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같은 곡 다른 연주 –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2015.08.05GQ

율리아 피셔와 기돈 크레머가 연주하는 비발디의 ‘사계四季’ 중 여름.

기돈 크레머 / 율리아 피셔

 

 

8월 어느 오후에 율리아 피셔와 기돈 크레머의 ‘사계(四季)’를 번갈아 들었다. 이 둘의 여름은 10분 남짓이다.

어젯밤이 오늘 아침까지 이어진 것 같았다. 아주 작은 소리에 느닷없이 눈을 떴을 땐 너무 이른 아침이었다. 얼굴은 답답하고 몸은 눅눅한 채 가까스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다시 누웠다. 다시 잠들기를 원치 않았고, 그저 조금만 더 쉬다 출근하고 싶어서. 이런 여름에 비발디를 꺼내 듣는 건 진부할까? 상식적인가? 너무 익숙한 노래라서? 하지만 모든 현악기의 현이 첫 음표를 연주할 때, 아까 그 아침이 다시 덮치는 경험은 어떨까? 겨울은 두꺼운 옷으로 견뎌도 여름은 피할 길이 없다는 듯이, 이미 지친 것처럼. 이후 10분 남짓 휘몰아치는 건 열, 땀, 불안, 짜증이다. 바람은 아슬아슬하고 휴식은 짧다. 곧바로 이어지는 절정, 폭우, 태풍, 마른 천둥…. 가차없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단어, 저 멀리 아스팔트 위에서 스멀스멀한 복사열.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가 연주한 곳은 영국 웨일즈 국립식물원이다. 찌르듯이 내리 꽂히는 햇빛 아래 진짜 빨간색, 파란색, 녹색과 갈색이 섞여있다. 웨일즈에서 떨어지는 해, 율리아 피셔의 이마에 드리운 활의 그림자. 벌이 날고 새가 우는 소리도 그대로 녹음돼 있다. 

 

한편 기돈 크레머의 연주에서는 현과 현이 서로의 소리를 주고받는 역동적인 방식, 그 본능적인 흐름을 읽기도 했다. 그 정돈된 실내에선 모든 악기의 소리가 개별적으로 들렸다. 3악장 프레스토가 휘몰아치듯 끝났을 때, 기돈 크레머는 현의 떨림까지 음미하는 것 같았다. 

 

 

    에디터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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