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dget

미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2015.04.07GQ

기꺼이 벤틀리를 선택하는 그들조차 아직 모르는 세계가 있다. 전혀 새롭고 유일한 세계로 통하는 문. 이젠 ‘뮬리너Mulliner’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체스터 공항에 내렸더니 벤틀리 뮬산Mulsanne이 마중 나와 있었다. 한국에서 판매하는 가격은 4억 8천4백만원부터 시작한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가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존재감 자체로도 뮬산은 흔한 차가 아니다. 여러모로 절대적이다. 성능 제원부터 어마어마하다. 6,752cc V8 기통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의 최고출력은 자그마치 504마력, 최대 토크는 104.0kg.m이다. 길이는 약 5미터 57센티미터, 폭은 2미터 20센티미터다. 무게는 2,686킬로그램. 이렇게 거대한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5.3초다. 어쩌면 벤틀리의 성격이 이 한 대에 제대로 녹아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뮬산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벤틀리에는 양극단이 한 대에 녹아 있다. 호화로움과 고급함을 기준 삼아도, 힘과 속도를 기준 삼아도 그렇다. 벤틀리 뮬산의 최고속도는 자그마치 시속 296킬로미터다. 이 차가 뛰쳐나가는 기세는 거의 비현실적이다. 

“한국에서 맨체스터까지는 몇 시간이나 걸렸어요? 고생했어요. 늦을까 봐 걱정했는데 제시간에 도착해서 다행이었어요.” 뮬산 조수석 뒷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운전석에 앉아 있던 마크가 말했다. “이 건 회장님이 타는 차예요. 오늘 당신을 마중하러 나오기 조금 전까지도 회장님이 타고 있었어요. 그를 집까지 배웅하고 바로 공항으로 왔죠.” 뒷좌석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의자는 거의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몸을 의완시키기에 최적의 상태로 조정한 채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나도 매일 운전하지만 뮬산은 정말 훌륭한 차예요. 회장님이 타는 이 차는 특히 그렇죠. 테이블을 한번 펴보겠어요? 깜짝 놀랄 거예요.”

몸을 일으켜 자세를 고쳐 앉고 조수석 뒤에 있는 테이블을 펼쳤더니 갑자기 라임색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차체, 고풍스러운 나무 패널, 벤틀리의 고유한 나무 냄새…. 그 사이로 보이는 라임색 세부는 갑자기 부는 훈풍 같았다. 가볍고 산뜻하게 뮬산의 중심을 잡았다. “회장님이 라임색을 좋아하시나 봐요?” “거기도 한번 열어봐요, 재미있을 거예요.” 마크가 말하는 곳은 뒷좌석 가운데 있는 암레스트였다. 그 속도 라임색이었다. 중후한 맞춤 수트 안쪽, 나만 아는 화려한 안감을 고르는 기분이 이런 걸까? 벤틀리는 고급스럽지만 나는 지루하고 점잖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 자리에는 없는 뮬산의 주인이 조용히 웅변하는 것 같았다. 마크가 설명했다. “회장님이 라임색을 특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이 차를 만들 때 직접 색깔을 골랐거든요.” 숙소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렸다. 뮬산은 거의 유영하듯이 움직였다. 몸이 부드럽게 풀리고 있었다. 

밖에서는 누구도 짐작 못했던 라임색 세부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벤틀리의 비밀스런 세계로 통하는 열쇠가 있다. 벤틀리는 그 열쇠를 ‘뮬리너Mulliner’라 부른다. < GQ >와 벤틀리가 같이 만들어 한국에 출시할 두 대의 차를 만드는 세 주체는 벤틀리 외관 총괄 디자이너 이상엽과 뮬리너 옵션, 그리고 < GQ >다. 뮬리너는 우리의 바람을 충실하게 이행해줄 수 있는 든든한 축이다. 우리는 두 대의 플라잉 스퍼를 만들면서 뮬리너 옵션을 최대한 활용했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인 작은 마을, 크루Crewe에 있는 벤틀리 본사의 한 부서를 한국에 더 자세하게 알리기 위해서다. 뮬리너는 철저히 개인을 위한 벤틀리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서. 그들을 통하면 세상 그 어느 벤틀리와도 다른, 당신만의 벤틀리를 가질 수 있다. 자동차의 개인성을 극대화하고, 그로부터 오는 은밀한 충족까지 다 소유할 수 있다. 지난 8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가졌던 미팅에서, 벤틀리 뮬리너 총괄 디렉터 제프 다우딩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벤틀리 고객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뭔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합니다. 아주 작은 줄무늬나 서명을 통해서도 자신만의 차를 만들 수 있어요.” 

지금도 수많은 자동차 회사가 천문학적인 숫자의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그들이 제공하는 색깔, 가죽, 나무를 선택해 조합하는 것만으로 세상 어느 차와도 다른 단 한 대의 차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벤틀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준비된 옵션의 조합이 아니다. 뮬리너는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창조, 완전히 새로운 한 대의 벤틀리를 권한다. 뮬리너 옵션은 그 환상적인 결과물을 위한 든든한 동반자로서 기능한다. 제프 다우딩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유일한 제약은 안전이에요.” 뭐든지 가능하다는 건, 당신이 뮬리너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가 정말 아끼는 매니큐어가 있어요. 그 색깔 그대로 차의 외관을 칠하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그 넥타이가 마음에 들어요. 그 색깔로 해주세요.” “우리 집에 제가 정말 아끼는 믹서가 있어요. 그 색으로 해주시겠어요?”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뮬리너 옵션은 고객이 원하는 그대로를 구현해냈다. 밝힐 수 없는 그 여자 고객의 매니큐어 색깔과 완전히 같은 한 대의 플라잉 스퍼가 지금 지구 어딘가에 있다. 자기 넥타이를 고객을 위한 색깔의 예시로 써야 했던 그 담당자는 당장 넥타이를 잘라 페인트를 담당하는 부서에 보냈다. 믹서도 물론. 그렇다면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당신을 위한 이런 질문은 어떨까? “한국의 봄은 정말 아름다워요. 창경궁에서 4월 즈음에 피는 그 꽃과 완전히 같은 색으로 하고 싶어요. 정말 가능한가요?” 물론, 뮬리너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심지어 이런 경우. 어떤 고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 마당에 제가 정말 아끼는 나무가 있어요. 그런데 수명이 다한 건지, 곧 죽을 것 같아요. 그전에 그 나무를 제 벤틀리에 우드 패널로 쓰고 싶어요. 어떤가요?” 뮬리너는 거절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 가지 확실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가능한 일이 있다. 뮬리너 서비스 디렉터 리처드 찰스워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 공정에는 돈이 많이 듭니다. 우리가 그 나무를 크루 공장에 가져다가 안전성과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요. 그 과정을 모두 통과하고, 그 나무가 멸종 직전이거나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종이 아니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겁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마당에 있던 나무를 그대로 저며 이식한 우드 패널로 벤틀리를 만들 수 있었을까? 대답의 열쇠는 그에게 있었을 것이다. 뮬리너에게는 할 수 있는 일, 그에게는 만만치 않은 인내심과 재력이 필요한 과정이었을 테니까. 

< GQ >와 벤틀리가 같이 만드는 플라잉 스퍼에 숨어 있는 오랜지색도 뮬리너 옵션을 충실히 적용한 결과다. 그뿐 아니다. 시계만을 위한 수납공간도, 그 어떤 플라잉 스퍼와 뮬산에서도 볼 수 없는 격자무늬를 적용한 시트도, 검정과 회색과 감색을 모티프 삼은 투톤 외관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벤틀리 공장이 도서관처럼 조용한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섬세하고 개인적인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차를 대량생산할 수 없으니까. 꼼꼼한 수작업만이 그들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울타리 없는 고산지대의 목장에서 기른 수소 가죽만 쓰고, 세계 곳곳에서 우드 패널에 쓰이는 나무 한 그루를 벨 때마다 다시 한 그루를 심는 식으로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기함 뮬산의 인테리어를 만드는 데 170시간을 고스란히 투자하고, 핸들 하나에 들어가는 가죽을 꿰매는 데 한 명의 장인이 꼬박 18시간의 정성을 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의 노력이다. 결국 한 대의 뮬산을 만드는 데는 총 300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에 한 고객이 이런 요청을 해온 적이 있어요. 중동에서 벤틀리를 구매한 고객이었죠. 그는 자기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싶어 했어요. 그는 정말이지 정확한 타이밍에 왔어요. 그가 주문한 차의 마지막 공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죠. 우리는 기꺼이 그를 공장으로 초대했어요. 그가 부탁했어요. 마지막 공정을 자기 손으로 해도 되느냐고. 보통은 절대 허락할 수 없는 일이죠, 하하.” 하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생산 라인에서 마지막 조립을 앞둔 직원이 에어컨 부품 하나를 그 고객에게 맡겼다. “그는 눈물을 흘렸어요. 감정이 너무 북받쳐서. 그때 찍은 사진도 있어요. 아마 회색 차였던 것 같아요.” 제프 다우딩이 몇 년 전의 일화를 회상하면서 말했다. 자동차의 물성은 이렇게까지 고유하게 개인적일 수 있다. 벤틀리는 그럴 준비가 돼 있는 세상의 모든 개인에게 뮬리너 옵션을 열어두고 있다. 필요한 건 시간과 용기, 그리고 자동차 자체의 의미를 백지 상태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다. 전시장에 미리 준비돼 있는 수많은 색깔의 가죽과 우드 패널 샘플을 여럿 놓고 고르는 일 대신, 진짜 마음으로 아낄 수 있는 단 하나의 요소를 나만의 벤틀리에 추가해보는 건 어떨까? 시작부터 창대할 필요는 없다. 아주 작은 차이, 섬세한 조정, 매우 개인적인 차이가 유일함을 약속하는 법이니까. 

 

수작업의 세계 벤틀리 공장에서는 이런 풍경이 흔히 보인다. 각각의 책상에 앉아서 재봉틀을 다루거나 가죽을 자르는 풍경. 목재를 다듬을 때 낮게 웅웅 거리는 기계 소리…. 핸들에 가죽을 씌울 때, 어떤 직원은 포크를 써서 정확한 간격을 가늠하기도 한다. 

[For Example] 벤틀리 뮬리너 총괄 디렉터 제프 다우딩이 < GQ >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몇 가지 이미지를 영국 크루에서 보내왔다. 벤틀리는 이렇게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빙산의 일각. 정말 중요한 건 오로지 당신의 마음뿐이다.

 

01 검정색과 오랜지색을 주제로 구성한 실내다. 스티치에 쓴 색깔과 방식도 고를 수 있다. 핸들의 재질과 종류, 검정색 패널의 광택과 깊이까지도.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02 우드 패널에 자개로 소나무를 새기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요즘 중국에서 벤틀리를 사는 사람 중에는 간간이 용을 그려넣어 달라는 주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03 맨체스터 공항에 마중나온 벤틀리 회장의 뮬산에 적용된 라임색이다. 짙은 감색 혹은 검정색이 주제를 이루는 가운데, 이런 색깔이 딱 하나만 들어가도 아주 다른 차가 된다. 04 이렇게, 마치 코브라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시트를 주문한 고객도 있었다. 사진으로 시트만 보는 것과,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한 대의 차를 보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다.

벤틀리와 지큐의 은밀한 프로젝트

벤틀리와 GQ가 만든 플라잉스퍼, 그 첫 선

세계에서 단 두대, GQ의 벤틀리

    에디터
    정우성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