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2015.04.01이충걸

콜 포터가 작곡한 재즈 넘버 ‘나잇 앤 데이’는 프레드 아스테어와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른 버전이 제일 유명합니다. 나중에 로드 스튜어트도 불렀지만, 글쎄요. 로드 스튜어트 하면 아무래도 “내가 최근에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하고 묻는, 키위처럼 까슬까슬 하지만 한편으론 미뢰가 기절하도록 달달한 노래가 먼저 떠오릅니다. ‘나잇 앤 데이’란 말을 들을 때 무엇이 생각날지는 각자 다르겠지요. 콜 포터에게 바치는 U2의 노래가 익숙한 세대도 있을 테고, 홍상수의 <밤과 낮>을 싫어한다면서 입에 올리는 젊은 애들도 있겠지요.

여섯 번째 <지큐 스타일>의 주제를 두고 ‘데이 앤 나잇’이냐 ‘나잇 앤 데이’냐, 고민하진 않았습니다. 솔직히 ‘낮과 밤’에 대해선 일 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낮이 먼저라면 뭔가 시시하고 김이 새는 것 같았어요. 밤이 더 좋은 건, 낮엔 노트르담의 콰지모토처럼 허리 한번 펴기 힘든 이들의 숙명이자 숙제니까요. 밤은 낮보다 자유롭고 윤택하며, 풍요로우면서도 유독 우아합니다. 밤엔, 냄새는 훨씬 진해지고, 색은 더욱 선명해지며, 감각은 불이 붙습니다. 맞아요. 밤엔, 달빛에만 반응하는 생물처럼 느릿느릿 움직이게 됩니다. 이 밤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누군들 한 번쯤 안 해봤을까요.

사실 순서보다 중요한 의미는 따로 있습니다. ‘나잇 앤 데이’의 사전적 의미인 밤낮으로 내내, 하루 종일 계속…을 이쯤에서 말하고 싶었어요. 최근 남자 패션의 경향은 밤과 낮을 구분하는 게 무의미해졌달까요. 한밤중, 거실에서 위스키 잔에 담긴 얼음을 뱅뱅 돌리면서나 입을 실크 로브를 버젓이 데이웨어로 만든 게 누구였죠? 랑방의 루카스 오센드라이버, 발렌티노의 마리아 그라치아 카우리와 피엘 파올로 피촐리가 뭘 몰라도 한참 몰라서 그랬을까요? 수트 또한 낮이든 밤이든 하루 종일 입을 수 있도록 넉넉하고 느슨해졌지요. 제냐 쿠튀르의 스테파노 필라티도 크리스토퍼 뤼메르도 그대로 입고 잔들 팔다리에 쥐 날 일 없는 수트를 만들었죠. 토요일 밤의 상징인 가죽을 여름 해변에서도 입을 수 있게 쇼츠로 만든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 데님 재킷에 물방울 무늬 실크 크라바트만 단출히 매서 이브닝 룩으로도 빠지지 않게 만든 에디 슬리먼, 하얀색으로 밤과 낮, 죄다 어울리는 룩을 만든 라프 시몬스…. 하도 많아서 다 얘기하려면 천 일 동안 잔혹한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세헤라자데도 은퇴할 지경이에요. 무엇보다 산뜻한 건 밤과 낮의 경계가 사라졌다고 오리무중, 엉망진창, 설상가상의 옷들이 난무하진 않는단 사실입니다. 멋과 상징성을 탐험하는 남자들이 늘어나자, 요즘 남자 옷에는 기괴한 재단과 과도한 디자인이 널을 뛰었죠. 디자이너들은 허무한 언어와 엉렁뚱땅 논리로 자기가 만든 옷을 떠들어댔고요. 그들은 반지르르한 제 입술로 내뱉듯 쏟아내는 말이 무슨 소린지 알기는 할까요?

하지만 2015년 봄여름의 옷들은 하나같이 논리적이고 합당하며 진지합니다. 제일 기분 좋은 건 그동안 응달에서 빛 볼 날만 기다리던 데님이 조명 아래 다시 등장했다는 거죠. 구찌와 디올, 버버리 프로섬과 생로랑… 모두 저마다의 성격대로 데님을 만들고 기질껏 재정의해 런웨이에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낮을 위한 데님과 밤을 위한 데님은 어떻게 구별되며 어떻게 입어야 할지, 눈에 기쁨을 주는 색깔들은 몸에서 어떻게 제 역할을 하는지, 결국 칭송할 만한 남자의 삶의 다른 부분을 어떻게 포착해야 하는지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태양의 이지러짐에 따라 낮과 밤으로 갈린 여러 도시에서 찍은 사진이 여기 있습니다.

점점 밤이 짧아집니다. 당신과 나, 아직 어린 마음에 낮보다 중요한 밤이 저물어갑니다. 너는 결핍을 배워야 한다고 말해주듯이.

    에디터
    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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