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랩, 나쁜 랩, 이상한 랩

TV만 틀면 랩이 나온다. 누군가는 칭찬을, 누군가는 혹평을 받는다. 보면서도 갸우뚱한다. 저게 잘하는 건가? 과연 좋은 랩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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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랩은 무엇인가? 반대로 최근 들은 것 중 가장 나빴던 랩은 <언프리티 랩스타 2> 주제곡 ‘언프리티 랩스타(Don’t Stop)’에서 캐스퍼가 쓴 구절이다. “쇼미더머니 시즌 사이 공백을 겨냥한 프로그램이 그것보다 돈 돼서 어느덧 시즌2를 바라보네 자칭 진짜들보다 이 문화에 도움돼 내가 볼 땐.” 특히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온 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제한된 마디 안에 효율적으로 담겨 있지 않아서다. 앞의 ‘팩트’는 정확하지 않고, 뒷부분의 의견엔 근거가 없다.

한국 힙합은 ‘카더라’에서 출발했다. 최초의 카더라는 “힙합은 사회 비판 음악이다”였다. “백색 가루에 뻗친 끝이 없는 욕심/ 여자들을 팔아넘겨 배 채운 돼지여/ 피붙이를 버리려고 했다 인생에.” 진짜 슬럼가에서나 흘러나올 법한 이 곡은 1999년 발표된 ‘우리는 Y.G. Family’의 가사다. 언더그라운드 힙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 비판과 의지, 의미, 열기 같은 언더그라운드의 진정성이 담긴 단어를 룰렛에 돌리면 가사 하나를 쓸 수 있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다음절 라임, 펀치 라인 같은 이슈가 오갔고 이제는 누구도 웃기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저런 가사를 쓰지 않는다.

지금 한국 힙합에선 “힙합은 스웨그다”라는 카더라가 떠다닌다. 성공한 래퍼 대부분이 그런 랩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힙합의 테두리 안에서 으스대며 자신을 자랑하는 스웨그는 중요한 태도 중 하나다.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질 경우 모두의 비웃음을 사기 때문이다. 힙합을 소재로 삼은 TV 프로그램의 재미 역시 회차가 거듭되며 이들의 스웨그가 얼마나 허풍인지 확인하는 데서 나온다. 유행과 별개로 지금 한국엔 스웨그를 부릴 만한 실력이 있는 래퍼도, 그만한 성공을 거둔 래퍼도 많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스웨그는 20여 년 전의 사회 비판 ‘카더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힙합은 그루브의 장르고 랩은 이를 구성하는 복합적인 리듬 중 하나다. 다른 구성 요소와의 차이라면, 언어가 있는 리듬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자신의 부를 과시할 수도, 정치적인 선동을 할 수도 있다. 단, 그 언어는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캐스퍼의 랩이 나쁜 건 자기 생각과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큰 반향을 끌어낸 힙합 음반은 이센스의 <The Anecdote>다. 탄탄한 프로듀싱에 빼어난 랩 스킬까지 단점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음반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이센스 자신의 이야기다. 잘 알고, 잘 말할 수 있고, 오래 굶주려온 자기 이야기. “야, 돈 많고 잘나가면 장땡이야/ 니가 뭘 하든 굶으면 의미 없어/ 야, 다 주사위 게임이야/ 그럼 바닥에 처박던지 아님 위로 던져.” 이런 가사에 어떻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글 / 하박국(Young,Gifted&Wack 대표)

좋은 랩에 대해 논하기 전에 랩의 성립 조건에 대해 말해야 한다. 기본 중의 기본을 다시 꺼내야 하는 상황이랄까. 원인 제공은 바로 <Show Me The Money>. 이 프로그램의 1차 예선(무반주 랩)은 늘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저 수많은 래퍼 지망생에게 과연 랩이란 무엇일까?’ 그들은 평소보다 조금 더 악센트에 힘을 줘 말하거나, 누군가와 싸울 때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말싸움을 이길 수는 있겠지만 랩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랩에는 꼭 리듬이 있어야 한다. 음의 장단이나 강약이 반복될 때의 규칙적인 흐름 말이다. 드럼비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듯 들으면서 규칙적으로 몸을 들썩일 수 있어야 랩이다. 랩은 리듬을 갖추고 있기에 비로소 ‘말하기’와 구별되는 음악이 된다.

그리고 좋은 랩. 물론 좋은 랩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많은 랩 중에는 더 끌리는 랩, 달리 말하면 완성도가 높은 랩이 있고 그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랩이 ‘라임 게임’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랩이다. 같거나 비슷한 발음의 표현을 반복하는 행위는 랩의 생명과도 같다. 리듬과 운율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랩에서 라임은 많을수록 좋다. 라임은 랩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가 아닌 랩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엠씨 댓썩(MC Thatsuck)의 ‘신곡(Shingok)’이라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라임으로 범벅된 이 아저씨의 랩을 모두가 그저 우스개로 소비했지만, 글쎄. 스윙스의 포효를 따라 하기에 급급한 아마추어들보다 그가 랩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이어지는 맥락에서, 좋은 랩이란 정교한 건축 설계도 같은 가사로부터 나온다. 라킴이 칭송받는 이유는 그의 가사가 완벽한 수학적 구조에 가깝기 때문이다. 수많은 라임이 대칭을 이루는 조화롭고 탄탄한 구조 아래, 규칙에 벗어나는 적절한 변주를 섞는 식이다. 그런 랩을 ‘힙합은 자유’라 말하며 그저 내키는 대로 쓴 가사와 같은 범주에 놓을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내용을 살펴봤을 때, 그것이 랩인지 아닌지 불분명해 보이는 가사는 대부분 좋은 랩의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매 문장이 이상, 상상, 공상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그것이 랩 가사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읽어봤을 때는 라임이 단번에 눈에 띄지 않지만, 실제 랩을 들었을 때 라임이 빼곡히 박혀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그린 라이트’다. 래퍼가 메시지의 자연스러움을 보존하면서 좋은 랩의 조건을 충족시켰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글 / 김봉현(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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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런 디엠씨의 랩을 지금 기준으로 판단해보면 어떨까? 다소 뻣뻣하다. 그렇게 ‘때려 박는’ 랩은 흥겹지만, 런 디엠씨의 음반이 2015년에 나온다면 과연 그 랩에 좋은 평을 내릴 수 있을까? 재현과 ‘레트로’라는 지향점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 그렇게 평하긴 어렵다. 훨씬 다양하고 기발한 라임과 플로우가 이미 많이 나온 상황이라서다. 하지만 아레사 프랭클린이 60~70년대에 부른 곡의 보컬은 요즘도 충분히 절창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보컬엔 최소한의 보편적 기준이 형성 되어 있다. 그것을 우리는 ‘가창력’이라 표현한다. ‘가창력’이 ‘좋은 보컬’과 동의어라 할 순 없지만,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그런 평가가 가능하다. 또한 보컬의 기술은 체계적인 훈련에 따라 발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랩은 어떤가? 가르치고 배울 수야 있겠으나, 과연 무엇을 교과서로 꼽을 수 있을까? 설사 지금 당장 가장 뜨거운 래퍼를 예로 든다 해도 그것의 지속 가능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물론 보컬에도 시대별 유행이 있지만, 랩처럼 극단적이진 않다.

랩이 기술이라면, 최고 수준에 근접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를테면 숙련된 기술자라는 표현처럼. 하지만 랩은 무엇이 최고인지 판단이 어려울뿐더러 비슷하게 따라잡는다 해도 그것을 마냥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보컬의 경우 고음이 높이 올라간다, 음정이 정확하다, 음역이 넓다는 평가는 명백한 ‘팩트’다. 하지만 랩에서 플로우가 뛰어나다, 라임이 근사하다는 식의 평가는 주관적이다. 결국 랩은 기술적 완성도를 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논한다 해도 그 근거는 당장 지금의 랩이 기초가 될 것이다. 런 디엠씨의 랩을 예로 들 수는 없다.

<언프리티 랩스타 2>에서 트루디는 이렇게 말한다. “(윤미래) 언닌 내 교과서. 난 언니 랩을 먹고 자랐어 최고급 분유.” 이 지점부터 트루디의 랩은 좀 낡아 있다. 듣기에 불편함이 없어 꽤 그럴싸한 것 같지만 아쉽게도 거기에 그친다. 한편 빈지노의 신곡 ‘Break’는 무척 새롭다. 거친 밴드 연주가 꽤 ‘사이키델릭’하게 들리는데, 빈지노는 그야말로 거기에 걸맞은 선이 굵고 덜 매만진 듯한 랩을 들고 나왔다. 어떤 구절에선 장기하의 몇몇 보컬이 연상될 정도지만, 여타 노래하듯 흥얼거리는 (이미 흔한) 랩과도 확연히 구별된다. ‘Break’의 가사는 어쩌면 빈지노의 각오일까? “내가 살리고 싶은 건 내 개성/ 똑같은 새끼들은 지구에 쌔고 쌨어.”

따지고 보면 뛰어난 래퍼들은 전부 그렇게 등장했다(혹은 변신하거나). 일예로 1986년 데뷔한 라킴의 랩은 거의 이전 세대로부터의 단절에 가까울 정도로 부드럽다. 기술적으로 분석하기 전에 이미 대번 다르게 들린다. 좋은 랩이 그렇다. 그것은 교과서를 보고 배우는 게 아닌, 교과서로부터 과감히 벗어날 때 태어난다. 에디터/ 유지성

b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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