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주제, 다른 영화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뷰티 인사이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뷰티 인사이드>는 같은 주제를 정반대로 말한다. 하지만 결과는 어쩐지 다시 같다.

 

두 영화는 완벽하게 다르다. 출신부터 거리가 멀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다양성 영화로, <뷰티 인사이드>는 상업영화로 배급되고 있다. 제작비 차이도 크다. 많은 스태프가 무보수로 참여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총제작비 2억원, 많은 배우가 참여한 <뷰티인사이드>는 총제작비 65억원이 들었다. 말하자면 두 영화는 무늬부터 다르다. 하지만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과 주제는 같다.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가 여자이고 문제가 사랑이라는 점, 흔들리고 나약한 남자를 희생과 노력, 공감으로 여자가 끝까지 안아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한데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고 있으면 10년 전의 몇몇 영화가 떠오른다.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한)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과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두 영화처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도 철저하게 형식에 집중한다. 과하다 여길 만큼 세고, 한 껏 장식을 입힌 숏, 그리고 이정현이 아니면 절대 못할 것 같은 광기 어린 연기. 2000년 대 초반, 한국영화가 스스로 뭔가를 새롭게 만들고 말겠다는 그 에너지를 <성실한 앨리스>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반대로 <뷰티 인사이드>는 힘을 뺀다. 남자가 매일 얼굴이 바뀐다는 지독한 판타지임에도 과한 연출을 일절 줄이고, 배우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연기한다. 특히 우에노 주리가 “스키다요”라고 말하는 순간 영화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다분히 ‘영화’적인 설정을 믿게 하는 힘, 그 또한 아주 오랜만에 본 것 같아 반갑다. 이 또한 2000년대 초반에 쉽게 볼 수 있었던 담담한 한국 멜로 영화와 다시 마주한 기분이다. 과연 한국영화의 영광을 회상하면서 과장된 평가를 하는 것일까? 어떤 식으로든 영화답게 만든 ‘영화’를 다시 마주할 수 있어 다행이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