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침묵의 소리 – 영화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

2015.09.23GQ

인도네시아의 대학살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을 만든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한국에 왔다. 그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어쩐지 대화는 다시 스크린 밖으로 나왔다.

조슈아 오펜하이머(이하 조슈아)는 2001년 처음 인도네시아에 갔다. 수마트라 북부 농장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그는 그 과정을 영화로 남기는 작업을 도우려고 했다. 당시 농장 회사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보호복도 없이제초제를 뿌리게 했다. 개선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판차실라라는 불법 단체를 고용해 노동자를 협박했다. <액트 오브 킬링> 그 판차실라의 뿌리를 다룬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965년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뒤 반공反共을 빌미로 1백만 명 이상을 죽이는 대학살이 일어났다. 그 학살을 주도한 용역 깡패들은 지금까지도 판차실라라는 준 군사단체로 남아 있다. 여전히 그곳의 권력자로서 희생자의 자녀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조슈아는 그 가해자들에게 집중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학살 생존자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 때 군인들이 협박했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의 가족은 오히려 학살 주도자들을 만나보라고 조언했다. 조슈아는 가해자들을 차례대로 만나던 중 안와르 콩고를 알게 됐다. 안와르는 대학살 당시 영화에서 힌트를 얻기도 한 (잔혹한) 영화광이었다. 조슈아는 안와르에게 학살을 재연하는 영화를 제안했다. <액트 오브 킬링>은 학살자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영화적’으로 재연하는 장면과 그들의 실생활을 오가는 독특한 구성의 영화다. 많은 사람이 <액트 오브 킬링> 때문에 다큐멘터리 영화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그 영화의 속편 <침묵의 시선>은 희생자의 가족, 아디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아디는 대학살 때 형 람리를 잃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대학살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어머니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응어리로 남아 있다. 시력을 재고, 안경을 맞추는 안경사인 아디는 학살자의 안경을 맞춰주기 위해 그들을 만난다. 아디는 묻는다. 학살에 대한 기억과 의견, 희생자 뿐만아니라 그들에게 남은 흉터에 대해. <침묵의 시선>은 그 제목처럼 고요하지만, 보고 나면 속이 시끄럽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지금까지 그가 인터뷰한 내용들을 읽어보니 몇 개의 질문이 반복되었다. (또한 그의 답변은 굉장히 길었다.) 그 질문과 답이 중요해서 몇 가지를 정리했다.

 

1. 아디는 어떻게 <침묵의 시선>에서 가해자를 만나게 되었나? <액트 오브 킬링>을 찍기 전부터 아디를 알고 있었다. <액트 오브 킬링>의 편집을 끝내고 개봉하기 전, 아디는 직접 가해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절대 안 된다, 안전하게 진행할 방법이 없다”고 거절했다. 학살의 생존자들이 가해자들을 마주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가해자들은 현 정권의 실세다. 하지만 아디는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우쳐주고 싶다며 그들을 만나겠다고 주장했다. 아디가 말했다.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입 밖으로 얘기한다면 더 이상 범죄를 떠벌리지 않게 될 거예요. 그러면 우리 가족은 학살과 분리되고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 <침묵의 시선>을 만들 때 가족들이 위험하지 않았나?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인 아디는 지금 괜찮나? 학살자 중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을 만나는 장면을 찍을 땐 언제든 해외로 나갈 수 있도록 가족 전부를 공항으로 이동시킨 상태에서 촬영했다. 촬영을 끝내고는 팀을 꾸려 아디가 원래 살던 북 수마트라와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이사하는 것을 도왔다. 또한 모금 활동을 해 아디가 실제 안경점을 차리게 해주었고 아디의 아이들이 대학을 갈 수 있는 학비를 마련해주었다.

3. 영화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상영되고 많은 사람이 보았나? <액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에서 30만 명 이상이 보았고, 인터넷에서 무료로 공개했다. <침묵의 시선>은 지난해 11월 개봉 당시부터 큰 극장에 걸릴 수 있었다. 상영 3주 만에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봤지만, 군과 경찰의 협박으로 상영이 취소되는 사태가 여러 번 벌어졌다. 현재 국제사법재판소가 있는 헤이그에서 당시 학살의 증거를 모으고 어떤 범죄가 있었는지 규명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버라이어티> 2015년 7. 7 인터뷰, <동아일보> 8. 27 인터뷰, 대한극장에서 진행한 감독 GV, 2015 8. 25 발췌.)

그리고 이번 인터뷰는 최대한 그동안 그에게 묻지 않았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먼저 인서트 컷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인서트 컷을 찍는 방식이 궁금했는데요, 제 생각엔 미리 생각하고 찍는 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하게 찍고 고르고 고른 것 같았습니다. 그 선택의 기준이 궁금합니다.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저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찍습니다. 그 많은 영상 중에서 제가 선택하는 기준은 영화를 ‘최대한 밀도가 높게 만들자’였습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자그마치 1천2백 시간에 가까운 분량의 영상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멋진 장면이 많아서 취합하고 추려도 23시간이나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또 최고의 장면들만 선택한 게 완성본 2시간 45분에 들어갔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지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삭제했습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거나 장면과 장면을 부드럽게 넘기기 위한 것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필연적(Inevitable)이라고 생각되는 장면만 사용했습니다. 모든 감독이 그렇게 하는지, 그런 방식이 드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필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장면을 사용했다면 때 묻었거나, 부패됐다고 스스로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전 만든 사람이니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보는 분이 그렇게 느꼈다니 기분이 좋네요.

<침묵의 시선>에서 독특하다고 느낀 장면은 아디가 외삼촌을 만나러 갔을 때입니다. 그 장면에서만 눈높이가 아닌 로우 앵글에서 촬영을 하고, 카메라가 흔들립니다. 아디가 외삼촌이 감옥의 간수로서 학살에 관여한 걸 모르는 상황에서 만났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의도가 있었나요? 아까 꼭 필요한 장면만 넣는다는 얘기와 좀 상반되는 말일 수도 있겠네요. 원래는 아디와 다른 가해자들이 대면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전에 외삼촌을 먼저 만나러 갔습니다. 우린 아디와 외삼촌의 대화가 그런 식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그래서 아디가 앞으로 가해자들과 대면하는 장면들을 어떤 방식으로 찍을 건지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삼촌을 만나는 장면을 찍게 된 것입니다. 외삼촌의 시력을 검사하며 람리에 대해 말하는 장면을 찍을 예정이어서 친밀함을 살리기 위해 핸드 헬드를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쪽으로 대화가 흘러가면서 30분을 예상했던 촬영 시간이 2시간으로 늘어났어요. ‘자이언트’라고 불리는 우리 카메라맨도 촬영이 길어지니까 카메라를 들고 있는걸 너무 힘들어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무릎에 올려놓고 촬영을 하다 보니 앵글이 낮아졌습니다. 그곳에선 아디와 외삼촌이 침묵의 대화를 나눕니다. 어떤 말을 던지면 그 다음 무슨 말이 나올지, 그 다음엔 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속으로 생각하는 게 눈빛에 맺혀 있어요. 그래서 보통 대화를 할 때마다 카메라가 패닝하는데 여기서는 침묵한 상태에서 카메라가 왔다갔다 합니다. 표정 속에 숨긴 말을 읽어내려고 한 거예요.

여러모로 영화의 정세도가 높아 보이는데요, 제겐 그 장면들이 도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필 극영화 감독이지만 스탠리 큐브릭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폭력적인 장면을 도덕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엄청난 칭찬이네요. 큐브릭이 폭력에 대해 다루는 방식에 대해 얘기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같은 경우엔 매 장면마다, 매 컷마다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완벽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단순히 어떤 기능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베를린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여러 영화를 봤습니다. 많은 영화가 죽음이라는 걸 이용하는데 단순히 극적인 요소로, 드라마를 빨리 넘기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안타까웠어요. 예를 들어 베르너 헤어조크의 <악질 경찰>에서는 주인공이 죽었을 때 죽은 사람의 영혼이 춤을 추고 탈출할 정도예요. 그 장면은 곧 인생 또는 생명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논픽션 영화는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을 데리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아디의 경우에도 저와 같이 일하지 않았다면 가해자들을 대면하지 않았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학살자인 안와르와 그의 친구들도 <액트 오브 킬링>을 찍지 않았다면 학살을 재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경험들이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이것이 신성함입니다. 내러티브를 전달하기 위해 벽돌처럼 장면을 쌓고 싶지 않습니다.

신성한 순간이라는 말을 들으니 <침묵의 시선>에서 생각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디와 어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화면 쪽으로 다가올 때 오리를 싣고 있는 오토바이가 화면에 등장했다 반대편으로 멀어지는데요, 그 장면도 우연히 채집된 것인가요? 연출은 없었나요? 오리를 그렇게 운반하는 걸 본 적도 없고, 그게 맘에 든다 해도 오리들한테 미안해서 그렇게 잡아달라고 할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마침 아디와 그 장면을 찍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오리를 실은 오토바이가 지나갔어요. 그래서 이건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느 정도 설정한 부분도 있습니다.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 아디의 자전거를 교차하는 식으로 위치를 잡았으니까요. 그래도 원래 있었던 요소를 이용한 것이니까 진정성(Authenticity)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기존의 사실들만을 활용해 영화를 만들다 보니 스스로 ‘나는 창의성이 없나?’ 싶기도 해요. 그렇지만 코란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세계는 상징(Sign)으로 가득하다.” 보는 사람의 역할은 상징을 읽어내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한국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는 로버트 알트만의 <매쉬>가 어떠냐고 물었다. 대답이 나오기 전 먼저 말했다. "Not Great." 그리고 친일파에 대해 말을 이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한국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는 로버트 알트만의 <매쉬>가 어떠냐고 물었다. 대답이 나오기 전 먼저 말했다. “Not Great.” 그리고 친일파에 대해 말을 이었다. 

그런 과정으로 영화를 만들려면 결국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10년에 걸쳐 두 편 만들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천천히 영화를 만들 건가요? 전혀 다른 방식으로는 영화를 만들지 않을 거예요. 지금처럼 느리게 영화를 찍을 것 같습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굉장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거라 시간이 당연히 오래 걸렸고,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서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저는 어떤 영화를 만들든 항상 정확하게, 절대 양보하지 않고, 제 소신대로 만들 겁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탐험이라고 생각해요. 뭔가를 탐험할 때는 최대한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완성된 영화는 탐험의 흔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스럽게 여기고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영웅이자 친구 중 한 명인 베르너 헤어조크와 4일 동안 계속 얘기했어요. 그는 그동안 4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많이 만들 수 있다는 게 부러워요. 하지만 베르너 헤어조크는 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고, 저도 그처럼 영화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예술이라는 것은 정말 선택의 연속입니다. 영화는 수천 번의 선택의 결과이고요.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제 방식대로 만든 영화가 훌륭한 작품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훌륭한 작품이 되기 위해선 ‘영화적’인 완성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촬영, 몽타주, 미장센, 소리에 엄청난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선 완성도보단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는 영화가 굉장히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논픽션 영화가 사람들이 쉽게 말하지 못하는 사실을 위해 존재한다면, 정확한 단면들을 발굴해내야만 합니다. 만일 이미지가 정확하지 않다면, 혹은 그 언어가, 편집이, 몽타주가, 구성이, 음악이 진정성을 잃고 명확하지 않다면 관객은 영화의 메시지를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전 만일 그저 정보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영화가 존재한다면 차라리 사람들이 기사를 찾아보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죠. 미국에서도 미국의 뉴스 미디어가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감독들까지 이 영역에 뛰어들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 영화들은 사실 예술로서는 실패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술로서 인정받기 힘든 영화들이라도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좋습니다.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죠. 행동주의 영화를 계속 만든다는 건 그 공동체 안에 속한 사람들이 조직적이고, 활동적이며, 에너지가 넘친다는 증거니까요. 중요한 사안에 대해 아예 침묵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영화가 아닌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텍사스에선 어떤 유년기를 보냈고, 하버드에선 어떤 공부를 했나요? 텍사스에서 태어났지만 한 살 때 워싱턴 D.C.로 이사했습니다. 하버드에 입학했을 때는 이론 물리학과 우주학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철학적인 물음에 더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전공을 철학으로 바꿨습니다. 공부하면서 제가 정말 탐험하고 알아내고 싶은 미스터리들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알아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미스터리를 알아내는 방법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어서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감독 이름이든 영화 제목이든 당신에게 가장 영향을 준 다섯 개의 단어를 꼽아주세요. 베르너 헤어조크의 <난쟁이도 작게 시작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업>, 말콤 맥도웰이 출연하고 린지 앤더슨이 연출한 <오 럭키 맨!>, 자크 데미의 <쉘부르의 우산>, 그리고 로버트 알트만의 <내쉬빌>입니다. 감독이 독일인, 이란인, 영국인, 프랑스인, 미국인이네요. 모두 미국인이 아니라 다행이에요. 하하. 감독은 베르너 헤어조크, 제 멘토이자 유고슬라비아 출신인 두샨 마카베예프, 오스트리아 감독인 울리히 사히들, 이란 감독인 모흐센 마흐말바프. 아, 그는 아까 말한 <클로즈업>에 출연하기도 했죠. 하지만 감독은 건너뛰는 게 좋겠어요. 그 감독들의 특정 영화만 좋아한다고 할 수 있어서요. 오손 웰즈의 영화 중에선 <카프카의 심판>이에요. (사진가 : 저는 <오델로>를 좋아해요.) 그 작품도 너무 좋죠.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도 최근에야 전부 봤어요. 물론 예전에도 <성난 황소>, <비열한 거리>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봤지만 그게 전부였어요. <택시 드라이버>가 가장 좋아요. 아, 그리고 차이밍량.

정성일 평론가가 차이밍량 감독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차이가 무엇이냐?” 그의 답은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면 상업영화이고, 나의 내일을 걱정하면 예술 영화입니다”였어요. 그 반대 아닌가요? 차이밍량이 훌륭한 감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와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영화를 보는 방식은 좀 달라요. 상업영화는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아요. 예술 영화, 일단 전 그 예술영화라는 단어를 싫어합니다만, 그건 탐험하고 발굴해내는 영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차이밍량도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죠. 또한 꼭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영화가 예술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영화는 현재를 구성하는 어떤 단편적인 과거를 발굴해내는 것이에요. 반면 상업영화는 여자와 남자가 잘될 것이냐는 개인적인 미래와 외계인으로부터 지켜내야하는 인류의 미래를 하나의 경험으로 매듭지으려고 합니다. 허상과 같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영화가 해야 할 어떤 역할에서 우리의 주의가 멀어지게 만듭니다. 영화는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거울로는 미래를 볼 수 없어요. 거울에 비친 얼굴은 이미 과거의 ‘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인 것이죠.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언론이 우리에게 새로운 정보를 전공해주는데요, 뉴스가 충격적인 이유는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은 당신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드는 것이죠. 현재 대부분의 상업영화는 뉴스 같아요. 잘못된 방식으로 조화로운 미래를 보여주죠. 그래서 개인적이든, 친밀하든, 나쁘든, 정치적이든 폭력을 간과해도 좋다는 식으로 보여줍니다 그런 폭력은 우리의 과거로부터 연유한 것입니다. 그런 과거를 보는 게 영화의 역할입니다. (그의 대답은 차이밍량의 대답과 비슷했다. 차이밍량의 대답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래서 상업영화는 항상 책임질 수 없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예술영화는 자기가 알 수 있는 한계 안에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인도네시아 사람들보다 그들의 문제에 가까이 접근했습니다. 이제 당신을 찍을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문제를 외국에 보도했는데요, 우린 이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자국민이 자국의 이야기를 하면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사진가 : 자기 검열 같은 것이죠.) 그렇다면 서로 돕는 전 지구적인 연대가 필요할까? 하고요.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백일째 되는 날입니다. 저는 자국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을 자국민이 파헤치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외국인으로서 덴마크에서 살고 있는데, 이민자란 것이 큰 약점입니다. 민주주의 정부라면 정부는 시민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국가에서 외부인이 이야기를 대신해줘야 한다면 그 나라가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미국도 드론을 이용해 해외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해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점에 대해서 미국인으로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진가가 말한 것처럼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는 건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안 되는지 그 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죠. 이게 바로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 국가의 정점을 보여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되면 내가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을 느끼고, 창피하기 때문에 그런 수치심을 감당하기 위해서 “신경 쓰지 않는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아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백일이 됐다고 하셨는데, ‘아, 이제 그만 좀 들었으면 좋겠다, 지겹다’는 반응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건 정말 진짜 그 뜻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온 반응입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다이빙 벨>을 상영한 것 때문에 영화제가 타격을 입었는데 만약 <다이빙 벨>이 상영되지 않았다면 영화제로서의 존엄성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아직 그 영화제가 건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참 다행이에요. 지난 5백일이라는 시간을 기억하면서 존엄성, 내 힘, 내 권력, 내 권리를 되찾았으면 합니다.

잘 안 될 땐 슈퍼히어로라도 기다려야 할까요? 혹시 좋아하는 슈퍼히어로가 있나요? 전 슈퍼히어로를 믿지 않아요. (통역사 : 당신이 한국에서 했던 대답 중에 가장 짧았어요.)

 

인터뷰를 하며 통역사가 말을 할 때 그는 휴지를 찢고 그 조각으로 계속 뭔가를 만들었다. 그건 균형을 이루지 않는 상징 같이 느껴졌다. 상징은 끊임없이 바뀌었다.

인터뷰를 하며 통역사가 말을 할 때 그는 휴지를 찢고 그 조각으로 계속 뭔가를 만들었다. 그건 균형을 이루지 않는 상징 같이 느껴졌다. 상징은 끊임없이 바뀌었다. 

 

    에디터
    양승철
    포토그래퍼
    신웅재
    어시스턴트
    조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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