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남자, 제이미 벨

벼락처럼 뜨거운 로스앤젤레스의 여름 어느 날, 제이미 벨은 쉬지 않고 춤을 추었다.

칼라에 자수 장식을 넣은 화이트 코튼 포플린 셔츠, 핀 스트라이프 울 팬츠, 레터링 장식 타이, 모두 디올 옴므. 

칼라에 자수 장식을 넣은 화이트 코튼 포플린 셔츠, 핀 스트라이프 울 팬츠, 레터링 장식 타이, 모두 디올 옴므.

웨스트 할리우드 선셋 스트리트, 도미노처럼 세워진 영화와 드라마 포스터들 사이로 성조기를 높이 든 제이미 벨이 보였다. 흡사 남자 잔다르크 같은 이 사진은 지금 미국에서 한창 방영 중인 드라마 <턴 시즌 2>의 포스터다. 미국 역사상 첫 번째 스파이에 대한 드라마로, 제이미 벨이 그 스파이 역을 맡았다. 비장한 포스터 속 그의 얼굴엔 <빌리 엘리어트>나 <할람 포>, <틴틴>에서의 순진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긴, 코코아파우더처럼 덮여 있던 주근깨는 따뜻한 우유 같은 피부에 녹아버린 지 오래고, 이젠 두 살배기 아들의 육아가 차기작보다 중요한 일이 됐으니까. 그러니 제이미 벨의 무구한 어린 얼굴이나 탄광촌 출신 발레리노 얘기를 하는 건 진부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가 열세 살에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건 한 번 더 얘기해야겠다. 당시 후보가 러셀 크로, 톰 행크스, 제프리 러쉬, 마이클 더글라스였다는 사실도. 물론 <빌리 엘리어트>가 저예산 영화이기 때문에 오스카와 골든글러브에선 상을 못 받을 거라는 그의 발칙한 수상 소감도 함께 말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큰 ‘사고’를 친 제이미 벨은 흔히들 말하는 아역 배우의 저주에 걸리지 않았다. 아직 카메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 든 사진이나, 멍든 눈으로 가십지와 인터뷰를 한 여자친구, 두 손이 결박된 채 자동차 본네트에 일그러진 얼굴로 엎드려 있는 뉴스 영상에서 그를 본 사람은 없다. 한 번의 결혼과 이혼, 그저 그런 소소한 스캔들. 그게 영화 잡지 외의 다른 데서 그를 볼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드라마’가 빠진 평범한 이미지와 달리, 영화 속 그의 삶은 드라마틱했다.

<할람 포>의 관음증에 빠진 나약한 소년, <디어 웬디>의 아웃사이더, <님포매니악 2>에선 채찍을 휘둘러 성감을 찾아주는 치료사, 그리고 <판타스틱 4>의 괴력의 바위맨까지. 그러고 보니 그가 드디어 액션 히어로 영화를 찍었다. 그가 오래전부터 진심으로 원했던 역할. 비록 제이미 벨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능력인 순간 이동 기술은 없지만, <판타스틱 4>의 더 씽은 반전의 매력을 가진 독특한 ‘영웅’이다. 이 지점에서 제이미 벨이 라스 폰 트리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티븐 스필버그, 피터 잭슨 같은 그의 인생의 또 다른 ‘영웅’들을 서른 이전에 만났다는 얘기도 슬쩍 더하고 싶다.

 

‘In Between Visions’ 프린트 회색 코튼 저지 스웨트 셔츠, 화이트 코튼 포플린 셔츠, 울과 실크가 섞인 회색 팬츠, 모두 디올 옴므.

‘In Between Visions’ 프린트 회색 코튼 저지 스웨트 셔츠, 화이트 코튼 포플린 셔츠, 울과 실크가 섞인 회색 팬츠, 모두 디올 옴므.

 

선인장도 녹아버릴 것 같은 뜨거운 날, 커버 시티에 있는 불필요하게 큰 스튜디오에서 제이미 벨을 만났다. 잠깐 현기증이 일었다. 독한 위스키 병처럼 어두울 것 같았던 그의 얼굴은 환타처럼 밝았고, 목소리는 교회 첨탑처럼 높고 뾰족했다. 그래서 의심하기도 했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아니면 더 좋은 걸 먹었을 수도 있고.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이 그가 쉼 없이 재잘대고 떠든다는 이유로 종달새 같다고 했던 게 번쩍 생각났다. 촬영장에서 그는 한도 끝도 없이 말을 했다. 이미 대답한 얘기, 묻지도 않은 얘기, 별일 아닌 얘기, 별별 얘기. 대체로 무난하고 선선한 그는 촬영용 의상에 대해선 까다로웠다. “전 원래 눈에 띄는 무늬나 눈부신 색은 잘 안 입어요. 그게 사진 촬영용이라고 해도요.” 브루스 웨버와의 화보, 프라다 캣워크에서의 제이미 벨을 생각하면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다. 어떤 순간의 그는 전문 모델처럼도 보였으니까. 촬영용 의상은 줄무늬, 체크, 크레파스 무늬와 볼펜 무늬 같은 것까지 그가 절대 입지 않는 종류의 옷이었지만, 다행히 합의점을 잘 찾았다. 지난 사진 촬영 때 겪었다는 사이즈 문제를 고려해, 모든 의상을 제이미 벨에게 완벽하게 맞춰놓았으니까. “근데 어쩜 이 옷들은 저한테 이렇게 꼭 맞죠? 생전 처음 보는 옷인데, 원래 내 옷 같아요. 근데 이 옷엔 뭐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그는 첫 번째 옷을 입자마자 과장된 제스처가 익숙한 뮤지컬 배우처럼 발끝을 이용해 핑그르 돌았다. 촬영 내내 이런 몸짓을 반복하다 보니, 구두 바닥이 스크루지의 것처럼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셔츠 소매를 야심차게 어깨까지 걷어 올리려는 계획은 팔꿈치에서 매번 좌절됐다.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가 있는 아빠라면, 별다른 운동 없이도 팔뚝이 이렇게 돼요.” 그가 20년 이상 아스널의 팬이자 서포터인 점을 기억하면 그의 굵고 단단한 몸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고. “전 영국인이잖아요. 어떻게 축구를 안 좋아할 수 있겠어요. 제 몸에는 아스널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비장하게 말할 땐 특유의 영국 억양이 두드러졌다. 사실 제이미 벨의 수다보다 더 빠른 건 그의 몸이었다. 스튜디오에 흐르는 8박자의 음악을 16박자로 쪼개 쉴 새 없이 춤을 추는데, 옷을 바꿔 입을 때마다, 음악이 바뀔 때마다, 춤이 다 달랐다. 드릴 만큼 빠른 속도로 발을 굴러 탭댄스를 췄고, 양손바닥과 팔꿈치는 나무 상자를 만나자 드럼 스틱이 됐다. 그의 기타 실력이 나쁘지 않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예전엔 라디오헤드를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인사이드 르윈>의 오스카 아이삭이 부른 노래를 연주해요.”

촬영은 제이미 벨의 스텝처럼 빠르게 진행됐다. 그가 점심으로 주문한 퀴노아를 곁들인 구운 닭가슴살과 채소 구이로 구성한 건강식이 채 차려지기도 전에, 제이미 벨은 자신이 입고 온 늘어진 티셔츠와 낡은 회색 진으로 갈아입고는 구겨진 검정 운동화의 끈을 다시 묶고 있었다. 순간, 반나절 반짝 만나보고는 제이미 벨이 누군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그는 짧게 답했다. “본드요, 제임스 본드.” 다행히 총을 꺼내 들진 않았다.

 

와이드 스트라이프 테크노 코튼 니트 탱크톱, ‘Generation Civilisation’ 프린트 화이트 코튼 포플린 셔츠, 핀 스트라이프 울 팬츠, 모두 디올 옴므. 

와이드 스트라이프 테크노 코튼 니트 탱크톱, ‘Generation Civilisation’ 프린트 화이트 코튼 포플린 셔츠, 핀 스트라이프 울 팬츠, 모두 디올 옴므.

 

핀 스트라이프 투버튼 수트, 스트라이프 코튼 니트 탱크톱, 스트라이프 셔츠, 메탈 장식의 카프 스킨 더비, 모두 디올 옴므.

핀 스트라이프 투버튼 수트, 스트라이프 코튼 니트 탱크톱, 스트라이프 셔츠, 메탈 장식의 카프 스킨 더비, 모두 디올 옴므.

 

핀 스트라이프 투버튼 수트, 스트라이프 코튼 니트 탱크톱, 스트라이프 셔츠, 메탈 장식의 카프 스킨 더비, 모두 디올 옴므. 

핀 스트라이프 투버튼 수트, 스트라이프 코튼 니트 탱크톱, 스트라이프 셔츠, 메탈 장식의 카프 스킨 더비, 모두 디올 옴므.

 

화이트 코튼 포플린 셔츠, ‘In Between Visions’ 프린트 자카드 크루넥 반소매 니트, 회색 울 팬츠, 모두 디올 옴므. 

화이트 코튼 포플린 셔츠, ‘In Between Visions’ 프린트 자카드 크루넥 반소매 니트, 회색 울 팬츠, 모두 디올 옴므.

‘Generation Civilisation’ 프린트 네이비 블루 코튼 포플린 셔츠, 블랙 울 팬츠, 모두 디올 옴므.

‘Generation Civilisation’ 프린트 네이비 블루 코튼 포플린 셔츠, 블랙 울 팬츠, 모두 디올 옴므.

 

 

하운드 투스 스리피스 수트, ‘In Between Visions’ 프린트 화이트 셔츠, 메탈 장식의 카프 스킨 더비, 모두 디올 옴므.

하운드 투스 스리피스 수트, ‘In Between Visions’ 프린트 화이트 셔츠, 메탈 장식의 카프 스킨 더비, 모두 디올 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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