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감독의 새로운 물결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명장이 될 수 없다는 말에 대한 기세 당돌한 반박. 요즘 축구계에서 가장 뜨거운 젊은 감독 4인의 면면을 더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최용수 | FC

서울 타짜 같은 기질이 있다. 허허실실 자기 팀 선수들은 물론 상대와 심리전을 펼친다. 경기 전 기자들을 만나면 그는 자기 수를 내놓기 전 늘 상대팀 감독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를 확인한다. 그래서 미움을 사기도 한다.하지만 최용수 감독은 자신이 미움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능글능글하다. 그리고 상대가 평정심을 잃을 때 그 틈을 파고든다. 선수 시절 강인한 만큼 뻣뻣한 스트라이커의 대명사였던 최용수를 연상해보면, 지금의 유연한 모습은 놀랍기만 하다. 그는 2011년, 시즌 중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잡은 뒤 궁지에 몰려 있던 팀을 살려내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2년에는 리그를 압도하며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13년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진출했다. 지난 시즌에는 서울 전력의 반이라던 데얀과 하대성이 떠나며 진짜 위기를 맞았지만 리그 3위, 챔피언스 리그 4강, FA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냈다. 덕분에 이전까지 “서울이 잘나가는 건 감독이 잘해서가 아니라 데얀이 잘해서”라던 주장들은 쏙 들어가 버렸다. 포백에서 스리백으로의 변화,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는 과감한 용병술, 로테이션 시스템 등 궁지에서 그가 선택하는 것은 파격 또 파격이었다. J리그에서 뛸 때부터 지도자 생활을 준비한 그 는 제프 유나이티드 시절 만난 이비차 오심(전 일본 대표팀 감독)과 FC 서울 코치를 맡으며 보필한 세놀 귀네슈 두 명장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두 감독의 어록과 훈련 프로그램을 세밀하게 정리할 정도로 꼼꼼했다. 다만 전술적으로 자신이 롤 모델로 삼는 두 감독과 달리 수비 지향적이라는 점, 경기 중 민첩한 대응이 부족하다는 점은 여전히 지적받는 부분이다. 2년 연속 결승(챔피언스 리그, FA컵)에 진출했지만, 준우승에 그친 성적이 그 증거다. 타이틀이 걸린 숨 막히는 대결에서도 얼마나 대범하고 치밀하게 준비할 수 있느냐는 ‘디테일’이 최 감독을 타짜에서 명장으로 바꿀 마지막 퍼즐이다. 글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윤정환 | 울산 현대

일본 J리그 감독 윤정환의 경력은 성공적이었다. 단기간에 2부 약체 팀을 1부 승격은 물론 시즌 중반 리그 1위까지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그의 성공기를 접한 한국 축구 팬들은 “역시 영리해서 지도 수완도 좋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선수 시절 그는 ‘꾀돌이’였으니까. 오산이다. 일본에서 윤정환 감독은 ‘오니(鬼, 귀신)’라고 불렸다. 지도자가 된 그는 혹독한 훈련, 수비 중심, 전방 롱패스 역습을 강조했다. 덕분에 지금 윤정환은 막 개막한 2015년 K리그 클래식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다. 과연 그는 2014 시즌 6위까지 추락한 울산 현대를 소생시킬 수 있을까? 일본 J리그 약팀에서 써먹었던 방법을 K리그의 영원한 우승 후보 울산 현대를 맡은 뒤에도 고수할까? 일단 윤정환 축구의 지향점은 K리그에서도 변함없어 보인다. 동계훈련부터 윤정환 감독은 “수비를 먼저 단단히 하면서 많이 뛰는 축구”를 목표로 담금질해왔다. 그는 “11명이 조직적인 축구를 하는 것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선수들의 증언도 다르지 않다. 주장 김치곤은 “모든 포지션에서 수비 개념을 강조하신다”라고 신임 감독의 전술을 표현했다. 무엇보다 윤정환 감독은 성공을 경험했다. J리그 사간 도스는 이리저리 둘러봐도 답이 나오기 힘들어 보이는 약체 중 약체였다. 그런 팀을 1부로 승격시켰고, 2014년 해임될 당시에는 빅 클럽들을 제치고 J리그 선두에 서 있었다. 2011년부터 감독을 맡아 팀 도약을 위한 설계부터 실행까지 차근차근 진행해나간 결과다. 단, 걱정거리도 있다. 첫째, 그가 항상 강조하는 “일단 이겨야 한다”라는 결과 지상주의가 불러 올 평가다. 울산은 사간 도스처럼 약체가 아니다. 클럽의 예산 규모, 지원, 선수단 모두 탄탄하다. 일본에서처럼 선제골을 넣고 수비 위주의 ‘파이브백’으로 전환하는 승리 공식을 2015년 K리그 팬들은 달갑게 보지 않을 것이다. 둘째, 윤정환 감독은 K리그 지도자 경험이 없다. K리그의 경기력은 아시아 최정상급이다. 강한 승부욕이 곧잘 거친 축구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의 ‘많이 뛰는 축구’도 K리그에서는 차별 화되기 힘들다. 달리 말해 웬만한 K리그 팀은 모두 많이 뛰어다닌다. 한 골 넣기가 정말 어려운 곳이 바로 K리그라는 점을 K리그 감독 윤정 환이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글 / 홍재민(<포포투> 축구 전문 기자) 

황선홍 | 포항 스틸러스 

일반적으로 공격수 출신 지도자는 크게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세계를 호령한 감독들 가운데 공격수 출신 비중은 낮은 편이다. 공격수는 다른 포지션에 비해 제한적인 시야로 그라운드를 누빌 수밖에 없다. 그런 핸디캡이 경기 전체를 설계하는 감독 자리에 올랐을 때 한계로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 황선홍 감독은 은퇴 후 전남 드래곤즈 코치를 거쳐 부산 아이파크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황선홍 감독 취임 이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부산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냈다. 경기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가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 결정됐을 때, 모두가 환호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포항은 파리아스 감독의 대성공 이후 브라질 출신의 레모스 감독이 실패하며 빠른 팀 수습이 필요한 시기였다. 또한 파리아스 감독 체제에서 포항 팬들의 눈높이는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었다. 그런데 황선홍 감독은 포항 지휘봉을 잡은 뒤 전혀 다른 지도자가 됐다. 그가 부임한 이후 포항 축구는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에 곧잘 비유 되곤 한다. ‘스틸타카’, ‘과메기타카’ 같은 신조어도 생겼다. 그렇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포항의 유스 시스템이 길러낸 젊은 선수들과 황선홍 감독의 조합은 성공적이었다. 2012년, 2013년 FA컵 우승, 그리고 2013 시즌엔 K리그 정상에까지 올랐다. 최근 황선홍 감독은 전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선수를 관리하는 매니저로서의 기량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포항은 지난 2년간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치렀지만, 올해는 외국인 선수도 영입했다. 2015 시즌 포항이야말로 황선홍 감독이 지향하는 축구를 맘껏 보여줄 수 있는 팀이 될 것이다. 글 / 박찬하(KBS N 스포츠 해설위원)

 

신태용 | 올림픽 대표팀

흔히 젊은 감독을 평가할 때 ‘형님 리더십’이라 는 표현을 자주 쓴다. 언젠가부터 젊은 감독은 다들 형님 리더십을 갖춘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그중 으뜸은 바로 신태용 감독이다. 그는 긴장감과 여유를 오가는 ‘밀당’의 고수다. 신태용 감독은 성남 시절인 2010년 3월 14일인 천과의 K리그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경기가 끝난 뒤 여자친구나 아내와 와인을 마시며 분위기를 잡을 것인지, 아니면 소주를 마시며 신경질을 낼 것인지는 너희가 경기하기에 달렸다.” 멋진 경기를 펼친 뒤 화이트 데이를 로맨틱하게 보내라는 뜻이었다. 이날 성남 선수들은 놀라운 집중력을 선보이며 인천을 6:0으로 대파했다. 그해 신태용 감독은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조바한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어린 선수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신태용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을 모아 놓고 차마 글로 옮길 수도 없는 야한 농담을 건넸다.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성남은 3:1 로 승리를 거두며 아시아 정상을 차지했다. 어 린 선수들로 구성된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이런 신태용 특유의 형님 리더십을 더욱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국가 대표팀 감독 대행으로 전술을 짠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는 그동안 대표팀이 고수하던 4-2- 3-1 포메이션을 과감히 버리고 4-1-2-3 포메이션 을 가동했다. 성남 감독 시절, 2009년 11월 열린 인천과의 K리그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연장 막판 필드 플레이어 김정우를 골키퍼 김용대와 교체하기도 했다. 승부차기에 대비해 그라운드에 두 명의 골키퍼를 투입하는 다소 황당한 전술이었다. 하지만 이날 성남은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뒀다. 중요한 경기에서 이처럼 파격적인 변화를 구사할 수 있는 감독은 드물다. 글 / 김현회(축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