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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보르고의 손과 보석

2015.04.02윤웅희

어렸을 때부터 주얼리 디자이너가 꿈이었나? 원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뉴욕에 온 것도 사실 패션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옷을 만드는 데는 별로 재능이 없었다.

그렇다면 주얼리 디자인은 어떻게 시작했나? 예전부터 장식 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 전공도 그런 쪽으로 택했다. 주얼리 제작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한 건 예술사 수업을 듣던 어느 날이었다. 주얼리나 스톤의 컬러로 부족을 구분했다는 마사이족의 얘기가 흥미로웠고, 그래서 얼마 뒤 개인 주문을 받아 주얼리를 제작하는 아티스트의 어시스턴트로 들어갔다. 그때만 해도 커스텀 주얼리라는 개념이 낯설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상당히 행동파다. 그래도 주얼리 디자인을 배우는 과정이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나 같은 초보가 커스텀 주얼리 제작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초기 습작들은 대부분 금속 공예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몰드나 모델도 없이 손으로 금속을 구부렸고 핫 글루로 잇는 정도였으니까.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전문적인 금속 공예 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주얼리 하우스의 컨설턴트로 일한 적도 있다. 제작 과정이라든지 틀을 깎는 방법을 어깨너머로 배우기 위해서. 종종 로드 아일랜드에 찾아가 모델 제작자들을 도우며 여러 가지를 더 배웠다.

필립 림의 2009 S/S 컬렉션을 통해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론칭했다. 말하자면 그렇다. 어느 날 필립 림이 자신의 2009 S/S 컬렉션에 사용할 주얼리를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제품에 내 이름이 들어가길 원했는데, 돌이켜 생각 해보면 그 순간이 내 삶의 터닝 포인트였다. 그전까지는 진지하게 사업을 구상해본 적도 없고, 브랜드 론칭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필립 림의 컬렉션을 위한 주얼리를 만들었고, 그에게서 받은 돈으로 몇 개의 주얼리를 만들었다. 그게 에디 보르고의 첫 번째 컬렉션이었다.

브랜드를 론칭한 이후 상당히 빨리 자리를 잡은 편이다. 맞다. 운이 좋았다. 내 주얼리는 바니스 뉴욕과 홍콩 조이스, 파리의 콜레트와 런던의 리버티에서 팔렸다. 그 이후 마르케사, 프로엔자 슐러, 조셉 알투자라 등 여러 디자이너와 협업도 했고, 그러면서 더 널리 알려졌다.

주얼리 디자인은 어떤 순서로 진행하는지 궁금하다. 디자이너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나는 처음 머릿속에 떠오르는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잡다하게 펼쳐놓는 편이다. 그러고 나면 그 아이디어가 하나의 형태로 뭉치거나 명확해지는 때가 있다. 그걸 기하학적인 구조나 형태에 기초해 다듬는다. 주얼리 디자인은 감성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기하학과 건축학, 그래픽적인 지식을 상당히 필요로 한다. 실제로 내 디자인 북을 보면 주얼리 디자인이라기보다 건축 스케치처럼 보이는 게 더 많다.

그 다음에는? 드로잉이 끝나면 틀을 만들고, 이를 통해 프로토타입을 제작한다.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 제품으로 만드는 것은 꽤나 다르다. 프로토타입을 제작한 뒤에는 신체의 움직임들을 고려해 구조와 형태를 다듬는다. 마음에 드는 제품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완벽한 형태를 찾는다.

실제 주얼리 제작은 어디서 진행하나? 로드 아일랜드에서 한다.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거긴 사실 커스텀 주얼리 제작으로 역사가 깊은 곳이다. 1960년대의 전설적인 커스텀 주얼리 디자이너 아이젠베르그나 트리파리가 모두 로드 아일랜드 출신이고, 라거펠드나 디올도 이곳에서 그들의 주얼리를 제작한다.

콘이나 피라미드, 큐브 등의 모티브를 자주 사용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 디자인 철학은 모던한 구조와 디자인적 영속성을 결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피라미드와 큐브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화권에서 사용된 형태이자 현대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접하는 오브제다. 한마디로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할 수 있는 형태라는 얘기다. 게다가 기하학적 단순성과 그래픽적 강렬함까지 갖추고 있다.

소재는 어떤 것을 사용하나. 그리고 그 소재를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주얼리 몸체로는 주로 실버와 황동, 알루미늄 등의 금속을 사용한다. 다루기 쉽고, 가격도 적절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때때로 흑단이나 파인우드를 접목하기도 한다. 여성 주얼리에서는 크리스털이나 세미 프레셔스 스톤, 대리석도 종종 사용한다. 이런 소재는 화려함을 부각하고 싶을 때 쓴다.

주얼리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다른 주얼리 디자이너, 또는 럭셔리 주얼리 하우스와 비교했을 때 에디 보르고만의 고유한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는 흔히 하위 문화라고 말하는 것들, 이를테면 로큰롤이나 펑크 록, 글램 록, 여러 스트리트 문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것을 전통적인 기하학 형태에 얹어 건축적이고 그래픽적인 구조로 풀어내는 방식을 즐긴다. 다른 럭셔리 주얼리 하우스와 비교하자면 주얼리가 비싸고 값진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게 싫어서,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와 속성들을 반영해 제작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주얼리를 만들고 싶었다.

얼마 전부터 여성 라인에서는 가방과 같은 액세서리도 만들던데, 앞으로 좀 더 카테고리를 넓혀갈 생각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궁극적인 브랜드의 목표는 커스텀 주얼리 뿐만 아니라 파인 주얼리, 액세서리, 가구, 오브제 컬렉션을 갖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고, 실제로도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안다. 그러나 분명 그런 욕심은 있다. 멋지지 않은가.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기도 하고.

 

    에디터
    윤웅희
    일러스트레이터
    곽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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