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2015.04.07GQ

한국은 근대와 전근대, 현대가 뒤섞인 것 같은 나라다. 국가는 강력하지만 개인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게 사실이라도 질문을 멈춰선 안 된다.

지난 3월 5일 아침.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오른손으로 오른뺨을 가리고 서둘러 건물을 벗어나는 영상이 계속해서 방송됐다. 범인은 우리마당이라는 단체의 대표 김기종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민화협’이 민족화해협력범 국민협의회라는 이름을 줄인 건지도 몰랐다. 그날 이후, 한국에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이해는 못하겠는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서울 중구에 있는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는 ‘리퍼트 대사 쾌유 기원 및 국가 안위를 위한 경배 찬양 행사’가 열렸다. 행사의 주체 역시 처음 듣는 단체였다. 그들은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췄다. 단체로 발레를 하고 북을 쳤다. ‘엄마부대 봉사단’이라는 이름의 단체는 “리퍼트 대사님 사랑합니다”라는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었다. “세준 아빠 김치 사랑”이라는 팻말도 보였다. “우리가 하는 일에 국민들의 마음 모두가 함께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족에게 “누가 배 타고 놀러가 라 그랬냐” 말했던 그 단체였다. 고종 황녀 양아들로 알려진 75세 권송성 씨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으로 개고기와 미역을 들고 찾아갔다. 그는 “한국에도 착한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 이후 과도한 퍼포먼스와 위로 공연이 오히려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진중권 교수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이 기세라면 리퍼트 대사에게 퇴원 기념으로 함께 강남스타일을 추자고 할지도… 근데 이게 꿈이냐 생시냐. 꿈에서나 볼 법한 absurd한 상황을 라이브로 지켜보자니….” 이 말은 조롱 같지 않았다. 냉소도 농담도 아니었다. 어떤 매체는 absurd를 ‘우스꽝스러운’으로 번역해 기사에 썼다. 이해하기에는 그 편이 가장 쉬웠기 때문에 그랬을 테지만…. ‘absurd’에는 ‘불합리’, ‘부조리’라는 뜻도 있다. 사뮈엘 베케트가 쓴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부조리극을 ‘absurd theater’라고 한다. 뭔지도 모르겠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그냥 벌어지는 일. 어쩌면 ‘부조리함’이라는 말이야 말로 리퍼트 대사 피습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몇 가지 현상을 설명하기에 더 적절하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 자신이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는 데서 합리를 찾는 것 같았다. 그건 사실이 아닌데도. 레니 크라비츠가 한국에 왔을 때 기자회견 장에서 “싸이를 아느냐”고 물은 모 일간지 기자의 얼굴도 생각났다. 그도 수많은 독자를 대표해 그런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우스꽝스럽다는 말로 넘기기에는 좀 심하게 이상한 상황이라는 걸 지금은 안다.

 

그나마 개인적인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권송성 씨의 경우일 것이다. 그는 <헤럴드 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나도 몸이 안 좋아서 고향인 전라북도 정읍에서 개를 가져다가 먹는데 마침 고향에서 좋은 개를 받아둔 것이 있었다. 개고기를 먹으면 회복에 좋다고 해서 그걸 삶아 바로 병원으로 가져가게 된 것이다. 리퍼트 대사가 유명한 애견가인 줄은 전혀 몰랐다. 그걸 미리 알았다면 다른 걸 선택했을 것.” 외국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동생이 알려줘서 알았다는 말도 들렸다. 병원에서 발길을 돌린 뒤, 그는 리퍼트 대사 측에 전보를 보냈다고 한다. 편지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미국 정부나 미국 국민에게 참 으로 미안하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개고기 선물의 논란에 대해선 “우 리나라를 돕는 분이 그렇게 당한 걸 보니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건데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분히 당황스러웠지만 그 마음까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럴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인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갸우뚱하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모호한 표현이 계속되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는 아무 인과도 없었다. 그냥 그들이 거기서 그렇게 했다는 것만이 사실이었다. 부채춤과 난타, 발레와 ‘대사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논리, 이성 같은 말로 재단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걸 ‘한국적’인 상황이라고 하는 것 역시 좀 이상한 일 같았다. 요란한 기원, 처음 보는 형식, 지나치게 진지해서 당황스러운 에너지였다. 이런 일이 각각 종교, 엄마, 부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걸고 벌어졌다. 모두가 한국을 대표하고 있었다. 주체는 각각 달랐지만 마음만은 같아 보였다. 조금은 절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석고대죄’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미국은 이 사건을 김기종 개인의 일탈로 정리했다. 한국에선 즉각 ‘배후’, ‘세력’ 같은 단어가 창궐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당시 주미 한국 대사가 했던 사과도 생각났다. 2007년이었다. 당시 주미 대사는 교민들에게 32일 간의 금식을 제의했다. 정부는 조문단 파견을 검토했다. 당시 범인은 한국계 학생 조승희였다. 개인의 잘못이 국가의 책임으로 비약하는 순간, 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는 걸 이젠 경험으로 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우리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잘 알고 있다. 국가의 책임이 개인의 희생으로 전가되는 순간,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통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이제 못 잊는다. 

 

지난 5월, 사회학자 엄기호와 했던 인터뷰가 자꾸만 생각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렇게 물었다. “지금 한국은 아무래도 근대 국가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중세에 가깝지 않나?” 엄기호는 말했다. “지금 한국은 근대인 것도 근대가 아닌 것도 아니다. 반근대, 전근대, 탈근대, 근대도 아니다. 그 어떤 아무것도 아닌 것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어지는 말은 이랬다. “지금, 너무 무능력한 국가 아닌가? 근대 국가의 핵심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각종 통제를 위한 움직임 같은 것을 보면 우리 앞에 엄청 강한 국가가 있다.” 근대 국가의 역할을 하기에는 상당히 모자라는 나라가 다른 맥락에서는 지나치게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양쪽 다,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말이지만.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정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 개인의 도래를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의 한편, 한국은 1920년대 ‘모던 뽀이’, ‘모던 껄’의 출현, 문학과 예술이 받아들인 근대를 그 시작으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봉건과 전근대로부터 개인이 독립할 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흐름은 곧 끊겼다. 이후 역사는 전쟁과 혼돈이었다. 거의 모든 게 단절됐다. 이후에도 상처는 아물 틈이 없었다. 경제 규모가 커진 것은 확실한 위안이었지만, 혁명은 정치 언어에 한정 됐다. 사회학자 송호근의 책 <시민의 탄생>에는 이런 말이 있다. “<대한제국의 멸망>을 쓴 헐버트 목사는 조선인의 종교관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한국인은 사회 속에 어울려 있을 때는 유교적이며, 철학적일 때는 불교적이며, 어려움을 만날 때는 무속적이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의 종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의 그를 관찰해야 그의 참신앙을 알 수 있다.” 호머 헐버트가 < 대한제국 멸망사: The Passing of Korea >를 쓴 건 1906년이었다. 약 109년 전과 지금은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이런 구절도 있다. “개인과 사회의 탄생은 조선이 근대로 이행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였다.” 그때 탄생한 개인과 사회는 지금 어디 있을까?

 

2014년 4월 16일 이후 1년이 지났다. 그때 드러난 민낯은 그날 이후 한 번도 가려진 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더 참담한 꼴을 드러냈다. <고도를 기다리며> 2막에 이런 장면이 있다. 장님이 된 포조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 공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그들은 대답한다. “우리는 인간이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다리는 것만 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뜻으로. 사뮈엘 베케트는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그걸 알았 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

 

이젠 기다림의 대상조차 사라진 것 같다. 사회가 뭔가를 약속해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은 끝났다는 뜻이다. 그것을 ‘absurd’, 부조리 혹은 불합리로 이해하는 것은 현실보다 문학에 가까운 얘기 같다. 그 둘의 관계는 또 다른 얘기지만…. 개인과 사회가 근대의 조건이라면 이젠 개인만 남았다는 것만이 사실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개인은 어디에 속해 있을까? 우리는 진짜 개인일까? 괴테가 했던 이런 말은 어떨까? “세계는 세계의 전진을 거부하는 사람 때문에 앞으로 나아간다.”

 

2015년 봄, 한국의 개인은 제각각 절박하다. 개인은 있고 사회는 끊어진 나라에서, 한 번도 정의된 적 없는 개인은 묻는다.

    에디터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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