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한 맥라렌

빨라도 너무 빨랐다. 맥라렌 675LT를 타고 영국 실버스톤 서킷과 국도를 달렸다.

‘긴꼬리 맥라렌’ 675LT는 맥라렌 P1보다 한층 현실적인 드림카다. 맥라렌 650S를 밑바탕 삼아 심장을 키우고 기름기도 쫙 뺐다. 650S보다 출력은 25마력, 다운포스는 40퍼센트 높였다. 무게는 100킬로그램 줄였다. 맥라렌은 “트랙에 최적화된 모델”이라고 정의했다. 일단 675LT의 밑그림인 650S를 살펴보는 게 순서다. 650S는 지난해 데뷔했다. 2011년 나온 MP4-12C의 개량형이다. 12C는 맥라렌이 1998년 F1 생산을 마친 이후 처음 선보인 일반 도로용 스포츠카였다. 650S는 12C와 뼈대와 엔진 등 주요 부품이 같다. 맥라렌에서 제품 설명에 나선 이는 제품개발 총괄 마크 비넬스 전무였다. 로터스와 GM에서 30여 년 동안 다양한 차종을 개발한 베테랑 엔지니어다. 그는 1997년형 F1 GT 롱 테일Long Tail로 말문을 열었다. 맥라렌이 딱 세 대만 만든 귀한 차다. 비율이 오리지널 F1과 확연히 다르다. 살짝 웃음이 날 만큼 꽁무니가 삐죽 튀어나왔다. 뒷날개도 훨씬 크다. 다운포스를 최대한 키워 코너링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675LT도 같은 개념으로 완성했다. 디자인은 조금 다르다. 앞 범퍼 밑에 삽날처럼 날카로운 스플리터를 붙였다. 좌우 도어 밑에도 예리한 사이드 스커트를 둘렀다. 차별을 위한 장식이 아니다. 공력특성을 다듬기 위한 장치다. 앞 보닛과 펜더, 도어, 지붕을 뺀 패널은 전부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이후 CFRP)이다. 맥라렌은 F1 머신(MP4-1)과 양산차(F1)에 업계 최초로 CFRP를 쓴 브랜드다.

675LT는 CFRP를 아낌없이 써서 무게를 16킬로그램 줄였다. 그 밖에 서스펜션 13킬로그램, 초경량 합금 휠 14.4킬로그램 등 부위별로 피눈물 나게 다이어트를 했다. 앞 유리는 두께를 1밀리미터 줄여 3킬로그램을 덜어냈다. 엔진룸 뚜껑을 겸하는 유리는 폴리카보네이트로 바꿨다. 휠 볼트마저 티타늄으로 만들어 기어이 0.78킬로그램을 줄였다. 이렇게 깨알 같은 감량이 모이고 모여 100킬로그램을 줄였다. 동급에서 가장 가볍다. 엔진은 맥라렌 전 모델이 쓰는 V8 3.8리터 가솔린 트윈터보. 터빈은 금속을 정밀 가공해 완성했다.

그래서 엔진에서만 6.9킬로그램을 추가로 덜어냈다. 가벼워진 만큼 반응이 빨라졌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즉시 빵빵하게 압축된 공기를 빼낸다. 연료 펌프도 한층 강력하다. 변속기는 맥라렌 전 모델이 함께 쓰는 듀얼 클러치 방식의 7단 SSG다. 노멀과 스포츠, 트랙의 세 모드, 자동과 반자동, 완전 수동의 세 방식으로 쓸 수 있다. 새로운 기능도 더했다. 가속페달을 밟고 있어도 기어를 올려 무는 순간 연료 공급을 차단한다. 마크 비넬스 전무는 “그런 방식으로 엔진의 저항을 최소화해 관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스펜션은 650S보다 앞쪽은 27퍼센트, 뒤쪽은 63퍼센트 더 단단하다. 그만큼 움직임이 예리하다. 도어는 풍뎅이가 날개를 펼 때처럼 앞으로 비스듬히 벌어지며 열린다. 맥라렌은 다이히드럴Dihedral 도어라고 이름 붙였다. 두 개의 다른 면 사이 각도를 뜻하는 전문용어다.

디자인은 피아트와 알파로메오, 페라리 등을 거친 프랭크 스테펜슨이 했다. 2001년 BMW 품에서 부활한 미니 해치백, 2006년 페라리가 내놓은 F430, 맥라렌 MP4-12C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675LT는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매끈하다. 55세의 중년 디자이너답게 안정적인 비율과 풍만한 곡면 등 보수적인 감각이 두드러진다. 실내는 간결하다 못해 썰렁하다. 송풍구도 세 개뿐이다. 시트는 한 덩어리의 CFRP에 알칸타라를 씌운 형태다. 시트 이외의 부분도 이 조합으로 꾸몄다. 모든 걸 최소한으로 압축했다. 시트 머리 받침의 각도를 보면 헬멧 착용을 염두에 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양산차의 트랙 버전이라기보다 경주차의 일반 판매 버전에 가깝다. 실내뿐 아니라 675LT, 나아가 맥라렌을 관통하는 성향이다.

드디어 675LT 시승회의 막이 올랐다. 시승은 실버 스톤 트랙과 국도 등 두 가지 코스에서 진행했다. 트랙이 먼저였다. 여섯 바퀴를 돈다고 했다. 코스를 익히기 위한 동승 1바퀴, 직접 운전 4바퀴, 팩토리 드라이버가 실력을 뽐내는 동승 1랩으로 구성됐다. 일단 동반석에 앉았다. 팩토리 드라이버가 시동 버튼을 꾹 누르자 등 뒤에서 날카롭고 거친 사운드가 와락 덮쳤다. 위력적인 시작과 달리 첫 번째 랩은 느긋하고 평화로웠다. 드라이버는 파워트레인의 모드별 차이를 친절하게 설명했다. 실버스톤 서킷은 긴 직선로와 헤어핀 등 다양한 코너가 섞여 있었다.

피트로 돌아와 운전석으로 옮겨 탔다. 핸들을 꽉 쥐고 가속페달을 조심스럽게 다뤄 피트를 벗어났다. 가속페달을 꾹 밟자마자 압도적인 가속이 시작됐다.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맥라렌의 트윈터보엔 기승전결이 없다. 클라이맥스를 향해 곧장 광속구를 날린다. 오른쪽 코너가 순식간에 다가왔다. 나를 가차없이 덮치듯 했다. 급제동했다. 차체가 아스팔트에 콱 꽂히듯 속도가 줄어들었다.

에이팩스의 연석을 거칠게 타고 넘은 뒤 다시 가속. ‘눈썹이 휘날린다’는 표현의 진정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코너와 코너 사이를 파워 점프로 팡팡 뛰어다니는 기분이었다. 맥라렌도, 실버스톤도 처음 경험하는 내가 다짜고짜 트랙 모드로 덤빈 대가는 혹독했다. 갑자기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 풍경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바퀴를 돌았다.

몇 달 사이 쟁쟁한 브랜드의 슈퍼카를 여럿 시승했다. 그래서 감흥이 흐릿할 법도 한데, 맥라렌 운전석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제원을 찾아보니 느낌이 맞았다. 0→시속 200킬로미터 가속이 경쟁사 중 제일 빠르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슈퍼벨로체가 8.6초, 페라리 488 GTB가 8.3초다. 반면 맥라렌 675LT는 7.9초,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은 2.9초에 딱 끊는다.

두 번째 랩은 스포츠 모드로 물러서서 차의 움직임을 살폈다. 맥라렌 675LT의 핵심 매력은 균형이다. 람보르기니의 묵직하게 떠미는 느낌, 페라리의 나긋나긋한 움직임과 또 달랐다. 675LT 움직임엔 과장과 왜곡이 없다. 솔직담백하다. 신경질적 발작이나 드라마틱한 반전이 없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레이싱 교재다. 하지만 단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꽁무니를 슬쩍 흘려 코너의 정점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재미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대신 늘 예측이 가능했다. 그립도 어마어마했다. 피렐리 P제로 트로페오 R 타이어는 어지간해선 아스팔트를 놓치는 법이 없다. 조금 과했다 싶은 속도로 코너로 뛰어들어도 꽁무니 슬쩍 흔드는 정도에 그친다. 철저한 그립 주행으로 최고의 기록을 내기 위한 세팅이다.

DETAILS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세부가 체중 감량을 위한 혹독한 강박의 결과다.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을 강박적으로 썼고, 엔진룸을 덮는 유리조차 폴리카보네이트로 바꿨다. 어느 브랜드, 다른 자동차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의 헤드램프. 타이어는 트랙에서든 국도에서든 절대로 접지력을 잃지 않았다.

INTERIOR 맥라렌의 치열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실내.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 위에 알칸타라를 덮은 마무리, 운전자가 헬멧을 썼을 때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의자까지. 엔진 스타트/ 스톱 버튼은 센터페시아에 있다. 저 버튼을 누르는 순간,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시간 2.9초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딱 2명을 위한 버튼이다.

 

마지막 랩은 맥라렌 드라이버의 장기자랑 시간이었다. 그는 강렬한 드리프트로 내 혼을 빼놓고 싶어 했지만 번번이 좌절했다. 단단한 하체 때문에 무게중심을 허물기가 쉽지 않았고, 끝을 가늠하기 힘든 그립 때문에 좀처럼 미끄러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번 아웃조차 쉽지 않았다.

국도 시승에서도 반전은 없었다. 헬멧을 벋고 귀를 기울여도 사운드는 딱히 자극적이지 않았다. 볼륨은 큰데 구성진 음색은 아니었다. 일반 도로에서 675LT는 트랙에서보다 더욱 빠르게 느껴졌다. 어딜 가든 시선이 집중됐다. 모세의 기적처럼 차선이 열렸다. 그럼에도 허세를 부리기보단 운전에 집중하게 됐다. 자극적 재미가 아니라 속도 자체에 탐닉하게 됐다. 교과서적 운전으로 최고의 기록을 꿈꾸는 것. 675LT는 레이싱 카의 본질과 고스란히 겹친다. 실력은 최곤데 유머 감각은 다소 떨어지는 운동선수 같다면 어떨까? 빠른 차의 본질에 열광한다면 맥라렌이 답이다.

맥라렌 675LT는 500대 한정판이다. 본사 물량은 이미 다 팔렸다. 우주선처럼 생긴 공장에서 지난 7월부터 만들고 있다. 국내 수입원인 맥라렌 서울은 “3대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중 한 대는 전시차로 쓸 예정이고, 나머지 두 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맥라렌 서열 1위인 P1을 놓쳤다면 이번이 기회다. 게다가 가격은 3분의 1이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