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길

올해 프로야구 10개 구단은 무려 팀당 144경기를 치러야 한다. 타고투저는 여전해 보인다. 어깨가 더욱 무거워진 불펜 투수들의 새 시즌을 조목조목 들여다봤다.

Q. 10개 구단 중, 불펜 전력으로만 4강을 뽑는다면?

“이건 뭐 불펜이 아니라 프라이팬이야, 프라이팬.” 지난 시즌 중 한화 김응용 감독은 선발진이 호투하고도 연이어 구원진이 무너지자 길게 한숨을 내쉰 뒤 그렇게 말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지난해 한화 구원진은 평균자책점 6.29로 경기 후반 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궜다.

프로야구 팀 성적은 구원진이 불펜이 되느냐 아니면 프라이팬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지난해 4강 팀 가운데 LG(4.22), NC(4.34), 삼성(4.76)은 구원진 평균 자책점 1~3위에 올랐다. 예외가 있다면 이 부문 5위의 넥센(5.13) 정도였다. 반대로 나란히 시즌 8위와 9위에 그친 KIA(5.71)와 한화는 구원진 평균자책에서도 사이좋게 밑바닥에 머물렀다.

야구 전문가들은 올 시즌에도 삼성과 LG의 구원진이 가장 안정적이라 평가한다. 두 팀의 불펜엔 부상자도 없고, 투수들의 구위도 작년 못지않다. 물론 지난해 세이브 성공률 70퍼센트대에 그친 두 팀의 마무리투수가 어떤 성적을 내느냐가 변수다. SK와 롯데 역시 불펜진이 매우 강해졌다. SK는 기존 마무리 정우람이 돌아왔고, 윤길현 역시 호투를 거듭하고 있다. 시즌 중반 좌완 박희수와 강속구 투수 서진용이 합류한다면, 144경기라는 장기 레이스를 치르는 데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하다. 롯데는 기존 불펜투수들의 약진과 더불어 두산의 마무리 출신 정재훈이 가세했다. 사이드암 홍성민의 분투로 좌완, 우완, 사이드암이 모두 포함된 다채로운 불펜진을 구성하게 된 것도 장점이다.

변수가 있다면 한화다. 한화는 FA 권혁을 영입하며 셋업맨 고민을 해결했고, 스프링캠프에서 윤규진이 ‘오승환급’ 구위를 자랑하며 마무리를 맡게 됐다. 김성근 감독의 성향상 선발 투수가 불펜에 합류할 수도 있다. 이기고 있어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던 한화 팬들이 이제 좀 느긋하게 경기를 지켜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 박동희(<스포츠 춘추> 기자)

 

Q. 불펜 운용은 곧 감독의 고유한 전술이기도 하다. 올 해는 무려 6명의 감독이 새로운 팀의 사령탑에 올랐다. 감독 교체로 지난 시즌과 비교해 불펜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기대할 만한 팀이 있을까?

김성근 감독은 정규 시즌에서 단기전식 투수 운용을 펼친다. 위기가 온 다음이 아니라 오기 전에 두 박자 빠르게 투수를 바꾼다. 꼭 잡아야 하는 경기에선 가진 자원을 전부 쏟아 붓는다. 투수 교체를 통해 흐름을 끊는 데도 능하다. 이런 운용을 포스트시즌이나 중요한 경기만이 아니라, 시즌 시작부터 계속하는 게 김성근 감독의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김 감독은 SK 시절 큰 성공을 거뒀다. 한화 사령탑을 맡은 올 시즌에도 김성근 스타일은 여전하다. 권혁과 박정진은 4월 9일까지 팀이 치른 9경기 중 7경기에 등판했다. 마무리 윤규진은 팀 내에서 네 번째로 많은 이닝을 던졌다. 선발요원인 유창식, 배영수, 송은범은 구원투수로 한 차례씩 마운드에 올랐다. 한화가 9경기에서 기용한 투수는 51명이다. 경기당 평균 5.67명. 10개 팀 중 제일 많다. 즉, 한화는 매 경기가 한국시리즈 같다.

다만 이 방식이 투수진이 풍부하던 SK에서처럼 한화에서도 잘 통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권혁은 리드한 상황은 물론 1점 뒤진 상황, 점수 차가 벌어진 상황에도 나오는 중이다. 그만큼 믿고 쓸 투수가 부족하다는 증거다. 4월 8일 LG전에서 이틀 연속 등판한 권혁은 정성훈에게 역전 투런포를 허용했다. 삼성 시절 권혁은 거의 연투를 하지 않은 투수다. 4월 7일 많은 투구 수를 기록한 윤규진은 9일 경기에서 블론 세이브를 저질렀다.

한편 김용희 감독이 부임한 SK는 지난해보다 불펜진을 대폭 보강했다. 정우람이 군에서 복귀했고, 몇 년간 육성한 젊은 투수들이 가세해 선수 기용 폭이 넓다. 김용희 감독은 철저한 ‘시스템 야구’를 주창했다. 실제로 4월 9일까지 SK는 윤길현(5경기)을 제외한 모든 불펜투수가 똑같이 4경기씩 등판했다. 대부분 경기수보다 투구 이닝 수가 적은 것도 눈에 띈다.

김기태 감독이 이끄는 KIA 불펜진도 눈길을 끈다. 김 감독은 LG 감독 시절 선발 에이스 봉중근을 과감히 마무리로 전환해 성공을 거뒀다. 올해도 ‘90억 투수’ 윤석민을 마무리로 기용하는 결단을 내렸다.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낭비지만, 김 감독은 돈보다 좋은 불펜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글 / 배지헌(baseball-lab.com 운영진)

 

 

Q. 선발진의 함량을 따져본다면 불펜이 가장 과부하가 걸릴(달리 말하면 불펜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팀과 불펜이 가장 한가할 팀은 어디라고 보나?

지난해 선발 평균자책점 1위(4.26)였던 NC는 불펜 자 책점 역시 2위를 기록했다. 선발자책점 2위 삼성은 불펜자책점 3위, 선발 4위를 기록했던 LG는 불펜 1위를 기록했다. 반면 선발 7위 SK는 불펜도 7위, 선발 8위 기아는 불펜도 8위였다. 이렇듯 선발과 불펜은 상호보완적 관계다.

올 시즌 10개 구단은 평균 4.94명의 투수를 등판시키고 있다. 작년에 비해 0.7명이 늘었다. 불펜이 더 바빠진 것이다. 더욱 세분화되는 추세라 말할 수도 있다. 코칭스태프는 타자의 성향, 경기 흐름에 따라 어울리는 투수를 투입 하려 한다. 그러니 뛰어난 투수 한두 명의 활약도 중요하지만, 양적으로도 풍부해야 한다. 

그렇다면 올 시즌 투수진이 가장 탄탄한 팀은 어디일까? 삼성은 권혁이 팀을 떠나긴 했지만 여전히 임창용, 안지만, 권오준이 건재하다. 거기에 김건한, 박근홍, 신용운 역시 제몫을 해내고 있다. 또한 투수 유망주들을 꾸준히 잘 지켜온 덕분에, 불펜에 부상 선수가 발생했을 경우 곧바로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다.

반대로 신생팀 KT는 질적인 문제를 떠나, 절대적인 투수의 양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팀들이 40명 이상 투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KT는 투수가 37명뿐이다. 8경기를 치른 현재 KT의 불펜 평균자책점은 4.25(리그 4위)로 나쁘지 않지만, 선발진 평균자책점은 7.32나 된다. 이렇게 허약한 선발진은 시즌이 진행될수록 불펜에 큰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한편 KIA는 올해 투수 엔트리를 대폭 늘렸다. 43명의 투수를 확보하며 미리부터 시즌을 준비했다. 전적으로 불펜이 강해졌기 때문이라 볼 수는 없지만, KIA는 시즌 초 기대보다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올 시즌 각 팀은 작년보다 16경기가 더 늘어난 144경기를 치러야 한다. 여전히 선발투수들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평균 5이닝가량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 충분한 불펜 투수 없이는 결코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 글 / 김태우(야구 캐스터) 

 

Q. 불펜에서 잘 던지면 선발로 가고, 선발에서 못 던지면 불펜으로 가던 시대는 끝난 듯하다. 흔히 얘기하는 심리적인 부분과 빠른 공을 제외하고, 불펜 투수에게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선발투수들은 평균적으로 75구를 던지고 나서부터 근피로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한 경기 투구수가 많은 선발 투수의 근피로도가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투구수는 적지만 자주 등판하는 불펜 투수에겐 연투 후 회복능력이 중요하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통상 한 번에 30~45구를 던지고 나면 1일 휴식, 45~60구를 던졌을 때는 2일 휴식, 60~75구를 던진 뒤엔 3일 휴식을 권장한다. 실제로 불펜 투수들은 연달아 여러 경기에 출전 한 뒤 구속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회복이 덜됐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 투수를 혹사시키는 일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회복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불펜 투수로 꾸준 히 좋은 활약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불펜 투수들은 선발과 달리 한 경기에 한 번 정도 같은 타자를 만날 뿐이다. 그러니 타자를 현혹하는 다양한 변화구보다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구종 하나를 가다듬는 편이 낫다. 게다가 불펜 투수들은 위기 상황에 마운드에 오르는 일이 잦다. 그럴 땐 더욱 삼진을 유도할 수 있는 확실한 주무기가 필요하다. 

투구폼 역시 선발과 불펜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투구폼이 부드러운 투수들은 근피로도가 천천히 쌓인다. 반면 역동적인 선수들은 근육이 빨리 지친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는 발바닥, 무릎, 골반, 척추,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순으로 힘이 전달된다. 그리고 그 사이의 연결이 원활해야 위력적인 공을 뿌릴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와일드’한 투구폼은 어느 한 부분의 과부하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자연히 오랫동안 같은 강도의 힘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니 선발보다 짧은 이닝을 ‘풀 파워’로 책임지는 불펜이 더 적합하다. 글 / 최원호(SBS Sports 야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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