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말하는 남자 김제동

2015.06.04GQ

수줍어 하면서, 눈만 맞으면 대화가 시작됐다. 묻고 대답하고, 듣고 공감하는 그런 시간.

 

터틀넥 니트는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치노 팬츠는 메이슨스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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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제동은 다 좋은데 그것만 걸린다는 거니까? 근데 어쩔 수 없어요.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자기 생각을 가지고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미보고 “넌 왜 이렇게 빨갛니” 그러면 장미가 밤새 괴로워하면서 ‘하얘져야지’ 결심한다고 하얘지는 것도 아니고. 자기 색깔을 선명하게 가지고 가야 멀리서 보면 예쁜 꽃밭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김제동을 수식하는 말들, 예를 들면 ‘소통령’, ‘힐링 전도사’ 같은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힐링, 멘토 이런 것. 특히 제가 싫어해요. 그 다음에 뭐 소통. 제가 그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들이 열풍이 되는 순간, 마케팅 용어가 되는 순간 사실 그 자체의 힘은 없다고 봐야 해요. 힐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겨워졌잖아요? 멘토도 마찬가지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건 뭐 병원에 갔는데 “아이, 참 아프시구나” 그러면서 진통제만 주는 거죠. 왜 열이 났는지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왜 열이 났는지 아는 그 과정은 고통스럽거든요. 직면해야 되니까. 직면하려면 사실 정치 얘기밖에 없어요. 그래서 정치 얘기는 앞으로도 꾸준히 할 것이고, 안 할 수 없고.

방송을 통해서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사람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도와주는 것. 우리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쉴 때 ‘아, 나무가 나를 힐링시켜줬다’ 나무는 ‘아, 내가 이 사람을 힐링시켜줬다’ 그런 생각 자체가 없잖아요? 마치 아까 손수건을 전해주는 것처럼 아무 의도 없이 서로 느끼는 것이 돼야지, 힐링을 시켜주는 사람이 따로 있고 힐링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구조 자체가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답은 다 자기 안에 가지고 있어요. 자기 문제에 대해서 자기보다 더 고민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다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고 그것을 확인해주고 지지해주는 것이지, 누군가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미 그런 사람 얘기 들을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숱한 집회에 참가하면서 “나를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갔다”고 했죠? 그래도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그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정작 김제동 본인의 감정은 어떻게 감당하고, 감당해 왔는지 궁금했어요. 김제동도 힘들 거다. 힘들죠. 제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누구 무릎 베고 이렇게 하루 종일 있는 거예요. 누구나 그렇게 무조건적인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곁에 한 사람씩만 있으면 다 사는 거죠. 우면산 톨게이트 지날 때 요금 받으시는 분이 “김제동 씨 내가 진짜 좋아하는데, 보내기 싫다” 그러면서 영수증을 손에 꼭 쥐고 있을 때. 세월호 어머님께서 “옷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우리한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데.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데” 그런 얘기할 때. 그런 걸로 문득문득 사는 거예요. 깜깜한 산길 가다가 정말 여기 사람이라곤 없을 것 같은데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탁 들리면 ‘아, 여기 사람 사는구나’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다행스럽게도 문득문득 나타났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문득문득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지만 세월호나 이런 문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힘들어요. 그게 더 힘들죠.

김제동 씨 본인이? 그럼요. 제가 거기서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있다가 정말로 꼭 가서 머릿수 채우고 앉아 있고 하는 것…. 솔직히 거기 무슨 당, 무슨 연대 이런 깃발들 다 의미 없어요. 저는 그런 깃발들이 거기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자기 단체를 드러내려고 하는 그러한 모습들이 오히려 거기 진짜로 모인 사람들, 학생들의 눈망울을 덮어버릴 때가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노고를 인정하지만 최소한 그럴 땐 깃발을 잠시 내려놓고 사람으로 그냥 모여 있으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이야기가 너무 깊어지고 진지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목소리…. 마지막까지 서로 구명조끼를 챙겨줬던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지, 살면서 내가 진짜 함께 살 부딪치고 살아가야 될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다른 목소리까지 신경 쓸 틈이 별로 없어요. 왜 불편하게 사냐 그러는데 이게 저한텐 편한 거예요.

김제동 같은 이상주의자가 살기에 얼마나 힘든 세상인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지금의 이상주의자는 어디를 보고 가는 거죠? 내가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요. 그게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소통 이런 거 저는 잘 못해요. 다른 사람들 생각과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만 되지 않는 일이라면 가는 것이 옳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요. 다만 다른 사람한테 그것이 옳다고 얘기하진 않아요. 억지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줄이고 있어요. 편해졌어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진짜 갖고 싶은 건 있죠? 좋은 물건.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것. 아주 갖고 싶은 건 지금 다 가지고 있어요. 그런 생각은 했어요. 우리 옛날에 시골 살 때 명절날 한 번씩 오는 멋진 삼촌 있잖아요? 멋있는 차 타고 탁 내려서 장지갑 탁 꺼내서 1만원짜리 턱턱 주고. 저 삼촌이 뭘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약간 껄렁한데 되게 자유롭고. 그렇게 아이들한테 멋진 삼촌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은 해요. 애들이 딱 보고 “오우, 멋있다” 그러는 삼촌. 그래야 애들하고 대화가 더 잘될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봐도 어렸을 때는 지질해 보이는 사람하고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애들하고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도 동네에서 중고등학생만 지나가면 “야, 어디 가냐?” 시비 걸고. 연예인 돼서 제일 좋은 점이 아이들한테 마음껏 말 걸 수 있다는 거. 그거 하나만큼은 정말 좋아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독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되게 엄격하고 또 관대하죠. 사랑이 너무 많다 보면 그렇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늘 제가 저를 혐오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자기애가 병적으로 지극했을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으니까.

어렸을 때? 내가 못생겼다고 얘기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얘기로 확인받고 싶어 하는 그런 아이였던 것 같아요. 저도 요즘은 괜찮아요. 사실 지금 그다지 힘들지 않아요. 방송에 강조되는 부분들이 있고요. 이제 제 마음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보는 김제동을 잘 꾸며주고 잘 대우해줄 거예요, 제가 그러지 못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얘를 멋있게 만들어가지고, 무대 위에 있는 김제동을 잘 도와주고 제가 옆에서 잘 보필할 거고, 자연인 김제동도 욕하지 않고 잘 도와주고. 얘들 둘을 잘 밀어줘야, 제가 지금 무슨 정신 분열이 있는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하하. 사람들하고 함께 행복해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이미 저는 받은 것이 굉장히 많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해나갈 거예요. 그래서 진짜 폼 나게 살 거예요.

지금 토크 콘서트를 막 시작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어떠세요? 쪽팔리죠. 그런데 멋있기도 하고 괜찮기도 하고. 그게 뭔 줄 모르니까 저렇게 겁 없이 했구나 생각해요. 어른들이 그러잖아요? 뭘 모른다는 걸 아는 순간 두려워지기 시작한다고. 그때는 뭘 모른다는 것도 몰랐으니까. 지금은 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그래도 아마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고, 똑같이 얘기했을 거예요.

앞으로 72시간 정도 외롭지 않게,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실 수 있게 해드릴 수 있어요. 그렇다면 뭘 하시겠어요? 저는 혼자서… 충분히 많이 있었어요. 재석이 형이 늘 저보고 그래요. 절에 간다고 그러면 “야, 너희 집이 절인데 또 어디 절을 가냐?” 하고. 72시간 동안 혼자 있으면 아마 커피숍에 가만히 앉아 있을걸요. 그게 제일 좋아요. 책 읽고, 집에 들어가서 욕조에 물 받아가지고 안에 들어가서 책 읽고. 그 책에 관해서 누구하고 얘기하고.

요즘 가장 몰두하고 있는 주제는 뭐예요? 방송 말고. 뭔가 규정짓지 말고 터놓고 한번 보는 재미가 생긴 것 같아요. 돈 많은 새끼들이 다 나쁜 새끼들 아니고, 권력 있는 새끼들이 다 나쁜 새끼들 아니고, 우리 편이라고 다 좋은 놈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좋은 놈, 나쁜 놈이 다 내 생각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이고. 그 뿌리가 어디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작업을 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요즘 제가 조금 멋있어요. 앞으로도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억지로 해야 되는 거면 안 할 거고. 나를 앞세워서 뭔가 한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멈칫하고 돌아볼 것이고. 그런데 진짜 이건 내 안에 있는 다른 뭔가가 하고 싶어 하는구나 하면 과감하게 시켜줄 것이고. 그렇게 하려고 해요.

 

줄무늬 베스트는 이스트로그, 옥스퍼드 셔츠는 인디비주얼라이즈드 셔츠, 치노 팬츠는 퀴스데 그레누이 by PBAB, 페니 로퍼는 플로셰임, 반달곰이 쓴 모자는 에콴디노 by 서프코드. 지리산 반달곰은 한사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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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정우성
    포토그래퍼
    JUN 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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