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무대

보아, 엑소, 걸스데이, 샤이니, 미쓰에이, 빅뱅이 선보인 역대 최고의 무대는?

보아 ‘Hurricane Venus’ 2010년 8월 6일, KBS <뮤직뱅크> ‘Hurricane Venus’ 무대에서 보아의 몸은 다른 활동곡들에 비해 ‘콤팩트’해 보인다. 안무 또한 움직임의 폭이 크지 않다. 대신 보아는 무대의 중앙을 단단히 지키며 휘몰아치는 베이스라인을 타고 몸을 꿈틀거린다. 댄서들은 그녀의 손끝에 따라 폭풍에 휩쓸리듯 쓰러졌다 일어난다. 이쯤 되니 보아의 작은 체구가 부풀어 오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Hurricane Venus’의 무대는 방송마다 다소 편차가 있다. 안무와 보컬 모두 격한 만큼, 에너지를 조절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2010년 8월 6일 KBS <뮤직뱅크> 무대는 그중 가장 안정적이다. 캐릭터에 충실한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 연기마저 풍성하다. 거기에 브리지 부분에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찡그리며 혀를 내미는 찰나의 모습은, 이 어마어마한 퍼포먼스 머신 뒤에 인간이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보아는 일종의 ‘트랜스휴먼’ 같은 존재였다. 육신의 한계를 기술과 의지로 넘으려는 방향성은 아이돌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졌다. 앨범 커버부터 진화를 앞둔 듯한 ‘Hurricane Venus’는, 그런 보아의 완성판이었다.

 

엑소 ‘으르렁’, ‘늑대와 미녀’ 2013년 11월 22일, Mnet < 2013 MAMA > 엑소는 멤버들을 ‘질료’로 삼아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2013년 엠넷 < MAMA > 특별 무대는 엑소의 가능성을 가장 넓게 펼쳐 보여준 현장이다. 밖에서 뛰어 들어온 루한이 무대에 서면, 조형물 속에 갇힌 11명의 멤버가 보인다. 카메라는 1인칭 게임 같은 시점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이윽고 조형물 속의 멤버들이 무대 바닥으로 내려온다. 그때부터 카메라는 ‘으르렁’의 뮤직비디오처럼 안무 동선에 갇힌다. 관객 시점의 무대를 과감히 뛰어넘어 무대 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3차원을 구성한다. 집요할 정도로 장식을 더한 재편곡은 특별 무대에 맞춰 안무의 역동성을 더욱 키운다. ‘으르렁’은 브라스 소리와 함께 뮤지컬 영화처럼, ‘늑대와 미녀’는 일렉트로 하우스 사운드 편곡으로 SF 액션 영화처럼 연출된다. 그렇게 무대 속으로 직접 뛰어든 카메라는 시청자와 새로운 방식의 ‘인터랙션’을 만든다. 현장의 관객들은 무대 뒤에 위치한 카메라를 향해 춤추고 노래하기도 하는 엑소가 아쉬웠을지도 모른다. 영상을 통해서만 완전해지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엑소가 단순한 음악 그룹에 그치지 않음을 드러낸다. 춤과 노래를 소재로 기술적 수단을 활용하는 종합 미디어 작품인 것이다. 그리고 엑소는 바로 이 무대에서 가장 완전한 작품에 근접한다. 미묘 (웹진 <아이돌로지> 편집장) 

걸스데이 ‘Something’ 2014년 12월 3일, Mnet < 2014 MAMA > 엄정화의 ‘초대’를 참조한 이 곡에서 이들은 노랫말처럼 “아슬아슬하게 아찔”한 분위기를 만들려 한다. 하지만 붉은 옷을 입고 등장한 <뮤직뱅크>의 컴백 무대는 곡에 비해 과했다. 걸스데이도 이를 깨달았는지 이후로 는 주로 무채색 계열의 담백한 옷을 입었다. 대신 LED나 무대 장치의 색을 이용해 분위기를 만들었다. 바뀐 건 옷 색뿐이 아니다. 안무도 수정했다. 곡 초반부에 엎드려 각선미를 강조하는 안무는 ‘Something’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나 지상파 걸그룹 복장 및 안무 규제 때문에 두 차례 수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 2014 MAMA >의 걸스데이 무대는 각별했다. 라스베이거스의 극장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에 검정 원피스를 입은 네 멤버가 남성 댄서들과 춤을 추며 등장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Something’. 걸스데이는 다시 바닥에 엎드려 각선미를 드러낸다. 수정 전의 본래 안무다. 정확히는 본래 안무와도 좀 달랐다. 서 있는 상태에서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안무가 바닥에 앉아 다리를 벌리는 안무로 바뀌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듯한 이 장면에서 카메라가 멀리 머물거나 상반신을 비추는 데 그친다는 점이 야속할 뿐이다.

 

샤이니 ‘Everybody’ 2013년 10월 27일, SBS <인기가요> 과연 샤이니는 어떤 짓을 해도 멋있을까? 그걸 테스트하기 위해 만든 것 같은 ‘Every body’의 안무는 의외로 논리적이다. 장난감 로봇을 큰 콘셉트로 잡고 가사와 사운드를 충실하게 표현한다. “Everybody Wake Up”이란 말로 시작하는 인트로에서는 정말로 멤버가 서로를 깨워주며 일어나고 “피리 부는 사내처럼”이라는 가사에서는 멤버 키가 피리 부는 흉내를 낸다. 콤플렉스트로 장르 특유의 긁어대는 신시사이저 사운드에서는 그에 맞춰 공기를 긁고, 글리치한 사운드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태엽으로 작동하는 로봇처럼 몸에 버퍼링을 건다. 하이라이트는 EDM에서 빌드 업이라 부르는 마지막 코러스가 등장하기 직전 구간이다. 샤이니는 전대물 주인공처럼 진지하게 대형을 맞추고 사정없이 팔을 회전하며 그 소리를 표현한다. ‘Everybody’ 안무의 가장 큰 장점은 이 모든 것을 샤이니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교하게 소화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는 SBS <인기가요>가 최상의 카메라워크를 펼칠 때였다. 특히 컴백 후 세 번째 무대인 2013년 10월 27일의 무대를 추천한다. ‘Everybody’는 다섯 멤버의 움직임만으로도 밀도가 높아 화려한 무대 장치가 되레 해가 된다. 체스판을 콘셉트로 만든 이때의 무대는 담백하게 샤이니에게만 집중 할 수 있다. 하박국(YOUNG,GIFTED&WACK 대표)

 

미쓰에이 ‘Hush’ 2013년 11월 7일, Mnet <엠카운트다운> 미쓰에이의 초기작들인 ‘Bad Girl Good Girl’, ‘Breathe’, ‘Good-bye Baby’의 무대를 하나로 묶어보면 어떨까. 누워서 땅바닥을 구르고, 목과 몸통이 분리될 듯 어깨를 좌우로 털고…. 역동적인 한편 ‘애크러배틱’하기까지한 인상. 가슴 철렁하며 보는 걸그룹의 무대라기보단 박수치며 꽉 짜인 안무를 기억하는 쪽에 가까웠다. 이후 썩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한 ‘Touch’와 ‘남자 없이 잘 살아’를 지나, 미쓰에이는 처음으로 1년 이상의 공백기를 가졌다. 그리고 내놓은 ‘Hush’. 바닥에 눕고 박자를 쪼개 분주하게 움직이는 건 여전하지만, 무대엔 전에 없던 긴장이 생겼다. 몸을 직선으로 움직일 땐 빠르게, 곡선을 그릴 땐 부드럽게 강약을 조절한다. 그러니 비로소 동작 하나하나보다 그 동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수지, 페이, 지아, 민의 얼굴과 몸이 보인다. ‘Hush’는 미쓰에이가 처음으로 기물(허들처럼 가로로 세워둔 봉)을 세워둔 무대이기도 하다. 맨몸으로 모든 걸 해내지 않아도 되기에, 무리하게 누구 한 명이 치고 나올 이유도 없다. 수시로 위치를 바꾸는 가운데, 네 멤버는 골고루 제 모습을 드러낸다. 11월 7일 <엠카운트다운>은 그렇게 작심 하고 돌아온 첫 컴백 방송이었다. 빨강과 노랑을 섞어 퍼뜨린 은근한 조명, 검정 가죽 스키니 팬츠와 목부터 배까지 길게 늘어뜨린 금색 체인의 절묘한 조화 또한 그날뿐이다.

 

빅뱅 ‘할렐루야’ 2010년 11월 28일, Mnet < 2010 MAMA > 서울 올림픽 모자에 털 코트를 걸친 지드래곤과 애초에 윗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나온 태양의 대비. 그렇게 다른 지드래곤과 태양이 < 2014 MAMA >에 등장했다. 하지만 ‘Good Boy’ 무대에선 둘도 없는 친구처럼 조화로웠다. 서로를 너무 잘 안다는 듯, 각자의 공간을 양보했다. 둘 중 하나가 앞으로 치고 나오면, 다른 한 명은 반대쪽으로 움직이거나 뒤에 머물렀다. 카메라가 어딜 찍는지엔 썩 관심이 없어 보였다. 관록, 여유 같은 말은 자막 대신 객석에 앉은 다른 가수들의 표정이 대신했다. 꼭 4년 전, < 2010 MAMA >에서도 이 둘은 무대에 있었다. 그해 솔로 곡 ‘Turn It Up’을 낸 탑도 함께였다. 무대를 제멋대로 휘젓는다는 점은 요즘과 같지만, 방식은 꽤 달라 보인다. 탑이 후렴구를 부르지 않고 그저 눈을 부라리며 객석으로 걸어간다거나, ‘Turn It Up’이 끝나자마자 번뜩 등장한 태양이 탑에게 총을 겨눈다거나, 지드래곤이 그 큰 무대에서 누구의 보조도 없이 숨이 끊길 듯 랩을 퍼붓는다거나. 랩도 춤도 콘셉트도 좀 무리하면 어떠냐는 식의, 절제를 모르는 에너지. 요즘 익숙한 지드래곤의 ‘씩’ 웃는 무심한 얼굴, 탑의 익살, 태양의 눈웃음 같은 건 찾기 어렵다. 대신 사뭇 진지하게 이빨 꽉 깨물고 뛰느라 헐떡거리는, 세 멤버의 땀에 번들거리는 얼굴이 무대에 남았다. 두 < MAMA > 무대 중 어느 쪽이 낫다 말하긴 어렵지만, 어쩐지 2010년의 그 무대는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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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레코드와 농구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