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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로무씨의 매체와 예술

2015.04.04GQ

어렸을 적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칠레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다. 맞다. 칠레를 떠나기 전까지 계속 발파레이소와 산티아고에서 살았다. 좋은 곳이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방과 후 매일같이 해변에 가서 놀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10년 전쯤 가본 적이 있다. 굉장히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로 기억한다. 그곳에서의 시절이 아티스트로서의 삶에 영향을 미쳤나? 유년기의 기억이라든지 성장 배경은 모든 인간에게 중요한 요소니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산티아고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아티스트였고, 그들을 통해 예술적인 경험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면도 있다. 그렇지만 ‘아티스트로서의 삶’이라고 한정해서 얘기한다면 나에게 좀 더 많은 영향을 준 곳은 오히려 베를린이다.

대학에서는 미술을 전공했나? 아니다. 조경 설계를 공부했다.

당연히 미술을 전공한 줄 알았는데, 의외다. 왜 하필 조경 설계였나? 일종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이런저런 이유에서 제대로 미술을 공부할 수 없었고, 내가 가진 선택지 중 가장 적합한 길이 도시환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공부를 해보니 그것 역시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생각과 영감을 좀 더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예술가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뉴욕에도 잠깐 있었다고? 2010년 즈음에 포토그래퍼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6개월 정도 있었다. 남는 시간에는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매체로 작품을 만들곤 했다. 그러다 베를린으로 넘어와 지금까지 계속 이곳에서 살고 있다.

왜 베를린이었나? 일단 친구들이 베를린에 많았고, 그 당시 많은 젊은 아티스트가 이 도시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를린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좀 더 열려 있는 도시다. 그리 유명하거나 돈이 많지 않은 아티스트도 다른 도시에서보다 훨씬 쉽게 전시를 열 수 있고, 예술가를 지원하는 사회적인 프로그램도 좀 더 잘 갖추어져 있다. 뉴욕의 아트신은 굉장히 경쟁적이지만, 여긴 그렇지 않다. 베를린은 예술가들이 예술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도시다.

확실히 몇 년 전부터 베를린은 젊은 아티스트의 성지처럼 떠 올랐다. 이곳이 당신에게도 영감을 주나? 물론. 예술가들을 위한 기회가 많다 보니 전시 수도 많고, 다른 아티스트를 만나기도 쉽다. 그들과 소통하기도 편하고, 그러면서 또 영감을 얻기도 하고. 이래저래 자극이 된다. 다양한 문화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 도시는 삶이 예술 한가운데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데, 그건 내가 볼 때 예술가에게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일상적인 삶 역시 좀 더 평화롭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많고 많은 방법 중 자수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뭔가? 처음에는 그림을 그렸다. 아닐린 같은 재료로 작업을 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 작업의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미술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실험처럼 작업해야 했고, 그 덕에 매체를 다양하게 사용했다. 어느 날페인팅 작업을 하다 우연히 자수 기법을 시도해봤는데, 오히려 내 스타일에 더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시작이다.

마우리지오 안제리나 스테이시 페이지도 사진에 자수를 넣지만, 그들은 정적이고 빈티지한 포트레이트 위에 스티치를 덧입히는 방식을 택한다. 반면 당신은 좀 더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한다. 나도 처음에는 빈티지 사진들을 이용해 작업을 했다. 그렇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컨템퍼러리한 사진들에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포트레이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테마의 이미지를 두고 좀 더 작업의 폭을 넓히는 중이다.

사실 당신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사진 위에 몇 가닥의 실을 더해 원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당신이 얘기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내 작업의 핵심은 자수를 통해 사진의 미적 특질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사진은 일종의 캔버스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작업이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모든 작업은 그 이면에 특정한 콘셉트가 있고, 그것을 자수라는 매개로 표현하고자 한다. 내 작업이 어떻게 보면 직관적이거나 명확한 작업은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것이 좋다.

당신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일단 발레 연작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나? 친구 중 한 명이 내게 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수를 놓아달라 부탁했다. 그래서 찾은 이미지가 발레리나였고, 결과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다. 정적인 흑백사진 위에 색깔이나 일종의 운동감 을 새롭게 부여하는 작업은 즐거웠다.

처음에는 패션 잡지의 사진을 사용해 작업을 했지만 요즘은 직접 사진을 찍어 작업하는 것 같던데? 요즘은 주로 사진 작업까지 함께 한다. 그 편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자유롭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머릿속에 대강의 결과를 구상하고 작업을 진행하는 건가? 때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는 그렇다. 평상시에도 잡다한 생각을 많이 하고, 그것들을 일일이 스케치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 스케치가 어떤 지점에 다다르면 그걸 실제 작업으로 구현한다. 처음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거의 비슷하다.

최근에는 좀 더 동시대적이고 펑키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 처럼 보인다. 개인적인 관심사의 변화인가? 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내 성격 자체가 그래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항상 새로운 걸 찾는 경향이 있다. 나는 모든 일에 굉장히 빨리 질린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관심사가 빠르게 바뀌는 걸 느낀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다른 매체로 작업하는 모습도 볼 수 있겠다. 그럴지도. 모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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