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공이 우리를 위로할 때

<위로공단>은 한국 작품으로는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영화가 비엔날레에 진출한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영화가 미술로서 상을 받은 것은 이례적인 사건이다. 수상 여부를 떠나 스크린을 대하는 태도, 과거를 기록하는 방법, 삶을 담는 과정이 도저히 눈돌릴 수 없게 만든다. <위로공단>을 연출한 임흥순 감독을 만났다.

 

<위로공단>은 1980년대 ‘공순이’부터 현재의 스튜어디스까지, 한국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들을 폭넓게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소재만 놓고 보면 메시지 중심일 것 같은데, 인터뷰 사이사이를 메우는 이미지 덕분에 회화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인터뷰이와 대화하듯이 이미지가 교차한다. 인터뷰를 통해 여공들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이야기로만 모든 걸 이해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여공들이 일하던 집, 가로등, 차들의 불빛, 눈이 오는 길과 같은 이미지들은 여공들의 심리를 읽으려는 나의 고민이다. 인터뷰를 하며 생긴 고민을 담아 이미지를 채집했다. 

일관성을 갖고 영상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방향을 정해놓고 그 이미지를 좇는 편일까? 넝마주이처럼 이미지를 수집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만큼 내가 이해하느냐, 이해‘하려고’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다시 어떤 대상을 바라보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와이퍼에 걸린 불빛이 피어나는 꽃처럼 보이고, 전봇대가 찡그린 얼굴처럼 느껴진다. 고민을 거치면 일반적인 풍경이 보고 싶은 이미지로 바뀐다.

원래 있던 공간을 재배치하기도 하나? 그러지는 않는다. 자연스러운 게 가장 좋다.

여공들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카메라를 천천히 움직이는 방식은 딱히 새로운 건 아니다. 한데 그 ‘카메라 워크’에서 율동감이 느껴진다. 여러 가지로 능숙한 촬영 기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완성도’를 말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인터뷰의 경우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10년 이상 찍었지만, 여전히 좋은 장면이 잘 안 나온다. 만날 그렇게 오래 찍어도 마찬가지다. 한데 사람마다 과거의 경험이나 심리적인 상황을 꺼낼 땐 각자의 리듬이 있다. 계속 이야기하는 스타일도 있고, 더듬더듬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분들도 있다. 각자의 리듬에 맞게 촬영한다. 또한 인터뷰 를 하는 공간도 중요하다. 공간이 인물의 삶의 방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성실한 예술가 같다. 게으르다. 한데 스스로 게으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가 만나자고 하면 피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야 뭔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들 중에는 혼자 책을 보거나 간접적인 경험으로 상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난 그게 뭐든 마주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생동감을 얻기 위해 불필요한 약속도 굳이 정한다.

정말 피곤할 것 같은데. 그래서 착하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그 말이 좀 싫긴 하다. 사실 난 결정력이 별로 없고, 우유부단하다. 이게 결국 작업으로 계속 녹아들어가는 것 같다. 만약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꼭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감독이 하는 일이 오직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부터 상업영화 감독의 역할이 그랬지만, 내가 생각하는 영화감독의 역할은 전혀 다르다. 영화는 스태프들이랑 평등한 위치에서 같이 만드는 거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스태프들이 채워줬으면 한다. 모두가 일을 나눠서 만드는 작품이 좋다. 그래야 작품에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

영화 후반부에 스튜어디스의 인터뷰를 담았다. 1980년대 노동운동과 최근의 각종 사건이 영화의 큰 소재로 나오다가 좀 갑작스러웠다. 영화가 완성된 시기상 ‘땅콩 회항’이 일어나기 전인데 스튜어디스의 이야기를 굳이 넣은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같이 만드는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다. 영화를 촬영할 땐 오히려 KTX 승무원 사태를 담는게 맥락상 맞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 사건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노동운동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튜어디스 내용을 굳이 넣은 이유는 사람이 하는 ‘일’은 보수의 많고 적음, 타인에게 보이는 이목 같은 것과 상관없이 근본적으로는 모두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는 ‘감정 노동’이 굉장히 중요한데, 가장 대표적인 업종이 스튜어디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튜어디스 이야기를 담아야 영화가 빤하게 흐르지 않을 것 같았다.

또한 스튜어디스 이야기 덕분에 공감의 폭이 넓어진다. 특히 한 스튜어디스가 후배에게 “스스로를 연극의 주인공”이라고 여기며 일하라는 대목이 인상 적이다. 그 말은 요즘 젊은 층의 상황과 맞닿는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비교 우위에 집착하는 모습. 과거 노동자들은 육체적으로는 훨싼 힘들었어도 정신적으로는 의지할 동료가 있었던 것 같다. 최소한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정서적인 공유가 있었다. 지금 젊은 사람들이 하는 노동의 강도는 분명 80~90년대 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동료들과 경쟁해야 하니 더 피폐해지고 있다. 사람들의 관계가 사라지는 지점을 함께 고민할 때다. 한데 생각보다는 현명하고 똑똑하게 대안을 또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손노동’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이십 대도 많다.

 

최근 패션 소품이나 양초, 성냥, 가구 등등 다시 ‘손’ 으로 뭔가를 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걸 만들고, 사고파는 과정에서 ‘연대’를 느낀다. 사람들의 몸이 다시 움직인다는 증거가 아닐까? 몸이 움직여야 판단력이 생긴다. 우리가 그동안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지점이 기본적인 ‘노동’이었다. 요즘은 젊은 층에서 손노동의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 같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것도 일종의 노동이다. 나는 나의 일로 가난한 사람들이 지닌 따뜻한 연대를 새롭게 만들어보고 싶다. 지식인이 지식을 바탕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나, 예술가가 미적인 감각을 덧칠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따뜻한 감정을 최대한 살려 전달하고 싶다.

작품을 만드는 가장 큰 목적이 사람 간의 관계 회복을 향하는 걸까? 지금까지 영화를 만드는 모든 행위는 나를 위해서 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밖에 모르는데도 계속 자신을 잃어버린다. 끊임 없이 자신과 멀어진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사람 속에서 나를 찾는다. 사람들이 정말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각자가 자신을 아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행복도 신경쓸 수 있다. 그때서야 나의 행복만큼 타인의 행복도 존중한다. 이기심이 생기는 건 오히려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는 스스로 행복을 찾고 서로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모습을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했다.

시대를 앞서나가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욕심은 없나? 물론 나도 사람들이 봤을 때 영향을 받고 고민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나와 아주 가까이 있는 주변 사람을 위해 작업을 하는 부분이 훨씬 크다. 지금까지 10년을 만나고, 같이 살고 있고, 계속 작업을 함께하는 프로듀서가 있다. 말한 적은 없지만 그녀를 위한 것도 크다. 그녀가 단순히 협력자가 아니고 함께 영 화를 만드는게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나와 그녀와 나의 가족을 위해 작업을 한다.

<위로공단>은 노동자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관객에 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것 같다. 스스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화도 많이 났을 텐데. 어떨 때는 그 이야기를 듣고 울컥해서 어렵게 버틴 그 고통을 끝까지 보여주고 싶을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맞는 걸까? 고민을 항상 한다. ‘어느 정도까지 보여줄 것인가?’ 최근엔 다들 ‘어떻게 영화를 잘 만들까?’, ‘어떻게 짜임새 있게 만들까?’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하는 것 같다. 감독들은 반성과 성찰의 모범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어디까지 보여줄 지에 대해 정하는 게 중요하다. 사회에서 원하는 대로 다 보여줄 수는 없다. 보고 싶은 욕망을 의식하다 보면 그것에 맞춰 작업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실제 투쟁 현장에서 원하는 작업만을 한다고 좋은 결과일까? 그 사건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문제를 다시금 바랄 볼 수 있는 시각. 그걸 만들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 같다.

모든 걸 걸었나? 일종의 다짐이다. 내가 이야기를 들은 분들은 대부분 목숨을 걸고 살았다. 제주 4.3 항쟁 피해자들, 이번에 다룬 노동자들 모두 그런 분들이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나의 노력은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수많은 고민, 실패 과정,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과정이 결국 영화를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카메라 없이도 정말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면 앞으로 만날 분들도 편하게 이야기 해주지 않을까? 내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 선택하고 싶은 건 각자의 개인적인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