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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새로운 차 재규어 XE

2015.07.17GQ

재규어가 완전히 새롭게 차를 만들었다. XE는 모든 라이벌을 극적으로 제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5월 스페인 북부 나바라에서 재규어 XE를 시승했다. 재규어 세단 가운데 막내다. 코드네임은 X760. 아우디 A4, BMW 3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등과 겨루게 된다. 지난해 봄 제네바 모터쇼에서 출시를 예고했고 같은 해 9월 런던에서 처음 공개했다. 생산은 지난 3월부터 영국 솔리헐 공장에서 시작했다. 한국엔 올 하반기 들어온다. 재규어는 이 시장에서 실패를 맛본 적 있다. 2001년 선보인 X-타입이 비운의 주역이었다. X-타입은 1955년 내놓은 마크 1 이후 가장 작은 재규어였다. 2004년엔 스포츠 왜건도 더했다. 이안 칼럼이 재규어로 옮긴 뒤 처음 그린 차였다. 시작은 야심찼다. 당시 포드 산하의 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이후 PAG)은 재규어의 양적 성장을 꾀했다.

PAG는 재규어 X-타입을 1년에 10만 대 이상 팔 계획이었다. 기대는 어긋났다. 가장 많이 판 2003년조차 5만 대에 그쳤다. 특히 재규어는 당시 최대 시장이던 미국에서 체면을 왕창 구겼다. 2005년엔 1만 대를 간신히 넘겼다. 같은 해 아우디 A4는 4만8천여 대, BMW 3시리즈는 10만6천여 대, 벤츠 C클래스는 6만여 대를 팔았다. 완패였다. 업계에선 X-타입의 실패 원인으로 지나친 부품 공유를 손꼽았다. X-타입은 포드 몬데오의 이란성쌍둥이였다. 그런데 몬데오의 흔적이 과했다. 공공연한 비밀이 상품성에 빤히 묻어났다. 재규어만의 고급스러움을 기대했던 고객은 실망했다. 포드의 투자가 뜨뜻미지근해 파워트레인도 다양하지 않았다. 결국 2009년 X-타입은 역사의 저편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XE는 PAG 시절처럼 부품과 뼈대를 ‘돌려 막기’ 하느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완전히 독립적인 모델이라서다. 대신 완전히 새로 그려야 했다. 재규어 개발팀은 “즐거운 도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XE의 임무는 X-타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 프리미엄 3인방의 점유율에 찬물을 끼얹고 신흥 시장을 개척할 첨병이다.

시승회는 재규어 전세기편으로 스페인 빅토리아 공항에 내려서자마자 막을 올렸다. XE는 흠잡을 데 없는 비율을 뽐냈다. 재규어 디자인팀은 “F-타입의 실루엣을 고스란히 녹여 넣었다”고 자랑했다. 세단이지만 앞 유리는 납작 눕혔다. 지붕은 미끈한 호를 그리며 트렁크 리드로 이어졌다. 앞모습은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하지만 황금비율에 충실한 ‘성형 미인’ 같은 모습이 덤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파격이 없어서다. 뒤태도 평범한 편이다. 테일램프는 F-타입처럼 LED 띠로 무늬를 그렸다. 하지만 세단 특유의 두꺼운 궁둥이와 짝지어 감흥이 반감됐다. 재규어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불특정 다수에게 많이 팔 차종인 데다, X-타입의 시행착오로 홍역을 치른 탓이다.

게다가 XE의 디자인은 기능적이다. 공기저항계수는 Cd 0.26이다. 역대 재규어 가운데 가장 낮다. 1천2백 회의 컴퓨터 유체 역학 시뮬레이션과 8백만 시간 이상을 쏟아 부어 거머쥔 결실이다. 이 과정에서 앞 범퍼 흡기구 같은 ‘신의 한 수’가 나왔다. 공기의 흐름을 앞바퀴 표면 위로 유도해 항력을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다. “스포츠카의 비율을 담았어요.” 재규어의 설명은 실내에서 더 와 닿았다. 높은 벨트 라인과 대시보드, 센터페시아에 에워싸여 앉게 된다. F-타입의 버킷 시트에 철퍼덕 주저앉아 빠끔히 내다보는 풍경과 꽤 비슷하다. 심지어 계기판도 F-타입과 똑같다. 동급에서 이처럼 노골적으로 스포츠카를 흉내 낸 라이벌은 없다.

처음 탄 시승차는 직렬 4기통 2.0리터 디젤 터보 엔진이었다. 재규어와 랜드로버에 두루 얹을 인제니움 엔진의 시작점이다. 최고출력은 163마력, 최대토크는 38.7kg.m. 6단 수동변속기만 짝짓는다. 출력이 BMW 320d 이피션트 다이내믹스와 정확히겹친다. 존재 이유 또한 같다. 브랜드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끌어내리기 위한 친환경 버전이다. 필요충분조건을 빠듯이 채우되 콸콸 용솟음치는 쾌감까진 없다. 존재 이유가 분명하고 연비가 재규어 역사상 으뜸(유럽 기준 리터당 31.9킬로미터)이라니 수긍할 수 있다. 운전대나 기어 레버를 통해 전해지는 진동도 감쪽같이 지웠다. 이날 시승의 목적지인 나바라 서킷에 도착했다. 도로 시승을 먼저 했다. 한국 판매에 주력할 모델을 만날 차례였다. 180마력짜리 2.0리터 디젤 터보 심장에 ZF제 8단 자동변속기를 짝지은 XE였다. 먼저 탄 친환경 XE보다 17마력, 5.2kg.m를 더 낸다. 차이는 확연했다. 가속은 활기 넘쳤다.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은 7.8초. 200마력짜리 2.0리터 가솔린 터보 인제니움 엔진을 얹은 모델에 비해 단 0.1초 뒤질 뿐이었다. 최고속도는 시속 228킬로미터다. 최대토크 43.9kg.m는 1,750~2,500rpm에서 거침없이 뿜는다. 이보다 엔진 회전수를 높여도 기세가 곧장 꺾이진 않는다. 그래서 매뉴얼 모드 변속으로 회전수를 튕겨가며 모는 재미가 쏠쏠하다.

 

FRONT / BACK / SIDE

재규어 XE의 진가는 사실 앞뒤보다 좌우 방향 움직임에 있다. 스티어링 감각을 간추릴 수 있는 표현은 외유내강. 가볍고 부드럽다. 그런데도 노면 정보를 제법 머금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기존의 유압식이 아닌 전자식 파워스티어링이란 사실. 재규어 최초다. 전자식의 냉철한 효율과 유압식의 포근한 감성을 기막히게 버무렸다. 굽잇길에서 앞머리를 꺾을 때도 우아하다. 시작은 면도날처럼 예리하고 즉각적이다. 이후 차체가 살며시 기운 채 버티며 코너를 매끈하게 먹어치운다. 앞 더블 위시본, 뒤 인테그럴 링크(멀티링크) 방식 서스펜션은 자잘한 충격을 악착같이 삼킨다. 앞뒤 50:50의 무게배분에 힘입어 고양잇과 동물처럼 나긋하되 기민하고 사뿐하되 힘차게 움직인다.

이제 서킷에서 XE의 엔진을 마음껏 불사를 차례. 재규어는 감춰뒀던 마지막 패를 꺼냈다. XE의 꼭짓점인 3.0 V6 S다. 엔진은 F-타입과 함께 쓰는 가솔린 슈퍼차저. 기존의 V8 5.0L에서 실린더 두 개를 떼어내 만들었다.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은 5.1초, 최고속도 시속 250킬로미터의 제원 이상으로 짜릿하고 통쾌하다. 340마력의 풍성한 힘이 뒷받침되면서 섀시의 장점도 한층 살아났다. 단단하고 가벼운 차체, 기본형보다 더 단단한 서스펜션, 부드럽고 민첩한 핸들이 어우러져 재규어만의 활기차고 알싸한 맛을 완성했다. 옆자리의 인스트럭터는 가급적 브레이킹 없이 코너로 돌진하라고 부추겼다. 그의 요구는 무모하지 않았다. XE의 잠재력은 내 기대를 아득히 웃돌았다.

재규어는 XE로 도약을 꿈꾼다. 제원으로 라이벌을 압도하진 못한다. 예컨대 출력과 토크,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 트렁크 공간은 ‘제원의 달인’ BMW를 살짝 밑돈다. 존재감 역시 S클래스의 후광에 기댄 C클래스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약세다. 하지만 그게 상품성의 우열을 뜻하지는 않는다. 감성에서, XE는 어떤 맞수보다 탁월하다.

XE는 동급 늦깎이지만 움직임은 가장 농익었다. 많이 상냥해졌다지만 이따금씩 불거지는 3시리즈의 까칠한 움직임, 별안간 뻣뻣해진 C클래스의 어색함, 숙성을 넘어 발효의 단계로 넘어선 A4의 나이 든 느낌이 XE엔 없다. 레이저 헤드업 디스플레이, 토크 벡터링 제동, 최신 트랙션 컨트롤 등 최신 장비도 알차게 챙겼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두 번째 도전이었다. 재규어는 스스로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다듬는 데 주력했다. 승산이 있다.

INTERIOR 담백하고 고급스러운 실내. 기어 다이얼과 핸들 형식도 재규어 팬이라면 익숙할 구성이다. 만듦새가 꼼꼼하고 재질이 고급스러운 것도 XE에 믿음을 더한다. 탁월한 구조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메리디안 사운드 시스템의 궁합은 이제 재규어의 증명처럼 느껴진다.

 

재규어 XE의 알루미늄 보디 XE는 역대 재규어 세단 가운데 제일 단단하다. 차체 대부분에 자석이 붙지 않는다. 재규어는 2003년 XJ를 시작으로 XK, 지금의 XJ와 F-타입까지 4차종의 뼈대를 알루미늄으로 짰다. XE는 5번째다. 그런데 구성이 다르다. 이번엔 알루미늄을 75퍼센트만 썼다. 나머진 다양한 금속을 섞었다. 재규어는 ‘알루미늄 인텐시브 모노코크’라고 정의했다. 재규어와 랜드로버의 미래를 책임질 iQ 모듈러 플랫폼이다. 알루미늄과 고장력 강판, 마그네슘 등을 부위별로 짝지었다. 나긋한 승차감을 유지하되 비틀림 강성은 높이기 위해서다. 신형 XF와 SUV F-페이스도 이 뼈대를 쓸 예정이다. BMW도 하이브리드 차체를 쓰지만 XE의 차체는 동급에서 알루미늄 비율이 가장 높다. XE는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을 A필러와 앞뒤 충돌 대응 구조에 썼다. B필러는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으로 짜고 초고장력 강판으로 보강했다. 그 사이엔 충진재를 농밀하게 채웠다. 강철과 알루미늄을 맞댄 부위엔 총 5가지 다른 보호막을 겹겹이 씌웠다. 갸륵한 정성이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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