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극장에 가지 않는다

선뜻 극장에 가기가 꺼려진다. 이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아서.

평론가 사뮤엘 셀던의 말. “사람들이 극장에 가는 이유는 첫 번째 기분 전환을 위해, 두 번째 자극을 얻기 위해, 세 번째 무엇을 더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극장의 역사-상상과 욕망의 시공간>, 임종엽, 살림출판사) 지금 우리나라 극장은 호황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표한 201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발표에 따르면 관객 수는 역대 최다인 2억 1천5백6만 명에 달했고, 극장 수익은 1조 6천6백41억을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역대 최대 수익이다. 가격 차별화 정책 때문에 극장은 최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말하고 싶은 건 사업적인 측면이 아니다.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 할까?’ 하는 의문이다. 몇 년 전 커다란 스마트 TV를 구입하면서부터 의문이 시작됐다. 50인치 이상의 대형 TV들이 1백만원대 가격으로 저렴해졌다. IPTV를 통해 VOD를 보는 건 2014년, 2013년 대비 29.7퍼센트 증가했다. 하지만 인구 1인당 1년에 극장가에는 횟수도 4.19회로 늘었기 때문에 극장의 파이를 IPTV가 빼앗은 건 아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영화를 많이 본다. 한 평론가에게 이렇게 물었다. “영화의 질과 상관 없이 극장에 가는 사람이 점점 더 늘고 있습니다.” 그의 답변. “삼면이 바다로 막혀 있으니 외국 여행이 어려워요.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 한 다는 건, 여가활동의 큰 제약이죠. 유럽만 해도 청소년 때 이미 여러 나라로 여행을 가잖아요?”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인구밀도가 높은 환경에서 극장은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오락 공간으로 유일하다. 그는 말을 이었다. “한국영화의 질과 상관없이 1천만 명 이상 보는 영화가 자주 나오면 과연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요?” 아니다. 그건 오히려 어떤 신호일지도 모른다.

한국영화가 새롭지 않다는 말(또한 < GQ > 도 여러 번 했지만)은 지겹다. 만약 영화의 ‘질’이 아닌 ‘존재’가 문제라면 어떤가? 다음은 류승완 감독의 말이다.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한 영상문화의 소비 방식이 안착되었다. 이로써 영화에 대한 정의 자체가 바뀌는 지점인 것 같다. 기존에 영화를 본다는 것은 관객이 특정 공간과 시간대에 결박해놓는 걸 전제로 하는 거다. (중략) 영화는 영사되는 이미지를 2시간 정도 꼼짝 못하고 봐야 한다. 제약 사항이 너무 많다. 이제 관객이 그런 관람 형태에 저항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은 1.5배로 스킵하면서 봤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씨네21>, ‘한국영화를 위협하는 영화가 나와야 발전이 있다’)

사뮤엘 셀던의 말을 다시 꺼낸다. 그는 사람들이 극장에 가는 이유를 기분 전환, 자극,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극장에서 꼼짝 못하고 앉아 있지 않아도 언제든 스마트폰을 통해 기분을 전환할 수 있다. 자극? 마찬가지다. (어디에서나) 무엇을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이 스마트폰을 발명했다. 셀던이 극장에 가는 이유로 꼽은 그 세 가지를 지금 스마트폰이 하고 있다. 비단 스마트폰 때문일까? 우리를 둘러싼 스크린을 지닌 모든 전자제품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수단을 이용해 말한다. ‘좋아요’로, ‘♡’로, 댓글로, 일대일 SNS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우린 모두 화자話者다. 듣기보다 말하고 싶은 욕망.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는 쉴 새 없이 채워진다. 그 탓에 영상은 말하기의 대상 혹은 소재로 존재한다. 콘텐츠가 TV에 방송될 때 포털 사이트는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사람들은 요약된 기사와 잘게 잘려진 클립 영상을 보고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고 평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건 어쩌면 폭력적이다. 최근 일화. 마돈나가 극장에서 문자를 보내다 관객과 말다툼을 하고 출입금지를 당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지만 극장이 어떤 공간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다. 스크린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다. 영화는 모두가 함께 보는 스크린으로 존재했다. 두 시간 동안 3백 명이 넘는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매너를 곱씹으며, 숨을 죽인 채 (눕지도 못하고) 영화를 본다. 만약 선택한 영화가 별로라면 관람 중에 입이, 아니 손이 스마트폰 쪽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스크린과 화면은 과거엔 공공의 것 이었다. 극장은 물론, 집에 TV가 한 대인 경우가 많았다. 수동적이고 경직된 영상 관람은 스크린의 개수가 적을 때는 당연할 수 있어도 각자에게 다양한 스크린이 있는 지금 시대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극장에 가는 건 여가활동으로 굳건하다. 다시 질문. 극장에 왜 가는가? 만약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듣기가 아니라 말하기라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이제 베일에 싸인 영화는 없다. 영화가 어떤 주제를 말하려고 하는지 관람 전에 검색하면서 (그건 무엇을 알고 싶은 마음-셀던이 말한 극장에 가는 세 번째 이유는 스마트폰으로 해결하면서) 안다. 관객은 극장에 가기 전부터 자신이 받을 자극(은 극장에 가는 두 번째 이유)을 미리 결정한다. 그리고 자신이 영화에 동의한다고 알리기 위해 극장에 간다. 어쩌면 그건 말하기(이자 참여를 통한 기분 전환-셀던이 말한 극장에 가는 첫 번째 이유). 그 시간이 지나고 극장을 나서면서 영화를 본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사람들에게 ‘동의’한다고 말한다. <명량>에서 중요한 건 좋은 리더를 보여주고 관람객들이 동의하는 과정이다. 1천7백만 명의 관객은 영화를 보고 반박할 수 없는 ‘아젠다’를 공유한다. 좋은 리더란 누군가? 영화에는 예상된 답이 있고 사람들은 극장 밖에서 한 번 더 말한다. 메시지. 영화는 메시지를 말하는 통로. 사람들은 공통된, 누구도 반박 할 수 없는 이야깃거리를 얻는다. <국제시장>도 마찬가지 방식.

비단 한국영화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녀>, <위플래쉬>,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와 같은 일명 해외에서 수입한 다양성 영화도 마찬가지다. 네 편의 영화는 참으로 훌륭하다. 분명 신선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영화의 흥행이 갑작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한동안 너무 힘들었던 다양성 영화가 단지 대기업 영화 배급사들의 진출로 성공했다고 보기엔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 스파이크 존즈, 짐 자무쉬는 (비단)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다수의 정서와는 좀 멀어 보인다. 만약 이런 현상도 ‘동의-말하기-공유’의 통로로 극장을 상정해서는 아닐는지. 극장에 가는 건 영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지휘 획득이라면 너무 과한 해석인가?(SNS 인증샷의 의미)

이미 동의할 수 있는 영화인지 아닌지를 관람 전에 판단하고, 극장에 가면서 타인과 공유하는 과정은 영화를 보는 새로운 방식일 수도 있다. 누구나 쉽게 말하는 시대에 극장은 영화를 판단하는 공간이 아니라, 영화를 지지하는 광장일지도 모른다. 물론 반대의 경우, 즉 거절과 비난도 영화를 향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보고 판단하는 과정보단 보지 않고 거절하는 것이 훨씬 강력한 의사 전달이라는 것을 안다. 말하기는 듣는 사람의 동의를 얻고자 할 때가 많다. 그러니 영화가 효율적인 여가활동이 되려면 각자가 타인의 동의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말하기 소재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반대나 무관심을 받을 만한 영화는 이미 예매 버튼을 누르기 전에 포함되는 게 아닐까? 자신의 판단을 증명하기 위한 극장. 영화를 통해 아젠다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기 전에 아젠다를 구축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꼭 야구장에 가는 것과 같을까? 사람들이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면서 얻는 이익은 널찍한 뷰(스펙터클), 관중의 응원 소리(생생한 사운드),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파울볼(4DX), 야구장에서 먹어야 더 맛있는 치킨(극장에서 먹는 팝콘)이 있다. 하지만 집에서 TV로 보면 훨씬 편하고, 클로즈업된 선수들의 얼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해설까지 들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린 함께 ‘응원’하기 위해 야구장에 간다. 밀착된 공간에서 같은 팀을 응원하는 유대감. 우리 팀의 승리를 직접 목격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그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기 위해 야구장에 간다. 극장에 가는 이유도 스펙터클을 관람하고 하나의 영화(속에 슈퍼히어로)를 응원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표현하고 말하기 위해서라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확실한 건 단지 영화 감상을 좋아한다면 조금 늦는다 해도 저렴하게 구입한 커다란 TV로 혼자 보는 것이 훨씬 더 편리한 시대라는 점이다. 한편 내게 영화는 아직도 한 번 보고 바로 말하는 것이 어려운, 몇 번을 봐도 모를 미스터리로 남을 ‘관람’. 그래서 나는 극장에 자주 가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를 방에 가둘 때 모호하다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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