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직캠을 한 번 살펴봤더니

2015.03.27유지성

무대를 직접 찍은 영상, 즉 ‘직캠’은 이제 아이돌 팬덤 안에서만 소비되는 게 아니다. 유튜브 전체 조회 수를 기준으로, 1위부터 3위까지의 직캠을 더 가까이서 봤다.

[1위] EXID 하니 ‘위아래’, 2014년 10월 8일 파주 한마음 위문공연

직캠의 절대강자다. 유튜브 직캠 조회 수에서 3월 5일 기준, 1위(약 9백50만 건), 4위, 6위 모두 하니(또는 EXID)의 차지다. ‘직캠’은 몇 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그 영향력을 유튜브 밖으로 끄집어낸 것은 하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게다가 1위 동영상의 조회 수는 2위와도 무려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곧 1천만 건을 돌파할 듯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1위, 4위, 6위의 무대가 전부 방송 현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전까지 걸그룹, 아니 대부분의 가수들에겐 방송이 중요했고, 그 다음이 행사였다. 행사는 고수익을 보장하지만, 행사만 줄곧 나가서는 인기를 꾸준히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미지에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상 때문이다. 그렇지만 EXID는 이 직캠 동영상 하나로 음원 차트에서 몇 달째 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지상파 음악방송 1위 도 했다. 어쩌면 가요계에 큰 패러다임의 변화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씨스타19가 직접 촬영한 ‘Ma Boy’ 안무 연습 동영상을 공개함으로써 짭짤한 재미를 봤던 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 근사한 직캠이 찍힐 만한 무대를 꾸미는 것이 으리으리한 컴백 방송 무대를 기획하는 것 만큼 중요해졌다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4위와 6위를 차지한 EXID의 무대 또한 상징적이다. 4위는 명동에서 열린 게릴라 공연, 6위 역시 홍대 게릴라 공연이다. 게릴라 공연의 특성상 무대는 없고, 길거리에서 공연을 펼친다. 직캠을 찍는 사람은 자리만 잘 잡으면 정말 가까이서 원하는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앞사람 뒤통수가 없는 건 당연하고, 무대와 객석간의 높이 차이도 없다. 4위, 6위 직캠 동영상을 보면 정말 하니가 촬영한 사람의 카메라 바로 앞에서 춤을 춘다. 가끔은 카메라를 보고 눈을 맞추기도 한다. 이 게릴라 공연이 직캠을 의도하고 기획한 것이라 보긴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하니와 EXID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직캠 속의 하니. 사실 ‘위아래’의 안무는 후렴구의 “위, 아래, 위위 아래” 부분을 제외하면 과하게 섹시하다거나 파격적인 부분이 없다. 하지만 (이제 모두가 잘 알다시피) 하니는 그 “위, 아래, 위위 아래”의 동작 단 몇 초를 그야말로 온몸으로 소화해낸다. 눈빛의 방향, 허리의 ‘그루브’, 손가락의 각도…. 그 한 동작으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EXID는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왔다. 1시간짜리 TV 음악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보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방송사는 음악방송을 전부 쪼개 무대별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것조차도 이제 호흡이 긴 것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하니의 ‘위아래’ 직캠은 gif 파일, 이른바 몇 초의 ‘움짤’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 SNS에서는 딱 15초가량의 동영상이 표준에 가깝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게시판의 글에 움직이는 ‘짤방’을 포함시켜도 로딩 시간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인터넷은 빠르다. 즉, EXID와 하니는 지지부진하던 아이돌 신과 음악계를 한 번의 행사, 하나의 직캠, 한순간의 동작으로 평정했다.

[2위] 스텔라 민희 ‘마리오네트’, 2014년 3월 17일 혜천대

스텔라? 마리오네트? 좀 생소할 수도 있다. 지난 연말, 꽤 수위가 높은 걸그룹 뮤직비디오 티저가 나왔다는 소식이 한 차례 뉴스가 된 적이 있다. 스텔라의 ‘마리오네트’에 대한 얘기 였다. 기사 제목은 이런 식이었다. ‘파격 엉덩이 노출’, ‘지나친 노출 경악’, ‘이러다 주요 부위까 지….’ 사실 (꽤 많은 뮤직비디오가 그렇듯) 정작 뮤직비디오 본편이 나오고 나서는 오히려 스텔라에 대한 관심이 다소 사그라진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유튜브에서만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멤버 중 가장 상체의 굴곡을 드러내는 옷을 입는(하의는 모두 몹시 짧으니) 민희의 직캠은 하니에 이어 당당히 2위에 올랐다. 조회수 약 2백50만. 다만, EXID의 직캠 인기는 그들의 음원 차트나 방송 성적과도 이어졌지만 스텔라는 그러지 못했다. EXID의 은근히 허리를 흔드는 안무와 스텔라의 엉덩이를 직접 손으로 잡아 쥐는 안무의 간극, 시원한 브라스가 이끄는 노래와 몽환적 신스 위주인 곡의 온도차, 나름 일관된 콘셉트로 지지층을 다져온 EXID와 청순 콘셉트 실패 이후 급작스럽게 옷을 벗은 스텔라의 행보 차이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을까? 어쨌든 스텔라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리오 네트’로 꽤 많은 무대에 오르고 있는 듯하다. 지상파 방송을 제외하고. 유튜브에서 SBS, MBC, KBS 등 방송사명과 스텔라를 같이 검색해보면 각각 채 반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그런데 직캠과 스텔라를 같이 찾아보면 그렇지 않다. 10여 페이지가 계속 나온다. 2위를 차지한 ‘마리오네트’의 직캠은 1위 하니의 직캠을 찍은 이른바 ‘직캠계의 유명인사’ Pharkil이 촬영했다. 확실히 수위가 세긴 센 뮤직비디오의 여파가 이어졌든, Pharkil의 유명세 덕이든, 하니의 직캠 성공에 따른 반사이익이든, 어쨌든 스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3분이 좀 넘는 이 직캠을 본 사람이라면 일단 민희의 얼굴과 몸짓만큼은 확실히 기억하게 될 테니. 스텔라의 다른 멤버 가영은 ‘마리오네트’ 의 뮤직비디오 선정성 논란이 일었을 때 KBS 2TV <대변인들>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기획사는 크지도 않고 힘도 없다. 그래서 앨범을 한 번 낼 때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19금 판정을 받은 뮤직비디오가 애초에 TV 방송을 노렸다고는 볼 수 없다. 스텔라와 ‘마리오네트’ 가 노린 지점은 결국 웹과 모바일 시장이었을 것이다. ‘마리오네트’ 뮤직비디오 조회수 약 7 백만 건과 더불어 스텔라야말로 유튜브의 최대 수혜자인지도 모른다. 

 

 

[3위] AOA 혜정 ‘짧은 치마’, 2014년 6월 7일 가족 e스포츠 페스티벌

아이돌 그룹엔 대개 한 번의 활동, 한 곡의 노래마다 중점적으로 ‘밀어주는’ 멤버가 있다. ‘짧은 치마’에서는 혜정이었다. AOA 에서 키가 제일 크고, 가장 섹시한 매력으로 어필하는 멤버. ‘짧은 치마’의 의상과 콘셉트 모두 혜정에게 잘 어울렸다. ‘단발머리’에서 초아, ‘사뿐사뿐’에서 지민이 돋보였듯, 팀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설현이 부상으로 한동안 무대에 서지 못한 ‘짧은 치마’ 활동 중엔 확실히 혜정에게 눈길이 모였다. 혜정이 시작부터 누워 있는(이 3위 직캠에선 그 동작을 생략한 듯 보이지만) ‘짧은치마’의 안무는 방송에서 보면 아슬아슬 조마조마하다. 치마 옆에 달린 지퍼를 올릴 때, 누워 있다 벌떡 일어날 때, 치마를 입고 앉을 때마다 그렇다. 방송 카메라라면 그런 순간들을 클로즈업으로 예쁘게 가려주거나 다른 멤버를 비추는 식으 로 벗어날 수 있지만, 직캠엔 그런 게 없다. 그야 말로 가차 없이 한 멤버의 전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쫓아다닌다. 그러니까, 방송에선 불가능한 ‘앵글’을 직캠에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이 혜정의 직캠은 벌건 대낮에 찍었다.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영상 품질은 무려 3840×2160 4K 해상도까지 지원한다. 그러니 모든 동작과 표정 이 말끔하게 다 보인다. 그런데 보통 직캠이 정면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면, 이 직캠은 무대와 객석이 만나는 한쪽 모서리쯤에서 찍었다. 거리가 가깝긴 가까운데, 관객이 무대를 마주 보고 섰을 때 꽤 왼쪽으로 치우친 위치. 이것을 ‘뒷모습 직캠’이라 불러보면 어떨까. 혜정이 직캠을 찍고 있는 카메라 반대쪽으로 돌아서면 혜정의 옆모습이 아닌 뒷모습이 영상에 꽉 차게 잡힌다. 그리고 무엇 보다 ‘짧은 치마’의 후렴구 주력 안무는 바로 혜정이 그 방향으로 돌아섰을 때 시작된다. “우우우우우우우 당당한 여잔데, 우우우우우우우 왜 나를 힘들게 해”라 부르며 허리와 엉덩이를 흔들면서 서서히 주저앉는 부분. 당연히 무대 정면에서 찍었을 때 보다 훨씬 자극적이다. 과연 이 직캠을 찍은 사람은 그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자리를 잡은 걸까? 어쩌면 어떤 안무를 이렇게 정면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보고 싶다 는 생각이야말로 직캠 촬영의 강력한 동력일지 도 모른다.

    에디터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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