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보고 싶다

2015.04.20유지성

옷 입은 몸에서 벗은 몸을 떠올린다. 벗고 벗기는 순간을 기약하며.

벗은 몸부터 볼 일은 없다. 어쨌든 뭔가 입고 있는 모습을 먼저 본다. 그런데 그걸 벗기고 싶다는 생각은 거기서부터 든다. 입고 있는 게 예쁜데, 그래서 되레 벗기고 싶어진다는 말이다. 물론 입고 있을 때부터 벗은 몸을 짐작하기는 한다. 그 짐작한 모습을 한시바삐 보고 싶은 맘에 가까운 걸까? 어쩌면 확신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입고 있을 때도 근사하니, 벗을 때도 맘에 들 것이라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렇다.

물론 결과가 꼭 같은 건 아니다. 입었을 때 예쁜 몸이 벗었을 때도 예쁘다는 보장은 없다. 가끔은 미리 깊숙이 예측해보기도 한다. 보통 이런 식이다. “저 바지는 소재가 꽤 두꺼운 듯하니, 벗고 나면 되레 날씬한 편일 수도 있겠군.” 마를수록 좋다는 것이 여자들의 세계에 가깝다면, 남자들의 취향이 전부 그 기준에 일치하는 건 아니니까. “저 양감은 스웨터 그 자체의 것이지, 상체로부터 나온다고 볼 수가 없지.” 이른바 ‘옷 잘 입는 여자’들이라면 자기 몸의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부각시키는 데 도가 터 있을 테니. 몸의 굴곡을 살리기 위한 아이템의 종류부터 남자의 옷장에 근거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일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따져보기도 한다. 그 섹시한 옷을 보고 감탄하는 동시에, 아리송한 몸을 가늠한다. 그래도 오늘 당신과 잘 수만 있다면 뭐든 못하겠냐는 태도였다가, 옷을 벗자마자 실망한 기색을 비추는 것보단 낫지 않나? 물론 그렇다고 여자의 옷을 비롯한 다양한 아이템들을 ‘반칙’같이 여기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화장 지우면 완전히 다른 사람” 같은 얘기는 어떤 의미에선 충분히 칭찬일 수 있지 않은가? 비슷한 맥락에서 하이힐은 그 모양 자체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바짝 올라붙은 엉덩이, 그 당당한 태도야말로 힐을 즐겨 신는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곤 한다. 게다가 거기서 내려오는 순간의 머뭇거림, 올려다보는 눈 같은 건 사랑스럽기도 하니까. 기꺼이 환영할 수 있는 여자의 강력한 무기. 꼭 여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라 볼 수도 없다.

남자들이 옷을 잘 입네, 못 입네, 하는 말과는 다른 문제. 셔츠의 어깨선에 따라 남자의 어깨너비가 충분히 달라 보이고, 스웨터 안에 티셔츠를 입느냐 마느냐에 따라서도 몸 두께에 은근히 차이가 생긴다. 간혹 옷을 입고 있는 무방비 상태에서 팔 안쪽을 꽉 잡아 쥔다거나, 허벅지를 찰싹 때리는 여자들을 만나면 깜짝 놀라곤 하지만…. 그런 행위를 뭔가 확인 또는 ‘검사’하는 것처럼 받아들인다면 그건 지나친 비약일까? 물론 남자는 그렇게 만져보기 어렵다. 남자들이 진짜 궁금한 부위는 대개 위험한 곳이니까. 그렇게 옷을 입은 채 침대까지 향한다. 일단 씻은 뒤 옷을 거의 다 벗고 나오는 경우가 보편적인 듯하지만(커다란 보디 타월만 두르고 나오는 게 좋다는 남자도 많지만), 글쎄. 매번 그런 식이라면 김이 빠진다. 어떤 속옷을 입고 있을지, 몸 어디에 문신이 숨어 있는 건 아닐지, 티셔츠는 어떤 식으로 벗는지(팔을 X자로 엇갈리게 해서 제법 우아하게 티셔츠를 벗는 여자에 대한 환상 같은 게 포함될 수도 있다), 내 바지를 벗길 땐 어떻게 행동할 지…. 그렇게 옷을 벗고 벗기면서 마침내 벌어지고 드러나는 일들을 모두 포기할 순 없다. 덕분에 옆에 가지런히 눕든, 한쪽이 위로 올라타든, 그 결정적인 순간의 침대에선 황홀한 와중에도 좀 신경이 쓰인다. 이걸 벗었을 때 나는 너에게 지금과 똑같이 매력적일까? 그렇다면 너는? 시각적 흥분은 촉각을 느끼기 전 페니스의 강직도와도 연결되기 마련. 순대 같이 축 늘어진 모양새로 뭔가를 시작하고 싶진 않다. 속옷을 벗자마자 벌떡 일어서는 모습을 나도, 그리고 너도 기대할 테니. 

다행스럽게도 일단 몸과 몸이 닿고, 손과 입이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섹스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뭘 자꾸 살펴보고 재기보다 그저 눈을 감고 몸의 감각에 충실해지는 시간. 가슴이 큰 여자와는 뭘 더 할 수 있고, 페니스가 긴 남자와는 뭘 더 할 수 있다는 동물적 자각이 눈앞의 아찔한 광경을 이겨내고 마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섹스가 끝났을 때,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대개 남녀는 알몸으로 남는다. 예뻤던 그 옷도, 입은 채로 하고 싶던 그 옷도(그래서 섹스를 시작할 땐 입고 있던) 결국은 훌러덩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뜨거워진 서로의 몸을 안고 잠자리에 든다. 역시나 알몸으로 깨어날 아침까지. 오늘 뭘 입고 나갔는지도 까맣게 잊고.

    에디터
    유지성
    ILLUSTRATION
    BUZ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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