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지금이 엉덩이의 시대라는 말은 어쩐지 본능적이다. 네 여자의 엉덩이를 본격적으로 찍었다. 엉덩이는 거짓말을 몰랐으니, 근심이 사라지고 불길이 남았다.

흰색 원피스 수영복은 자라, 금색 팔찌는 캘빈클라인 주얼리.

최혜연(모델) 최혜연은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앞에 거울을 놓아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몸을 움직였다. 머리카락부터 발가락까지 몸의 다른 모든 부위가 엉덩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있는 것처럼. “좀 세게 말하면, 나랑 섹스하고 싶은 느낌? 나를 뒤에서 보고 싶어요.” 과연 그 말처럼, 엎드려 누운 그녀의 엉덩이는 고층건물쯤은 가뿐히 이겨내는 봉우리처럼 높이 솟아 올랐다. 보는 것만으로도 먼 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기분. “하이힐이랑 H라인 스커트. 이것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어요.” 미끈한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는 냉전시대 첩보 영화의 헤로인들이 비슷한 말을 했던가? 최혜연의 엉덩이에서는 고전 회화에 등장할 법한 옛날 여자들의 몸이 보인다. “엄청 푸둥푸둥한 몸매 있잖아요. 하얗고 순두부 같은. 그렇게 퍼지고 큰 엉덩이도 예쁜 것 같아요. 루벤스의 ‘미의 세 여신’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최혜연은 이미 이름을 꽤 알린 모델이지만, 서양화를 그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몸을 잘 아는 최혜연이 여자의 몸을 즐겨 그리는 것 또한 사뭇 자연스럽다.

 

빨간색 브리프는 아장 프로보카퇴르, 흰색 러닝 톱과 긴 양말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홍연주(디자이너) 수박이 완전히 동그랬던 적이 없지만, 수박을 그려보라면 대개 동그랗게 그리곤 한다. 그게 이상적인 수박의 모양이라 생각하니까. 물론 엉덩이라면 좀 더 복잡할 것이다. 데칼코마니 같은 좌우 대칭, 적당한 지방과 근육의 조화, 허리와 허벅지 사이의 적절한 위치…. 홍연주가 뒤돌아선 채로 단단한 하체에 힘을 콱 줬을 때, 카메라보다 붓으로 따라 그려야 할 것 같은 엉덩이가 제자리를 잡았다. “복숭아 모양? 제 엉덩이 괜찮죠. 나쁘지 않지.” 수박은 대개 클수록 선호하기 마련이지만 복숭아는 꼭 그렇지 않듯, 엉덩이 또한 크기로만 그 아름다움을 따질 수는 없다. 물론 이 엉덩이를 작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스쿼트 열심히 하면 걸을 때 엉덩이가 쏙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요즘은 킥복싱도 배워보고 싶은데.” 말투도 걸음만큼 씩씩한 홍연주의 본업은 디자이너. 모델 일도 틈틈이 하지만, 굳이 스스로를 모델이라 소개하진 않는다. “섹시하다기보단 건강해 보이지 않아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에너지를 얻는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이건 몸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다. 여름 기운을 내뿜으며 이 계절, 너에게 나를 보내고 싶은 그런 여자.

 

흰색 비키니 톱은 데상트, 데님 쇼츠는 아메리칸 빈티지 by 마스샵.

이유주(요가 강사) 작고 예쁜 여자가 새벽 요가원에서 취하는 자세엔 절도가 있다. 그녀의 SNS에는 ‘예뻐요’ 같은 말이 문안 인사처럼 적혀 있었다. 이유주는 4년째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허약했어요. 근육량은 미달이었고.” 그런데 지금은? 태양경배 자세로 엎드려 있을 땐 상체를 버티고 있는 이두와 삼두에 크고 작은 음영이 생겼다. 그 상태에서 상체를 거의 수직으로 세우니 허벅지와 엉덩이의 경계가 더 짙고 선명해졌다. 엉덩이와 허리 사이에도 양보를 모르는 탄력이 생겼다. 저 짧은 청바지가 숫제 스판덱스 같았다. 플랭크로 자세를 바꿨을 땐 근육이 일제히, 펑 터지듯 깨어났다. 날개뼈가 솟으면서 상체에 두꺼운 양감이 생겼다. 복근이 수축하면서 갈비뼈가 도드라졌다. 허벅지 근육은 누가 환조로 조각한 것같이 가팔랐다. 게다가 ‘아, 저기도 근육이 있구나’ 싶도록 또 다른 모양으로 팽팽해지는 엉덩이. 이유주의 신장은 155센티미터다. 그녀는 “나쁘지는 않은데 좀 다듬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미 뼈 마디마디가 현란했다. “가슴은 한계가 있지만 엉덩이는 노력하면 만들 수 있어요. 갖고 싶다면 노력을 해야죠. 통제할 줄 알아야 해요.” 과연, 그래야만 가질 수 있다.

 

검정색 뷔스티에는 아장 프로 보카퇴르, 검정색 레이스 브리프는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

이현민(피트니스 선수) 꼿꼿했다. 엉덩이 근육에도 표정이 있다면 이건 분명 호탕한 웃음이다. “엉덩이 운동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엉덩이가 볼링공이 된 것처럼 몸과 분리돼요. 그 기분에 중독되기도 하고요.” 이현민은 현대 퍼스널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다. 올해 나바코리아 비키니 부문에선 그랑프리를 거머쥐었다. “대회 때 심사위원들도 말했지만, 솔직히 제 엉덩이를 따라올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이현민이 생각하는 예쁜 엉덩이는 근육이 빵처럼 부푼 모습이다. 강인한 허벅지가 강철처럼 단단한 엉덩이를 힘차게 밀어 올리는 듯한 뒷모습. 두 무릎을 붙이고 허리를 꺾으면 엉덩이가 구령 소리를 듣고 답을 하듯 치솟는…. “육감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비록 원피스를 입으면 여장을 한 남자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반바지를 입었는데 헐렁하게 사이가 비는 여자보단 섹시하다고 생각해요.” 이현민은 사실 조막만 한 얼굴과 예쁜 외모로도 유명하다. 만약 자신의 어딘가를 바꿀 수 있다면, 몸인지 얼굴인지 물었다. “얼굴이요. 제 몸은 바꾸고 싶은 곳이 없어요.” 그녀가 카메라 앞에 서며 입고 있던 샤워 가운을 확 젖혔다. 그 엉덩이가 링 위로 올라서는 챔피언 같았다. ‘멋지다’는 말이 찰싹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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