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조선의 소반과 현대의 사물

2015.06.18장우철

어느새 하지가 가깝다. 방정한 소반 앞에 알뜰히 앉아도 볼 일이다.

통영반 | 씩씩한 생김생김. 대번 떠오르는 말이 그렇다. 타지방 소반과 비교해 통영반에는 남성적인 뉘앙스가 우뚝한데 통으로 곧게 뻗은 네 다리가 그 핵심이다. 화려한 나전에, 버선코 모양 곡선에, 대나무 줄기 모양으로 울룩불룩하게 다듬은 장식 등 별의별 것을 더한다 해도, 그것은 강해지면 강해졌지 결코 제멋에 취해 흐느적거리지 않는다. 앞에 앉으면 절로 어깨가 펴지기 마련. 독특하게도 옆면에 커다란 원을 파내어, 마치 바다 위로 뜬 해를 연상시키는 이 통영반은 조선 후기 것으로 1천5백만원 정도.

 

파초 잎이 프린트된 넥타이는 8만9천원, 나나미카 by 스컬프.

파초 잎이 프린트된 넥타이는 8만9천원, 나나미카 by 스컬프.

 

 

 

구족반 | ‘개 구拘’ 자를 쓰니, 흔히 개다리소반이라 부른다. 실제 개의 다리 모양을 본떴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호족과 비교해) 친근하며 해학적인 맵시가 엿보이는 게 사실이다. 잔뜩 폼 잡고 에헴! 섰기 보다는, 그저 가던 길 멈추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인상. 천판은 8각, 12각, 원판이 많다. 12각 구족반은 조선 후기 것으로 1백만원 정도.

 

 

펼쳐놓은 사진집은 < Avedon : Murals & Potraits >.

펼쳐놓은 사진집은 < Avedon : Murals & Potraits >.

 

 

 

강원반 | 뭐든 강원도에서 온 물건은 투박한 멋이 있어 뵌다. 이 소반을 보면, 장식적인 데라곤 없이 그저 “나는 나무요” 한마디뿐인 것 같으니, 대개 이런 모양을 두고 ‘질리지 않는다’ 표현하는데, 과연 질려서 못 쓸 물건은 아니지 싶다. 더구나 ‘데니시 모던’ 이니 하는 말과 나란히 놓고픈 뉘앙스마저 있으니, ‘조선’을 떼어놓는다 해도 상관없을 고유하고 간결한 멋이 난다. 측면에 네모지게 파낸 구멍이 참 시원하게도 생긴 강원반은 조선 후기 것으로 2백50만원 정도.

 

 

요즘 제철을 맞은 하귤은 2천원쯤. 1980년대 관제엽서는 5백원, 회현 지하상가 내 우정사.

요즘 제철을 맞은 하귤은 2천원쯤. 1980년대 관제엽서는 5백원, 회현 지하상가 내 우정사.

 

 

 

일주반기둥이 하나라서 일주반이라 부른다. 보기에도 그렇듯이, 실제로도 많은 힘을 받지 못해서, 밥그릇, 국그릇 다 올라가야 하는 식사보다는 과일이나 탕약이나 음료 같은, 조촐하게 한 가지를 올리는 식으로 썼다. 꽃 모양 천판이 많다는 점, 다리에 섬세한 장식이 두드러진다는 점 등에서 쓰임을 짐작할 수 있는 바, 아예 나전을 화려하게 박은 것들도 있다. 꽃 모양 일주반은 조선 후기 것으로 7백만원 정도.

 

워싱 면 소재 모자는 3만6천원, 아메리칸 어패럴. 먹의 농담이 스민 듯한 메모지 ‘타워블럭’은 HAY.

워싱 면 소재 모자는 3만6천원, 아메리칸 어패럴. 먹의 농담이 스민 듯한 메모지 ‘타워블럭’은 HAY.

 

 

 

원반/두레반 | 천판과 굽이 모두 둥근 것을 원반이라 한다. 아예 천판과 굽이 한 덩어리인 것도 있다. 여느 소반보다 높이가 낮아서 간소한 느낌이 나는데, 널찍한 것을 두레반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느 소반처럼 ‘독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용도로 잔치 때도 많이 썼다. 예를 들어, 돌잔치 때 돌잡이를 하는 상이 바로 원반 형태의 두레반이었다. 근사하게 흑칠을 한 원반은 조선 후기 것으로 2천만원 정도.

 

붉은 산호는 12만원, 서귀포 세계조가비박물관.

붉은 산호는 12만원, 서귀포 세계조가비박물관.

 

 

 

나주반 | 소반은, 사람이 그리로 가는 게 아니라 그것이 사람에게 온다는 이치가 중요하다. 즉, 소반은 가볍게 편안히 손에 들려야 하는데, 그걸 가장 잘 구현한 것이 나주반이다. 여자(조선시대에 소반을 나르는 것은 거의 여자의 일이었다) 어깨너비보다 조금 넓은 크기에,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중간대가 서로 맞물리면서 다리 힘을 받치는 족대 역할까지 두루 해낸다. 그리고 천판 네 귀퉁이가 접혀 있다는 것이 나주반의 가장 큰 특징이다. 선을 한 번 꼬아놓은 듯한 중간대가 인상적인 나주반은 조선 후기 것으로 5백만원 정도.

 

 

연필은 왼쪽부터 차례대로 팔로미노, 파버 카스텔, PH, 미츠비시, 펜텔, 린튼, 스완.

연필은 왼쪽부터 차례대로 팔로미노, 파버 카스텔, PH, 미츠비시, 펜텔, 린튼, 스완.

 

 

 

호족반 | ‘소반’ 하면 떠오르는 가장 친근한 모양이 바로 호족반이다. 호랑이 다리를 닮았다 해서 호족반인데, 구족반과 비교하면 확실히 이쪽이 정돈된 멋이 난다. 천판은 천판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변형되면서 그 멋과 용도가 실로 다양하다. 12각 호족반은 조선 후기 것으로 3백만원 정도.

    에디터
    장우철
    포토그래퍼
    이신구
    소반 협찬
    나락실(02-723-9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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