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약인가?

가짜 백수오 논란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음식이 모두 약재이길 바라는 것일까? 우리의 식문화를 통제하는 건 허술한 영양학자들일까?

음식은 음식일 뿐, 영양소 덩어리가 아니다. 이 주제로 칼럼을 쓰는 일은, 적이 어디서 몰려올지 가늠할 수 없는 사방이 뚫린 벌판에 서서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얼추 비슷하다. 화살로 겨냥하고 싶은 적의 실체는 아래 나열하는 책의 제목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모두 대형 서점의 ‘건강’ 코너에서 한꺼번에 발견한 책이다. <놀라운 마늘의 약효>, <뇌를 위한 파워푸드>, <의사도 못 고치는 만성질환 식품으로 다스리기>, <탄수화물은 독이다>, <몸에 좋은 색깔음식 50>, <내 몸에 약이 되는 음식>, <병 안 걸리는 식사법>, <한국인 무병장수 밥상의 비밀>, <음식이 병을 만들고 음식이 병을 고친다>, <신이 내린 슈퍼푸드 생강이 약이다>.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제목도 있지만, 이 책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비슷하다. 음식에는 좋은 영양이 포함돼 있어서, 잘만 챙겨 먹으면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과연 음식은 몸에 늘 이로울까? 몸의 일부를 특별히 좋게 만드는 식재료라는 것이 있을까? (심지어 뇌가 좋아질 정도로?) 음식으로 몸을 보신하고 치료한다는 그 어정쩡하고 안일한 가정에 화살을 쏘아보고 싶다. 산업적, 정치적, 관념적 맞바람이 순순하진 않겠지만….

매달 음식 기사를 쓰면서 각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하나 있다.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때, 널리 알려진 그것의 (좀 과장된) 효능을 쓰지 않기 위해 참는 일이다. 기사에 대한 취재가 부족하거나 글이 막힐 때, 식재료의 효능을 나열하면 쉽게 부연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봄이 제철인 주꾸미를 소개하면서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서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타우린이 많아 시력과 근육에 좋고 간세포를 보호하며 면역력 증강에도 도움이 된다’라고 쓰면 얼마나 간편한가? 효능이 정말로 입증된 것도 아니고 실제 경험해본 것도 아니지만, 인터넷 뉴스나 관련 서적 위를 부유하는 정보를 끌어다 음식 옆에 붙여놓는 건 매우 쉽다. 하지만 TV 속 몇몇 맛집 프로그램과 건강 프로그램은 이 달콤한 유혹에 완전히 빠져버린 듯하다. 특히 오후 6시를 전후해 방송되는 맛집 프로그램은 요리를 소개하면서 식재료의 효능 칭송에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주꾸미를 시뻘건 양념에 볶고 지지면서, 혹은 삼겹살과 주꾸미를 샌드위치처럼 젓가락에 한가득 끼운 채로 해맑게 웃으며 “주꾸미가 건강에 좋다”고 말하는 식이다. 영양이 가득한 음식이 맛있는 음식이라는 환상에까지 다다르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먹은 주꾸미가 정말 건강에 유익할까? 영양학자를 비롯, 미디어와 전문가가 외치는 식품의 효능은 모두 진실일까? 물론 아무런 근거도 없이 효능을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식재료 속에 들어 있는 성분을 찾고, 그 성분이 체내에서 내는 효과를 이어 붙여 효능을 정의한다. 하지만 물음표가 자꾸만 떠오르는 몇 가지 구멍을 발견했다. 첫 번째, 그 누구도 효능을 얻기 위해 먹어야 하는 ‘양’에 대해서는 일러주지 않는다. 정말 몸에 좋은 성분이 그 재료에 들어 있다면, 그것을 얼마나 섭취해야 효과를 발휘하는지도 알려줘야 한다. 대부분의 음식에 든 미량의 영양소들이 미디어나 전문가가 말하는 것만큼의 효과를 내려면 생각보다 많은 양을 섭취해야 한다. 좋은 영양소만으로 구성된 식품은 없다. 좋은 영양소를 섭취하려고 많은 양을 먹다 보면, 몸에 별로 득될 것 없는 다른 요소까지 함께 먹을 수밖에 없다. 함께 섭취하는 수많은 칼로리는? 그럼 그만큼의 음식을 먹는 것이 약을 먹는 것보다 더 효율이 높다고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영양소의 ‘균형’의 중요성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적인 비율이 중요하다는 것을 빠뜨린다. 이를테면 포화지방산을 줄여 불포화지방산과 섭취 균형을 맞추라는 말보다는, 무조건 아보카도, 고등어 등에 든 불포화지방산이 몸에 좋다는 말로 단순화한다. 불포화지방산만 놓고 보더라도 이 오류는 또 발견된다. 고등어, 들기름에 많이 함유된 오메가 3 지방산과 콩기름과 참기름에 많이 포함된 오메가 6 지방산의 비율을 1:4 이하로 섭취하라고 권장하는데, 한국인은 식습관상 그 비율이 1:10을 훌쩍 넘는다. 오메가 3 지방산 섭취의 균형을 맞추라는 권고는 미디어의 깔대기를 거치면서 오메가 6 지방산보다는 오메가 3 지방산이 몸에 좋다는 이원론적 처방으로 바뀌고 만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미디어와 전문가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이해한다. ‘요리’의 상황을 배제하고 받아들인다. 재료와 함께 먹는 다른 음식에 대해서는 안 먹은 척, 못 들은 척 간과하는 걸까? 청양고추에 함유된 캡사이신이 지방 분해 효과가 있다면서 철판볶음밥에 청양고추를 듬뿍 넣는다고 다이어트 효과가 있을까? 양파를 넣고 우린 와인을 마시면 피부 트러블 완화, 노화 지연, 피로회복, 혈액순환 개선이라는 만병통치약 수준의 효능을 보인다는데, 양파와인은 (간에 해로운) 술이 아니던가?

우리는 이렇게 영양에 빠져 산다. 그게 팔리니까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는다. 현대사회의 기업은 현대인의 의심과 불안을 먹고 자란다. 보험상품도 화장품도 식품회사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니 일단 대비하고 보자, 바르고 보자, 먹고 보자…. 영양을 내걸었지만 실제론 돈벌이에 급급한 거대 식품 회사들의 횡포를 까발리는 논문과 기사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건재하다. 암암리에 ‘영양주의’가 최고의 마케팅 도구로 통하고 있는 셈이다. <마이클 폴란의 행복한 밥상>의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폴란은 ‘영양주의’를 단단히 경계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책을 통해 ‘영양주의’는 명확하게 검증된 바 없고(그의 말에 따르면 식품 연구 자료는 오히려 영양이 건강과 상관관계가 미비하다는 쪽으로 결론 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널리 퍼진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설명한다. 가공식품계의 큰손인 스티브 군드럼은 ‘영양주의’의 수혜자이자 조력자다. “식품회사는 과학을 다루는 회사가 아니다. 연구보다는 개발이다. 소비자에게 참신한 무엇으로 판을 흔드는 것이다.” 2년 전,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슈퍼푸드 케일의 유행이 미국을 강타했을 때 식품회사는 모두 그 채소가 다른 어두운 잎채소와 비슷하다는 걸 알면서도 소비자의 귀와 눈을 사로잡는 이 재료로 판을 흔들었다.

비단 거대 식품회사의 일만도 아니다. 지난 달, ‘GQ Table’ 기사의 취재를 위해 재래시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상인들도, 할머니들도, 그간 미디어가 외쳤던 그 ‘영양주의’를 쉼 없이 내뱉었다. 의사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닌 그들까지 안토시아닌, 아미노산 같은 단어를 정말 외야 할까? 이 채소가 어떻게 요리하면 맛있는지, 이 생선이 어느 철에 맛있는지, 이런 이야기는 “TV에서 이거 좋다고 많이 나왔어”로 대체되고 말았다. 모두가 단단히 떠받치고 있는 ‘영양주의’는 생각보다 빈곤한 믿음이다. 그동안 유행처럼 우리를 스쳐간 수많은 건강식품의 흥망성쇠로도 그걸 짐작할 수 있다. 헛개나무, 블루베리, 가시오가피, 영지버섯, 방울다다기양배추, 동충하초, 차가버섯 등 갑자기 확 뜨고 진 주인공들을 기억하나? 만병을 치료할 것처럼 칭송하던 식재료의 인기는 왜 오래가지 못했을까?

‘영양주의’로 피곤한 의외의 인물은 조선시대 허준과 허균이다. 허준의 <동의보감>과 허균의 <도문대작> 등은 현대인의 ‘영양주의’의 증거로 활약하느라 책도 문장도 죄다 너덜너덜해졌다. ‘영양’이라는 예쁜 포장에 ‘전통’이라는 달콤함까지 끼얹으면 허약했던 ‘영양주의’는 한층 그럴싸해진다.

그리고 가짜 백수오 논란이 터졌다. 공고했던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믿음의 크기만큼 배신도 쓰라렸던지, 온 나라가 며칠을 백수오 이슈에 시달렸다. 중국 <중약대사전>과 이제마가 쓴 <동의수세보원>의 표기가 엇갈리면서 혼란은 가중됐고, 업체들의 기만 행위로 문제가 깊어졌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은 믿었던 신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봤다. 만약 가짜 백수오 사건을 통해 소비자들이 환불하고 싶은 것이 지나친 ‘영양주의’라면, 하루빨리 전액 환불하기를 권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