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DITOR’S LETTER – 날기가 두렵다

2015.08.26이충걸

 

LETTER

나는 피터팬을 알고 있다.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성인이다 못해 장년으로 향하고 있는데도 애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입는다. 자기가 마흔 살이 됐다는 게 도무지 어리둥절하달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달까.

피터팬과 실종 소년들이 동화책 저편에 존재한다는 걸 알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다. 웬디가 피터팬을 만나기 전처럼 모든 아이는 당연히 자란다고 생각했다. 웬만큼 살아보니 꼭 그렇진 않았다.

누구든 인생의 단계에 따라 입는 방법, 모두를 민주주의자로 만드는 룩에 관심이 있다. 재능 있는 시각, 민감한 청각, 전문적인 미각처럼 신체 민주주의는 부글거리는 힘의 중심에서 메시지를 보낸다. 무릎 뒤, 귀의 뒤편처럼 먼 곳으로도 보낸다. 그 경로로 어른 세상에 징집된 소년들은 ‘환영’에 답하기 위해 어떤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지 안다. 앞으로 올 시대의 보상으로, 바뀌는 세대가 받는 선물로 옷장을 채우고 싶어 한다. 그렇게 스스로 사회가 봐줬으면 하는 모습으로 살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선 어린아이의 일을 버린다. 여자도 작고 빨간 머리핀은 특별한 날만 꽂는다.

고대 영웅처럼 현대의 피터팬은 밤을 위해 산다. 그의 네버랜드는 머나먼 섬이아니라 낮밤을 안 가리는 술자리, 새벽 네시의 댄스플로어가 아닌 3차로 간 해장술 자리다. 그에게 인생은 낭비하는 것. 희생은 후크 선장처럼 짜증스러운 것. 다른 남자들이 성인기를 어느 정도의 스펙과 인맥, 딸린 식구로 장식할 때 어른 피터팬의 몸 안엔 여전히 어린애 여섯 명이 산다. 아이 몸 밖의 세상은 힘드니까. 과적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 같으니까. 어른은 사회의 어둠에 속한 종족. 어른이 사는 나라는 도깨비 나라. 그래서 나이를 나타내는 모든 표식을 싹싹 지운다. 갈색과 흰색, 베이지 같은 어른 색은 상종도 안 한다. 직책이 무엇이건 당장 청록색 대학원생의 매력을 뿜어낼 태세다. 즉, 피터팬은 십 리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되돌릴 수도 멈출 수도 없으니 시간의 속도를 따라 기어갈 뿐이다.한데, 경험은 쌓이는데 신체 레벨이 떨어진다. 패배시킬 수 없는 조합. 제대 때의 탄력이 남았다 하나 마흔에 입은 스피도 수영복으로도 스물로는 안 보인다. 처방받은 오메가3로 자기를 대신할 수도 없다. 숙취는 길어지고, 일은 더 쌓이며, 그 사이 아내는 그의 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 그는 여자 대하는 법을 모른다. 처가 있어도 대놓고 외로워하고, 부모가 세상을 떠날까 봐, 괜한 공상으로 미리 훌쩍인다. 집중력도 짧다. 금방 흥분했다 뭔가 식으면 딱 거기까지. 집엔 교실 책상에서 꿈꾸던 장난감이 주차돼 있지만 싫증난 지 오래. 피터팬은 팅커벨의 변덕이 심한 매력을 동경한다.

갑작스럽게 그는 독립으로 가는 느린 변화 속에서 낙오됐음을 느낀다. 성인 남자들이 그래픽 티셔츠와 컨버스로부터 졸업할 때 피터팬은 아톰 티셔츠와 플레이드 무늬 운동화를 찾는다. 절기는 진작에 바뀌었다. 성장판이 닫힌 이상 키는 수직으로가 아니라 옆으로 큰다. 라이프스타일도 달라졌지만 변화의 물결에 면역되지 않는다. 스웨트 쇼츠로 가리려 했던 노화의 여정에서 바지 밑단을 걷어 애처로운 체크 양말만 시위할 뿐. 

누구에게든 설명할 수 없는 집착이 있다. 가끔 ‘나이에 맞게 입는 문제’에 관해 생각한다. 정확히 말해, 나이에 맞게 입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고민한다. 어느 가을, 착 붙는 검정 스키니 진을 입고 노래하는 예순여섯 살 믹 재거를 보고 고민이 커졌다. 그가 뚱뚱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어울렸다. 그러나 뭔가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걸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진실은, 젊어 보이려 할수록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아기 손만 한 비키니를 입은 환갑의 여인은 예뻐도 절박한 것이다. 레깅스와 9센티미터 굽이 브랜드 이름 때문에 괜찮아 보이는 건 아니었음 좋겠다. 자신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갖는 건 뇌가 신경학적으로 삐끗해서가 아니라 단순한 이유에서다. 일부러(쉰넷의 남자가 무턱대고 귀걸이를 사진 않겠지). 또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때 제 나이를 떠올리진 않았겠지).

성숙과 미성숙 사이엔 뚜렷한 경계선이 있다. 인정 욕구. 스타일에 관해서라면 가장 든든한 패션 조력자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그거 안 어울린다고 참견하는 자녀다. 피터팬은 예순이 넘어도 머리를 쓰다듬는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다. 숨이 넘어가도 떼쓰는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자식에게도 사랑받아야 한다. 숨이 돌아와도 조르는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마침내, 옷을 통해 거리의 영혼을 헤아리는 남자는 비극적이다. 젊어지려는 시도 자체보다 위협적인 스냅백, 자신의 뿌리와 직결되는 싸구려 장신구, 지샥 시계를 중화시키지 못하는 아빠 청바지, 너무 애들 것인 후드티…. 요점은 간단하고 확고하다. 자기 기만으론 참된 생을 건축할 수 없으되… 피터팬은 절대 나이 든 로커 차림으로 다니지 않는다. V넥에 발레댄서처럼 입거나, 가죽 바지로 로데오 거리 피에로처럼 활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나 광대뼈에서 나이를 찾을 수 없다 해도, 몇 살인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시기가 온다.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 희박해지는 젊음을 애절해하는 대신 차분히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다. 그래도 뭐가 순리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일흔에도 남아 있는 머리카락이나 바람 들지 않은 뼈처럼, 나잇값 하는 사람은 다 사라졌다. 성숙은, 먹은 칼로리와 타는 칼로리의 출입에 관한 혹독한 수학이 아니라, 인식과 수용이 절대 끝나지 않는 전쟁인 것이다.

정말로 나를 평화롭게 보살펴줄 누가 필요하면 여름방학 때처럼 외할머니 댁에 가면 된다. 피터팬이 웬디를 처음 만났을 때 말했듯이. “난 절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맨날 어린애로 완전 즐겁게 살거야. 그래서 죽자고 켄싱턴 공원을 쏘다니면서 요정들하고만 놀았잖아. 너도 봤잖아.”

    에디터
    이충걸(GQ KORE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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