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열이 갑자기 왔다

이승열의 새 앨범 < SYX >가 나왔다. 앨범을 계기로 네 번 그를 만났다. 똑같은 걸 반복해서 묻기도 하고, 엉뚱한 얘기나 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는 네 번째 만났을 때 나눈 얘기를 추린 것이다.

이렇게 촬영하는 건 처음이네요. 자기 옷 입고, 머리도 직접 만지고. 잘 아는 공간에서. 그렇게 찍자고 하셨고, 제가 그러자고 했죠.

음, 첫 질문 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승열이라는 음악가를 ‘나’는 좋아하지만 대중적이지 않은 가수라고 설정해놓으면 여러 가지가 쉬워지긴 하죠. 대부분 (인터뷰를) 그렇게 하시죠.

하필 그렇게만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물어볼까요. 새 앨범 < SYX >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앨범인가요? 앨범이 나오면 묘한 성취감이랄까, 자신감이 억지로라도 생기거든요. 인터뷰를 할 때 특히나 그렇고요. 그러다 점점 소모되면서 없어지죠. 근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인터뷰의) 정형이 있고, 그게 온라인에서 계속 도는 걸 보면 한계에 갇힌 느낌, 자괴감마저 들어요. “대중적이지 않은데 나는 좋다” 그러면 저는, “싫으면 관두십시오”하는 얘기, 이제 아무 힘도 없는 것 같고요. 7~8년 전 인터뷰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는 기분입니다” 했던 마음가짐으로 또? 그게 가치가 있을까? 복잡미묘하고요. 질문에 답하자면,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저도 모르겠어요. 20년 동안, 아는 사람은 알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뮤지션으로 사는 거, 그게 내가 만든 음악보다 더 큰 건가? 그렇다면 내가 음악을 한다는게 진짜 재미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한 가지 흥미로운 건, 2015년 지금, 모든 판이 이전과 단절되면서 완전히 바뀌는 기운이 있다는 건데요. 어쩌면 < SYX >는 거기에 가장 먼저 도착한 앨범일지도 모르죠. 고맙습니다. 요즘 뭐, 혁오밴드 같은 경우는 현상처럼 딱 떨어진 거니까 그렇게 접근하는 방법밖에 없겠죠. 근데 저한텐 그런 접근이 없었죠. 처음엔 이런 거 했고, 다음엔 이런 거 했고, 하던 거 탈피해서 딴 동네로 가고, 이런 접근으로만 다뤄졌죠. 그러다 보니 제 음악이 스스로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글쎄요, 이 앨범이 계속 움직인다고 느낍니다. 좋다, 나쁘다, 뭐, 사랑스럽다, 무섭다, 낯설다가 아니라, 움직여요. 재미있고 또 당황스럽기도하고요. 긍정에 더 가까운 얘기 같은데요?

너무 그렇죠. 만든 사람으로서는 어떤가요? 음반 나오고 활동하는 기간만이라도 이 앨범이 나한테 살아 있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그러기 힘든 이유는 제작 과정을 거치니까요. 치고 빠지듯이 녹음 끝내고 바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우려낸달까? 보면, 앨범과 라이브 사이에 괴리가 없는 뮤지션도 많은데, 저는 앨범에 구현했던 걸 라이브에서 할 수 없는 게 많아요. 그래서 포기하죠. 똑같은 곡이지만, 앨범이 출시됨과 동시에 애착은 점점 방전되는 상황이죠. 늘 그래왔어요. 애석한 일이죠.

얼마 전 공연 보면서 설렁설렁 넘어간다는 인상이 있었어요. 무대는 특별한 곳이니까 그런 모습이 가수의 매력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포기했다는 말은 안타깝네요. 많이 그래요. 제 성격이 그런가 봐요.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이승열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뭔가 쌓아왔다기보다 차라리 부수고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3집부터 서서히 제가 음악하고 있는 모양새가 싫증이 났달지, 실망을 했달지, 자기 반성이랄지, 그런 게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만든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게 민망함이거든요. 기술적인 민망함, 음악적인 민망함, 어떻게 하면 덜 민망할 수 있을까. 1집과 2집은 솔직히, ‘어, 나한테 이런 게 나오네’ 좀 신기했지만, 깊이가 얕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때는 목표가 나를 좀 더 알리는 거였으니까. 유앤미블루 이후에 트라우마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열심만 있었던 것 같고요. 부순다는 표현을 하셨는데, 거울을 부수는 느낌? 뭔가 맘에 안 들었어요. 지금도 그래요. 근데 아티스트 중에는 진짜 아티스트 타입이 있잖아요. 그냥 평상시에도 줄줄줄 아티스트인. 근데 저는 생활에서 예술 느낌이 뚝뚝 떨어지고 막 이런 거는 못 참거든요. 그런 자유로움이 부러웠던 것 같긴 해요. 그러니, 내가 뭔가 구속당하는 느낌이 있긴 있구나 했죠. 그래서 3집부터는 정말 쉬운 말이지만 “하고 싶은 거 하자.” “이걸 판에 넣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아예 없어졌고요. 근데 뭐,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평을 들으며 평생 음악을 하고 싶은지. 지금 고민이 또 시작된 거네요.

무엇이 이승열을 자꾸 꺾나요? 음반 내놓고 듣는 소리들. 사실 그게 전부죠. 너무 단면적이구나. 역시 또 이렇게 소비되는구나. 답을 하자면, 저를 꺾는 건 1차적으로 제 자신의 배려, 배려심? 뭘 배려하는진 모르겠는데, 제가 폭군처럼 날뛰면서 주변을 부리는게 아니라, 혼자 끙끙 앓는 성격이니까요. 치열하게 가다가도 어느 순간 스스로 끊는 느낌. 제가 집이 없어서 그럴까요? 음, 1집, 2집은 제가 만든 모습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지우려 하는 거죠. 모순적인 거 알아요. 근데 제 안에서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작용이에요. 밖에서 보면 얼마나 이상해요. “그건 제 모습이 아니니까 지금의 모습으로 봐주세요”라고 칭얼대는 느낌도 들고.

듣는 입장에서, 잡히지 않는 가수처럼 불안한 것도 없죠. 들어도 들어도 자꾸 딴 데 가 있는 것 같고. 근데, 저도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밴드에서 솔로를 하거나, 솔로를 하다가 밴드를 꾸리거나, 분명히 마음에 든다고 여겼어도 어느새 마음을 접더라고요. 잡히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그러면서 그렇게 달아나는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모델로 삼았나 봐요. 실망도 했지만 맞다고 본 거죠. 직접 음악을 하기 전부터 경험했으니까, 지금 여기에 있는 제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 같긴 해요.

지금 여기 서울은 이승열에게 어떤 곳이에요? 서울이요? 사실 서울은 제 삶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어떤 곳 같아요. 서울이라는 단어를 들으니까 굉장히 낯설어요. 너무 부정적인 것만 쌓이다 보니 이제 지워진 것 같아요. 애증도 아니고, 저쪽으로 넘어간.

그런 상태로 여기서 사는 건…. 그게 인간의 적응력이 아닐까. 그렇다고 서울의 모든 걸 저주하진 않으니까요. 서울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일단은 대답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민 가기 전에 살았던 서울 변두리에는 애착이 있는데, 지금은 이미 없는 곳이고요.

사람과 도시 사이엔 당연히 어떤 유대감이 있어야 하는데, 여긴 마치 그걸 제거하는데 혈안이 된 것 같죠. 그러네요. 잡을 수 없는?(웃음) 제 음악 같은(웃음). 제가 정말 낯설어하는 음악이 서울의 특정 지명에 대한 찬가라든가, 추억이라든가, 무슨 다리 얘기를 한다든가, 되게 신기해요. 이렇게 빨리 변하는 곳에서 어떻게 음악을 만들 만큼 완전함을 느낄 수 있는지. 그런 곳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안 믿어요. 분명히 덫이 있는 듯한.

공교롭게도 < SYX >를 처음 들은 도시는 서울이 아니었어요. 한글은커녕 영어도 없는 곳이었는데, 그게 뭔가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 SYX >는 어디서 여기로 왔나? 그런 생각도 하고요. 한 곡 한 곡 노래가 쌓인 걸까요? 사실 지금은 거들떠도 안 봐요. 그런 시기예요, 지금이. 만들 때는 묘하게 마음이 막 꿈틀꿈틀할 때가 있죠. 아닌가 보다, 넘어가기도 하고요. 근데 이 세상, 이 순간에 나라는 인간을 위해서만 일어난 일이라는 느낌이 올 때가 있죠.

꿈꿔왔기 때문이죠. 어디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기다려야 되고 잊은 척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이 과정 중에 하나여야 해” 뭐 이런 거짓말도 하면서 기다리는 거죠. 그러다 소리의 질감이 떠오른다거나, 뭘 어떻게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동한다거나 할 때, 이건 진짜 나한테 특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죠.

그 얘기가 마음에 듭니다. 노래에 대한 아이디어가 꼭 한 가지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감이 생기면, “이 감을 잃어버리지 말자” 생각하죠. 뭐라 설명을 잘 못하겠지만 “난 알아” 정도 얘기할 수 있으면 즐거운 거죠. 막 “하하하” 이건 아니지만 조금 여유는 생기죠.

그건 빛이겠죠. 그럼 그림자라면요? 만드는 초반에 느낌이 제일 좋았던 건 ‘Feel Your Body Move’ 같은 곡이었어요. 위스키에도 그게 있다면서요. 엔젤스 셰어. 보존을 잘해도 결국 증발해버린다는 거죠. 녹음을 하고 나서도 있으면 더 좋았을 뭔가가 없다 보니, 그걸 좇게 되네요. 신화적인 원형이랄지, 기록을 거부하는 무엇을 좇는 거요. 결국 녹음하는 모든 뮤지션이 그걸 좇는 것 같아요.

혼자서요. 밴드는 내가 잘할 수 없다, 포기한 거죠.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랄지, 가창력이랄지, 어떤 기쁨을 주나요? 녹음할 때는, 증발하는 것 없이, 그치만 계산과는 무관한 뭔가를 사라지기 전에 포착해서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만 해요. 옛날에는 녹음된 걸 바로 모니터링하면서, “어, 이 부분은 되게 좋네” 쾌감도 느꼈지만, 이제 그게 저한테 별 의미가 없어요. 어차피 믹스 단계도 있고, 다른 편곡적인 요소까지 굉장히 많이 변하니까요. 밖에서 디렉팅 아닌 디렉팅, 예를 들어 엔지니어가 피드백을 주죠. 하지만 저는 그걸 동시에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곡에 대한 피드백이 뇌로 들어가 프로세싱된다고 해서, 노래를 뇌로 하는 건 아니니까요. 제 목소리에 대한 어떤 쾌감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요. 어디선가 “왜 이승열은 가창이 돋보이는 부분에 대해 3집 이후로는 포기를 했는가” 그런 글을 봤는데, 전 포기한 적은 없습니다. 그걸 부각시키지 않으면 포기했다고 볼 수도 있구나, 그랬죠.

강박 없이 그저 나오는 대로 쉽게 쓰고, 그걸 또 좋아들 하니까요. 그러게요. 아, 포기라고 그랬는지 간과라고 그랬는지(웃음).

간과는 더 틀린 말 같은데요?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목소리를 차등되는 위치로 강등시켰다는 의미로 해석했거든요. 뭔진 알겠어요. 1집, 2집 들어보면 목소리가 굉장히 듣기 좋은 것 같아요. 기름진 것 같고. 그런데 3집 이후로는 과거를 지우려는 사람으로서, 그 기름진 것 외에 또 다른 매력이 분명히 있을 텐데, 하는 거죠. 사실 익숙한 뭔가를 계속한다는 건 고역이죠. 이번 음반도 제가 직접 믹스를 했으니 1집, 2집의 스탠더드한 목소리에 대한 공도 덜 들였죠. 더 기름지게 해서 청자들이 딱 소화하기 편하도록 그렇게 못했을 거니까요.

 

잠시 ‘날아’라는 노래가 있었죠. 드라마 <미생>에 쓰였고, 인기도 많았죠. 그건 뭐, 저는 그냥 도구로 사용된 경우죠. 그 입장으로 철저히.

어쨌든 듣는 사람 입장에서, 이승열이라는 가수가 어떤 통속적인 뭔가를 노래할 때의 쾌감이 있어요. 그 노래가 뭐죠? “계절은 다시 돌아온대도~.” ‘돌아오지 않아’.

“계절은 다시 돌아온대도” 그 구절 있잖아요. 평이한 말이지만 그걸 이승열의 목소리로 들을 때만의 쾌감이 있다는 거죠. 스스로 부정하진 못하겠더라고요. ‘날아’도 자주 듣습니다(웃음). 제가 그런 쾌감을 가장 많이 느낀 아티스트는 빌리 조엘이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이 따라 불렀고, 좋아했고, 공연도 봤고요. 근데 결국 제가 좋아하는 거랑 제가 잘할 수 있는 거랑은 별개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아마 1, 2집에서는 그런 유의 노래도 했던 것 같은데. 어쨌든 그 사람은 훌륭한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잖아요. 피아노가 리드하는 음악의 질감을 좋아하긴 하지만, 결국 저는 기타 치는 사람이고, 기본적으로 소리가 찌그러졌을 때 느끼는 희열을 좇다 보면 아무래도 다르게 가는 거죠. 물론 편곡이 좋아서 목소리도 잘 들리고 가사도 잘 들리는 예도 충분히 있는데, 저도 아직은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근데 빨리 자리를 잡고 싶긴 합니다 사실. 이번 앨범에도 계속 포기한 부분이 많거든요.

듣는 사람은 모르죠. 뭘 포기했는지. 비교해서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일반인들이 그걸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일단은 음질이 좋아야 해요. 근데 그것도 요즘은 모르겠어요. 로우파이적인 것도 그 미학이 받아들여지니까, 그걸 음질이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는, 좋다 나쁘다를 이제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사실. 그죠?

그렇죠. 그런 기존의 프레임이 갑자기 일제히 안 맞는다고 느껴요. 기존에 로파이나 하이파이에서 어떤 태도를 읽어야 했다면, 지금은 그냥 다른 소리 정도. 그렇죠.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 저도 모르게 저한테 익숙해진 형식이 있는데 그걸 버리고 있죠. 창작자의 자유를 위해 그걸 포기했다는 말도 맞는데, 더 정확한 거는 스튜디오에 안 가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는 게 아니라, 요즘은 음악이나 음질의 기준을 좀 달리 생각해야 하는,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벌써 늦은 얘기죠. 그래서 프로젝트별로 달리 생각하는 어떤 시발점이 된 게 전작 < V >죠. 그때부터 현장 녹음을 통해서 거친 질감을 믹스했어요. 이번 앨범도 노래를 그냥 집에서 다 할 걸 그랬나 생각해요. 근데 이번엔 그것까지 버리진 못한 거죠. 뭘 정확히 버렸는지는 모르겠는데, 형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갖는 불안감 있잖아요. 그걸 조금씩 버려가는 건 맞아요. 또 버린 거? 어떤 기대감. 내 음악이 이러할 것이다, 뭐 이렇게 소비될 것이다, 나는 이 음악을 통해서 이런 사람으로 증명되고 이런 사람으로 해석되고, 이런 기대를 점점 버리는 것 같은데요. 근데 이렇게 계속 버린다 해도, 하나도 남지 않는 순간까지 갈까요, 과연?(웃음)

쾌락은 끝이 없죠. 비우는 것도 결국 쾌락이니까요. 그 무슨 증세죠? 거식증? 그분들은 거기서 쾌감을 느낀다면서요. 토해내면서. 전 그런 증세는 없지만 그런 얘기까지는 하지 말죠.

왜요? 지금 소변이 너무 급해서. 죄송합니다(웃음).

(잠시 후) 다른 사람의 음악이라면 요즘 어떤가요? 사실 강박은 없거든요. 내가 뭐 뒤처지는 건 아닐까, 스타일적으로요. 근데 유치하잖아요,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게 뭔 말인지 알지만, 그게 겁이 나는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안은 하나 생겼는데, “저는 자유롭게 음악을 합니다” 라고 스스로 얘기를 함으로써 오히려 내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나가는 감정이겠지만 그 이후로 남의 떡이 커 보이기 시작했어요. 특히나 젊은 사람들. “요즘 세대는 어때요?” 라는 질문이 던져졌을 때 나이 든 사람들의 답은 “부러워요”가 많아요. “뭐가 그렇게 부러우세요?” 그러면, 젊음의 에너지, 자유로움. 저는 그걸 부러워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나도 부러워하는 순간이 오면 어떡하지? 굉장한 자괴감을 느낄 것 같아요. 20대 후반 30대 초반일 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저도 그걸 누렸던 때가 있어요. 유앤미블루 할 때. 근데 내가 이제 자유를 만끽할 수 없구나, 이게 좋은 게 아니구나, 그러다 보니 늦은 나이에 자유를 갈구하면서 “나 이렇게 할래” 라고 간 것 같은.

상관없지 않을까요? 어쩌면 는 지금 여기에 가장 먼저 도착한 음악일 수도 있으니까요. 실은 그렇게 느껴서 하는 말입니다만. 한편으로는 이승열이라는 음악가가 다른 사람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재미있어요. 김광석 씨를 굉장히 좋아한 적이 있어요. 근데 본인은 어땠을까요? 자기가 쓴 곡보다 남에게 받은 곡으로 더 사랑받는 거. 물론 훌륭하게 소화하고 표현한 거지만, 송라이터로서의 자긍심은 그럼 어떤 거였을까?

글쎄요. “나의 노래는 나의 삶~” 하고, 화회탈 웃음을 짓는 가수와 이승열은 다르니까요. 말하자면 저도 ‘날아’라는 노래를 녹음하면서는 희열을 느꼈어요. 지지고 볶지 않고 그냥 치고 빠진 결관데, 그래도 그걸 이름표처럼 달고 다니는 건, 두 번은 싫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십니까 저를 대할 때?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는 있지만, 저는 그냥 조용히 혼자 좋아하려고요(웃음). ‘노래 1’에 나오는 가사 “시가 될 노래들을”이라는 말을 탐구하면서요. 순위를 나눠서 우월한 아트 폼이 있다면, 어떤 사람은 문학을 최고로 칠 수도 있고, 파인 아트 회화일 수도, 음악일 수도 있죠. 저는 음악이 참 위대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에는 시야말로 가장 최상위의 아트 폼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 말이 좋아서 웃게 되네요. 제가 지금 가사를 쓰려고 몸부림을 치는 이 순간, 뭔가를 끄적이는 이 순간, 이게 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그 노래 제목이 하필 ‘노래 1’이죠. 앨범에서는 맨 마지막 곡이고요. 아무 생각이 없었고 제목에 대한 고민도 필요 없다고 느꼈습니다. 가사가 많은 걸 싫어하게 됐고, 반복이 좋다고 느꼈어요. 뭘 풀어내는 장치로서 가사를 여기저기 박아놓는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근데 이번엔 1번 트랙부터 8번 트랙까지 뭔가 내용이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노래 1’은 그냥 이거야말로 노래를 하는 거다, 그렇게 한 거죠. 실은 지금 만들어내는 의미예요(웃음).

모든 건 갑자기 오죠(웃음). 인터뷰가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렇게 뭔가 없던 게 생긴다는 거죠.

앨범이 나왔고, 공연도 했고, 지금 다시 물어볼까요? 이번 앨범 < SYX >가 어떤지. 그림처럼 딱 한 점만 있어서 어디를 가야만 그걸 볼 수 있는, 음악도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을 하는, 음악가로서 그걸 느끼는 감정이 좀 싫증나요. 제 앨범을 다시 들으며 느낄 때, 어? 하면서 낯선 거였으면 좋겠는데, 조금 민망한 것도 아직 있는 것 같고,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음악처럼 들리다가 오! 하는 것도 있긴 있는데, 그래도 민망한 부분이 더 많은 것 같고,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서울 같아요, 서울(웃음).

서울에서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그게 어떻게 또 움직이려는지. 알겠습니다. 저는 사실 과거에도 그랬고, 인터뷰라는 것에 기대는 없어요. 형식 자체의 한계라는 거예요. 근데 오늘 되게 즐거운 마음으로 했는데, 이런 말이 인터뷰로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