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평행이론

누가 시민인가? 누가 국민인가? 누가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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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날 소리처럼 들렸다. 하늘에는 헬기가, 도로 위에는 경찰 버스가 차벽을 만들고 있었다. 저러다 누가 다치지는 않을까? 바닥에는 확성기 여러 대가 놓여 있고, 누군가는 작은 북을 들고 있었다. 지난 9월 18일 일본 도쿄에 있는 국회 건물 앞이었다. 그 앞에 모인 젊은 사람들, 10대와 20대가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듯이 외치는 소리들. “겐뽀 마모루, 겐뽀 마모루!” “센소오 한타이, 센소오 한타이!” “아베와 야메로, 아베와 야메로!” 이런 구호들을 아주 빠르거나 때론 느리게, 북소리의 비트에 맞춰 외치고 있었다. 앞에서부터 번역하면 이런 뜻이다. “헌법 지키자, 헌법 지키자!” “전쟁 반대, 전쟁 반대!” “아베는 그만둬, 아베는 그만둬!” 이들은 실즈SEALDS라고 불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의 회원들이었다. 원래는 6명 뿐인 모임이었다. 그날은 십 수만 명이 모였다. 다른 집회에서, 이들이 지나갈 때 옆에서 소리를 지르는 어른들이 있었다. “아리가토오! 간바레!” 고마워, 힘내라는 말이었다.

10월 12일 광화문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대학생들이 모여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외치는 중이었다. 경찰은 미신고 집회를 열고 해산 명령에 불응한 혐의를 적용해 이들을 연행했다. 학생들은 두 곳의 경찰서에 나뉘어 옮겨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그날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관악경찰서 상황 보고’ 여학생만 6명 조사 중입니다. 다친 데는 없고 씩씩합니다. 민변 소속 변호사 접견을 한 상태. 가급적 빨리 풀어주라고 당부하고 나왔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여러분들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상 보고를 마칩니다.” 10월 12일 밤 10시 18분이었다.

일본의 젊은이들한테 ‘사토리 세대’니 하는 말을 한 사람은 누구였더라? 그걸 달관 세대라는 묘한 말로 번역한 신문은? 현상이 있었으니 정리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음은 마케팅 용어 같은 말로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을 두고 ‘체제 순응적’이니 ‘무기력’이니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시기도 지났다. 게다가 일본의 경우, 실즈의 활동을 중심으로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규모가 명확히 확산되고 있다. 현장에는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섞여 있었다. 지난 8월 말 즈음에는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현장에서 발언했다. 점점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실즈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는데 더워보여서 부채를 만들어 나왔다는 아주머니, 아기를 안고 나와서 “우리 자식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전쟁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단의 발단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주도하는 일본 안보법 개정이었다. 안보법 개정의 목표는 일본의 군대가 스스로 전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법을 바꾸는 데 있다. 자위대는 스스로 전쟁을 할 수 없는 군대였다. 일본의 헌법 9조는 지난 70년 동안 그 법적 근거였다. 좀 길어도 정확히 읽어두는 게 좋다.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한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 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 일본은 전쟁을 하지 않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평화헌법’이라 부르는 이유다. 안보법은 9월 19일 새벽 최종 처리됐다. 이제 자위대는 일본 영해 밖에서 군사행동을 할 수 있게 됐다.

한국 대학생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를 한 건 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 직후였다. 사회 학자 엄기호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많은 사람이 설마설마 했다. 어느 반대 대자보에 나오는 말처럼 21세기에 진짜로 할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논란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일인데 이렇게까지 됐다. 우리는 지금까지 상식이라고 믿었던 근거의 바닥이 다시 한 번 갈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엄기호는 이렇게 이어 썼다. “유신시대로의 회귀라는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명백한 ‘국정’ 교과서를 ‘통합’ 교과서라고 말한다. 쓸데없는 내분만 잔뜩 일으키고는 그걸 통합이라고 말한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사람들이 말문이 막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말이 말 같지 않으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기 때문이다.” 국정교과서는 1974년에 시작됐다. 폐지는 2007년이었다. 우리는 20세기로 돌아간 것이 맞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 전원은 10월 13일,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 성명을 냈다.

그 20세기에, 고등학교 교실에서 필기에 열중하던 학생은 그게 국정교과서라는 자각도 없었다. 국사는 꼼꼼하게 외워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되는 과목이었다. 90년대 후반의 우리는 6차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웠다. 이건 아주 개인적인 얘기이자 시대적인 얘기이기도 하다. 그 교실에서,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는 이상하게 생각했던 두 사람을 기억하기도 한다. 한 친구는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가 다 맞는 건 아니라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했다. 당시 한문 선생님은 대학에 가면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이 많이 변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했다. 근현대사는 학기말에 ‘슬렁’ 배우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비중이 크지 않았으니 시험에 잘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니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모르는 일과 잘못 배우는 일 가운데 더 나쁜 경우를 가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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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였다. 소위 ‘운동권’이라 불렸던 흐름이 거의 희미해지던 때. 하지만 그때 그 두 사람이 왜 조심스러워했는지는 천천히 알게 됐다. 불과 몇 권의 책과 몇 시간의 교양 수업, 몇 편의 사설을 읽은 후였다. 교과서는 절대적으로 옳은 책이 아니고, 거기 쓰여 있던 문장도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다는 충격. 벗어나서 알아야 하는 것이 그렇게 많았다는 사실에 대한 막막함. 역사는 원래 그렇게 다양한 거였다. 알고자 하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여기는 적극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평생 믿고 살아야 하는 나라라는 것을 깨닫는 최초의 계기이기도 했다. 의심은 지식과 겸손의 필요조건이라지만…. 그건 분명한 허무의 시작이기도 했다.

다만 그 시절의 교실에서 경험한 한 친구와 한문 선생님의 조심스러움의 바탕에 공포가 있었고, 그 공포는 체험한 적이 없어도 내재돼 있다는 것 또한 지금은 안다. 일본과 한국의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 할 말을 하고 있는지를 보는 경험은, 그 공포와 새삼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더불어 “이미 자기 검열이 시작됐다. 분노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공포와 맞닥뜨리게 됐다”는 한 소설가의 말을 들었던 게 벌써 5년 전 이었다는 것도 갑자기 떠올랐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정당과 정치에 대한 얘기도 아니다. 다만 의심 자체로 공포를 느껴야 하고, 그 대상이 정치인이라는 데서 오는 새삼스러운 혼란에 대한 얘기다.

일본의 우경화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본격화됐다고 보는 분석이 많다. 단단히 믿었던 것이 사실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것이 죄 없는 다수를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 허술함의 주체는 국가일 텐데, 그 피해는 불특정 다수가 입어야 하는 모순. 전쟁은 그 극단에 있고, 정치는 그런 걸 이용할 수 있다. 아베가 하고 있는 일이다. 한쪽이 극단으로 가면 다른 한쪽도 움직여야 한다. 그건 실즈가 아주 새로운 방법으로 하고 있는 일이다.

한국도 2014년 4월 16일 이후 국가적 재난과 무능을 몇 번이나, 슬프도록 확인했다. 정치가 부끄러움을 알 리 없다는 건 이제 경험으로 안다. “역사교과서는 국정화되고, ‘공산주의자 감별사’ 고영주가 의인 칭호를 받고, 문예인들에 대한 국가 지원기관이 공공연하게 검열을 실시한다. 이런 일의 추진자들은 말이 안 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서 토론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남은 것은 시민 저항밖에 없다.” <밤이 선생이다>를 쓴 고려대학교 황현산 명예교수가 지난 10월 8일 트위터에 쓴 것이다. 어느 쪽이 전쟁을, 어느 쪽이 평화를 원하는가. 역사에 ‘올바른’이라는 수사는 과연 올바른가. 지나간 것은 다르게 쓸 수 있어도 지금을 윤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역사의 복판에 있다. 그것만이 진짜 분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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