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전염병과 혐오의 나날

날이면 날마다 반복되는, 그러니까 이건 일상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다. 날마다 어떠냐면, 그 사이 어디쯤에서 시시각각 시시콜콜 판단의 칼을 들어야만 한다. 좋은 것과 싫은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배워야 할 것과 신경 꺼야 할 것…. 언제나 그랬다지만, 유난히 그 판단이 녹록지 않은 요즘이다. 대번 영향을 끼치는 문제는 타인이 너무 가깝다는 데서 온다. 인터넷과 SNS가 판을 짜고, 온갖 미디어가 부채질을 하는 상황에서, 남의 식단이나 옷차림은 물론 냉장고 속 썩은 콩나물까지 보게 만든다.

이름하여 소통의 시대. 수식을 하나 달자면 ‘기이한’ 소통의 시대다. 한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이 각각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소통 이라 쓰는 소통의 시대. 개인적인 (부끄러운) 경험에 따르면, “사랑해요”와 “소통해요”를 똑같이 쓰는 스물 몇 살짜리도 있었다. 눈만 뜨면 사랑을 외치더니, 등을 돌릴 땐 “좋은 소통이었다고 생각해요”라고 카톡을 보냈다. 어이가 없는 건 잠시, 혹시 정말로 단어의 뜻을 모르는 건 아닌지 못내 궁금했다.(결국 사전은 내가 찾아보는 걸로 끝났다.)

그런가 하면 전염병의 시대다. 예정된 출국을 앞두고, 그 나라 상황이 어떤지 찾아보던 검색은 며칠 만에 이쪽이 그리로 입국하는 데 문제가 없을지 우려하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전염병 확진 판정을 받고도 버젓이 공공장소를 돌아다닌 이가 있는가 하면, 그런 상황을 ‘인간적으로’ 이해한다는 이들의 기사 댓글도 만만찮게 있다. 괴담과 정보 사이를 헤매는 건 ‘어리석은 백성’이나 국가나 마찬가지. 한동안 “이게 국가인가?”라는 말이 횡행했다. 뉴스 하나 하나 기막히지 않은 게 없지만 금세 무감해졌다. 절로 중얼거리는 일만 잦아졌다. “원래 이런 건가?” 스스로 무식을 알아챘다면 배우고 익히고 다듬는 게 순서일 텐데, 도무지 시작점을 알기 어렵다. 어디서부터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가?

또한 2015년 서울은 한바탕 혐오의 장이 됐다. 심지어 ‘혐오할 권리’라는 말이 버젓이 굴러다닌다.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인종 차별, 폭력인 줄도 모르는 폭력들. 얼굴을 칼로 베이는 테러를 당한 미국 대사의 건강을 위해 광화문 앞에서 부채춤을 춘 한 단체는 퀴어 축제 개최를 방해하는 집회에 나가서도 부채춤을 췄다. 그런데 하필 그 자리에 미국 대사가 퀴어 축제 개최를 지지한다며 찾아왔다. 부채춤을 추던 이들은 부채를 접고 통성기도를 했다고 한다. 웃음의 끝이 있을까? 캄캄하다. 절벽이다.

잘 팔린다는 책에서 이런 게 인용되어 타임라인에 나타났다. “불행한 얘기지만,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다.” 잠깐, 그게 왜 불행하지? 내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줘야 행복하단 말인가? 결과는 관심글 67개, 리트윗 145개. 무엇을 보나? 대체 무엇을 판단하나? 꽃은 다 예쁠까? 아무 꽃이나 갖다 놓고 꽃이니까 예쁘지! 하는 건 얼마나 쉽나? 그게 바로 이곳이 굴러가는 원리다. 다 필요 없고, 꽃이 예쁘다는 대세를 따르면 쉽다. 묻어가면 세상 편하다. 버티면 결국 돈 없는 바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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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디렉터] 곧 두 번째 책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