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의 의무

연예인의 몸값은 한바탕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에 상응하는 대가다. 그들의 사회적인 역할은 기부보다는 다른 데 있다.

웹툰 <미생>의 그 유명한 ‘박 과장 에피소드’는 업무상 배임죄를 다룬다. 업무상 배임죄는 회사에 소속된 자가 그 임무에 반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를 말한다. 박과장은 유례없이 큰 성과를 올리고 회사의 신임을 받으며 우쭐했지만, 여느 직장인의 삶이 그렇듯이 그 일로 딱히 경제 상황이 나아지진 않는다. 박과장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돈은 니들이 다 처먹고…. 나는 월급이나 받아가면 땡이냐….” 박 과장은 불법적인 뒷거래를 통해 “월급만 받아가면 땡”인 상황을 벗어나고 날벼락 맞듯이 파멸하지만, 그 방법이든 결말이든 흔한 경우는 아니다. 대체로 한국의 월급 생활자는 숨죽이고 버티며 사는 사람들이니까.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한국의 직장인은 첫 월급을 벗어나기 어렵다. 연봉협상이란 연봉통보이며, 회사에서 어떤 거대한 실적을 올렸든 그것의 보상은 연봉이 아닌 ‘보너스’ 형태로 지급된다. 회사는 일시적인 기쁨을 줄 뿐 장기적인 안정을 약속하지 않는다. 눈에 불을 켜고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살기 위한 방편을 모색해나간다. 가장 소극적이고 안전한 것이 저축과 투자이고, 좀 더 나은 게 자신의 전문 분야를 활용할 수 있는 부업을 찾는 것이라면, 가장 공격적인 자세는 회사를 옮기거나 시키지도 않은 일을 시도하는 모험을 거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로 꼽히는 연예인은 대표적인 고위험 고수익의 직업이다. 그 가치를 쉬이 환산하기 어려운 연예/문화라는 모호한 분야, 똑같은 공연으로 어디선 1백만원을 받고 다른 데선 7백만원을 받을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그들이 받는 보상은 월급보단 월수입에 가 깝다. 월급 생활자의 규칙에서 비켜나 있다.

행사 기획자 K는 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여러 행사를 기획하며 잔뼈가 굵었다. 인디 뮤지션부터 A급 연예인의 출연료를 훤히 꿰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진행한 지방 행사를 기준으로, 한류의 대명사인 걸그룹과 남자 솔로 가수의 출연료가 가장 높다고 했다. 3~4곡 기준 각각 2억원을 지급했다. 같은 무대에서 가장 저렴하게 공연한 건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대중들의 시야에서 조금 벗어난 걸그룹으로 1천5백만원이었다. K는 말했다. “아무래도 지방 공연이 서울 공연보다 몸값이 좀 높죠. 일정만 잘 잡으면 서울에서 몇 탕 뛸 수 있는 시간을 지방에 오면서 버리니까. 근데 A급 연예인 섭외에서는 지방이고 서울이고 딱히 중요하지 않아요. 우린 얼마다, 금액 딱 부르고 끝이거든요. 대두리 쳐볼 여지가 없어요.”

‘대두리’는 연예/문화 업계가 아닌 부동산 업계에서 통용되는 단어다. ‘대두리 친다’는 관용구로 쓰이며, ‘인정작업’이라고도 불린다. 매수인 몰래, 중개인이 매도인이 원하는 금액에 웃돈을 얹은 매매가로 거래해 자신의 몫을 챙기는 일이다. 매도인의 가게, 파리만 날려서 이제 그만 접기로 한 어떤 카페가 있다면, 중개인은 절대 좋은 매물이라고 볼 수 없는 이곳을 아주 매력적인 영업장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를테면 일시적으로 소셜커머스를 통해 반값 음료를 풀거나 아예 손님을 고용해 매장을 붐비게 만드는 식이다. 매수인이 매장을 둘러보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중개인은 골치만 썩고 있는 매도인의 5천만원짜리 가게를 3천만원에 팔아주는 것과 매수인이 5천만원짜리를 4천만원에 살 수 있게 하는 것 모두 ‘서비스’라고 여긴다. 흥정이 가능한 조건이 되기까지 자신이 작업해놓은 결과라고 본다.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서 붕 뜬 1천만원이 중개인의 몫이다. K는 기획자인 자신을 중개인으로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출연료 역시 흥정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기획자는 A급을 제외한 모든 출연자의 출연료를 흥정한다. 먼저 전화를 걸어 출연료를 확인한다. 첫 번째 전화로 섭외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담당 매니저는 당장 섭외되기를 바란다. 그 즈음에는 일정도 빡빡하고 날짜가 확정되지 않은 광고도 있어서 어렵지만 지금 결정해준다면 빼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응수한다. 기획자는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다만 지금 담당 매니저가 부른 가격보다 그의 출연료가 싸다는 건 확실히 안다.

기획자는 인맥을 동원한다. 방송국이나 신문사의 권력을 이용하기도 하고, 지인의 지인을 거치기도 한다. 웬만큼 가까워서는 통하지 않기에 효과를 보는 경우는 드물지만 쉽고 확실하게 저렴한 출연료로 섭외할 수 있는 방법이다. 출연료가 1천만원인 가수가 이 방법에 의해 차비만 받고 출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흥정은 다각도로 끈질기게 이어진다. “행사 기획자로서, 앞으로의 전망을 제시하죠. 앞으로도 이런저런 행사에서 당신을 쓸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출연자의 약점에서 출발하기도 해요. 행사의 취지가 당신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거라거나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도 약점일 수 있으니까) 그가 존경한다고 밝혔던 거장이 나온다거나 여기서 술은 원 없이 마실 수 있다거나 하는 거죠.” K가 말했다. 그는 반복적으로 인정에 호소하는 것도 의외로 확률이 높다고 했다. 이 행사를 주최하는 회장님이 당신의 엄청난 팬이며, 예산이 말도 안 되게 적지만 당신을 섭외하려고 그나마 아껴둔 금액이 이 것이며, 당신이 이 행사의 주인공인데 좀 안 되겠냐고 조른다. <협상과 흥정의 기술> 같은 고전에서 제시하는 항목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그들의 흥정이 극적으로 달라지는 건 스스로를 월급 생활자와 다른 종류의 직장인으로 규정 짓고 그 한계를 넘어설 때다. 앞서 말했듯이 흥정은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지속되는 찔러보기와 방어하기로 이루어지기에, 출연자의 매니저와 기획자는 부쩍 친밀해지곤 한다. ‘대두리’에 준하는 웃돈 거래를 논의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 ‘몸값’에 대한 자율성과 유연성이 충분히 높은 연예계에도 박 과장은 있다.

부동산 업계와 연예/문화 업계는 탄력적인 가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땅값이든 몸값이든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의 원리로 결정된다고 믿는 건 착각이다. 더 빨리 현금을 쥐고 싶어 하는 조급증, 공치는 날 없이 꾸준하게 돈을 벌기 위한 안배, 어쩌면 흥정의 결과로서 미래를 선택하는 것과 수요, 공급은 별 관련이 없다. 칼 폴라니는 오늘날 사회민주주의 이론과 통하는 <거대한 전환>을 썼고, 홍기빈은 이 책의 한국어판 번역가로서 그의 이론에 담긴 핵심을 풀어서 설명했다. “시장 경제는 묻어 들어 있는 경제적 동기만을 뽑아서 마치 인간이 그것만 가지고 움직이는 것으로 가정한다는 거예요. 경제학 교과서는 한 기업이 물건을 생산하면 그 재료를 생산하는 중간층이 모조리 다 시장으로 조직되어 있는 걸로 상정하지만, 오늘날 독과점이 아닌 시장이 얼마나 있나요. 독과점 기업조차도 이윤 극대화란 원칙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정치적인 목적에서 움직이기도 하고, 시장 점유율을 잡기 위해 덤핑을 할 때도 있고요. (< GQ 코리아 > 2009년 9월호, 폴라니에게로 가는 길)” ‘몸값’은 곧 그의 능력이 아니다.

월급은 기업이 사람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실제로 잘 먹혀들고 잘 굴러간다. 그 단면이 잘 드러나는 건 현대 경제활동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제조업 공장 노동자다. 중소기업의 제조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개 최저시급을 받는다. 2014년보다 3백70원이 올라 5천5백80원이다. 2교대로 하루 12시간, 주 1회 휴식으로 일해도 한 달에 26일을 일한다고 쳤을 때 약 1백75만원을 받는다. 여기에 회사는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장치를 더한다. 하루 12시간 노동으로 6일을 꼬박 채워야 주 수당이 붙는다. 그렇게 한 달을 꽉 채우면 월 수당까지 붙는다. 노동 강도에 비해 하찮기만 한 1백75만원의 월급은 이 수당들을 통해 그나마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와 엇비슷해진다. 이 삶에 왜 세상이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가느냐겠냐고 묻는 것만큼 무례한 일도 없다. 기업의 월급이라는 프레임에 의해 통제된다는 점에서 모든 월급 노동자는 같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누가 더 많이 가졌는가 하는 차이 뿐.

연예/문화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가진 차별성은 월급이 아닌 ‘월수입’으로 대표되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와 유연성에 있다. 무대에 올라 사람들을 뜨겁게 달구는 것도, 직캠으로 인기를 얻는 것도, 한류에 앞장서는 것도, 그래서 월수입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몸값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창의력으로 인해 높은 것이다. 그러니까 월급 노동자가 감내하는 규격화된 삶과 대비되는 자유를 사회적이고 예의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은 새로운 걸 하는 것이다. 창의력은 그들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