 역시 당대 최고의 혁신이었고, 시간이 지나며 라이프스타일 제품군으로 재발매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소재와 공법을 이용해 또 다른 시대를 열어젖히려 한다.

 

무엇보다 숨어 있던 에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놀라운 변화는 줄어들었다는 인상이다. 우리가 원하는 변화 또한 그렇게 보자마자 “우와!”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제품을 매해 출시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프로토 타입을 매일 만들고 있다. 그것을 대량생산해 적정가에 공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올해가 에어맥스가 나온 지 28주년이 되는 해다. 30년 후의 에어맥스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나? 운동화와 관련된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디자인일 경우 더욱 그렇다. 여전히 사람들은 30년 후에도 새로운 소재와 혁신이 더해진 멋진 복각 모델을 원할 것이다.

 

 

 

그리고, 에어의 비밀병기

[데이브 폴랜드]

 

데이브 폴랜드라는 이름은 팅커 햇필드에 비해 생소할 수도 있다. 나이키가 눈에 보이는 에어를 개발하던 시기에 입사했다. 그리고 에어맥스 1을 위한 에어의 연구 개발을 주도했다. 이후에도 거의 모든 에어맥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지금은 쿠셔닝 이노베이션 디렉터를 맡고 있다. 

 

신발 속의 에어를 보여준다는 발상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 디자이너 한 명이 에어의 접착면을 측면이 아니라 상하부로 가게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우연하지만 매우 중요한 계기를 통해 새로운 실험을 거듭했고, 결국 에어 양 측면의 솔기를 제거한 매끈한 에어를 만들 수 있었다. 덕분에 그 부분을 노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에어는 점점 커졌다. 발밑에 가능한 한 최대의 공기를 넣으려고 했다. 맥스란 말도 그런 공기 양의 최대치를 뜻한다. 특히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출시한 모델을 만들 때 그 부분에 집중했다. 전작에 비해 얼마나 공기의 양이 증가했고, 중창의 에어를 제외한 다른 부분이 줄었는지. 충격을 받았을 때, 다른 부분과 달리 공기는 부서지지 않기 때문이다.

 

제일 만들기 어려웠던 신발은 뭔가? 에어맥스 180. 전작보다 눈에 띄게 에어 부분의 크기를 키우고자 했다. 그래서 처음엔 에어 부분을 밑창과 직접 결합시키려 했는데, 실제 구현이 쉽지 않았다. 그 밖에도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부분이 많았다. 사실 에어맥스를 만드는 매 순간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